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로 말미암는 감사(출23:16, 19 합3:16-19) 2018. 7. 1 맥추감사주일
재미교포 윤석원 씨는 올해 49살이다. 그는 27년 전인 1991년, 22살 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식불명상태 4개월 후 깨어나 중환자실에서 반년을 지냈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27년째 전신마비상태로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 요양원에 누워서 지낸다. 사고 당시 성대를 다쳐서 목소리도 잘 안나오기 때문에 대화하기도 쉽지 않다. 4년 전 부터 월드미션대학교의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가 최근에 책을 내었다. 책 제목은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이다. 그 책 내용 중에는 ‘마비된 몸의 감옥에 갇혀서 사는’ 삶의 고통을 적고 있다. 모든 것을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대소변을 비롯해서 먹고 마시고 머리 긁고 양치질하고 씻고 감는 일과 세수와 면도 등 일일이 수발을 받아야만 한다. 가장 무서운 순간이 얼굴에 내려앉은 파리가 떠나지 않는데 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책을 내게 된 동기에 대하여 “여러 가지 형편으로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드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자음과 모음 한 획을 컴퓨터에 치려면 1초씩 걸린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 기능이 있는 특수 스티커 안경을 쓰고 컴퓨터 자판에 시선을 고정하면 1초마다 자음 모음 한 획씩을 칠 수 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서 책을 낸 것이다. ‘감사’라는 단어를 치려면 5초가 걸린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모아 쳐서 글이 되고 책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집에서 저녁식사를 챙겨 가지고 요양원을 찾는다. 주일마다 그를 교회에 데리고 가는 교우가 따로 있다. 그가 좋아하는 냉면을 만들어다 주시는 권사님도 있다. 10여 년 째 그를 돌보는 간호사도 곁에 있다. 하루는 그가 물었다. “늘 내 대소변을 치우는 일이 힘들고 싫치 않느냐”그 때 간호사가 “손님 머리 만지기를 싫어하는 미용사, 밀가루 만지고 반죽하기를 싫어하는 제빵사, 기저귀 만지고 똥오줌 갈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간호사라면 그 자신이 너무 괴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아요.”라고 대답하였다.
윤석원씨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의 청년기 때에 암벽 등반을 즐겼다. 그는 “지금 투병 생활하는 것이 마치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암벽을 등반하는 일과 같다”고 그의 책에다 썼다. 그의 인터넷 신학교 동기생 중에 20년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무역업을 하면서 주말에는 선교사로 활동하는 박수민 선교사를 인터넷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지난 2년 동안에 200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윤석원씨는 중보기도의 전사다. 누군가의 기도 제목을 들으면 금식기도를 시작한다. 간증도 많다. 그는 자신을 ‘책이나 글을 통한 문서 선교’와 ‘침대 선교’를 감당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양원에 누워 지내는 자신을 방문하는 것으로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믿는다.”(2018. 6. 29. 금, 조선일보 문화, 25면)
유월절, 맥추절, 추수감사절인 수장절은 유대인의 삼대 절기이다. 세 절기 모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이다.
하나님께서 모세 때에 시내산 언약으로 제정하신 절기이다. 이러한 절기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다. 출애굽기 2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 보면,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고 하셨다.
‘네 토지’란 말씀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노예로 지냈다. 애굽에서 주인을 위해서 착취당하고 고역을 치루는 나날을 430년 동안 이어 갔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농사하여 첫 수확을 거두었을 때의 감격이 어떠하였겠나.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에 드리라’고 하였다. 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아들딸들이 부모님께 첫 월급을 타서 빨강색 내복 사다 드리는 일이 풍습처럼 있었다. 그러나 누가 요즘 빨강 내복을 입나. 그러니 믿음이 없는 젊은이들 중에는 첫 월급 고스라니 그 동안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경우를 본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들은 첫 월급을 고스란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습도 보게 된다. 한 해의 첫 시간과 첫 날, 한 주의 첫 날, 한 달의 첫 날,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과 아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소득과 물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이걸 강조하신 것이다. 수고하고 씨 뿌리고 땀을 흘려 가꾼 소출 중에서 첫 소출의 가장 좋은 열매를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다가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당시에 예루살렘 인구는 60만 정도였다. 그러나 절기가 되면 250여만 명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그처럼 절기 신앙이 철저하였단 말씀이다.
