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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께로부터 난 어린이(요일서5:1-6) 20240505 어린이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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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5-05 16:56 조회 1,902 댓글 0
 

               하나님께로부터 난 어린이(요일서5:1-6)          2024. 5. 5 어린이 주일

 

 

 어린이는 어른의 다음 세대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어린이는 어른들이나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

 

이처럼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교훈해 주셨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인 그레그 래플린은 지구의 가치를 “544경 7,460조원”라고 발표한 바 있다. 예수께서는 한 인간의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들이다. 어린이의 가치도 마찬가지이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의 영혼일지라도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인 것이다. 

 

성경은 “명문 대학 가게 해라, 돈 많이 벌게 해라, 성공시켜라, 남들 위에 군림하게 하여라, 법을 어겨서라도 출세시켜라” 그렇게 교훈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 천국의 자녀가 되도록 양육하라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4절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가르쳐 주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대인관계에 있어서 원만하고 안정된 인격으로 양육하라는 가르침이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우면 누구나 다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열어 놓으신 말씀이 아닌가.

 

몇 주 동안 계속해서 묵상하고 있는 요한 일서의 오늘 본문으로 읽은 5장의 말씀에서 요한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우리는 어른이나 아이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연인의 상태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야 한다. 중생을 체험해야 한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잔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는 35살 되던 해인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경에 수요일 예배를 드리다가 로마서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 목사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명석했다. 23살에 영국 런던 옥스퍼드 대학교의 링컨 칼리지의 교수가 되었다. 미국 선교사로 사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도 감격도 보람도 없었다. 그는 선교 현장에서 열매도 별로 없었다. 결혼 준비도 순조롭지 못했다. 심신이 지치고 피폐한 상태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 사역지도 없이 하루 하루 지내야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수요일 날 런던 시내의 낯설은 올더스케잇교회의 수요일 밤 예배에 참석해서 뒷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날 밤 거기서 변화되었다.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의 자기 발견을 하였다. 그는 그 날의 은혜와 열정을 품고 88살에 주님 품에 안기기 까지 역사적인 인물로 주님께 쓰임 받았다. 

 

요한 웨슬리가 태어날 당시 영국은 청교도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또한 합리주의의 물결이 계몽주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었다. 또한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뒤숭숭하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사회는 몹씨 혼란 했다. 많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술에 취하고 싸우고 도박하고 도적질하고 음란하고 자살하는 일이 흔하게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었다.

 

이러한 여파로 기독교 신앙은 도리어 미신처럼 여겨졌다. 기독교 신자들은 각처에서 웃음거리가 되어갔다. 그 당시 교회의 설교는 냉랭하고 대부분이 도덕적인 강론에 지나지 않았다. 장래에 희망이 안 보였고 점점 더 암울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적은 수의 가진자들 외에는 누구나 가난했고 헐 벗었고 굶주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잔 웨슬리를 통해서 민족을 깨우고 도시를 깨우며 복음과 희망으로 각 사람을 치유하고 세워 나가기 시작하셨다. 사무엘 웨슬리 목사와 수산나 사모의 19명의 자녀들 중에서 15번째로 태어난 잔 웨슬리는 영국 역사의 위대한 복음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다. 잔 웨슬리! 그도 1703년 가난하고 피폐하던 영국에 태어난 어린 아기였다.

 

아기가 자라나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가 자라나서 청년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인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어린이’라고 정하였다. 성경은 “과연 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어린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본문에서 묵상하는 중에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어린이.

주님을 믿는 복음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부모의 자녀를 향한 제 1 사명은 우리의 아들딸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어린이로 자라나도록 양육하는 일이어야 한다. 공부 잘하는 거도 필요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의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공의 길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예수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야 한다. CCC의 역사를 일구어 오신 김준곤 목사의 <백문일답>처럼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녀들로 자라나게 해야 한다. 유초등부 시절에 아들딸 손 잡고 교회에 다니게 하다가 청소년 시절의 어느 때 쯤 아들딸의 손을 놓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 자신이 주님의 손에 붙잡히도록 키워 내야 한다. 예수의 복음을 체험하도록 가르쳐내야 한다. 왜 예수여야 하는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뭔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왜 중요한지를 어려서부터 분명하게 깨닫고 자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아들딸로 키워 내야 한다.

