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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맥추절과 감사신앙(신16:9-12, 살전5:16-18)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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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7-03 15:46 조회 20,329 댓글 0
 
맥추절과 감사신앙(신16:9-12, 살전5:16-18)      2016. 7. 3  맥추감사주일


유월절과 맥추절과 초막절은 성경이 말씀하는 세 절기이다. 신명기 16장에는 그 세 절기 모두가 소개되어 있다. 맥추절은 칠칠절 혹은 초실절이라고도 한다. 칠칠절이란 유월절 이후 일곱 주간이 채워진 때라는 말이다. 초실절이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 가운데 첫 열매를 수확하여 감사드리는 절기이다. 출애굽기 34장 22절에 보면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했다. 
보리와 밀농사를 추수하는 때가 초실절이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지 않나. ‘보릿고개’란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이다. ‘춘궁기’라고도 하였다. ‘춘궁기’란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햇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에 식량이 모자라서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기”를 말한다. 가난은 언제나 있었다. 오늘 날도 가난하게 사는 이들의 가난의 대 물림이란 심각하다. 지방에서 서울에 와서 살아 보려는 이들이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사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은평 뉴 타운 주민들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월세 집에 살고, 쪽방 촌에 사는 서울 시민들도 적지 않다. 먹고 입고 사는 모든 것이 거저 되지 않는다. 의식주(衣食住)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아가나. 분복(分福)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 수 있겠나.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 보려고 출발했던 아브라함의 때에 가나안에 기근이 심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함께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까지 내려갔다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바로 임금의 때에 애굽에 칠년간의 극심한 흉년이 계속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애굽 총리는 아브라함의 증손자로 애굽의 노예 생활 중에 출세한 요셉이었다. 사사 시대 말기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중에 기근이 극심하였던 적이 있다. 룻기의 시대 배경이 그러하지 않나.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이 말씀은 룻기가 시작되는 첫 구절 말씀이다. 베들레헴의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과 함께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먹을거리를 찾아 이주하였다. 

이처럼 흉년이 들고, 기근이 찾아 드는 것은 심각한 삶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농경 사회, 목축 문화권에서 흉년이 들고 기근이 심했다는 말은 시대적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은 동서고금이 다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IT산업이 발전한다고 하여도 농사가 근본이다. 바다와 논과 밭과 산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재앙이다. 한해가 멀다하고 농부들이 데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농사하는 이들이 땀 흘려 농사해도 제 값을 받기 어려운 유통 구조로 인해서 농민들이 신음하기도 한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요즘처럼 제품으로 판매되는 우유가 흔하지 않았다. 시골 초등학교에는 옥수수 빵인 강냉이 빵을 급식으로 주었다. 우유는 분유를 펄펄 끓여서 한 대접씩 마시도록 하였다. 초등학교 때 운동선수들은 지푸라기로 둘둘 엮어 담은 한 꾸러미의 날달걀 한 개씩을 나누어 받으면 그 자리에서 달걀 양쪽에 구멍을 내서 하늘을 쳐다보며 쪽 쪽 빨아 먹었다. 

