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행15:30 – 16:10) 2024. 6. 16
우리는 바울의 선교를 3차로 나누어 구분한다. 사도행전 13-14장에는 사도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정의 기록을 담고 있다. 15- 18장은 제 2차 선교, 19장 이후의 28장까지의 분량이 제 3차 선교 여정의 기록이다. 사도행전의 삼분의 이는 사도 바울의 선교에 관한 내용이다. 그래서 사도 행전을 다른 말로 ‘바울 행전’이라고도 한다. 사도 행전 9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다메섹 변화 이후로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손잡고 이방 선교에 앞장섰다. 사도행전 15장 앞부분에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열렸던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 중심이 되는 안건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는 문제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서로 다툼과 변론이 심각하였다. 다툼의 중심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변론이 계속 된 후에 베드로 사도가 나서서 말하였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 사람인 헬라인이나 차별하지 아니하신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는다.
베드로의 말이 끝난 후에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하여 이방 땅에서 펼치신 표적과 기사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여러 말을 들은 후에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가 나서서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그리고 예루살렘 공의회는 네 가지 금기 사항 이외에는 자유하다는 결의를 하였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 15장 20절에 나오는“우상의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이 네 가지이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결의 사항을 편지에 적어서 바울과 바나바와 바사바로 하는 유다와 실라의 손에 들려 “안디옥, 수리아, 길리기아”지방에 있는 이방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해지도록 하였다.
저들이 도착한 곳은 안디옥이었다. 이리하여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정이 시작되었다. 금번에 은평 지방의 목회자 부부 28명이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정 중의 일부를 탐방하려고 내일 출발한다. 튀르키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다음 날 그리스 북부로 이동한다. 네압볼리 도착 사도 바울 기념 교회, 빌립보,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터와 유적지, 빌립보의 루디아 기념 교회, 바울이 안식일 날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한 강가 세례터, 데살로니가,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뵈뢰아 교회, 마테오라로 이동해서 11세기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고린도 바울 기념 교회, 사도행전 17장 22절에 나오는 아레오 바고 언덕,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광장, 소크라테스 감옥을 둘러 보고 아테네 공항에서 비행기로 로마로 이동한다. 토요일에 폼페이 유적지를 둘러 보고 23일 주일 예배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하여 숨어 지냈던 지하 도시 카타콤베에서 예배한다, 주일 오후에 콜로세움을 둘러 보고, 월요일에 바티칸, 천지 창조와 최후의 만찬 등의 현장인 시스티나 예배당, 베드로 대 성당, 사도 바울 순교지 탐방 후에 밤 10시에 로마 공항을 출발해서 돌아 오는 일정이다.
우리는 어느 분야의 위대한 인물을 이야기 할 때에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인물이다” 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 이 천년 동안에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베드로가 위대하지만 바울을 빼어 놓을 수는 없다. 그런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현장을 탐방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깊은 영감을 얻게 하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주후 49- 52년까지 약 3년 동안 제 2차 선교 여정 길에 올랐다. 사도행전의 오늘 읽은 본문으로부터 18장 22절 까지의 내용이다. 오늘은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을 묵상하려고 한다.
이어지는 위로와 권면.
30절에 보면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였다. 그 당시에는 누군가가 편지를 큰 목소리로 읽고 많은 사람들이 서거나 둘러 앉아서 그 내용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상례였다. 이런 일은 요즘과 같은 인터넷 시대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개척 초기에는 일간 신문을 일일이 내 손에 받아 들 수 없던 때라서 누군가가 신문을 접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큰 소리를 신문을 읽어 주던 때가 있었다. 물론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들이 적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작하던 140여년 전의 그 당시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문맹율리 80-90%에 가까웠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천 년전에 누군가가 편지의 내용을 큰 소리를 무리에게 읽어 주는 경우는 흥미로운 현장이 아닐 수 없다.
