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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기도와 성령(행1:12-14)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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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6-02 13:28 조회 10,330 댓글 0
 
                    기도와 성령(행1:12-14)                   2019. 6. 2


창세기의 그 여러 인물로부터 요한 계시록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까지 하나님이 쓰신 모든 성경의 인물들은 한 결 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기 전에 조카 롯과 그의 가족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내용을 안다. 얍복강 가에서 밤새워 기도하던 야곱의 기도 내용도 안다. 시내산 정상에서 사십일을 금식하며 기도하던 모세도 기도의 사람이요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사사 기드온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사사이며 제사장이며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기도생활은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과 귀감이 된다. 

다윗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해서 다윗의 풍성한 기도 생활을 접하게 된다. 세례 요한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도 반차를 따라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던 중에 아들 세례 요한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통보를 받았다. 

예수의 일상도 늘 기도하는 기도 생활 중심이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시작하여 붙잡혀 십자가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에 오르기 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셨다.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기도 중심의 일상을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도하지 않고도 신앙으로 살아 보겠다고 하는 것은 숨을 쉬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 보겠다는 것과 같은 논리라서 말이 안 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열 한 제자와 여러 여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여러 동생들이 더불어 다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열심히 기도에 힘쓰던 중에 성령이 임하였다. 사도행전 1장 15절에 보면 그 숫자가 약 120명쯤이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 불의 혀 같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각기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방언하였단 말이다. 

성령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자. 


다락방의 기도.
120여 성도들이 기도하던 곳은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멀지 않은 예루살렘에 있었다. 안식일에 가기 가까운 곳이란 말의 의미는 그 당시 안식일 규정에는 이동 거리까지도 제한하였음을 말한다. 11제자들과 여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이 함께 모인 곳은 제자들이 머물던 어느 가정의 다락방이었다. 혹자는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하튼 120여명이 함께 기도할 정도 규모의 다락방이었으니 부자 집의 다락방이었던 것 같다. 넓은 다락방에 기도하기 위하여 모여 든 것이다. 

불행하게도 기도하던 제자들 가운데 이미 가롯 유다는 없다. 사도행전 1장 18-19절에 보면 가롯 유다는 이미 불행한 선택을 한 이후였다. 

예루살렘에 가면 여기 본문에서 대하는 이 다락방이라고 소개하는 곳을 방문하게 된다. 2천 년 전의 건물과 장소이니 그 곳이 같은 건물이든 그렇지 않든 돌로 지은 건물의 이층 다락방에 들어서면 세계에서 몰려드는 모든 기독교 성지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서로가 2천 년 전의 성령 강림 현장을 연상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고는 한다. 생각하여 보라. 그 곳이 성령 강림의 현장이었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 어느 누가 기도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겠는가. 그 같은 건물의 1층에는 ‘다윗의 가묘’라고 알려진 곳이다. 다윗의 관이 놓여 있고 그 곁에서 기도하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2천 년 전에 120여 성도들은 그곳의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체험하였다. 오늘 날 우리 각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곳, 우리가 늘 예배드리는 이곳의 예배당이 다락방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주일 예배도 물론이지만 기도의 자리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 기도의 연합이 있기를 소원한다. 장작불은 처음에 불씨로 장작에 불을 붙이기가 어렵지 불이 붙기 시작할 때에 여러 개의 장작을 곁 쌓아 놓으면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본다. (2011년 8월, 여름수련회의 불꽃 장면을 기억하나?)

물론 개인기도의 유익이 있고 예수께서도 골방 기도에 대하여 교훈해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더불어 다 같이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연합과 합심 기도의 자리에 함께하는 기도생활의 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노래,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 연주, 미술, 체육 등 모든 분야에 꾸준한 노력과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이 없이는 일정한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처럼 기도 생활도 계속해 나가야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할 수 있다. 

기도 순서를 맡아 적어 가지고 하는 기도 말고 항상 기도 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가 무엇인가. 기도하라 하면 끙끙 거리는 것이 아니라 입만 열면 기도가 술술술술 기도될 수 있어야 한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까 말이다.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여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이곳을 기도의 다락방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네 가족이 미국생활을 시작하던 첫 해에 방이 하나 있고 방문이 없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고 응접실 공간이 있는 연립 주택 단지의 2층에서 지냈다. 벤살렘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어 목사관으로 이사 가기 전에 그 곳에서 2년 가까지 지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붙박이 벽장 공간을 많이 넣어 인테리어 하는데 그 당시 미국의 가정집이 그랬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그 날 오후로 집을 정하고 짐 보따리 안에 가지고 간 십자가를 창고 한 공간의 벽에 걸었다. 그 바닥에 방석을 깔아 놓고 네 가족이 시시 때때로 그 공간에 들어가 엎드려서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저희 두 아들들이 ABCD도 제대로 못 읽던 때의 일이다. 

