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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복 있는 사람(시1:1-6)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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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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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9-23 13:31 조회 14,036 댓글 0
 
                        복 있는 사람(시1:1-6)           2018. 9. 23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평양의 시내 풍경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남북정상내외가 일행들과 함께 옥류관에서 점심으로 냉면 한 그릇씩을 비우는 장면도 보았다. 평양 옥류관은 하루에 냉면 10,000그릇씩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남북의 정상들이 카메라 앞에서 냉면을 한 그릇 비우는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하였다. 저렇게 한 끼를 해결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생들인데 북한 인민을 행복하게 하며 배부르게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어찌 만들지 못할까. 

평양에는 과거보다 높은 빌딩이 많아지고 대동강 변에 높은 아파트들도 늘어났다. 평양에도 100층짜리 빌딩이 들어서 있다. 15만 명이 들어 갈 수 있다는 능라도 경기장은 1998년 건축 당시에 세계적으로 2가지 특허를 받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울 잠실 운동장 건물의 두 배이다. 평양 시내 어느 빌딩의 꼭대기에는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크게 써 붙인 것도 눈에 뜨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에 본 것은 주로 북한의 공산당원들이 살아가는 평양의 중심가를 본 것이다. 평양을 벗어나서 다른 지방 도시 혹은 농촌에 가 보면 그 형편은 전혀 다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북한의 모든 유치원의 구호는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한다. 이것은 어려서부터의 일종의 쇠뇌가 아닐까. 저들은 뭐가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가. 북한에 영양실조에 걸린 주민의 수가 650만명이란 유엔 식량 지원국의 통계 발표도 있다. 

성경에 복(福)이란 단어는 창세기 1장 28절에 처음으로 나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하신 축복의 말씀이시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도 복에 관한 말씀이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1-3)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여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불러 그를 막아 세우셨다. 그리고 제단에 결박된 아들 이삭 대신에 수풀에 뿔이 걸려 있던 숫양을 예비하셔서 이삭 대신에 번제하게 하셨다. 그 경험의 현장에서 아브라함은 그 곳 지명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어 불렀다. 천사인 하나님의 사자가 두 번째로 아브라함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런 축복의 말을 전해 주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창세기 28장에 보면 이삭과 리브가는 급하게 아들 야곱을 리브가의 친정인 밧단아람으로 피신시켰다. 야곱을 죽이려고 혈기를 부리는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장가들라고 말하였다. 그 때 야곱을 떠내 보내면서 해 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의 말이 이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28:3-4)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향하던 야곱은 밤이 늦어 어두워지자 루스 광야에서 잠을 청하였다. 낯설은 먼길을 하루 종일 달려 가다가 고단하게 밤을 맞은 그는 들판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이 들었다. 꿈에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 꼭대기에서 땅에 까지 이어진 환상을 보았다. 그 사닥다리에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도 보았다. 그 때 그 사닥다리 꼭대기인 하늘에 서 계신 하나님도 보았다. 하나님은 그 때 야곱에게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3-15)
이와 같은 축복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요셉의 때의 일이다. 요셉은 야곱이 네 부인을 통하여 낳은 12아들들 중에서 11번째이다. 야곱이 총애하던 아내 라헬을 통해서 태어났다. 그는 10명의 형들에 의해서 도단 성 밖의 들판에서 양을 치던 현장에서 애굽으로 팔려 갔다. 노예가 된 것이다. 요셉은 13년 동안 바로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일했다. 나중에는 주인마님의 성적 유혹을 뿌리친 것이 죄가 되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 생활 2년 만에 풀려난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준 대가로 애굽의 총리에 등용되었다. 요셉은 바로 왕의 총애를 받고 어인(御印) 반지까지 건네받은 강력한 총리였다. 

칠년 풍년 그리고 이어진 칠년 흉년의 둘째 해에 가나안에도 기근이 극심하였다. 그 흉년을 피해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드나들던 야곱의 아들들을 만난 요셉은 그들이 자신의 배 다른 형제들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간지 22년 만의 일이다. 애굽에서 성공하고 출세하여 지내던 요셉 덕분이 아니었으면 연세 많은 아버지 야곱과 그의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등 70명이 먹고 살길은 막연하던 때였다. 

