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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청년이여(전11:9-12:2) 202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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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5-21 19:00 조회 2,772 댓글 0
 

                         청년이여(전11:9-12:2)                2023. 5. 21

 

 

 

잠언과 전도서는 솔로몬(BC 1010-1070, 재위 1030-1070)의 기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잠언과 전도서에서 주옥같은 다양한 생의 교훈을 접하게 된다. 그중에서 본문은 젊은 날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권면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도서 11장 9절에 ‘청년이여’라고 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청년인까,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년인가” 하고 질문하게 된다. 영어 성경에 보니까 ‘young man’이라고 하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새벽에 제물포 항에 첫 발을 디딘 미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는 그 해에 27살이었다. 갓 결혼한 신혼 부부가 함께 왔다. 그는 44살에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 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인천항을 출발한 배를 타고 가다가 배 사고로 숨졌다. 한 밤중에 충청도 앞 바다에서 일본 상선과 충돌하였다. 시체도 못 건졌다. 양화진의 무덤은 비어 있다. 비석 뿐이다. 그러나 그는 17년 동안의 한국 선교 현장에서 크고 많은 일을 하다가 주님 앞으로 돌아갔다. 장로교 호레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 선교사는 26살이었다. 

 

영국의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은 21살 때에 중국 의료선교단이 되기로 결심했다. 리빙스턴은 공장에서 시간제 근무를 계속하면서도 한편으로 선교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글래스고에서 2년간 그리스어·신학·의학 등을 공부했다. 아편전쟁으로 중국에 갈 꿈은 포기했으나 남아프리카에서 유명한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버트 모펏를 만난 뒤 아프리카를 자신이 일할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7살 때, 그 해 마지막 날 배를 타고 남아프리카로 출발해케이프타운에 도착한 것이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선교의 시작이었다. 

 

창세기의 요셉, 여호수아 서의 여호수아와 갈렙, 사사기의 기드온, 사울 왕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에스더서의 주인공 에스더, 느헤미야서의 주인공 느헤미야 그들 모두는 청년의 때가 남달랐다. 예수의 12제자들, 사도 바울 저들 모두 청년기가 달랐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예수를 증거하던 세례 요한은 예수 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났고 예수 보다 먼저 헤롯의 칼에 목 베임을 당하였다. 중학교 때 사고로 앞을 못 보게 된 강영우 박사는 그 상태로 청년기를 남 다르게 보낸 역사의 주인공이다. 

UN에서는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사람의 연령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다.

 

0세~17세 까지는 미성년자

18세~65세 까지는 청년

66세~79세 까지는 중년

80세~99세 까지는 노년

100세~이후는 장수노인으로 구분한다.

 

당신의 올해 연령은 과연 몇인가. 몇 해 전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맞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자주 언급하는 1920년생이신 김형석 박사의 최근 일과를 보면 그렇다. 

 

18살부터 65살까지가 청년인 것으로 구분하면 20살에 왕이 되었고 60살에 죽은 솔로몬 왕은 청년의 때에 왕에 등극해서 청년의 때가 끝나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셈이다. 

 

참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몇 달 전 어느 토요일에 구파발 지하철 입구에서 전도하고 있었다. 멋쟁이 할아버지가 선글라스를 쓰고 세련된 복장으로 자전거 데크에 잠궈 두었던 자전거를 풀고 있었다. “내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이느냐”라고 말을 걸어오셨다. “칠십대 중반 쯤 되어 보이신다”라고 했더니 올해 94살이라고 했다. 가까이에 있는 헬스 클럽에서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큰 키에 허리가 반듯하고 전혀 노인 같아 보이질 않았다.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었고 윤기가 흘렀다. 요즘 90대에 오토바이 타는 어른도 있고 농촌에서는 90대에 경운기를 몰고 다니며 농사하는 어른도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Joe Biden, 1942-)대통령은 올해 81살인데 차기 대통령 선거 때에 재선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실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 것이 맞다. 세계 사람들이 거의 다 기억하는 미 국무장관 출신 헨리 키신저(Heinz A. Kissinger, 1923-)는 올해 100세이다. 아직 건강하고 건재하다. 성경은 사람이 청년의 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나.