사도행전 1장을 읽다가 기도의 다락방에 대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대하다 보면 늘 그 때 생각이 나고는 한다. 

“여러분의 기도 다락방은 어디인가”
“요즘 나의 기도 다락방은 어디인가”

우리는 나의 기도의 다락방을 정하고 늘 기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일날도, 주 중에도 교회 지하 2층의 기도 방을 나름대로 기도의 공간으로 선용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몇 주 전에 어느 집사의 간증을 들었다. “목사님 요즘 회사 업무도 과중하고 마음에 우울과 염려와 답답함이 몰려 와서 주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던 중에 주일 날 교회에서 예배드린 후에 개인기도 방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더 가지니까 크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하는 간증이었다.

그 기도의 다락방이 예배당의 본당일 수도 있고 어느 공간이어도 좋다.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라도 좋다. 아니면 자동차 안이나 버스 안이나 지하철 안에서 일수도 있다. 물론 혼자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사도행전 1장은 서로 더불어 연합한 합심 기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기도로 마음 문을 열자. 기도로 서로를 향하여 닫혀 있는 마음 문을 열자.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성도 간에 서로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자. 

에베소서 6장 18-1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기도에 대하여 권면하고 기도를 요청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기도할 것을 부탁하였다.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로 하라.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깨어 구하기를 힘쓰라
전도자인 나 바울이 담대히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맞다. 우리도 기도의 다락방에 모여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만 한다.

LA의 릭 워렌 목사가 담임인 “새들백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주일에 릭 워렌 목사는 선교지를 방문하고 없었다. 처남인 피터 목사가 주일 예배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설교 중간에 설교자가 커튼 뒤로 들어가고 또 다른 목회자가 강단에 나와서 통성으로 중보 기도를 함께 하도록 인도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기도를 마무리한 그 기도 인도자가 커튼 뒤로 사라지자 다시 피터 목사가 등단해서 설교 말씀을 이어서 계속하여 전하는 새로운 패턴의 예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맞다. 우리는 예배가 기도가 되어야 하고 기도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설교가 기도가 되어야 하고 기도가 설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수께서도“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다. 기도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이달리아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이 기도의 다락방이었다. 고넬료는 욥바에 선교 여행 중이던 사도 베드로를 초청하여 자기 집에서 말씀 부흥회를 열었다. 부활 복음의 말씀을 듣던 고넬료와 그의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다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예배당이 기도의 다락방이 되길 바란다. 여러분의 집이 기도의 다락방이 되길 바란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헤롯이 칼로 죽였다. 다음은 베드로를 죽일 차례라고 벼르고 있었다. 이미 붙잡은 베드로를 군인 넷씩 네 패로 나누어서 맡겨 가지고 옥에 가두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든 성도들이 밤새도록 합심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그 밤에 베드로를 옥에서 구출하셨다. 하나님은 결박된 베드로의 결박을 풀어 내셨고 굳게 닫힌 옥문을 열어 그 밤중에 베드로를 구출하셨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그 밤에 기도의 다락방으로 쓰인 것이다. 당신의 기도의 다락방은 어디인가. 

 
11제자들이 함께 한 기도.
본문 말씀에 보면 기도의 다락방에 다 함께 모여 기도하던 120여 성도들 가운데 11명의 제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름들인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이는 11명 제자들의 이름이다. 사도행전 1장 23절에 보면 맛디아란 제자가 가롯 유다의 빈자리에 제비 뽑혀 보충되었다. 저들 12제자들은 요한 외의 모든 제자들이 순교자의 길을 걸을 정도로 생명을 바친 전도자들이 되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무엇인가. 당신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요즘 예레미야서에서 대하는 대로 하나님을 배역하고 떠나 우상을 숭배하던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촉구하시는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대하게 되지 않나.