하나님은 형들의 미움을 받고 팔려 갔던 요셉을 통해서 굶어 죽어가던 그의 가족 70명을 고센 땅에 정착하게 이끄셨다. 그렇게 시작된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모세 때에 광야로 출애굽할 수 있게 하신 것도 하신 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 있는 사람의 삶으로 이끌어 가신 긴긴 여정들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오늘 2018년의 추석 명절을 맞이하는 주일 날 시편 1편의 말씀을 읽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익숙한 말씀이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나. 복 있는 사람은 그의 생각과 그의 가는 길과 그의 앉는 자리가 ‘악인’(惡人)이나 ‘죄인’(罪人)이나 ‘오만(傲慢)한자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악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아가는 자들 즉 의인의 반대인 상태이다. 죄인이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듯이 진리의 말씀을 벗어나서 살아가는 자를 말한다. 오만한 자란 고의적으로 악을 선택한 자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 복있는 사람답게 살라면 그 생각이 악인의 생각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도 말아야 한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도 앉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당장은 몰라도 악하게 사는 자들의 나중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기 때문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추수 때가 되면 구별되고 만다. 알곡과 가라지는 심판 날이 오면 그 실체를 숨길 수가 없다. 시편 1편의 시작은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끝은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는 경고의 문장으로 끝난다. 

자 그러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과연 성경이 말씀하는 복있는 사람다운 생을 평생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일까.


밤낮 말씀을 묵상하는 즐거움.
복있는 사람의 첫째 특징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묵상하는 자이다. 열악한 나라의 국민들은 몰라도 웬만치 잘사는 나라의 국민들은 건강관리를 위한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며 살아간다. 가령 종합 비타민 혹은 비타민 C나 비타민 D를 섭취한다. ‘오메가3’를 섭취한다든지 칼슘을 일정하게 섭취하며 살아간다. 혈압을 조절하는 약이라든지 당뇨를 조절하는 약품을 상복하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의 효과를 보려면 날마다 일정하게 정해진 정량을 상복해야 한다. 아무리 몸에 좋은 식품이나 약품이라도 한꺼번에 달여서 먹듯이 할 수는 없다. 

신체 건강을 위해서도 날마다 일정한 량의 운동을 하며 생활하는 것이 몸에 유익하다. 말씀을 대하는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날마다 일정하게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대 전도사 시절에 3박 4일 동안 성경 공부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림으로 그려서 배웠던 도식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자”

라는 다섯 단계의 내용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고 청소년기의 성장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푹 젖어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연세 들어서 예수 영접하는 것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는 축복이지만 할 수 있으면 하루라도 더 젊고 한해라도 더 젊어서 복음을 영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않나. 우리들 중에도 늦은 나이에 예수 믿어 보려고 하니 좋긴 좋고 감사하긴 감사한데 뭔가 뜻대로 잘 안 되는 것을 실감하는 분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머니에게 감사한 것은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시지만 우리 형제들은 복중에서부터 기도로 사랑으로 품고 안고 우리들이 어린 시절부터 마을의 교회 생활과 예배 생활에 익숙하도록 키워 주셨다는 점이다.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강화도 우리 마을에는 유치원은 없었다. 그러나 1906년 11월 1일에 시작된 감리교회와 그 다음해인 1907년에 이동휘 선생에 의해서 시작된‘보창학교’라는 이름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이동휘(李東輝, 1873-1935)선생은 1873년 6월 20일, 함남 단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을 출세시키고자 했던 부친 이승교(李承橋)는 어린 아들 이동휘를 단천군수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통인(通引)으로 들어가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통인 시절 군수가 자신의 생일에 딸처럼 어린 기생에게 온갖 추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다. 어린 이동휘는 대담하게도 동헌으로 뛰어 들어가서 화로 불을 군수의 머리에 뒤엎었다. 이 사건 직후 이동휘는 서울로 도망하여 군대를 키우는 사관양성소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육군참위에 임관되었다. 그는 청렴강직하고 충성스러움을 눈여겨 본 광무제에 의해 삼남검사관(三南檢査官)으로 임명받았다. 그 후 지방진위대의 부패장교와 지방 관리들을 엄격하게 처벌함으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승진을 거듭하며 구한말 국방요충지였던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부임하였다. 

그곳에서 군인들은 물론 강화도 섬 주민들에게까지도 부형(父兄)과 같이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고 그 다음 해인 1905년에 을사조약에 의해서 조선의 군대가 강재로 해산되었다. 그는 군대에서 해직된 후에 후학 양성의 사명을 갖고 보창학교(普昌學校)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미국인 선교사 벙커와 박능일(朴能一) 목사등과 뜻을 같이하여 세운 학교가 보창학교였다. 강화도에 ‘보창학교’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초등학교가 세워진 곳이 나의 고향 마을이다. 고향 교회인 흥천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역사관에는 보창학교 설립자 이동휘 선생과 그 곁에 그 당시 24살 젊은 청년이었던 나의 조부 지선주 선생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이후 이동휘 선생은 대중을 자각시켜 구국운동에 나서게 하기 위해 교육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기독교야말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는 신념에서 기독교 전도활동에 힘썼다. 