 

 

소원을 품고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라.

어린 때와 청년의 날을 즐겁고 기쁘게 살라고 했다. 원하는 길을 가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하라고 했다. <공동번역 성경>에 보니까“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아라.”라고 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라고 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하라.”라고 했다. 자, 그러면 이쯤에서 스스로 질문해 보자. 내가 지금 젊었다고 즐거울 만한 것 다 즐기고 기쁜 일이 있으면 다 찾아다니며 기쁘게 지내고 가고 싶은데 다 가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살아가는 것이 젊은이답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

 

전도서의 본문은 젊은 날을 케세라세라하며 되는대로 무질서하게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인생을 막 살아도 좋다는 가르침이 절대로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 말씀은 그 뒤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내용인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라는 경고를 보면 분명하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다. 밧세바를 통해서 낳은 왕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여러 배 다른 왕자들을 제치고 아버지 다윗의 대를 이어서 20살에 왕이 되었다. 솔로몬의 지혜의 왕으로 전해진다. 열왕기상 4장에 보면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왕상4:32-34)라고 하였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은 안 해 본 것이 거의 없고, 못 해 본 것이 없는 왕이었다. 그렇지 않겠나. 왕인데 뭔들 못했겠나. 물론 어느 시대의 어느 왕에게나 왕이 왕답게 살아가도록 왕의 곁에서 충언을 일삼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왕이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은 자신이 젊음을 불살라서 즐겁고 기쁜 일을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았노라고 고백하였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2:4-11)

 

솔로몬의 곁을 지키는 군대는 황금 방패를 들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과 통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어겼다. 그는 애굽의 바로 왕의 딸인 공주 외에 모압, 암몬, 에돔, 시돈과 헷 여인들을 처첩으로 맞아 들였다. 열왕기상 11장 3절에 보면“왕은 후궁이 칠백명이요 첩이 삼백명이라 그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라고 하였다.

 

청년기는 제 멋대로 사는 때가 절대로 아니다. 청년기는 인생의 황금기를 잘 준비하고 제대로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때이다. 즐거울 만한 일이라고 다 하면 큰일 난다. 기쁠 것 같은 일이라고 다 찾아 다니면 큰 화를 피할 수 없다. 청년의 때는 심고 물주고 가꾸는 때이다. 그리고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중에 자라나며 열매를 맺는 그 결실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때이다. 

 

물론 선조의 때나 부모의 때에 수고하고 애써서 이룩해 놓은 그 열매를 누리고 즐기며 살수도 있다. 그러나 심고 가꾸는 수고가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려고만 하면 불행이 도둑같이 찾아 들고 말 것이다. 

 

예수의 비유 중에 집 나간 둘째 아들의 비유를 보라. 일찍이 아버지의 유산을 분배받았다. 다른 나라로 가서 살았다. 흥청망청 쓰며 살았다. 주색잡기를 즐겼다. 나중에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남의 나라에서 돼지 치는 곳에 가서 지내야 했다. 신세가 처량하고 초라해진 것이다. 어찌 어찌해서 제 나라, 제 마을을 찾아왔다. 아버지가 마을 어귀에 나타난 거지 행색의 둘째 아들을 먼저 알아보았다. 물론 아버지가 그를 반겨 준 것은 은혜이다. 그러나 세상을 그렇게만 살아서는 곤란하다. 물론 아버지의 집에서 떠난 적이 없던 큰 아들도 문제투성이 이기는 하다.

 

맞다. 우리는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 “마음에 원하는 길과 눈이 보는 대로”라는 교훈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자기만의 적성과 재능과 각 사람이 품고 살아가는 소원과 계획과 이루려는 꿈일 수 있다.

