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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축복하라(민6:22-27) 201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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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5-28 21:10 조회 20,224 댓글 0
 
너희는 이렇게 축복하라(민6:22-27)             2017. 5. 28  승천주일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동양에서는 다섯 가지의 오복(五福)을 말해 왔다.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이다. 부하게 장수하며 건강하게 지내며 이웃에 덕을 세우고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평안하게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서경>에 실린 내용이라고 전해진다. 

성경에서도 복에 대한 언급이 많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 것 자체가 복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또 말씀하셨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뿐만 아니라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는 권세를 누리게 된다. 

유명한 외과의사 선생님과 목사님이 아래 이웃집에 살고 있었다. 의사는 잔디밭과 수영장이 있는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았다. 여러 명의 남녀 관리인이 집 안팎의 살림을 맡아 하였다. 목사님은 가난하여 단칸방에서 5남매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다.그런데 외과의사는 물질, 명성,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아내와의 사이가 나빠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주인 내외가 싸우면 마당에 있던 개까지 덩달아 짖다 보니 사람소리와 개 소리가 뒤 섞여 들렸다. 그와 반면 목사님의 식구들은 가난하지만 늘 찬송과 기도로 시작해서 즐겁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외과의사가 목사님을 만나서 물었다. “우리는 목사님 가정보다 부유하고 이렇게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있지만 화목하지를 못한데 목사님 가정은 가난하게 살지만 화목하면서 즐겁게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목사님 대답하였다. “나와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살기 때문에 기쁨과 평안이 넘칩니다.”고 대답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외과 의사 부부도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의 가치를 깨닫고 전도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그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각 사람 앞에 생명(生命)과 사망(死亡) 그리고 복(福)과 화(禍)를 두셨다. 그것들 중에 사망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고 화가 아닌 복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복된 인생의 길이다. 
신명기 30장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이 땅에서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며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에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우상에게 절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을 떠나면 요단을 건너갈지라도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의 생명이시며 이 땅에서도 오래 살며 장수하게 해 주실 것이시니 여호와께서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네가 거주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망을 버리고 생명을 택하고, 화와 저주를 버리고 복을 택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돌과 나무를 깎아 만들고 금과 은을 녹여 부어 만든 우상 앞에 절하면서도 출세하고 성공하고 자녀가 잘되고 부귀공명을 누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는 말이냐”

예수님의 비유 중에 부자와 나사로를 보라. 그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그 비유 속에 나오는 부자는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잘 먹고 잘 입고 떵떵거리며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지 않나. 또한 그 비유 속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너무 불쌍하게 살았기 때문에 주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천국에 간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 복이 무엇인가. 
복 중의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거듭나고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상급으로 받은 백성답게 이 세상의 나그네 인생길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명을 갖고 청지기의 삶을 살며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 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밤낮 염려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다.

어느 교회 30대 젊은 의사의 간증을 보았다. 그는 의사는 부업이고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 본업이라고 했다. 시간마다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고 선교와 교육과 봉사와 구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의사로 일하며 사는 이유라고 했다. 

과자 좋아하는 이들은 미국의 크래프트 과자 회사를 안다. 우리들 가운데 ‘크레프트 오레오 쵸코 과자’를 단 한 번도 안 먹어 본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을 정도이다. CRAFT FOOD COMPANY의 설립자인 제임스 크래프트(James L. Craft)는 “나는 미국에서 가장 큰 과자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 보다 내가 다니는 시카고 노스쇼 교회의 집사로 충성하는 것이 더 기쁘고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무엇이 복인가. 성경이 교훈하는 복은 크게 2가지이다.
그 첫째는 죄 사함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그네 인생길인 이 땅에서도 복되게 살아가는 것이다. 

430년 동안의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다. 하나님께서 모세 시대에 모세를 앞장세우셔서 이룩하신 기적이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의 광야 생활 중심에 성막을 건설하게 하셨다. 민수기는 출애굽한 지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각 지파의 20살 이상 된 남자의 수를 계수하였다. 60만 3550명이었다. 레위 지파의 태어난 지 한 달 된 남자 아이로부터 남자의 수를 계수하였다. 22,000명이었다. 레위 사람들 중에서 성막에서 섬길 30살 이상 50살까지의 남자를 계수하니 8,580명이었다. 

하나님은 나실인으로 살아갈 자들의 태도에 대하여도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본문이다.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전달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고 명령하셨다.

24절부터 26절까지를 다 같이 읽어 보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축복의 내용을 차례대로 좀 더 자세하게 묵상해 보자.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고 평강 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세 문장의 앞부분에 세 번 반복하여 “여호와는”이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은 구약시대이기는 하지만 마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듯한 형식을 갖고 있다. 세 문장의 이 아름다운 축복의 내용은 이 땅에서의 일반적인 주의 복과 죄 사함과 구속의 은혜의 복과 주님과 동행하는 영광스러운 평강의 복을 소원하라고 했다. 이러한 축복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시는지를 절절이 느끼게 한다.


