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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외치는 자의 소리(사40:1-8)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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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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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12-17 20:43 조회 15,079 댓글 0
 
                    외치는 자의 소리(사40:1-8)             2017. 12. 17

성탄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성탄절은 기다리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나 미가나 스가랴 선지자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긴긴 세월 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구주이신 예수가 탄생하게 하심으로 온 천지에 평화의 소식이 전해지게 하셨다. 예수가 탄생하시던 그 밤에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10)고 말했다. 그 때에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외치라”고 하셨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하는 질문 앞에 무엇을 외쳐야 할지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외치라 말씀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외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여섯 달 먼저 잉태되어 태어난 세례 요한은 광야에 거하면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외치며 다녔다. 마태복음 3장 3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말씀을 소리 내서 외쳤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그러면 천사들을 통하여 외치고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외치고 세례 요한을 통하여 외친 말씀의 주인공이신 메시아는 누구신가.
 
 
위로하시는 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어떻게 위로하라고 하셨다. “예루살렘 백성들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라”고 하셨다. 이사야를 통한 그 당시의 예언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이 고난과 슬픔의 땅에서 풀려나 선조들의 땅 예루살렘으로 귀환 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노역의 때가 끝나고 죄악이 사함 받고 모든 죄의 값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배나 받은 벌이 끝나고 해방과 자유와 회복의 날을 맞이하리라는 예언이다.
 
적군에게 포로 된 이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안전하게 풀려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옥에 갇힌 죄수라면 복역의 때가 차고 풀려나는 날을 고대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살다 보면,
광야와 사막과 골짜기와 산과 언덕과 고르지 못한 땅과 험한 곳을 영원히 피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이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험한 길을 가던 인생들에게 광야에 길을 내 주시고, 사막에 대로를 열어 평탄한 길을 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길을 이사야는 “여호와의 대로”라고 하였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라는 말씀은 인간의 모나고 죄악된 삶을 새롭게 해 주신다는 선언이다.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라는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서 거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제하여 겸손한 심령을 변화 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라는 말씀은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의 품에 안기듯이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길을 가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생각해 보라.
누가 실패하고 싶어 실패하나.
누가 넘어지고 싶어 넘어지나.
누가 가난하고 싶어 가난을 선택하나.
누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싶어 그런 생을 살아가나.
누가 병들고 싶어 병과 씨름하나.
누가 불화하고 갈등을 겪고 대립하고 마음 문을 닫는 그런 답답한 인간관계를 선택하고 싶어 그런 지경에 처하게 되나.
누가 쓰러지고 싶어 쓰러지나.
누가 우울해 지고 싶어 우울해 지나.
누가 원수 맺고 싶어 그런 관계가 되고 마나.
 
살다 보면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겪게 되는 것이 인생살이가 아닌가. 그러므로 인생은 누구나가 누군가로부터 마음이 담긴 위로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위로가 필요 없는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는 주가 필요해”라는 찬양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의 위로와 사랑과 용서와 격려와 인도하심과 돌보심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엊그제 금요일 밤 기도회 시간에 묵상한 시편 68편 19절에 보면 다윗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고백하였다. “위로하여라”라는 찬양이 있다.
 
위로하여라
네가 아플 때 내가 너를 위로했듯이
눈물 닦아주어라
네가 울 때 내가 네 눈물 닦아 줬듯이
위로하여라
네가 아플 때 내가 너를 위로했듯이
눈물 닦아주어라
네가 울 때 내가 네 눈물 닦아 줬듯이
사랑은 나로 말미암는 은총
사랑은 나로 말미암는 선물
사랑은 나로 말미암는 긍휼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렇지 않나. 우리 모두는 날마다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서로 서로 돌아보아 그런 관계로 사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자가 되고 격려자가 되고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마음을 담아 주변을 돌아 볼 때에 그 곳에 사랑의 주님이 임재하시는 것이 아닌가.
 
남편이 병들면 누가 돌보나.
아내가 병들면 누가 돌보나.
가족이 병들면 누가 돌보나.
 