그 때에는 싱아 철이면 산과 들에 싱아가 남아나질 않았다.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박완서(1931-2011)작가의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도 있지 않나. 작가는 1931년생이다. 79살을 살았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후반기에 어린 시절을 지내고 14살 어린 소녀 때에 해방을 맞았다. 이 땅에 6. 25 전쟁이 벌어질 때에 그의 나이는 19살이었다. 이처럼 소녀기와 청년기에 나라가 겪는 온갖 질곡 많던 역사를 기억하는 그녀는 책 속에서 ‘싱아’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추억 속에 떠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랬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지지리도 가난하고 지지리도 못 살고 지지리도 어렵게 살던 때가 있었다. 임금이나 관리들이야 굶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소나무의 새로 자라난 가지 껍질을 벗겨서 그걸 빨아 먹었다. 소나무 어린 가지의 속살에는 달짝찌근한 맛이 나는 송기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껌처럼 먹기도 하였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 벚나무의 열매인 벗지, 뽕나무의 오디를 모두 훑어 먹었다. 개 복숭아나무의 맛도 없는 털복숭아를 싹 쓰리 해서 먹었다. 해빙기에는 칡뿌리를 부지런해 캐 먹었다. 참으로 배고프고 가난했다.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를 제대로 잘 지키라고 하셨을까. 유월절이 무엇인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이 호렙 산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의 바로 왕 앞으로 보내셨다. 열 번째 재앙인 장자를 치는 재앙 앞에 바로 임금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정하신 날 밤에 히브리 백성들을 홍해 건너 광야로 내어 모셨다. 하나님이 이끌어 내신 것이다. 유월절을 맞이하는 무교절 기간에는 엿새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먹어야만 한다. 신명기 16장 3절에 보면 그 무교병을 ‘고난의 떡’이라고 하였다. 사실 빵이란 것이 이스트 즉 누룩이 들어간 발효된 빵이라야 맛이 있지 누룩이 없이 반죽하고 구워낸 빵이란 이름만 빵이지 무슨 맛이 있겠나. 그런데 하나님은 매해 유월절이 되면 누룩 없이 만든 무교병을 먹고 쓴 나물을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조들의 때에 겪었던 유월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소와 양을 잡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각자 자기 성에서 유월절을 지내지 말고 한 곳, 즉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 다 같이 모여서 엿새 동안 무교절을 지내고 일곱 째 날에 택하신 곳에서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고기를 구워 먹고 유월절을 맞으라고 하셨다. 해마다 어린 아들 딸 손자 손녀들과 함께 무교절을 지키고 유월절을 지키며 유월절이 무엇인지를 후손들에게 말하고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절기를 따라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본문이 시작되는 신명기 16장 9절의  “일곱 주를 셀지니”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그 둘째 날에 보릿단에 낫을 대서 첫 열매를 수확하였다. 그 보리 이삭 한 단을 여호와의 제단에 흔들어 들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흔든다는 뜻에서 ‘요제’(wave offering)이다. “하나님 이것 보세요 올해도 이렇게 절기를 따라 첫 열매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요제를 드린 후에 일곱 주를 세어서 드리는 절기가 칠칠절 즉 초실절인 맥추감사절이다. 해마다 때가 되어 열매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지 어찌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인가. 그러므로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올해도 절반이 지났다. 칠월을 맞으면서 헐몬산 새벽 기도회에 새벽마다 깨어 일어나 기도하고 있다. 마침 오늘, 칠월 첫 주일을 맥추 감사 주일로 지킨다. 

감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새나 물고기나 짐승이나 동물은 감사를 모른다. 기쁨, 감사, 기도의 영역이 모두 다 마찬가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했다. 사도 바울은 남 다른 고난의 삶을 살았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체험을 한 후로 그는 이방 선교에 앞장 서는 고난의 사도였다. 고린도 후서 11장에서 간증하는 그의 고백을 보면 그는 끊임없는 고난의 날들을 이겨 내야만 했다. 그러나 늘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감사하는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감옥에 갇히는 옥살이란 감옥 안에서 오전 오후 시키는 일을 하면 하루에 400만원씩 탕감 받는 우리나라의 그런 황제 노역의 감옥살이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도 수 없이 맞았다. 여러 번 죽을 뻔하기도 하였다.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세 번은 태장으로 맞았다. 한 번은 돌로 맞았다. 세 번이나 배가 파선되어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다. 여러 번의 선교 여정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겪어야 했다. 끝없이 수고하고 애를 써야 했다. 잠 못 자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는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언제나 모든 교회를 향한 염려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도 바울은 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갔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본문의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 대로 감사.
신명기 16장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라고 말씀했다. 유월절을 맞고, 칠칠절인 맥추절을 맞고, 수장절인 초막절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헤아려 보라는 말씀이시다. 우리는 각 사람이 받은 복이 서로 다 다르다. 각 사람이 가만히 자신을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나만의 복이 누구나 있다. 어떤 이들은 불면증으로 고생한다. 밤만 되면 밤이 길고 밤이 두렵고 밤이 싫고 하루 밤을 지내기가 너무 길고 지루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에 깊은 잠이 들어 버린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잔다. 하룻밤 고단하게 단 잠을 잘 잘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감기가 와서 양쪽 코가 꽉 막혀 보면 입으로 숨 쉬지 않고 코로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복이다. 한 쪽 손 불편해져 보면 양말 하나 갈아 신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손만 다쳐 보아도 세수 한 번 하는 일도 불편하기가 그지없다. 

사람은 감사하며 살줄 알아야 한다. 부모에게, 가족에게, 부부가 서로에게, 형제자매 지간에, 친척들 틈바구니에서, 이웃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모든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나에게 생명 있는 것 감사하고, 하루라는 시간을 부여 받아서 살아가는 매 순간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니지 않나.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생명이 있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모든 날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가. 