절기 신앙의 바탕은 감사신앙이다. 유월절의 감사가 무엇인가. 430년 노예 상태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의 애굽 땅에서 자유를 향한 출애굽이 가능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애굽의 임금 바로와 모든 백성들의 장자를 치는 재앙 가운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는 장자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유월(逾越)이란 ‘뛰어 넘는다.’는 뜻이다. 영어로는‘pass over’이다.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의 은총이 선물로 주어졌다.
유월절 후 일곱 주 후에 칠칠절인 맥추절을 맞는다. 맥추절은 출애굽기 23장 16절과 19절의 말씀처럼 ‘첫 열매 곧 처음 거둔 열매’를 구별해서 그 처음 거둔 열매 중에서 시들한 것, 아무거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드리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누군가 귀한 분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하려고 하면 자신이 표현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 진심이 담긴 것을 선물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이런 절기 예물 신앙을 자세하게 가르치신 이유는 신명기 6장 4절의 말씀처럼“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강조인 것이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자.
‘없을지라도’의 감사.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본문의 말씀은 성경을 웬만치 아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내용이다. 어떻게 이런 감사 생활이 가능한 걸까. 하박국 선지자는 블레셋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불안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전쟁의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 전쟁의 환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다.
배고픔과 굶주림과 흉년과 가난을 겪어 본 이들은 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를 바라다보아도 열매와 소출이 없는 완전 흉작이다. 밭에도 먹을 것이 없다. 우리와 외양간에 양 한 마리 소 한 마리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한 끼를 해결하며 버티며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힘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좀 맛이 간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주를 믿는 자녀들은 영생의 신앙 가운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도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 온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새 날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매 순간, 매 시간을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일 년 365일 중에서 절반이 지나갔다. 오늘이 한해의 후반기를 시작하는 7월의 첫 날이다. 일 년은 8760시간이다. 일 년은 525,600분이다. 일 년은 1,314,000초이다. 윤석원씨는 목 아래 전신 마비 상태의 몸으로 그 1초 마다 자음 모음 한 획 씩을 눈동자를 고정해서 컴퓨터 자판을 주목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감사한 생각들을 글로 옮기고 책을 쓴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초와 분과 시간과 날들을 살아서 한 해를 살고 한 평생을 살아간다.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풍년도 있고 흉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살아가면서 팔다리와 손 발등에 장애를 입기도 한다. 시력을 잃거나 청력을 잃기도 한다. 아예 태어나면서 닉 브이치치(1982-) 같은 거의 몸둥이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찬송 시인 송명의 자매처럼 중증 뇌성마비로 고생하며 연명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뇌성마비 상태로 올해 56살이 된 송명희(1963-) 자매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는가.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나 남이 갖지 못한 것 깨달았네...”라고 고백하는 찬양 말이다. 송명희 자매는 태어날 때 소뇌에 손상이 와서 뇌성마비 상태로 살아간다. 송명희의 <내 주님이 더욱 좋도다>라는 시에 김석윤 곡을 붙인 찬양이 있다.
주님 떠나서 부함을 따르는 것보다
부를 떠나서 주님과 가난함이 좋도다
주님 밖에서 즐기는 행복보다
주님 안에서 인내하는 것이 좋도다
주님 배반하여 왕이 되는 것보다
주님 섬기며 종이 되는 것이 좋도다
세상보다 만물보다 내주님이 좋도다
내주님이 더욱 좋도다
감사는 남들이 가진 것, 이룬 것, 쌓은 것, 그런 것과 비교하여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드리며 감사하는 것이다. 하박국 3장 17절을 다시 보라.