 

그냥 “착한 어린이가 되거라”라는 정도로 키워서는 않된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예수께서 나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셔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리”

 

라고 스스로 찬양할 줄 아는 어린이로 키워 내야 한다.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모두 무릎 꿇고 다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 앞에 엎드려 절하세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리”

 

이런 찬양을 겨우 겨우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진 자기 열정을 가지고 찬양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아들딸로 키워 내야 한다. 

 

그냥, “하나님 우리 아들딸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좋은 대학 가게 해 주세요. 시집 장가 잘 가게 해 주세요. 좋은 직장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좋은 아파트 마련하게 해주세요.” 평생 이런 식의 기도만 하지 말고 어려서부터 아들과 딸들이 예수를 자기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신앙 교 육을 시켜야 한단 말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그리스도란 기름 부으심을 받은 제사장이며 선지자이며 왕”이란 뜻이다. 메시아란 말이다. “예수는 나의 죄를 사하는 대 제사장이며, 예수는 나의 갈 길을 깨우쳐 주는 선지자이며, 예수는 나의 삶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라는 고백 속에 살아가는 아들딸로 키워내야 한단 말씀이다. 

 

4절을 보라. 

그래야 “세상을 이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하였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맞다. 믿음이 이기는 것이다. 믿음이 최후 승리를 얻게 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날마다 새롭고 매 순간이 새로운 것이다. 살아도 주 안에서 살고 죽어도 주 안에 죽기 때문에 매 순간과 날 마다가 영원을 향하여 새로운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어린이날 무슨 선물 사 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들딸이 예수를 만나야 한다. 우리 사위와 며느리가 예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손자 손녀들이 예수 안에서 예수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인생관이 분명한 주님의 그릇들로 준비되어야 한다. 

 

5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 없다”라고 하였다. 6절에 보니까,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여야만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오늘도 예배 시간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손을 씻어 주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런 시간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 사람은 시편 1편 1절의 말씀처럼 “복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그 생각과 그 가는 길과 그 앉는 자리가 달라야 한다. 그리고 밤낮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이 복되고 영원히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복이 있는 자로 살아가려면 손이 깨끗해야 하고 발이 깨끗해야 한다. 손과 발이 깨끗하다는 말은 그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이다. 마음이 올바르고 깨끗하다면 그의 손이 하는 일마다 복되게 될 것이다. 그의 발이 닿는 곳과 서는 땅마다 복되게 될 것이다. 6절에 보니까 “진리이신 성령이 증언하신다”라고 하였다. 이런 주님의 은혜가 가정마다 함께하시고 아들딸의 앞날에 자자 손손 계속되기를 축원한다. 

 

 

예수를 사랑하는 어린이.

사랑이 무엇인가. 사랑은 상호적이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 할 줄 알게 된다. 부모에게서 원만한 사랑과 충족한 사랑을 받고 자라난 어린이와 그렇지 못한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성인 아동’의 모습을 벗어 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들딸들이 어려서부터 좋은 것 못 먹이고 좋은 옷 못 입히고 비싼 운동화 못 사 신겨도 충분한 사랑을 받는 자녀로 키워 내야 한다. 그래야 예수의 사랑도 잘 받아 들일 수 있게 된다. 

 

보이는 엄마 아빠와 가족들에게서 사랑을 받아 본 어린이여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1838-1922)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평범하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1살 때부터 벽돌 공장에서 일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11살 때의 일이다. 하루 7세트를 벌면 그 돈의 일부로 벽돌 한 장을 샀다. 질척거리는 예배당 입구의 진흙탕 길에 날마다 한 장씩 벽돌을 사다 깔았다.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 어른들이 감동을 받았다. 존 워너메이커에게 감동을 받은 교회의 어른들은 힘을 합하여 비가 새는 예배당을 헐어 내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다시 지었다. 교회 입구로 들어오는 길도 예쁘게 포장하였다. 그 시작은 11살 어린 소년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예수를 사랑하고 예배당을 귀하게 여기는 11살 소년의 마음이 온 교회 어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기적을 이루었다. 