지키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복’이란 ‘베라카’는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온갖 좋은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영육간에 누리는 현세적이고 구체적이며 또한 영적인 면의 전인격적이고 총체적인 모든 복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나. 육신의 부모라도 자식에게 온갖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모든 필요한 복을 풍성하고 넘치고 온전하게 공급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 하나님이 나를, 우리를 지켜 주시도록 복을 빌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악과 불의와 사탄의 간계함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전능자이시다. 

옛날이나 오늘 날이나 얼마나 위험한 일도 많고 무서운 일도 많고 두려운 일도 많이 일어나는가. 심지어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까지도 뱀의 유혹 앞에 무너지지 않았는가. 우리가 신학교 1학년 때 교수에게 많이 질문한 것이 그런 내용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뱀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아담과 하와에게 그런 불행이 찾아 오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여러분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실 때에 어둠과 죄와 악이 없는 세상을 만드셨다면 인간이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보라. 밤이 있고 낮이 있다. 어둠이 있고 빛이 있다. 선이 있고 악이 있다. 공의가 있고 불의가 있다. 이 세상의 창조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서 빛과 선과 진리와 공의를 택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의 세상을 보라. 세계 처처에서 전쟁과 테러와 사고와 사건과 전염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지진과 쓰나미와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세상에는 악이 부글부글 끓는 것과 같은 악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입의 말과 발걸음 하나하나를 지켜 주지 않으시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각 사람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여기 지키신다는 ‘솨마르’라는 말은 ‘가시 울타리로 치다. 온갖 주의를 기울여 신중하게 보존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10:30)라고 말씀하셨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한 앗시리온에 팔려 가는 두 마리의 참새의 운명을 비교해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그 많은 참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요즘처럼 불안한 사건들과 우울한 일들이 많은 세상에서 절망으로부터 소망으로 나를 지켜 주시고, 의심으로부터 믿음과 신뢰로 나를 지켜  주시며,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으로부터 평강으로 나를 지켜 주시고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부터 나를 사랑으로 지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 각 사람을 지키시되 죄악에서 보존하여 구원 받게 하시고 사망으로부터 건지셔서 영생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 주신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생각하여 보라.
죄와 악에서 지키시고, 굶주린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사망 권세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고 건지셔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구원의 은총인가. 

이 험한 세상에서 물과 불로부터 지켜  주시고,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총알처럼 빠르게 오고 가는 그 모든 세상살이 중에서 순간마다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매 순간마다, 날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질병으로부터 건지셔서 어제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렇게도 더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란 시간을 오늘의 시간으로, 지금의 시간으로 지키고 인도하셔서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사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금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에 잇대어 살아 갈 줄 아는 그런 시간관과 그런 인생관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런 의연한 모습으로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쓴 잔으로 받아들이시지 않았나.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이다. 

오늘은 예수 승천 기념 주일이다. 사도행전 1장에 소개된 예수님의 승천을 믿으라. 예수께서 승천하시며 말씀하신 재림의 약속도 믿으라.  그것이 나를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는 자녀들의 모습이다.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뒤 돌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 중의 최고의 은혜는 나 같은 죄인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 은혜라는 ‘하난’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돌아보기 위해 상체를 구푸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이런 찬송을 송구영신예배 때에 한 번 부르고 일 년 내내 더 이상 부르지 않고 살지는 않는가.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주가 계신 지성소에서 주를 찬송함이
내 영혼에 부어주신 주의 큰 은혜로다

우리가 한 동안 이 찬양을 얼마나 자주 부르며 지내 왔나.

야곱은 아버지 이삭도 속이고 형 에서도 속이며 장자의 명분과 축복에 대한 집착을 갖고 앞만 보고 달려갔다. 그런 그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장가들고 거기서 아들딸 낳고 거기서 빈털터리가 산허리를 덮는 어머 어마한 양떼와 염소 떼와 소와 약대를 거느리는 대 족장이 되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앞 서 보낸 자들이 달려 와서 소식을 전했다. 형 에서가 400명의 무장한 이들을 앞장세우고 주인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는 전갈이었다. 그런 지경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은혜를 베풀러 달라고 기도하였다. 야복 강가에서 혼자 남아 밤  새도록 기도하였다. 창세기 32장과 33장에 보면 그 때에 야곱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은혜’이다. 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비추셔서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이 땅의 식물과 동물과 인생이 산다. 낮의 해와 밤의 달과 그 수많은 별들 가운데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와 그 베푸시는 은혜를 간절히 의지하며 살아 갈 줄 알아야 한다.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내 경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역량으로, 내 수단과 내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며 산다고 말하면 안 된다. 겸손해야 한다. 주님이 내 호흡과 맥박을 주관하신다. 주님이 내 손의 맥을 풀어 버리시면 순간 아무것도 아니다.