올해, 지금 아무것도 없다. 무화과 열매도 없고 포도 열매도 없고 감람 열매도 없다. 밭에 밀과 보리 이삭 하나 없다. 황량하다. 폐허다. 우리에 양 한 마리 없고 외양간에 소 한 마리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열매는 없지만 여전히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있지 않나. 올해 온 밭이 흉년이라 아무 열매가 없을 지라도 다시 또 희망과 용기를 갖고 씨앗을 뿌려 가꿀 그 밭이 여전히 있지 않나.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었다. 열왕기 상 1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삼년 반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요단 강 앞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고 지시하셨다. 거기에는 아직 시냇물이 남아 있었다. 하나님은 거기서 까마귀를 동원하여 엘리야를 먹이셨다. 어디서 물어 오는지 까마귀가 아침과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물어다가 엘리야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 엘리야는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떡과 고기로 허기를 채우며 그릿 시냇가의 물로 갈증을 해결하며 하나님의 하시는 시대적인 변화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믐이 계속되자 그릿 시냇물도 말라 버리고 말았다.
그 때 하나님이 다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가서 시돈 땅 사르밧에 가서 거기 머물러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그곳에 아들과 단 둘이 사는 홀로 된 여인에게 선지자 엘리야를 공궤하라고 미리 명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사르밧 성문에 이르렀을 때에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나에게 그릇에 물을 좀 가져다가 마시게 하라.” 그 여인이 물을 한 그릇 가지러 가려고 하자 다시 엘리야가 말했다. “ 떡도 한 조각 가져 오시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그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그 후로 그녀의 집에 날마다 기적이 계속되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우리 속담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긍정적인 속담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선대한 그 여인의 외아들이 병들어 죽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다. 이러한 기적을 체험한 후에 그 여인이 선지자 엘리야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17:24)
우린 남아 있는 것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없는 것 가운데서 말씀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가슴 속에 희망이 있고 믿음이 있고 꿈이 있다면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언제라도 다시 새일을 행하게 될 것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태어난 벤 카슨(Ben Carson, 1951-)의 부모는 그가 8살 때에 이혼하였다. 그는 혼자 남게 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말썽 꾸러기였다. 애들과 몰려다니며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아 하고 쌈질만 했다. 학교에서는 꼴찌를 도 맡아 했다. 흑인라고 따돌림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구구단도 못 외웠다. 수학 시험을 보면 항상 백지로 냈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아들인데도 그의 어머니는 그 아들 벤 카슨에게 “너는 잘 할 수 있어. 앞으로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새 사람이 될 수 있어.”하고 격려하고 인정해 주었다. 언젠가부터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그는 어렵게 간신히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내내 어머니의 격려와 기대처럼이나 열심히 공부하여 우등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3등으로 졸업하였다. 미시간 의과대학에 진학하였다. 그의 의학 연구는 뛰어났고 그의 수술 실력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신의 손’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한 역사적인 의사가 되었다. 30년 전인 1987년의 일이다. 그는 그 당시에 쟌스 홉킨스 의과대학 소아 신경외과 과장이었다. 그의 손길은 쌍둥이였던 파트리크 빈더와 벤자민 빈도의 분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늘의 당신을 만들어 준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 앞에 그는 그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어려서 싸움만 하고 말썽만 피우고 흑인이라고 따돌림만 당할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나에게 ‘벤! 너는 잘 할 수 있어. 너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신 나의 어머니 덕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신앙생활의 유익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을 지라도 실망하거나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시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오늘, 지금 내 모습 이대로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의 감사.