여호와의 율법인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증거는 이러하여야 한다. 최근에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교회들 중의 하나인 지구촌교회의 이동원 원로 목사의 후임인 진재혁 목사가 담임 사역 8년을 뒤로 하고 사임을 발표하였다. 그는 아프리카 케냐의 선교사로 떠나겠다고 발표하였다. 부르심과 사명이 있으면 누구라도 가야하고 언제라도 가야하고 어디라도 가야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당시의 그는 하란의 대 족장이었다. 아들만 없었지 아쉬운 것이 없는 그였다. 집안에 양과 염소와 소와 나귀와 약대를 치는 남자만 318명이 있을 정도였으니 상상하여 보라. 목축이 주업이었던 그의 집안에 남자만 318명이 다나들 정도였다. 그런 아브라함의 나이 75살 때에 그가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를 부르셔서 말씀을 따르는 언약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명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인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가는 생활이다. 사사로운 자기감정이나 자기 견해나 자기 판단으로 움직이고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보라. 기독교 이천년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보라.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각 사람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내년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독립만세 운동을 벌인 1919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당시 기독교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선언서 33인 중에서 기독교인이 16명이고 그 중에 9명이 감리교인이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신홍식(申洪植, 1872-1939) 목사이다.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한문을 공부한 후에 협성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충북 보은교회 권사였던 그는 애국심이 투철하였다. 목사 안수 후에 충남 공주와 연기 지방 순회 목사로 섬기다가 공주읍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후에는 평양 남산현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섬기던 중에 3.1 독립 운동을 맞게 되었다. 그는 평양 감리교 병원인 기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남강 이승훈을 문병하였다. 그에게서 독립 운동에 대한 은밀한 거사 준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남강 이승훈은 “나라 잃은 백성들이 부끄러워서 어찌 천국에 갈 수 있겠소”하는 말을 듣고 독립 운동에 앞장 설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장로교 길선주 목사와 손잡고 서울에 왔다. 당시 YMCA 간사였던 감리교 박희도 전도사를 만났다. 독립 운동 서명서의 서명자 33인 중의 한 사람이 된 그는 종로 태화관 앞에서 3.1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고 만기 출소하였다.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으면서 그를 취조하는 일본 경찰들 앞에서 "하나님은 조선을 독립시켜 줄 것이며 조선도 하나님의 뜻대로 독립군이 될 것이다.”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신홍식 목사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출옥 후에도 변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민족정신 고취와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나온 후에 정동제일교회와 함께 한국 선교의 모교회인 인천 내리교회와 원주제일교회의 담임 목사로도 섬겼다.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오늘 날 나의 삶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성경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그 말씀이 나의 삶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레마'(ρημα)의 말씀이 되어서 지금 나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있는가. 로고스(λογος)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성실하게 응답하며 레마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의인들의 모임.
사람은 주로 개인적으로든 누군가와 함께 하든 주로 앉는 그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나섰을 때에 그의 본토의 이웃들과 주변의 친척들은 아브라함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했을 것이다. 나이 75살에 내린 결정이니 그에 대한 주변의 소문이 얼마나 파다하였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본토 사람들과 친척들의 수군대는 말에 마음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에게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려면 그럴수록 그는 점점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와 태어난 아들 이삭과 아브라함의 며느리 리브가와 태어난 쌍둥이 아들 중에 야곱은 가족 간에 의로운 자의 모임을 이루어 갔다. 우리는 혈육인 가족들 간에 먼저 의로운 자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친구들 간에도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끼어 앉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들고 나며 앉고 서는 그 자리를 눈여겨 보신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 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 연합군대 조차도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아브라함은 전쟁 중에 포로로 끌려간 조카 롯을 다시 찾아 왔을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인 왕의 골짜기로 찾아 나와서 아브라함을 영접할 정도였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을 환영할 정도였다. 아브라함은 그냥 이 들판 저 골짜기 찾아다니며 양과 염소와 소와 나귀와 약대를 먹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던 그런 노인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연합 군대의 중심에 나서자 왕들이 그를 영접할 정도였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뜻을 찾아 가던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전쟁에서 얻은 것들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분이라고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주일 이후 날마다의 주중 생활 중에 누구와 함께 둘러앉고 누구와 함께 자리하느냐가 그 사람의 현재와 장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5절에 보면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경고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의로운 자의 모임에 둘러앉는 나날이 되기를 기대하시고 주목하신다. 

다윗은 사울 임금의 칼과 창을 피하여 엔게디 광야와 막벨라 동굴로 피신하고 십 광야로 숨어 지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사울의 군대는 호시탐탐 다윗을 찾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목숨을 보존하셨다. 다윗이 그일라 성으로 피신하자 이 사실을 사울 왕에게 밀고한 자가 있었다. 사울왕은 그 즉시 군대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였다. 다윗을 그일라 성을 벗어나서 광야의 요새로 피신하기도 하고 심 광야 산골에 머물기도 하였다. 그러는 중에 사울의 군대는 날마다 다윗을 추격하고 다녔다. 성경은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23:14)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마다 그 당시 광야의 다윗과 그의 곁에 다윗을 추종하던 600여명의 목숨을 보존하여 주셨다. 다윗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로운 자의 모임에 들기를 소원했던 그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통해서 다윗의 나중은 점점 존귀하게 이끌어 가셨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말씀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들의 앉는 자리와 그 모임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신다. 