9절의 말씀은 절대로 무질서한 쾌락주의를 부추기는 내용이 아니다. 우울과 낙담과 무기력 속에 인생을 되는 대로 살지 말고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즐겁고 기쁘게 소망을 갖고 감사하면서 마음에 소원하는 바를 이룩하기 위해서 열정을 갖고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그렇지 않나. 눈을 감기는커녕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가는 세상에 청년의 때에 세상을 호락 호락 살아서 경쟁에서 살아 남고 우승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채널A TV 프로그램 중에 <서민 갑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몇 번 눈 여겨 본 적이 있다. 각계 각 분야에 성공적인 길을 가는 젊은이들의 24시간을 추적한 다큐물이다. 그 어떤 분야이든 저절로 성공한 이도 없고 너무나도 쉽게 성공한 이도 없다. 남다른 노력과 연구과 도전과 수고의 결과를 언론이 추적해서 소개하는 내용들이다.

 

우리 교회의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의 청년들이 성공적인 생을 믿음의 사람답게 가꾸어가는 간증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눈 팔지 말고 푯대를 정하자. 믿음의 사람답게 청년의 때를 주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고 기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자. 말씀 안에서, 성도들과 더불어,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자신의 청년의 날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주님이 각 사람에게 그런 은혜를 더 해 주시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라.

심판이란 법적 용어이다. 판단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순간이 다고 온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언제나 청년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청년기의 기운이 꺾일 날이 찾아 온다. 전도서 12장 3-4절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더욱 실감이 난다.

 

“그때에는 너를 보호하던 팔도 떨 것이며 지금 강한 너의 다리도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빨이 거의 다 빠져 음식을 잘 씹지 못할 것이며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할 것이다. 귀는 어두워서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며 음식을 씹는 소리가 적을 것이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할 것이며 음성도 떨릴 것이다.”

이런 날이 찾아 오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라고 했다. ‘알라’라는 ‘야다’(ידע)는 지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나 자신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 온다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피할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더 이상 점령할 땅이 없는 듯이 지중해에서 인도 주변의 땅까지 쳐 들어가던 알렉산더(Alexandros the Great, BC 356-323)대제는 33살에 죽었다. 그는 열병으로 앓아누운지 열흘만에 후계자도 세우지 못하고 갑자기 눈을 감았다. 그가 죽자 페르시아는 세 나라로 나뉘이고 말았다. 알렉산더의 아버지는 머케도니아의 통치자 필립포스 2세이다. 알렉산더는 열두 살 때 사나운 명마를 단숨에 길들일 정도로 용맹했다. 열여섯 살 때까지 그리스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교사로 삼아 학문을 배웠다. 알렉산더는 뛰어난 무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으로 탁월한 학문을 겸비했다. 이미 10대 시절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으며 자라났다. 그런 탁월한 알렉산더였지만 이 땅에서의 그의 생은 33년이 전부였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BC 69-30)는 39살에 죽었다. 죽음의 순간이 누가에게나 찾아온다. 심판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하였다. 

 

청년의 때가 영원하지 않다. 젊음이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지나간다. 하루의 심판은 밤에 찾아 온다. 한해의 심판은 겨울에 찾아온다. 각 사람의 인생의 심판은 마지막 순간에 찾아 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6)라고 경고하셨다. 심판의 순간이 있다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청년기에 좋은 나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야 장년기와 노년기가 복되고 그의 생의 나중을 후세들이 기억하며 복되다 할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9-20)라고 하였다. 선악간에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경고이다. 

 

예수께“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마7:21)라고 교훈해 주셨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라고 심판하시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오래 살기만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고 상급 받을 날을 기대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근심하며 살고 악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며 사는 날들이 다 헛된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순간마다 근심을 마음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악이 몸에서 물러가게 해야 한다. 솔로몬은 분명하게 말했다.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헛되고 헛되며 헛도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는 고백이 나의 고백과 탄식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의 순간이 다가 올 것을 깨닫고 예비하는 지혜로운 신부와 같은 나날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때가 늦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어린 때와 청년의 때가 지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다. 전도서 12장 1절의 ‘곤고한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 인생이 언제나 5월의 화창한 날 같지는 않다. 살아가다 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으며 살아간다. 연속극의 대사처럼“살다 살다 별의 별 꼴을 다 보며 살고 다 당하며 산다”336장 찬송가 1절의 가사처럼 “환난가 핍박”이 있다. 찬송가 337장의 가사처럼 “시험과 무거운 짐과 근심이 있다. 괴롬이 있다. 내 짐이 점점 가벼워지기는커녕 점점 무거워질 때가 있다. 마음에 시험이 찾아 들고 무서운 죄가 엄습할 때가 있다.”그럴 때일수록 근심으로 걱정으로 불안으로 탄식으로만 하지 말고 주를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이겨 내야 한다.

