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새끼 나귀를 타신 왕(마21:1-11) 20180325 종려주일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3-31 03:15 조회 16,175 댓글 0
 
               새끼 나귀를 타신 왕(마21:1-11)            2018. 3. 25


쟈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중에 백마를 탄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란 작품이 있다. 나폴레옹이 사랑하고 즐겨 타던 ‘마렝고’라는 이름의 백마를 탄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인 그는 52년을 살았다. 1804년 그의 나이 35살 때에 프랑스 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상징으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기의 머리에 황제의 관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시작한 나폴레옹의 황제직도 겨우 10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십년 넘기는 권력이 없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맞다. 

1813년 봄, 나폴레옹은 변변치 않은 군대를 동원하고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 등의 동맹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휴전하였다. 그러나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동맹군에게 포위되고 공격당하여 크게 패한 후에 프랑스로 도망갔다. 1814년에 정세는 한층 더 악화되었다. 50만 명이 넘는 동맹군의 군대에 포위된 나폴레옹의 군대는 불과 7만 명으로 버티다가 파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1814년 4월 16일, 체포된 나폴레옹은 지중해의 작은 섬인 엘바 섬에 추방되었다. 

다음 해에 엘바 섬에서 탈출한 그는 파리로 돌아가서 황제 직에 다시 오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자유주의적인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그리고 동맹국에게도 강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거부당하여 결국 또다시 전쟁을 겪게 되고 말았다. 전쟁 초반에 이기는 것 같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 공격으로 완전히 패하고 말았다. 전쟁에 진 나폴레옹은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든 항구가 봉쇄되고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영국 정부는 아서 웰즐리 장군의 제안을 받아들여 나폴레옹을 남대서양의 한가운데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시켰다. 세인트헬레나 섬의 총독이었던 허드슨 로는 나폴레옹에게 썩은 포도주를 건넬 정도로 철저히 나폴레옹을 조롱하고 모독하였다. 외롭고 고독한 날들을 보내던 나폴레옹은 위암으로 점점 몰려오는 고통스런 날들과 씨름하다가 52살 나이에 유배지에선 눈을 감고 말았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의 유배지에서 1821년 5월 5월 저녁, 52살에 눈을 감으며 그의 부하였던 버틀러 장군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칼로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지만 실패하였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놀라운 사랑으로 온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

최근 해외 뉴스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2006년 12월에 교수형을 시킨 독재자 사담 후세인(1937-2006) 전 대통령과 관련된 주변 인물 4,200여 명의 재산을 추적해 몰수하기로 했다. 사담 후세인은 24년 동안 독재자였다. 1979년, 사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이라크에서는 그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화했다. 이라크에서는 그의 모습을 한 거대한 조각과 동상과 초상화와 포스터로 제작하였다. 당시 이라크에서는 이를 제작하는 전문 직공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가 통치할 당시에는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나 포스터가 이라크 인구보다도 많다는 농담이 생겼을 정도였다. 사담에 대한 개인숭배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에서도 이례적이었다. 이라크 국영 TV는 매일 같이 사담 후세인을 찬양하는 노래를 방송하거나 시를 낭송했다. 그를 찬양하는 노래의 수만도 200가지에 달했다. 또한 사담 후세인은 스스로를 메소포타미아나 고대 아랍의 영웅들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 함무라비, 하룬 알 라시드를 이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69살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독재와 권력의 끝은 참담한 것이다. 

최근에 운전 중에 극동 방송을 들었다. 북한에서는 우리가 은혜롭게 부르는 찬송가 가사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사를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 한 두 곡이 아니라고 한다. 저들 삼대 세습이 점점 신격화되어 간다. 그 나중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성경의 역사를 보라. 아합 왕과 이세벨의 나중이 어떻게 되었는가. 저들에게 금과 은이 없었나. 저들을 지키는 군대가 부족했나. 왜 무너지고 왜 끝나고 왜 비참한 죽임을 당했나. 
 
오늘은 예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마을인 감람산 벳바게 마을 입구에서 두 제자를 마을로 들여보내시며 부탁하셨다. “매여 있는 나귀와 새끼 나귀를 보거든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고 하셨다. 