사람이 병들어 보면, 병원에 환자 복 입고 입원 해보면 세상에서의 일상적인 하루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하루인지 더 실감나게 되지 않나. 응급실에라도 실려 가 보면 별일 없이 무탈하게 지내는 하루가 얼마가 큰 축복의 날인지 알게 되지 않나.

1620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출발한 청교도들이 있었다. 저들 102명은 180톤짜리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에 도착하였다. 두 달이 넘는 65일 동안 걸려서 그 해 12월  21일에 보스턴 가까운 곳의 플리머스라는 항구에 도착하였다. 이미 추운 겨울이 되었다. 그 해 겨울을 나면서 병들어 죽고 추위에 얼어 죽고 제대로 못 먹어 죽은 사람이 44명이었다. 58명만 살아남았다. 어렵게 겨울을 견뎌 내고 봄을 맞았다. 그들을 경계하는 인디언들의 습격도 있었지만 다행히 친절하게 대해 주는 인디언들에게 농사 하는 법을 배웠다. 호박 농사, 옥수수 농사, 감자 농사를 지었다. 야생 칠면조도 잡았다. 과일도 수확했다. 심지 않은 과일 나무의 열매를 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채소도 가꾸었다. 바다와 강에서 물고기도 잡았다. 그 첫 추수 감사절은 눈물과 감격의 추수감사절이었다. 그것이 미국 땅에서 있었던 1961년의 첫 추수감사절이다. 오늘 날의 미국이 그런 때와 비교하면 하룻밤 수고하고 애써서 건설한 나라가 아니지 않나. 우리나라도 일제시대와 6. 25 전쟁을 생각하면 오늘 날의 발전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축복이 아니지 않나. 

어느 교회나 그렇지만 우리 교회도 사람의 생각으로 시작된 교회가 아니다. 벌써 6년이 지났고 올 해 말이면 7년이 된다. 이렇게 헐몬산 새벽 기도회를 맞이하며 지키는 맥추 감사절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내년부터는 맥추감사절도 추수감사절처럼 좀 더 풍성하게 맞으면 좋겠다. 지난 주일에 어느 가정이 농사한 햇감자를 내서 우리 모두가 점심시간에 삶은 햇감자를 한 톨씩 나누어 먹었다. 옥수수 한 자루만 해도 그렇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깜부기병이 심해서 옥수수 농사도 잘 안되었다. 대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여름을 나도록 잘 영근 옥수수 한 자루를 통째로 다 먹어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개는 절반쯤 영글다 만 것들이 적지 않았다. 옥수수나 수수에 깜부기병이 그렇게 심했었다. 밤 한 톨, 잘 익은 홍시 한 개, 완두 콩 한 알, 강낭콩 한 알, 감자, 옥수수, 고구마, 쌀 한 톨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 거둘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그러므로 절대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태어난 아들딸을 제대로 잘 키워 내는 일도 하루 이틀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감사도 습관이고 불평도 습관이다. 가정, 속회, 교사, 성가대, 주방, 카페 봉사, 주차 봉사, 운전 봉사를 비롯해서 교회 오가는 차 안에서든 어디서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감사도 번져 가는 힘이 있고 불평도 번져 가는 힘이 있다.  영어 표현에 “모든 불평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All complaining is against God.)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감사도 불평도 하나님이 들으신다. 모세 때에 광야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 앞에 불평하고 원망하던 말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들으셨다고 하지 않았나. 

애굽에 빨가벗겨진 채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이 자기 신세와 운명을 불평과 원망과 탄식과 저주와 자포자기로 살아갔다면 그가 어떻게 감히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겠는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 손잡고 낯 설은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마을에 도착해서 얼굴 가리고 보리 이삭 밀 이삭 주어다가 한 끼니의 떡을 구워 먹고 사는 처지에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다면 어떻게 그가 보아스의 마음에 드는 여성으로 보아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겠나. 