영국에서 태어난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뼈와 관절의 심한 질환으로 언제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적응하지 못해 늘 소외됐다. 이런 아들에게 언제나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버지의 격려였다. 아버지는
 
“너의 상처가 별이 되게 하라”
(Turn your Scar into a Star.)
 
고 말하며 꿈과 힘을 심어주었다. 이 아이는 후에 영국외과학회 회장, 국제외과학회 회장을 지내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현대성형수술의 창시자인 해리 플래트(Harry Platt, 1886-1986)경이다. 그는 1986년 100세로 작고했다.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의학과 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스케치한 비행기 모형도는 인류가 하늘을 나는데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되었다.  그 당시에 천동설을 부인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만든 자전거 모형도는 오늘날의 자전거 모형과 거의 흡사할 정도였다. 인체 해부학에 탁월한 공헌을 하였다. 잠수함 설계도까지 그렸다. 그런 그는 고아로 자라났다. 동네 아이들에게 늘 왕따를 당했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대인 기피증과 우울증 증상이 심각하였다. 주위의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다 보니 늘 혼자였고 우울하고 소심하게 행동하였다. 점점 누구와도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늘 집 안에만 쳐 박혀서 지냈다. 아무 일도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연약한 아이로 자라났다. 잘 할 수 있는 일도 누군가가 지켜보기만 하면 손을 떨고 실수하고 말았다.
 
그래도 부모 없이 자라나는 레오나르도를 끔찍이 사랑해 주고 위해 주는 할머니가 곁에 계셨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손자를 끌어안고 귓속말을 속삭여 주고는 하였다.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할머니는 너를 믿는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던 날까지 그 말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천금보다 귀한 것이다.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위로하는 분으로 오셔서 사시다가 하나님 곁으로 승천하셨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어 새 삶을 살게 하시고 죽은 자라도 살려 주셔서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을 위로해 주셨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우리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된 것이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만 이 세상의 하루하루 나그네 인생길에서 주님의 위로를 체험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은혜인가.
 
교회 생활, 예배 생활도 그렇지 않나. 찬송 부르고 기도드리고 성경 말씀을 경청하고 예배를 드리는 중에 내 마음과 내 영혼에 깃드는 위로와 격려와 감동과 결단과 각오와 용기와 치유와 안식과 평화와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도전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찌 매주 각처에서 달려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이 계절만 되면 여러 해 째 피어나는 선인장 꽃이 있다. 세 화분 중에 한 화분은 관리가 잘 안 되서 잎이 몹시 메말라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몇 주 동안 물도 주고관심을 기울였다. 이 추운 엄동설한에 활짝 꽃을 폈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모른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해와 달과 별들과 이 땅의 모든 것들 가운데 가득 찬 영광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 주시는 주님이시다.
 

여호와의 영광으로 나타나실 분.
이사야이 이 예언은 반복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우선은 끌려갔던 바벨론의 포로의 땅에서 풀려나고 선조들의 땅에 돌아가서 스룹바벨의 성전을 재건하고 느헤미야를 앞장세운 성곽을 중건하고 에스라를 앞장세운 말씀 회복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감격을 체험하였다. 또 하나는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심으로 주께서 이 땅에 계신 33년 동안, 특별히 마지막 3년 동안 보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영광이다. 또 하나는 장차 이 땅에 재림 주로 강림하실 때에 나타내 보여 주실 영광이다.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때가 되면 이루시는 주님이시다.
 
남은 한해 그리고 다가올 새해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모두가 더불어 목격하고 감격해 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길 소망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그렇다. 우리 집은 기쁘고 영광스러운데 옆집은 부럽기만 하고 시기심만 생기는 것은 모든 육체가 함께 그것을 보는 여호와의 영광일 수 없다. 여호와의 영광이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는 말씀으로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해서 성취된 그런 영광이다.
 
125장 찬송의 후렴처럼 말이다.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님께. 아멘”
 
이것은 천하 만민이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다 같이 인류의 대 합창으로 찬양해야 할 그런 찬양이 아닌가.
 