의인들의 길.
운전하고 가는 길은 네비게이션을 따르면 된다. 요즘은 미국에도 한국말 버전의 네비가 거대한 미국 땅 동서남북을 골목길까지 안내한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여행 중에는 현지의 지리에 익숙한 가이드를 앞장세우고 그 뒤를 잘 따라 가면 여행이 안전하고 편하다. 시간과 경제적인 낭비도 줄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순종하며 따라 사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이다. 하늘에도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길이 있다. 이웃 나라 상공을 함부로 날아 갈 수 없다. 바다에도 배가 다닐 수 있는 해역이  있고 길이 있다. 이는 하늘과 바다와 땅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리할 때에 그 나중이 점점 복되고 형통하게 된다. 시편 1편 6절 말씀을 보라.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라고 교훈하였다. 의인의 신앙생활이란 여호와께서 주목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이어야 한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이 내려 주는 산해진미를 거부하고 채소와 물만 먹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포로의 땅에서 어떤 길로 인도하실까를 고민하고 기도하며 주께 의지하였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자 굴속에도 계셨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앞길을 오래도록 존귀하게 붙들어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의인의 가는 길을 돌아보아 주신다. 

1800년대 말엽, 상해에는 송가수(宋嘉樹, 1863-1918)라는 부자가 있었다. 원래의 성은 한(韓)씨로 본래 이름은 한자오준(韓敎準)이다. 12살 때였던 1875년에 자녀가 없던 외숙부(外叔父)의 집안으로 입양되어 쑹(宋)씨가 되었다. 3년간 동인도 제도에서 생활을 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15살에 개신교에 신자로 입문하였다. 신학을 공부하였고 감리교 목사요 선교사가 되었다. 1886년 중국으로 돌아가서 그 이듬해 결혼하여 세 아들과 세 딸을 두었다. 청나라 타도를 위해 결성된 비밀결사단체에 가담하고 출판업에 착수하였다. 구어체로 된 값싼 중국어 성서 인쇄를 시작했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해서 재산을 많이 모으고 1894년에 상하이에서 친구인 손문을 만나 중국 혁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동맹회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재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송가수 목사는 아이들 모두를 10대 때 미국에 유학을 보내 미국 사회의 민주와 평등을 배우며 현대적인 가치관을 갖도록 했다. 

큰딸 송애령은 신랑 공상희와 결혼하였다. 공상희는 공자의 직계후손으로 덕망과 재물이 많아 훗날 국민당정부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둘째딸 송경령은 드러나는 태도는 예절바르고 부드러웠지만 내면에는 강철 같은 기질이 있었다. 송경령은 27살 연상이었던 그 유명한 손문의 아내가 되었다. 셋째 딸 송미령(1897-2003)은 미국유학시절 미국의 분위기에 흠뻑 빠진 맹랑하고 과시욕이 대단한 여성으로 성장하였다. 송미령은 1908년 힐러리 클린턴이 졸업한 미국 명문 여대은 웨즐리 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9년 동안 유학하였다. 송미령은 장개석과 결혼하여 중국 근대사 100년 역사의 증인으로 106세에 임종하였다. 송미령이 장개석을 만날 당시에 장개석은 불교신자였다. 그러나 송미령을 만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송미령은 30살에 장개석과 결혼한 뒤 그가 서구의 문화·사상을 받아들이도록 도왔다. 카이로 회담과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남편 장개석의  통역관이요 영어 번역가요 비서요 조언자로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대의를 서방에 널리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송미령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언론에 중국관련 기사를 많이 발표했다.  1943년에는 미국을 방문하여 중국인으로는 처음이고 여성으로는 2번째로 미국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을 하였다. 그녀는 미국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타임지는 두 번이나 송미령을 ‘용의 여인’ 혹은 ‘올해의 남편과 아내’라는 제목으로 표지 모델로 내세웠다. 1967년까지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여성인사 10명의 명단에 해마다 오르기도 했다. 큰아들 쑹쯔원(宋子文)은 중화민국의 재무장관, 외무장관, 행정원장을 지냈다  둘째아들인 쑹쯔량(宋子良)은 중화민국 외교부 비서관으로 활동하고 뉴욕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지냈다. 셋째아들인 쑹쯔안(宋子安)은 홍콩 광둥은행 총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의로운 자의 생각과 길과 자리를 구별되게 살아가는 성도다운 성도가 되자. 주께서는 그런 인생과 가정과 후손과 민족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복되게 하시고 형통하게 이끌어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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