많은 무리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베어다가 길에 펴며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였다. 새끼 나귀를 타신 예수의 앞뒤로 수많은 무리들이 앞서거나 뒤 따르며 큰 소리를 소리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시자 무리들은 “이는 누구냐”고 서로 물으며 크게 소동이 일어났다. 
예수는 백마를 탄 왕이나 여러 마리의 힘센 말들이 끄는 병거를 타신 왕이 아니셨다. 예수는 낙타를 타거나 코끼리의 잔등에 타신 왕도 아니셨다. 예수는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건축한 왕도 아니었다. 예수는 만리장성을 쌓으려 한 왕도 아니었다.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붙잡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가 사순절을 지내며 몇 번 자주 고백한 교독문 중의 일부가 이것이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33:12-16)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3년 동안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의 마을들과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신 것이 전부였다. 그는 그의 곁에 찾아오는 각색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건강한 삶을 회복시켜 주셨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 주셨다. 배고픈 벳세다 광야의 그 많은 무리들에게 배 불리 먹이우시고 오히려 12광주리나 남게 해 주셨다. 예수는 바람과 파도도 잔잔하게 해 주셨다. 예수는 가시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교훈해 주셨다. 본문은 그러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새끼 나귀를 타신 왕”이란 제목으로 본문을 다시 보며 은혜를 나누자.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신 왕.
예수는 어느 날 우연히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기가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마리아 잉태와 탄생과 애굽으로의 피난과 나사렛에서의 성장과 당하실 고난과 죽임 당하실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사실 부활의 역사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실 승천에 대하여 구약 시대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한 구약의 예언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실 것이다. 이삭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다. 야곱에서 나온 한 별이시다. 유다 지파로 오실 것이다. 다윗 왕권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기름부음 받은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시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에 베들레헴 근동의 유아들이 학살을 당하는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는 상한 심령의 치유자로 오실 것이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시는 제사장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것이다. 그는 어린이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제자에게 배반을 받아 은 삼십에 넘김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토기장이의 밭 값에 팔리실 것이다. 예수는 거짓 고소를 당하실 것이나 변명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실 것이다. 그는 침 뱉음을 당하고 매 맞으실 것이다. 그는 악한들과 함께 못 박히실 것이며 손과 발에 찔림을 받으실 것이다. 예수는 멸시와 수치를 당하시고 훼방과 능욕을 당하실 것이다. 그는 죽어가는 순간에 쓸개와 신포도주를 받으실 것이다. 예수는 그런 죽음 직전에도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실 것이다. 예수는 옷 벗김을 당하고 그 옷이 제비 뽑혀 나누일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신 모습으로 죽임 당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뼈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옆구리에 창에 찔리는 죽임으로 죽으실 것이나 부자의 묘에 부자처럼 장례될 것이다. 그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주로 영광 중에 천사장의 호령 나팔 소리 가운데 오실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민수기,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호세아, 미가, 나훔,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 등을 통해서 미리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새끼 나귀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말씀을 성취하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겸손하신 왕.
예수는 이사야와 미가와 스가랴 선지자등을 통해서 겸손하신 왕으로 예언되고 묘사되었다. 5절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는 말씀은 이사야서와 스가랴서에 예언된 말씀의 인용이다.(사62:11, 슥9:9)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왕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겸손하신 왕으로 오셨다. 겸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끼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시온의 딸’이란 ‘예루살렘 주민’을 일컫는 표현이다. 예수는 장수와 용사를 태우는 말을 타신 왕이 아니셨다. 예수는 멍에를 메고 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르는 나귀 그것도 사람을 태워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를 타셨다. 

예수는 스스로에 대하여도 그렇게 교훈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렇다. 예수는 평생토록 겸손한 삶을 사셨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나 겸손하였다. 겸손이 참된 힘이며 용기이다. 성숙한 사람은 교만하지 않다. 성숙한 사람은 남을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로마의 정치가 세네카는 “용기와 힘을 갖춘 사람은 결코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참된 힘을 가진 사람은 겸손하게 세상을 섬기는 자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은 주먹이나 탱크나 핵폭탄의 힘이나 돈이나 재력이나 그 어떤 권력이나 힘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세상을 참되게 다스리는 진정한 힘은 겸손으로부터 나온다. 

예수는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든지 겸손하셨다. 그는 남자 여자 어른 노인 젊은이 어린 아기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대하셨다. 그는 군림하는 왕, 섬김을 받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 자신의 생명까지도 십자가에 내어 주는 영원한 평화의 왕이시다. 

이 세상을 보라. 교만한 왕, 백성들을 속이는 왕, 백성들을 무시하고 군림하던 왕들의 마지막을 보라. 그러나 약한 자를 돌보고 백성들을 섬긴 왕은 후대에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고 또 천년이 가도 존경받고 사랑 받지 않는가. 