인간이 자기 지혜와 자기 역량과 자기 능력만을 믿고 살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경우가 있는가. 권력의 정상에서 큰 소리 치던 이들이 줄줄이 굴비 엮이듯이 수갑에 채이고 포승줄에 묶여서 이 추운 겨울 감옥의 독방에 갇히는 것을 보라.
 
열흘 가는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력이 없다고 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지 않았나. 다 지나간다. 아름다운 것도 지나가고 젊음도 지나가고 뽐내던 날도 지나가고 힘쓰던 시간도 지나가고 돈 자랑하던 시간도 지나가고 허랑방탕하며 주색잡기를 즐기던 그 모든 순간들이 허무한 순간으로 지나나고 만다. 일찍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가지고 타국에 갔던 둘째 아들이 돈 다 떨어질 순간을 생각하며 허랑방탕했겠나. 이 세상에 영원히 젊게 살 수 있는 남녀가 있나.
 
우리 가족이 벤살렘에 살 때에 어쩌다가 ‘올드 칸츄리’라는 그 당시에 13불정도 주면 50여 가지의 풍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에 가고는 했다. 거기에 걸음도 잘 못 걸으시면서 빨간색 바지에 빨강색 하이힐을 신고 목에는 치렁치렁 진주 목걸이를 하시고 멋진 핸드백을 들고 짙고 붉은 핏빛 나는 루즈를 바르고 넘어지실 듯 불안한 걸음으로 남편의 손을 잡고 오시는 단골 미국 백인 할머니가 계셨다. 아마도 최소한 30-40년 전에 입고 신던 옷과 하이 힐을 차려 입고 차려 신고 나서신 모습이었다. 굽 낮은 단화를 신으셔도 걸음이 불안할 연세에 꼭 저렇게 까지 하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 성경 말씀 그대로이다. 그들을 향하여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셨다. “외치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모든 육체는 풀이라고 외쳐라.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고 외쳐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것이라고 외치라고 하셨다.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라고 외치라고 하셨다.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했다.
여기 ‘여호와의 기운’이란 아라비아 사막에 불어 대는 '시록코'(Sirocco)라는 동풍이다. 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모든 풀과 식물이 타들어 가듯 말라 버리고 만다. 순식간에 황량한 사막이 되고 만다. 우기철의 풀과 꽃과 모든 식물들이 타들어 간다. 살아남을 수가 없다. ‘여호와의 기운’이라고 묘사한 이 바람이 불면 싱그럽던 풀들과 아름답던 꽃들이 순식간에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고 만다.
 
그 바람 앞에 북 왕국 이스라엘도,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의 영광도 사라지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니 앗수르의 영광, 바벨론의 영광도  이 땅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여호와의 바람이란 심판의 바람이다. 여호와의 심판의 바람이 불면 그 어떤 영웅호걸 절세가인 그 어떤 부호나 그 어떤 권력가가 그 어떤 군대의 장수라도 쓰러지고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들고 만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의 영광 만을 찬송하고 의지하며 살아 갈 줄 알아야 한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을 것이다.
“목사님!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세상에 나가면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재밌고 얼마나 감칠맛 나는 것들이 많은데 그러세요.”
 
그런가. 과연 그런가.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외치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영광”이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나타나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이 다가 오고 있음을 큰 소리로 외치라는 것이다.
 
이천년 전 베들레헴 마굿간에 나신 아기! 말구유에 누이셨던 아기. 그 아기는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될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나님은 정혼하고 결혼을 준비하던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이 땅에 “여호와의 영광”으로 태어나실 아기 예수의 메시아 탄생을 예비하셨다. 3절에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라.
히틀러의 큰소리치던 영광이 어디로 갔나. 무솔리니, 스탈린, 모택동, 나폴레옹의 영광의 그 어디로 갔나. 더 이상 점령할 땅이 없을 듯이 파죽지세로 주변 국가를 점령해 들어가던 알렉산더의 영광이 33살에 끝났다. 진시황의 영광, 몽골의 징키스칸의 영광이 다 어디로 갔나. 36살에 눈을 감은 마릴린 몬로의 영광은 어디로 갔나. 33살에 눈을 감은 이소룡(1940-1973)의 영광은 어디서 다시 찾아 볼 수 있나. 인기 절정의 잘 나가던 무술 배우 이소룡의 임종을 지켜본 의사 랭퍼드 박사는 “나는 부르스 리의 죽음이 대마초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내 추측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죽음의 원인을 발표하였다.
 