31-32절에 보니까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대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위로와 권면의 내용은 모세의 할례를 강요받지 않아도 된다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 사항이었다. 32절의 권면(勸勉)이란 “위로하여 가르쳤다”는 뜻이다. 기독교의 복음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핍박받고 차별받고 이방인이라고 무시 당하던 저들이 제대로 된 복음 해석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찾게 된 감격의 순간을 말씀하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그 당시는“이방인은 예수를 믿어도 구원 받지 못한다.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는 등등으로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가며 이단이 독버섯처럼 자리를 잡으며 이방인을 차별하고 천대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결 사항이 편지로 전해지고 읽혀지는 일은 이방인 기독교인들로서는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동적인 순간이었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위로와 권면이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위로와 위안과 권면의 말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라는 말씀 그대로이다. 생각하여 보라.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격과 보람과 안위를 누리게 되는 것 그것보다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는 그 당시나 오늘날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공자는 <논어(論語) 이인(里仁) 8장>에서 “아침에 도(道)를 듣고 깨친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는 말을 남겼다.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자왈, 조문도 석사가의)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가 깨우쳐져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한 사람의 생애에 큰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최근에 베드로 전서와 베드로 후서를 다시 묵상할 기회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영원하고 동일한 것이다. 베드로 후서 1장 1절에 보면 성도란“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베드로 후서 3장 7절에 보면 “동일한 말씀”이라고 하였다. 맞다. 복음이란 지난 이천 년 동안 동서고금에 동일한 말씀이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언어, 문화, 피부색, 민족, 나라를 초월하여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다. 동일한 믿음으로 믿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 복음을 깨달은 후에 찾아 오는 감격과 기쁨과 만족과 보람과 위로와 평안이란 그런 것이다.
<논어> 첫 머리에 나오는 공자의 명언을 기억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언제 위로를 받는가. 우리는 어떤 경우에 위로를 얻는가. 무엇이 나에게 위로가 되나. 반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 마음이 위축되고 상심이 되는가. 인간은 누구나 다 약하다. 살아가다 보면 질병이 찾아오고, 경제적인 위기를 겪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겨서 아픔을 겪을 때가 있다. 갑작스럽게 사별의 슬픔을 겪기도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한다. 죄에 빠져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한다. 각 분야의 저명인사나 유명한 스포츠 맨이나 연예인들 중에서 죄를 저질러서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를 본다.
지난 주중에 새벽마다 나누어서 묵상한 베드로 후서의 내용을 구구 절절이 다시 접해 보았다. 사람이 누구나를 막론하고 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왜 격려를 받지 못하는가. 베드로는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서 거짓 선생 행세하는 이들의 이단을 쫓으며“호색, 탐심, 무법, 음란, 불의, 불법한 행실, 더러운 정욕, 거짓, 속임수, 허탄한 자랑”하는 자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런 자들의 장래에는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런 자들은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같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무슨 위로가 있겠으면 무슨 권면의 말이 받아들여지겠는가.
중남미 엘살바도르에 갱단 수천 명을 검거하여 수용소에 가둔 사진에 언론에 실렸다. 4만 명 이상의 폭력 사범과 마약 밀매범들을 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지옥을 방불케 한다. 세상을 악하게 살면 심판이 있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악하게 살면 위로가 멈추고 격려가 떠난다. 스스로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우리나라에도 공식 통계로 마약 사범이 3만 명이 넘는다. 어느 언론에서는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마약범은 노인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다 일찍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도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깨달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복음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것을 대신할 그 무슨 위로가 더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성령의 위로에 대하여 간증한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시시 때때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 속에 살아 왔음을 간증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4-5)라고 선포하였다.
예수께서는“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라고 위로하여 주셨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를 찬양하자.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사랑 사랑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깨닫고 믿고 전하는 진리의 복음 안에서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소망과 보람과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가르치고 전파하는 주의 말씀.
바울 사도는 가는 곳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였다. 이것이 복음 전파자의 본분이다. 이는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직분과 신앙생활의 기간에 상관없이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는데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의 선교 제 1차 여정 중에 있었던 일화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자주 금식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의지하였다. 그 때에 성령 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말씀이 임했다. 저들은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선교의 일선에 파송하였다.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배를 탔다. 섬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렀다. 바보 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났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가깝게 지냈다. 서기오 바울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였다. 이 마술사는 엘루마라고도 불렸다. 마술사란 뜻이다. 바 예수라는 이름의 이 마술사가 나서서 총독이 예수를 영접하려 하는 일을 방해하고 대적하였다. 그 때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 상황을 주목하고 그를 책망하였다.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했는데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앞을 못 보게 되었다.
