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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경고(말3:7-12, 마23:23-24) 20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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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01-13 15:14 조회 12,504 댓글 0
 
                 여호와의 경고(말3:7-12, 마23:23-24)   2019. 1. 13 청지기주일


구약성경의 마지막 선지서인 말라기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책망하며 지금 당하는 고난과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담고 있다. 말라기 1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여호와의 경고’라고 정한 것이다. 말라기는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말라기의 경고를 끝으로 하나님은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 선지자를 더 이상 보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말씀이 임하지 않던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한다. 그 400년 세월 후에 보냄 받은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다. 

경고란 “조심하도록 미리 주위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고속도로 중에서 평균 시속 110km로 운전할 수 있는 길에 ‘시속 30km'로 속도를 제한하고 공사 중인 경우가 있다. 그런 곳의 교통 통제 신호 경고판을 무시하는 것은 공사 현장 인부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스스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입하면 안 된다는 ‘일방통행’ 표시판도 경고판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도 더러 그런 경고판이 있는 곳이 있지만 미국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아서 사슴이나 노루와 같은 동물이 도로에 출현하는 것을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여기저기에 있다. 실제 벤살렘교회 목회 할 당시에 교인들의 주일 식탁 대화 중에 어두운 출퇴근길에 달리던 자동차 앞에 노루가 튀어 나와서 치이는 바람에 자동차 유리가 깨지거나 심하게 금이 간 경우 혹은 범퍼가 찌그러질 정도의 큰 사고를 당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런 경우에 사고를 당한 노루는 현장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경우는 허다하다. 방어 운전하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큰 위협이 되고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동물의 갑작스런 출몰이다. 

이처럼 운전 중에 ‘동물 출현 주위’ 경고판이 있다. 산행 중에 ‘멧돼지를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있다. 후전선 주변의 최전방으로 하면 ‘지뢰 주의’경고판 이 있다. 담배 갑에 심각한 암의 위험을 경고하는 환자의 사진과 경고문이 있다. 그래도 전혀 무시하고 열심히 담배를 피워 대는 이들을 보라.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게 무감각해지고 마비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모처럼 종합 검사를 하였는데 내 몸 어딘가에 심각한 암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의사가 내게 말하기를 “별 일 없고 다 괜찮으니 집에 돌아가서 하루하루 잘 지내라.”고 덕담만 하고 돌아가게 한다면 그 의사는 책임을 다하는 의사가 아니다. 건강 검진의 결과를 정확하게 말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는 45억 달러의 재산가이다. 우리 돈으로 5조 4000억의 거부이다. 올해 74살인 그는 술이나 담배나 마약을 일체 한 적이 없다. 그는 그가 사랑하던 그의 형 프레드 주니어 트럼프가 43살에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충격을 통해서 술에 중독되는 불행이 얼마나 큰지를 집안에서 가까이 보며 경고로 받아 들였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미국의 비판적인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술은 안 마시지만 너무 자주 술에 취한 사람과 같은 막말과 실언을 쏟아 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까지 것 기분으로 술 한 잔 할 수도 있지...심심한데 담배 한 대 피울 수도 있지...그런 마음에서 출발해서 알콜 중독자가 되고 담배 골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선지서들 중에 나훔서는“니느웨에 대한 경고”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하박국은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고 했다. 사실 내용으로 하면 ‘경고’라는 단어만 없을 뿐 호세아서도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명하셨다. 첫째로 낳을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 짓고 둘째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라고 지으라고 하셨다. ‘로루하마’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요 ‘로암미’란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패역해져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시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첫 딸 ‘로루하마’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둘째 아들 ‘로암미’를 낳게 하시면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경고하셨다.

이런 눈으로 관찰해 보면 ‘스바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습1:2)고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다. 스가랴서도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슥1:2)는 여호와의 심한 경고 말씀이 선포되었다.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슥1:4)

스가랴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중의 하나는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한 죄이다. “너희 조상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슥1:5)고 함부로 말하며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악을 일삼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호와의 경고 내용을 담고 있는 말라기서는 여섯 편의 설교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중에서 본문은 다섯 번째 설교 내용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하시려는 말씀을 설교형식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 내용은 차례 차례대로 그 당시 제사장들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악과 하나님의 규례를 떠난 불신앙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경고 내용을 담고 있다.