 

14살 때에 서점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 후에 옷가게 점원을 거쳐서 필라델피아 기독청년회(YMCA)간사로 일했다. 그 후에 여러 업종의 상점이 한 곳에 같이 모여서 장사하는 백화점식 경영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 날 백화점 경영의 시초가 되었다. 빈털터리 소년은 커서 백화점 왕이 되었다. 뉴욕에도 백화점을 세웠다. 전 세계에 수 많은 기독 청년회(YMCA)건물을 지었다. 나라마다 기독교 청년 운동에 불을 붙였다. 서울 종로 2가에 있는 YMCA건물도 그가 지은 것이다. 지금도 그 건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 23대 벤저민 헤리슨 대통령(1889-1893) 때에는 체신부 장관도 지냈다.

 

처음에는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하지 못할까봐염려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묻자 “장관직은 한 두해 하고 물러나지만 교회학교 교사직은 평생 해야하는 사명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주일에는 그 어떤 나라의 회의나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대통령과 약속하고 체신부 장관직을 5년이나 맡아 섬겼다. 

 

필라델피아 시내 중심의 시청 청사 대리석 건물 한 편에는 존 워너메이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평생 3가지 T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Thinking, Trying, and Trusting in God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평생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복음 안에서 사는 인재를 키워 내는 가정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예수의 계명들을 지키는 어린이.

신앙 생활을 계명을 지키는 생활이다. 계명의 완성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가르치심이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생활은 하나이다. 3절을 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요즘 우리는 열왕기상을 묵상하고 있다. 솔로몬의 나중이 왜 잘 못 되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계속해서 묵상해 갈 북 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을 왜 잘 못 되었는가. 능력이 부족했나. 실력이 없었나. 따르는 자가 없었나. 아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이 부담스러워 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자였다. 애굽에 피신해서 망명생활하던 여로보암을 불려 들여서 10지파를 맡아 왕국을 세울 수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도 여로보암의 능력을 익히 주목하셨다. 그래서  솔로몬 말년에 나라를 둘로 찢어서 12 지파 중에서 10지파를 맡겨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게 하셨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을 버렸다. 나라를 제 맘대로 다스렸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금 송아지 둘을 만들어 놓고 섬기게 했다. 레위인과 제사장을 무시했다. 아무에게나 일을 맡겼다. 아무 때나 날을 정해 예배하게 했다. 그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 금송아지를 신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였다. 여로보암은 22년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결국 22년만에 하나님으로부터 악하다는 평을 받고 죽고 말았다.

 

열왕기상 14장에 보면,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찌라”(왕상14:9-10)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실 때에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열왕기상 1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11:38)

 

이런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받은 여로보암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축복을 향한 약속의 말씀을 버렸다. 제 맘대로 나라를 통치했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였다. 요한 계시록 22장 15절에 보면 “우상 숭배자들은 성 밖에 있으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상을 숭배하면 구원 받지 못한단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명,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계명을 잘 지켜 행하는 어른 어린이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며칠 전에 어느 가정에 심방하였다. 주방 한쪽 벽에 커다란 식탁 대리석을 세우고 그 위에 벽을 가리는 큰 글씨로 십계명을 새겨 놓은 것을 보았다. 생각해 보라. 10가지 계명을 잘 지켜 살면서 잘못된 인생이 있는가.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2장 28절에 보면, 서기관 중의 한 사람이 예수께 나와서 질문하였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29-31)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어른이나 어린이나 누구나 다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주님을 주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각 사람의 생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영원한 구원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런 은혜를 누리며 증거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 믿음의 사람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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