서기오 바울 총독이 가깝게 지내던 마술사 바 예수가 그렇게 된 것을 보고 예수를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며 따르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개성에 살던 24세 된 조규철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늦게 까지 기도하고 돌아가는 길에 교회 마당에서 담임 목사를 만났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드리는 순간 윗주머니에서 담뱃갑이 툭 떨어졌다.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담배가 생각날 때마다 은단을 씹었다. 결국 금연에 성공했다. 청년은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업이 무엇일까”라고 곰곰이 생각했다. 문득 은단 사업이 떠올랐다. 은단 사업은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담배 소비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해방 후인 1943년 당시 돈 50원 거금을 주고 일본인이 경영하던 은단 공장을 인수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은단 제조가 허락되지 않아, 거금만 날리고 말았다.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앗을 뿌리는 자는 반드시 거둬들인다. 선한 일에 낙심하지 말자.”라면서 눈물로 기도했다. 어머니의 기도에 힘입어 해방 이듬해 황해도 개성에 은단 회사를 설립했다. 순풍에 돛 달듯 성장하던 사업은 6.25 전쟁으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고 말았다. 그는 부산까지 피난 생활을 했다. 하나님을 믿는 굳센 믿음으로 6. 25 전쟁 후에 억새처럼 다시 일어나 1954년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고려은단 제약회사’를 세웠다.
얼마 후 잘 나가던 고려은단이 그만 부도가 났다. 부채를 청산하고 빚잔치를 하고 보니 남은 것은 경부, 중부, 호남, 남해고속도로 변에 세워 놓은 고려은단이라는 커다란 간판뿐이었다. 계약 기간이 2년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다시 일으켜 주실 분도 하나님이라고 믿고 그 광고판을 하나님을 위해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Jesus loves you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고속도로 주변에 대형 광고판을 세웠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불교와 미신이 강한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고, 올림픽대로와 신문에까지 광고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고려은단과 전혀 관계가 없는 서울대학교 해부학, 면역학박사 이왕재 교수가 TV 방송이나 신문, 강의 때마다 “우리나라 국민은 비타민 C를 많이 먹어야 건강에 좋다.”라고 강조했다. 그 바람에 고려은단에서 생산하는 비타민 C가 불티나게 팔렸다. 엄청난 매상을 올리게 됐다. 회사가 회복되면서, 은단보다는 비타민 C가 주 판매 종목이 됐다. 서울 소망교회 장로였던 그는 조규철 장로는 주님 앞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아들 조창현 회장과 손자인 조영조 사장이 회사 경영에 앞정 서고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이사야 30:26)라고 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염두에 두고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예수의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는데 앞장서는 담대한 믿음의 증인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새로운 만남.
바울 사도의 제 2차 선교 여정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큰 축복은 디모데를 만나게 해 주신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마가를 데리고 가냐 마냐의 문제로 바나바와 의견이 나누이고 서로 심한 다툼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서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뱃길로 구브로 섬을 향하여 떠났다. 바울을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일일이 교회를 방문하고 저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였다. 실리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실루아노는 로마식 이름이다. 사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 한 후에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던 유대인이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였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이 있긴 했지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였다. 여전히 남아 있는 이방 선교의 말이 많던 문제의 요인을 처음부터 잠 재우고 적극적인 선교의 현장에 젊은 디모데를 동역자로 손 잡은 계기를 삼았다. 이리하여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바울 곁에 등장하는 순간을 맞게 되었다. 인생은 우연이 없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든 만남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과 경륜이 있다. 노사연의 <만남> 이란 노랫 가사에도 나오지 않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라고 노래한다. 맞다. 부모 형제의 혈육의 인연이야 선택할 수 없지만 이 세상의 그 모든 만남에는 나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나. 그러므로 인생의 만남을 후회와 미움과 아쉬움과 탄식으로만 장식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나서서 내 주변 사람과의 인연을 좋은 인연, 귀한 인연, 끈끈한 인연, 복된 인연으로 가꾸어 가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은가. 바울을 보고 디모데를 보라.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부모는 갈릴리 주변에 살던 중에 길리기아 다소로 이주하여 살았다. 거기서 아들 사울을 나았다. 사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바리새인이었다. 로마 시민이었다. 그런 그는 그 당대의 대 석학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주목 받던 우수한 자원의 율법학자가 되었다. 율법 생활에 열정도 대단하였다. 그런 그가 예수를 몰랐다. 그래서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하고 핍박하였다. 그런 그를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누군지를 안다. 이번 선교 탐방 길에 사도 바울을 많이 생각하고 많이 묵상하고 수 많은 그의 역사적인 현장의 흔적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만났다. 저들 두 사람의 만남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만남이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으로 얻은 참 아들이라고 여겼다. 디모데는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담임 사역자가 되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와 사회 생활 중에서 서로의 만남을 소중하게 가꾸어 가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바울이 가는 곳에는 부흥이 있었다. 바울이 가는 곳에는 처처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바울이 가는 곳에는 굳건한 믿음의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세워졌다. 믿는 자의 수도 날마다 점점 더 많아졌다. 사도행전 16장 5절에 보면,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 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나니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우리 공동체 안에 활활 불타 오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