사람이 잘나가고 형통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쉽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무화과, 포도, 감람나무에 아무 열매와 소출이 없고 밭에 밀과 보리가 없고 우리와 외양간에 양과 소 한 마리 없는데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라.”(합3;18)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함 앞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부자들은 많은 헌금을 넣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 때에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다. 그 장면을 지켜 보신 예수는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교회에도 보면 어떤 분들은 밤새도록 딱딱한 침상에서 지내며 새우 잠을 자면서 노인 요양병원에서 병들고 허약한 노인들을 돌보고 섬기면서 음식 떠 넣어 드리고 가래 받아내고 기저귀 갈아 채워 드리리고 ㅍ똥오줌 받아 내고 목욕 시켜 드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십일조 드리고 매달 선교 헌금 드리고 매달 그 적은 월급에서 몇 십만 원씩 건축 헌금 드리고 어떤 때는 큰 목돈 헌금 드리는 분들을 본다. 그러면서도 일천 번제 드리고 또 감사헌금 드리고 절기헌금 드려 가면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주를 섬기는 분들을 대하게 된다. 그 분들을 보면 주께 드리고 또 드리고 드리고 또 드려도 자꾸 더 드리고 싶은 감사의 마음과 드릴 때마다 세상 어디에서 얻을 수 없고 누릴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는 예배자의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헌신을 계속하는 분들을 보면 숙연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어떤가. 있어서 좋고 많아서 즐겁고 잘 돼서 좋고 형통해서 기쁘고 잘 나가서 행복한 것이라면 이 세상에 그런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그런 기쁨을 기뻐할 줄 모를 사람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달랐다. 그는 과일 나무와 밭과 우리와 외양간에 아무 것이 없을 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
주께 힘을 얻는 자의 감사.
신앙생활의 큰 도움은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주신 다는 점이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그렇다. 주 여호와를 앙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날마다 순간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과 같은 새 힘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다. 세 개의 알에서 새가 부화하였다. 시간이 흐르지 한 마리는 물 가로 가서 헤엄치기 시작하였다. 한 마리는 공중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한 마리는 여전히 땅 위에 그대로 있었다. 한 마리는 오리이고 한 마리는 독수리이고 한 마리는 병아리에서 자라난 닭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도들이 참새나 병아리처럼 살다가 끝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길 원하신다.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이기고 질병도 이기고 장애도 이기고 실패도 이기고 슬픔도 이기고 죽음도 이긴 부활 신앙의 주인공답게 살길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맞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는 예수 만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예수의 뒤에서 가만히 예수의 옷자락을 잡은 여인은 12해 동안 고생하던 혈루병에서 고침을 받았다.
예수로 인하여 오라버니 나사로가 다시 산 새 생명을 체험한 여 동생 마리아는 주께 향유 나는 나드 한 옥합을 깨트려 부어 드렸다. 그 진동하는 향기는 이천년이 지난 오늘 날도 전해지고 또 전해진다.
예수 만나 못 보던 바디메오가 눈이 뜨이고 듣지 못하던 자가 귀가 열리고 말 못하던 자가 말하게 되고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난 딸이 살아나고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나고 나사로가 살아났다.
신앙생활을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는 생활이다. 마르고 시들어 가던 식물에 물을 주면 확 살아나고 일어난다.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는 주 여호와로 인하여 힘을 얻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기계식 주차장 안전 검사 기간이라 작동 상태 시험을 받았다. 기술자가 작업을 하면서 연신 줄담배를 펴 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주차장에 담배꽁초를 끄고 또 피고 끄고 또 피는 것을 보았다. 내가 목사인 것 알면서도 아무 상관 안했다. 생각해 보라. 목사가 설교하다 말고 “잠깐, 담배 한 대 피고 합시다.” 그러면 은혜가 되겠나.
세상 많은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술과 담배와 마약과 놀음과 게임과 온갖 밤 문화의 향락 현장에서 불나방처럼 타락한 삶을 일삼으며 살아간다.
주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왜 절기 신앙이 중요하고 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소중한 것인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감사로 여는 7월, 감사로 살아가는 여름, 감사하는 범사의 나날 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