심근경색이나 호흡 장애를 겪어 보신 분들이 있는가. 심장, 신장, 간, 폐, 위장, 소장, 대장, 췌장 등등 그 모든 것 어느 하나라도 병들고 상하고 약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638장 찬송의 가사가 본문 민수기 6장 24절부터 나오는 모세의 축복의 가사이다. 이런 찬송을 예배 시간에 어쩌다 부르고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살면 되겠는가. 그 찬송의 가사에 보면 “......주의 은혜 주의 은혜 그 크신 주의 은혜 내게 있으라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이라고 아멘이 7번이나 반복된다. 그렇다. 주의 은혜가 내게 베풀어지기를 소원하는 우리의 간구는 아멘이고 또 아멘이고 아멘이고 또 아멘이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이든 여호와의 은혜를 덧입고 살아 왔고 앞으로도 주의 그런 은혜를 덧입고 살아갈 것이다. 

지난 5월 24일에 대통령에 당선된 레닌 모레노(Lenín Moreno, 1953-)는 에콰도르의 첫 장애인 대통령이다. 1998년 1월, 식료품점 주차장에서 차와 돈을 요구하는 2명의 강도에게 지갑과 차 열쇠를 주고 돌아서는 순간에 강도가 쏜 총탄에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총격 후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상실감을 겪던 그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웃음 치료법 덕에 4년 만에 휠체어를 타고 세상과 사람들 앞에 다시 나섰다. 웃음 치료법의 효험을 경험한 그는 '에벤타'라는 재단을 설립하고 책을 펴내는 등 웃음 전도사로 활약했다. 모레노는 장애인 권익 신장을 위해 일한 공로로 2012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는 부통령과 유엔 특사를 거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지 않나. 한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 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그 얼굴을 비추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호렙 산에서 양떼를 이끌던 나이 80세 된 모세가 애굽의 바로 임금을 만나고 동족을 이끌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널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전쟁도 벌이지 않고 어떻게 여리고 성이 무너졌겠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렇게 도망 다니고 숨어 다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모압의 과부 룻이 베들레헴의 대 지주 보아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아 기를 수 있었겠나. 여러분은 어떤가. 나는 어떤가 말이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란 어떤 것인가. 


평강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시고 얼굴을 돌이켜 향하여 드신 다는 표현이 시적이지 않나. 하나님께 얼굴이 있으신가. 아니다. 그러면 무슨 말인가. 평강이란 ‘샬롬’이다. ‘온전, 완전, 평안, 우정, 건강, 번영’등을 의미하는 복합적인 뜻을 담고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선이며 절대적인 평강이다. 시편 4편 6절 이하에 보면 다윗도 그런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6-8)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 땅에 죄와 사망을 해결한 완전하고 영원한 평강을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라. 예수님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을 말이다. 예수께서는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골로새서에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평강이 어디서 오나.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다할 때에 그 마음에 주어지는 선물이 평강이다. <영광>(GLORY)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실화가 있다. 미국 군대 최초의 흑인 부대였던 매사추세츠 제 54연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당시에 연대장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주여 내일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 후손들이 딛고 일어설만한 바위가 되게 해 주소서.” 이런 마음가짐과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가득 찰 수 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주 안에서 절대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이런 평강이 임한다.
환경과 자신의 절망을 딛고 주 안에서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에게 이런 평강이 임한다.
미움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기며 살아가는 이의 마음속에 이런 평강이 자리 잡게 된다. 

라바이 러브맨이 쓴 <마음의 평화>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내용은 우리 인간이 건강과 돈과 아름다움과 재주와 지위와 모든 공명을 다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평화가 없게 되면 모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 집 한 칸 없이 모든 것이 없다 할지라도 내 마음에 평화가 있다면 그것이 곧 축복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참 만족을 얻지 못했고,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으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던 중에 순박한 시골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시골 농부의 얼굴은 유난히도 평화로워 보였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가서 평화로운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마음은 기쁨이 가득 차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그의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사라져 버렸다. 작곡가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작성한 50항목에 이르는 긴 유서의 한 구절을 보면 이렇게 썼다. “나는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자비와 평강에 맡깁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84세로 죽기 직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 했다.그는 건강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항상 “적당한 운동, 적당한 음식, 신선한 공기 그리고 마음의 평화인데 그중에 제일은 마음의 평화”라고 대답 했다.
성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우물에서 물 긷는 여인을 관찰했다.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다.“왜 물 항아리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그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군요? 항아리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 했다.프란체스코는 “화와 분노가 일어날 때, 마음의 평안이 금이 가고 깨어질 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분노와 갈등,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인내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평강이 찾아온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군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했다. 예수님은 평화의 터전을 이루려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이 되셨다. 우리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 다시 오실 재림 약속의 주님 안에서 그 얼굴을 나에게 향하여 드시는 여호와의 평강을 덧입고 누리며 증거하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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