주전 586년,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이 불바다가 되고,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의 땅에서 자기들의 신세타령이나 하며 되는 대로 막 살았다면 그런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겠는가. 다니엘의 사자 굴속의 기적,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풀무 불 속에서 건짐 받은 기적의 배후에는 “그리하지 아니하실 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절대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던 저들의 굳센 믿음과 감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과거에 미국의 텍사스 주에 어느 방앗간 사장이 예수를 잘 믿고 교회에 충성을 하였다. 그런데 그만 큰 홍수로 방앗간이 다 떠내려가고 물에 잠기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고 홍수에 씻겨 나간 방앗간 터를 정리하는데 방앗간 바닥에서 시커먼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유전이 발견된 것이다. 큰 홍수로 엄청난 재산 피해를 보고 망했다고 여기던 그의 가정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새 일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나의 가정에 복을 주신대로 감사하고, 복을 받은 만큼 감사하는 감사절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힘껏 자원하는 예물로 감사.
맥추절 예물을 드리되 신명기 16장 10절에 “네 힘을 헤아려” 감사하라고 하셨다.  17절에도,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고 하셨다. 적당히 인색하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힘껏 드리라고 하였다. 예수님께 한 나드의 향유 옥합을 깨트려 부어 드리고 머릿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리며 섬기던 마리아의 섬김은 힘을 다하여 섬기는 감사의 섬김이었다. 그러나 그런 섬김의 현장을 보며 마리아에게 “왜 허비하냐”고 시비 걸고 “왜 낭비하냐”고 책망한 가롯 유다의 마음은 예수님을 한번도 제대로 사랑하거나 섬기는 진실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이름 뿐인 제자였다. 결국 그가 예수님을 팔아 버리고 배반하고 떠나가서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나. 


모세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광야에서 성막을 건축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애굽을 떠날 때에 가지고 나온 것들 중에서 힘껏 좋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 출애굽기 35장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셨다.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출35:5)고 말씀하셨다.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은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보석인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들을 힘써서 가지고 나왔다. 없는 것을 가져 온 것이 아니다. 애굽을 떠날 때에 가지고 광야에 나선 가지고 있던 소유 중에서 힘껏 하나님의 성막 건설을 위하여 바친 것이다.  

이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에도 마찬가지요, 스룹 바벨의 제 2 성전 건축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린도 후서 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가야 지역 교회 성도들의 연보 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저들은 미리 준비하여 드렸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렸다. 사도 바울은 “이것은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고 교훈해 주었다. 이 세상은 공평하다. 세상 떠날 때 되면 다 남겨 두고 가는 법이다. 제 손에 움켜 잡고 갈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모세 때에 광야에서 아침 마다 만나를 거두어 먹었다. 날마다 하루 분량을 거두어 먹게 하셨다. 욕심으로 거둔다고 쌓아 두고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힘껏 충성하며 헌신하며 섬기고 희생하는 이들의 그 아름다움 섬김만 두고두고 미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땅에 쌓아 두는 보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교훈해 주셨다. 

십일조는 기본이다. 그러므로 감사신앙, 절기 신앙이 각 사람의 감사하는 믿음 생활의 척도이다. 