 

337장 찬송가 3-4절의 전반부만 불러 보자.

 

3.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 주시네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런 은혜의 사람으로 주님을 절대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축원한다. 

 

1995년 6월 29일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 502명이 숨졌다. 937명이 다쳤다. 6명은 실종되었다. 시체도 못 찾았다. 2만여평의 지하 4층 지상 5층인 거대한 백화점이 영화의 장면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날 그 붕괴 사고로 정광진 변호사는 세 딸을 모두 잃었다. 그 해에 29, 28, 25살이던 세 딸을 모다 다 잃었다. 큰딸은 시각 장애인이었다. 서울 맹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9개월째 서울 맹학교 교사였다. 두 여동생과 함께 생필품을 사러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저들 세 딸들의 아버지 정광진 변호사는 1963년 사법 시험 제 1회 합격자이다. 첫째 딸이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자 판사 직을 사임하고 변호사 일을 하며 아내와 함께 앞을 못 보는 딸을 돌보고 키웠다. 그 아래로 두 딸을 더 낳아 키웠다. 그런 저들 부부는 세 딸을 하루에 한 현장에서 다 잃고 말았다.

 

그런 충격과 슬픔을 가슴에 묻고 부인 이정희 권사와 함께 장학 사업을 벌였다. 욥도 아닌데 그런 슬픔과 충격을 어떻게 이기며 지내 왔겠는가. 저들 부부는 그 당시인 지금부터 28년 전에 보상금 7억에 사재 5억을 더해서 서울 맹학교에 장학 기금으로 바쳤다. 그리고 인생의 곤고한 날, 인생의 낙이 사라져 버린 순간들을 이기며 극복하며 오늘날까지 살다가 남편이 세 딸들의 뒤를 따라 주님 품에 안겼다.

 

여러분은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삶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다가 주께 돌아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믿는가. 이번 수요일은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회심 285주년이 되는 날이다.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밤이었다. 올 해 5월 24일이 수요일이다. 285년 전, 그날, 수요일 밤 8시 45분경 런던 시내 올더스케잇 거리에 있는 낯 설은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 해는 미국 조지아 사바나 지역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 와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하루 하루 지내던 해였다. 그해에 존 웨슬리의 나이는 35살이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23살에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의 교수가 되었다. 25살에 영국 교회인 성공회의 사제가 되었다. 존 웨슬리는 35살 때 올더스케잇 교호의 수요 예배 시간에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였다. 그 이후 88살에 주님 품에 안기기 까지 기도와 말씀의 사람으로 평생을 존귀하게 쓰임 받았다. 

그는 평생을 죽는 순간까지 청년으로 살았다.

 

모세는 80살에 호렙산의 떨기나무가 불에 붙는 것 같은 환상 앞에서 하나니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120세에 숨지기까지 청년처럼 살았다. 청년처럼 쓰임 받았다. 여호수아 곁의 갈렙도 그랬다. 여호수아 14장에 보면 85세의 갈렙이 청년과 같은 의지와 믿음의 고백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갈렙이 모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는 40살이었다. 그리고 45년 세월이 흘렀다. 5년 전에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앞장서서 요단을 건너고 가나안 땅을 점령해 온지 5년 세월이 흘렀다. 갈렙은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산지를 점령해 가는 일에 앞장 서길 원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2)라고 선포하고 고백하였다. 

 

누가 과연 청년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갈렙과 같이 시대적으로 주어진 역사적인 부르심의 현장에서 담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모세의 하나님, 여호수아의 하나님, 갈렙의 하나님이 오늘 날 우리 각 사람의 범사에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는다. 청년의 때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인생의 곤고한 날이 다가오기 전에 전능하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각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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