잠언 22장 4절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왜 겸손하게 살아야 할까.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겸손해야 한다. 토기와 같은 인생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겸손해야 하지 않겠나. 뿐만 아니라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 인간은 그 어떤 높은 권력을 가진 통치자라고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덧입고 살아가야 할 죄인일 뿐이다. 인간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죄인이고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죄인이고 아무리 많은 명예와 화려한 경력을 쌓았어도 죄인일 뿐이다. 장군이 제복의 양편 가슴에 더 이상 훈장을 달 수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치적과 공로가 뛰어나고 연전연승하는 전쟁 승리의 영웅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죄의 문제를 용서 받아야만 할 죄인일 뿐이다. 

예수의 겸손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 부터였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겸손을 이루셨다.(빌2:8)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스위스의 신학자이며 종교 개혁자인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료 때문에 무척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어느 이른 아침 그는 스위스의 산 위를 산책하다가 매우 인상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마리의 염소가 좁은 산길을 가고 있는데 한 마리는 위로 오르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내려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길은 겨우 한 마리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았다. 결국 두 마리는 도중에서 만나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두 마리는 서로 바라보다가 꼿꼿이 서서 마치 한판 싸움이라도 벌일 듯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래쪽에서 올라가는 염소가 길 위에 눕자 다른 한 마리가 그 등을 딛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누워 있던 염소도 일어나서 제 길로 올라갔다. 쯔빙글리는 자기를 낮추는 것이 곧 올라가는 길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니 모든 일들이 평안해 지고 불편하던 관계도 평안해 졌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


호산나 찬송을 받으신 왕.
‘호산나’라는 뜻은‘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이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향하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며 예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것은 ‘메시아’란 말이다. 예수는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다. 그리스도로 오셨다. 메시아 즉 그리스도란 말은‘왕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선지자’라는 뜻이다. 예수는 영원한 평화의 왕이시며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이 땅 백성들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전파해 주시는 선지자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는 호산나 찬송을 받으실 왕이시며 전능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호산나 찬송은 잠시 외쳐 지다가 사라질 찬송이 아니다. 영원히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올려 드릴 찬송은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이다.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호산나 찬양을 부르는 생활이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랑하고 자기 잘 난 것에 도취되어 살고 자기 치적, 자기 공로, 자기 능력, 자기 경력, 자기 역량, 자기 이력만 자랑하면 않된다. 사도 바울은 과거의 자랑하던 것을 모두 다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부활 신앙을 전파하고 증거하는데 매진하였다. 자신은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라고 낮추었다. 

그러므로 호산나 찬양은 입술로만 부리고 목청으로만 부를 찬양이 아니다. 호산나 찬양은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아서 진심으로 진정으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높여 드리고 또 높여 드리는 경배의 찬양이 되어야만 한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호산나 찬양을 부르며 살았는데 불행해진 인생이나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민족은 없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하고 자신의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할 때에 불행해 진 것이다. 신앙 생활은 매 순간 그리고 날마다의 생활 중에 남의 티를 보며 시비하지 않고 자신의 눈의 들보를 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범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문도 기술도 재물도 권력도 예술도 오래 간다. 예수가 대답이다. 예수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그는 옷 벗김을 당하고 부끄러움 당한 몸으로 채찍에 맞고 무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셔서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승천하신 영원한 우리의 주님이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원의 능력과 영원하신 권세만을 높이고 찬양하는 범사가 되길 축원한다. 아멘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Lord we lift up Your name With hearts full of praise! Be exalted oh Lord my God Hosanna in the highest!

Glory, glory,
Glory to the King of Kings!
Glory, glory,
Glory to the King of Kings! Lord we lift up your name With hearts full of praise! Be exalted oh Lord my God, Glory to the King of Kings!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높은 곳에서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높은 곳에서
주의 이름높여 다 찬양하라
귀하신 주 나의 하나님
호산나 높이 외치세

영광 영광 왕의 왕께 영광을
영광 영광 왕의 왕께 영광을
주의 이름 높여 다 찬양하라
귀하신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 영광 돌리세

주의 이름 높여 다 찬양하라
귀하신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 영광 돌리세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칼럼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영원한 왕이신 예수 ..최고관리자
"내 영혼이 은총 입..최고관리자
"에벤에셀 하나님"최고관리자
"영원한 왕이신 예수..최고관리자
"내가 천사의 말을 ..최고관리자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