여호와의 만인 앞에 보여지는 영광 앞에 자기 영광을 자랑할 인생이 그 어디에 있나. 인생이 인생다워지려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주목할 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영원한 말씀이신 분.
예수께서는 이 땅위에 영원하신 말씀의 영광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아침 볕 앞에 안개가 사라지듯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것이다.
 
2년 7개월간 옥중에 갇혀 지냈던 우리나라 유명 기업인이 2015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면서 의정부 구치소에서 출소하던 순간에 두꺼운 성경책을 들고 나왔다. 그가 무속인에게 홀려 450억 횡령 사건에 휘말리고 실형을 받고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지냈다고 한다. 한 시대 권력자의 사위요, 이 땅에 화장 문화를 선도하던 선친의 뒤를 이어 30대 후반에 기업 경영의 최일선에서 사사 건건 무속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그가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에 성경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은 이유가 뭘까.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한다. 어느 순간에는 날마다 주가와 환율 등은 여의도 가의 알려진 무속인인 ‘김원홍’이란 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어느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는 식의 태도로는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가. 강림절기를 지내며 다시 맞이하는 성탄절기를 기다리는 이 때. 진정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믿는 믿음이 그대에게 있는가. 온전한 죄 사함의 능력과 은총이 선물로 주어지는 절기가 성탄절기이다.
 
70회 생일을 맞이한 노인이 갑작스런 치통으로 치과를 찾았다. 급히 차를 몰아 갓길에 주차하고 치료를 받고 나오니, 교통순경이 딱지를 떼고 있었다. 노인은 경찰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오늘이 70회 생일인데 아침부터 이빨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평생 법을 어긴 적이 없는데 생일날 딱지까지 떼게 생겼네요! 한 번 만 봐줘요! 안 그러면 오늘은 정말 가장 재수 없는 생일날이 될 거에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이 법과 인정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한 번만 봐 달라고 동정하는 노인의 하소연에도 경관은 표정 변화도 없이 고지서를 기록 한 후 무심하게 건네주고는 돌아섰다. 둘러선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역시 법이야! 경관에게는 법이 우선이지! 그래야 세상이 굴러 가는 거야!” 노인도 포기하고는 고지서를 받아들고 차에 올랐다. “법은 법이지! 그래도 너무 하네! 젊은 사람이 냉정한 표정 하고는!” 차에 올라탄 노인이 벌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려고 고지서를 펼쳐 보았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지서에는 벌금 대신 “생신을 축하합니다! 어르신!” 이라고 쓰여 있었다.

노인이 멀리 걸어가는 경관을 바라보자 경관이 노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경관은 사실 노인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둘러 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린 판단은 노인과 구경꾼 둘 다를 만족시키는 상황을 생각해 낸 것이다. 고지서를 끊기는 하되 벌금 액수 대신 축하 편지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때로 우리는 대립 상태의 중간에 서게 된다. 양 쪽을 만족 시킬 수 없는 진퇴 양란의 길에 설 때도 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경관의 고지서다. 엄한 표정을 짓고 고지서를 발행하지만 내용은 따뜻한 축하 편지를 보내는 지혜 말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심판의 고지서를 발행 하시지만 그 고지서 안에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밖을 만큼의 크나 큰 사랑이 담겨 있다.
 
성탄은 영원불변하시는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절기이다. 그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인생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하여 영생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하여 크고 놀라우신 대속의 선물을 주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기념하고 감사하고 축하하고 경배하는 절기이다.
 
다가오는 성탄절에 성탄의 진정한 말씀의 교훈이 되살아나는 말씀 회복의 절기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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