미국 필라델피아가 낳은 잔 와나메이커(John Wanamaker,1838-1922)는 흔히 백화점의 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곁에도 그의 동상이 있을 정도이다. 그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경영 철학으로 성공한 백화점 제도의 창시자이다. 그는 인생을 비누에 비유해서 말했다. “비누는 쓸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하찮은 물건이지만 때를 씻어줍니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비누는 좋은 비누가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사회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고 자기 힘을 아끼는 사람은 나쁜 비누와 다를 바 없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 무척 가난했다. 그래서 학교에 계속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해 벽돌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출석하던 교회는 낡고 비도 샜다. 교회 건축을 염원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건축을 위해서 무언가를 바칠 결심을 하였다. 그는 자기가 일하는 벽돌 공장의 벽돌을 한 수레 바치기로 하고 아버지에게 그의 마음을 전하였다. 아버지도 기쁘게 여기고 칭찬해 주었다. 벽돌 한 수레를 싣고 목사님의 사택을 찾아 갔다. 그의 열심에 감동한 목사는 그를 위해 뜨거운 눈물로 축복하며 기도를 해 주었다. 그는 나중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4살 때 서점 점원으로 일했다. 18살 때 남성 옷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19살 때부터 4년 동안 YMCA간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23세 때 처음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다. 손님을 왕처럼 귀하게 모시고 정찰제 판매와 판매한 제품의 반품과 교환을 친절하게 하였다. 고객들은 만족스러워 했고 사업은 점점 번창하였다. 나중에는 미국의 10대 재벌 중 하나가 되었다. 150년 전의 일화이다. 사업이 크게 성공한 어느 날 와나메이커는 100만 달러를 들여서 교회를 지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의 백만 불은 어마 어마한 돈이었다. 헌당식에서 그는 어렸을 때 벽 돌 몇 장을 건축을 위해 드리던 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더욱 감격스러워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많은 돈을 선교비로 헌금하였다. 어느 날 선교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나 알아보려고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보고 감격했다. 때마침 한 노인이 소 한 마리와 한 젊은이가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잔 와나메이커는 이상히 생각하여 “왜 농사를 이렇게 하느냐”고 그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우리가 저 예배당 건축에 헌금할 돈이 없어 소 한 마리를 팔아 헌금하고 한 마리의 소 대신 우리 아들이 멍에를 멘 것 이라.”고 말했다. 잔 와나메이커는 그 자리에서 “주님! 나로 하여금 주님의 멍에를 메게 하시고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다. 이 말을 들은 잔 와나메이커는 크게 감동을 받고 그 청년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신학공부를 할 길을 열어 주었다. 그가 바로 초창기 중국 복음화의 기수가 된 성문삼 목사이다. 잔 와나메커는 백화점 왕으로서 51살 때에 벤자민 헤리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체신부 장관직에 임명 받았다. 그는 장관으로 일하면서도 주일 예배는 물론, 수요 예배를 비롯한 모든 교회의 공적 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다. 장관 때도 필라델피아의 그가 다니는 교회학교 교사를 계속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기독 청년 활동인 YMCA의 창설자이고 교회학교 사역에 헌신한 인물이기도 하다. 서울 시내 종로 2가 9번지에 1909년도에 세워진 YMCA 3층 서양식 건물 600평도 그가 보낸 선교 기금으로 되었고 오늘 날까지 쓰임 받고 있다. 그는 1921년, 83세 때에 사업 60주년 감사 예배에서 “내 인생 최대의 투자는 10살 때에 직접 벌어들인 돈 2불 75센트로 산 빨간 가죽 성경이다. 그 성경책을 마련한 일은 내 인생을 변화시킨 최고 최대의 투자였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힘껏 감사하며 헌신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물을 드리는 기본은 자원하는 마음이다. 10절에 나오는 “예물”이란 히브리어는 ‘미사’라는 단어인데 성경에 단 한 번 이곳에만 나온다. 그 뜻은 “풍족하게, 흘러넘치게”라는 뜻이다. 맥추절을 지키는 내용을 레위기 23장에서 찾아보면 “첫 수확한 밀에다가 누룩을 넣은 떡 두 덩이와 일 년 되고 흠이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문 10절에서 말씀하는 “자원하는 예물”이란 그 이상의 풍성한 예물을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즐겁게 감사
맥추절을 지키되 모든 가족과 노비와  성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레위인들이 다 같이 함께 택한 곳에 모여 감사함으로 즐겁게 지키라고 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이란 신명기 16장 7절, 11절, 16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한 말씀이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초막절 모두 택하신 곳에서 지키라고 하셨다. 택하신 곳이란 모세 때의 광야의 성막, 솔로몬 때의 성전, 스룹 바벨 시대의 다시 지은 성전을 말씀하며 오늘 날 우리들에게는 이곳, 우리가 예배드리는 예배당이 택하신 곳이요 즐겁게 절기를 지키는 하나님의 집이다. “왜 하나님은 양, 소, 염소를 드리라고 하셨는가. 왜 일곱 마리의 어린 양인가. 왜 일 년된 것으로 하고 왜 흠 없는 것으로 하라고 하셨는가. 왜 어린 수소인가. 왜 염소는 두 마리인가.”하고 물으면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법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번제인 화제로 불태워 올려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드리고 풍성하게 드릴 때에 감사 생활의 기적이 계속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이곳, 하나님의 집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집이요 우리 각 사람의 영혼의 즐거움을 누리는 집으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우리 각 사람의 몫이다. 건물은 돌과 벽돌로 짓지만 하나님의 택하신 집, 이곳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우리 각 사람이 언제나 항상 즐거움으로 절기를 지키고 즐거움으로 예배하고 즐거움으로 새벽과 밤중에라도 여호와의 집에 오르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시간 드려, 재물 드려, 수고와 땀과 눈물과 헌신과 섬김의 희생을 드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택함 받은 이 곳에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힘을 다 모아 드리며 예배하고 경배하고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 

젊은이 찬송으로 분류된 575장 찬송, <주님께 귀한 것 드려>의 고백이 우리 각 사람의 고백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진리의 싸움을 할 때 열심을 다하여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네 몸과 네 마음도. 주 위해 모든 것 바쳐 힘 다해 섬기어라.
우리의 귀한 것 모두 주님께 바치어도. 그 귀한 생명을 주신 주 은혜 못 갚겠네.”

시편 134편에 보면 그런 고백의 찬송시가 있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이와 같은 영혼의 즐거움과 기쁨과 찬송이 계속되기를 소망하자.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절기를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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