한 사람 한 사람 주께로 나아와야 한다. 성령 받아야 한다. 성령 받아야 산다. 성공, 출세 다 좋지만 성령 받는 것이 우선이고 성령 받는 것이 대답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나 한 사람의 이름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의 이름처럼 소중한 성령 받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길 원하신다.

532장 찬송 “주께로 한 걸음씩”이란 찬송가 가사를 보라. 

주께로 한 걸음씩 왜 가지 않느냐 네 죄를 자복하고 그 앞에 나가자
주께로 한 걸음씩 너 빨리 나가라 주께서 너를 맞아 네 죄를 사하라
주께로 한걸음씩 주 은혜 받으라 기회를 잃지 말고 네 마음 정하라
주께로 한 걸음씩 곧 와서 아뢰라 기쁘게 너의 몸을 주 앞에 드리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주께 나오라
주님께 아뢰이면 너 복을 받으리라 
값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 말아라. 

나그네 인생길에 잊혀져가는 이름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와 믿음의 사람들의 거룩한 연합인 공동체 속에서 나의 이름이 주님께 길이길이 기억 되는 그런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한 기도.
11제자들의 이름 외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이 더 기록될 뿐 120여명의 기도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해 놓지 않았다. 그 중에 적지 않은 숫자였던 여자들 그리고 예수의 아우들이 그 기도의 자리, 성령 받는 자리에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마태복음 13장 55절에 보면 예수의 아우들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이름이 나온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딸 들 중에서 최소한 아들들이 네 명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들 예수의 아우들이 모두 다 기도의 다락방, 성령 받던 다락방에서 함께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 외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여자들’이라고 기록하고 만 그 수  많은 기도하던 여성들을 생각하여 보라.

저들 다락방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였던 여인들은 누구일까. 
예수를 통해서 일곱 귀신이 떠나간 은혜를 입은 막달라 마리아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 통해서 12해 혈루병이 낳은 그 여인도 함께 자리 했을지 모른다.
나사로의 두 누이 동생인 마르다와 마리아도 함께 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예수의 이모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그 기도의 다락방에 함께 하였을 것이다. 
그 외에도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골고다 언덕을 지켰던 그 여러 여인들이 그 기도의 다락방에 같이 엎드려 기도하였을 것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번한 그 여인도 그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였을지도 모른다.

14절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그 많은 여자들 중에는
-가난한 여인들과 부한 여인들
-배운 여인들과 거의 배울 기회를 못 가진 여인들
-잘 난체 하던 여인들과 늘 주눅 들어 지내던 여인들
-예루살렘에서 살던 도시의 여인들과
-유대의 시골 마을에서 올라온 시골 농촌 여인들
-사고나 질병이나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거나 남편과 헤어진 여인들
-슬픔 중에 자식을 잃고 살던 여인들 평생 자식 하나 없이 살던 여인들
-건강한 여인들과 병약한 여인들
-늘 마음 평안하게 별 걱정 근심 없이 무난한 삶을 살던 여인들과 
-슬픔과 걱정과 근심과 고난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며 한숨 짖던 여인들
-평범한 가정의 여인들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던 권력자의 부인들과
-젊은 여인, 나이 많은 여인 할 것 없이
별의 별 여인들이 다 같이 그 다락방에 둘러 앉아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앙 간증 동영상을 보겠다. 시장에서 장사하며 살아가는 어느 평범한 여인의 간증이다. 그 내용이 얼마나 진솔하고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나 모른다. 이옥매 어머니의 간증이다. 함께 간증 영상을 보도록 하자. 

<..............간증 영상...........>

어떤가. 지금 나의 신앙생활 모습이 어떤 상태인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그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 않겠나. 

모세는 달랐고, 여호수아나 갈렙은 달랐고, 사무엘도 달랐고, 다윗도 달랐다. 사사 드보라도 달랐고, 에스더도 달랐다. 막달라 마리아도 달랐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달랐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노인이든 젊은이이든 나도 달라져야 한다. 성령 받고 달라져야 한다. 기도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 받은 120여 성도들처럼 우리 각 사람도 달라져야 한다. 성령 받고 성령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 

다음 주일은 성령 강림 주일이다. 우리 각 사람은 은혜 받고, 성령 받고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소망이 있다. 성령 받고 나면 내가 달라지고 가정생활이 달라지고 사회생활이 달라지고 학생들은 학교생활도 달라진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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