첫 설교인 1장 2-5절은 야곱의 후손과 형 에서의 후손을 비교하여 경고하시고 있다. 왜 에서의 후손들은 황폐한 산과 광야에서 지내게 되었는가. 왜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왜 에서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에서의 후손들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1장 4절 중간에 보면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이 얼마나 무서운 심판의 경고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에서의 후손에 대하여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말1:4)라고 경고하셨다.

말라기의 끝도 마찬가지다. 말라기 4장 6절에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는 경고의 말씀으로 구약 성경 전체가 끝나고 말라기가 끝난다. ‘여호와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계속하여 본문을 더 묵상하자. 


여호와의 규례.
말라기 3장 7절의 ‘규례’라는 것은 ‘지켜야할 규칙’을 말한다. 십계명을 비롯하여 성경의 모든 말씀을 총칭하는 것이다. 어느 것은 지키고 어느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율례 법도 계명 그 모든 것을 상세하게 잘 지켜야 한다. 예수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고 하셨다. 

야곱과 에서를 비교하여 말씀하신 첫 설교의 요지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어서 타락한 제사장들과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가정의 타락을 지적하셨다.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는 문제, 쉽게 아내를 버리는 문제 등을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셨다. 그리고 2장의 마지막 절부터 오늘 읽은 본문 바로 앞까지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는 메시아 예언을 담고 있다. 3장 1절의 앞부분에 나오는‘내 사자’는 세례 요한을 말하고 뒷부분에 나오는 ‘언약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본문의 말씀이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라는 책망의 말씀을 하시면서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안타깝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시편 1편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출발한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 평생토록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나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주일에 나눈대로 ‘묵상’이란 그냥 묵상 정도가 아니라 깨달아 알게 된 것을 생활 속에 실천하는 것이 묵상이라고 했다. 

무엇이 복인가. 요한 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많이 알면 뭐하나. 지키지 않으면 그 모든 지식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슨 효과가 있으며 무슨 열매가 있나. 말라기 3장 7절의 강조가 무엇인가.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에 모세 때에 두 돌 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계명과 율례와 법도와 규례들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지켜 행하라는 강조를 계속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28장의 내용이 그 대표적인 말씀이 아닌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 그러나 15절 이하에 보면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어떻게 된다고 경고하셨나.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신28:15)

시편 1편의 말씀과 비슷하지 않나.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그러나 악인들이나 죄인들은 그렇지 않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말씀 안에 살아가는 자의 형통과 말씀을 벗어난 자 즉 “악인들의 나중은 망하리로다.”라는 경고의 말씀이 시편 1편의 끝이 아닌가.

올 한해 형통의 길을 걷길 원하나 아니면 망하는 자의 길을 걷길 원하나. 이런 질문 은 2-3살 된 어린이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가.

다시 오늘 말라기 3장 7절에 돌아 와서 보라. 하나님이 조상 때부터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그래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초청하시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하고 질문하였다.  맞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증거는 여호와께서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그 모든 명령 즉 규례를 지키는 길이다. 
  
  
십일조와 봉헌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하는 질문 앞에 하나님이 차근 차근 말씀해 주신 내용이 십일조와 봉헌물에 대한 가르침이다. 십일조와 봉헌물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드리지 못하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경고하셨다. 도둑질로 번역된‘카바’라는 단어는 ‘훔치고 빼앗고 약탈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직장과 산업의 터전에서 장사를 하든지 무슨 사업을 하든지 무슨 투자를 하여 수익을 얻든지 그 소득 중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을 훔치고 빼앗고 약탈하는 행위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오늘 칼럼에서 쓴 대로 남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사는 26살 된 여성인 폴리아나 비아나(Polyana Viana)의 핸드폰을 빼앗으려던 강도가 그 여성에게 두들겨 맞은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그 피해를 입을 뻔한 여성은 브라질의 유명한 종합격투기 대표선수였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도둑질하고 강도질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톡톡히 경험하게 된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부패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제사장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으니 세상이 어찌 되겠나. 

말라기 2장 7-8절을 보자.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제사장조차 타락하고 이렇게 부패하였으니 어찌 하나님이 책망하고 경고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말라기 2장 3절을 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하나님을 떠나 형식적으로 제사하며 바벨론 땅에서 돌아 온 스룹 바벨 성전에서 정성이 떠난 제사장들의 영적 타락과 실상을 고발하신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시다. 

1장 6절에 보니까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라고 경고하셨다.
1장 7절에 보니까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하고 하나님께 대들었다.
1장 8절에 보니까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고 병든 것을 드렸다.
하나님이 저들의 타락한 제사 행위를 책망하셨다. 8절 하반 절에 보면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는 말씀까지도 하셨다.

9절에서는 “회개하고 은혜와 긍휼을 구하라”고 촉구하셨다.
10절에서는 “차라리 누군가가 나서서 성전 문을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포로 생활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돌아온 노인들과 그 후예들이 아닌가. 그런 저들이 새롭게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에서 이런 타락한 제사 행위를 계속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제사장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하나님 앞에 용서 받기 어려운 범죄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타락하다 보니 성전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십일조와 봉헌물’을 하나님께 드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하나님의 명령과 십일조와 봉헌물 규례를 무시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은 말라기 3장 9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시고 책망하셨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십일조와 봉헌물 신앙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저주 받은 생활이란 말이다. 

“아니, 나는 십일조 안 드리고 봉헌물 드리는 것에 별 관심 없이 교회 다녀도 직장 생활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시간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반드시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축원한다.


온전한 십일조.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가 무엇인가. 맞다. 우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에녹의 하나님, 노아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여호수아와 갈렙의 하나님, 사무엘의 하나님, 기드온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은 오늘 날 나의 하나님이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이르노라’가 무엇인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 만군의 여호와가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신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하셨다.

여기 ‘온전한’ 이란 ‘콜’( קֹל )이란 히브리 단어는 ‘모두’, ‘전부’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십일조 신앙이 이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 그렇게 하였다고 책망하고 계신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책망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십일조 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라고 책망하고 계신 것이다.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누구인가.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들, 신학교 교수들, 신학생들이 먼저 회개하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지 말고 순종하며 지켜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강조이다. 
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하셨나. 그것이 복된 신앙생활이기 때문이다. 십일조와 봉헌물 신앙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로 돌아간 증거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하셨나.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10-12)

그동안 해마다 1월 둘째 주일이면 십일조 신앙의 산 증인들을 하도 자주 거론해서 오늘은 그들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려 한다. 그래도 생각나는 성경의 인물들과 교회 역사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에게 생포되어 간 조카 롯을 구하려고 318명의 집안 남자들을 동원하였다. 연합군의 군대의 위협을 뚫고 들어가 조카 롯과 그 일행을 고스란히 구출해 내었다. 그 때 그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들 중에서 십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 앞에 바친 것이 십일조의 사례 중의 대표이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포도주와 떡을 갖고 나와서 아브라함을 맞이하였다. 

창세기 14장 18절에 보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하였다. 히브리서는 그 멜기세덱을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있다. 

맞다. 복의 근원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내 실력, 내 기술, 내 경험, 내가 쌓아 온 삶의 터전, 내가 투자한 재테크, 내 사회적인 지위 그것이 복의 근원이 아니다. 시편 2편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세상의 왕이나 관원들이라도 비웃으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분노를 발하시고 진노하시면 살아남을 나라와 민족이란 없다. 애굽이라도, 앗수르라도, 바벨론이라도, 메다와 바사와 헬라와 로마라도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지혜를 얻고 여호와께 교훈을 받는 자가 복된 자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12)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옛날이나 오늘 날이나 온전한 십일조와 온전한 봉헌물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복된 인생, 복된 가정, 복된 민족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기다리고 계신다. 12절 말씀이 무엇인가. 믿는 사람들 간에 복되다는 관찰을 넘어서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고 하셨다. 

말라기 4장 4절에 보면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경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고 지켜 행하라.”는 말씀이시다.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 평생토록 자자손손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실천하여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형통한 인생길을 걸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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