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살후2:13-17) 2019. 11. 10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 1장 3절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내용을 편지 서두에 먼저 썼다. 그런데 편지를 한참동안 써 내려가던 바울은 본문인 2장 13절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감사하는 내용에 대하여 힘을 주어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항상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무엇에 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언급하고 있는가. 바울은 저들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등을 통해서 저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다. 그 전파된 복음으로 저들을 부르셨다. 그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그런 저들에게 권면하는 말들도 빠트리지 않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라
곁에 있을 때에 말로 전한 복음과 지금 떠나 있으면서 편지로 한결같이 가르치는 그 가르침의 전통을 지키라.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길 원한다.
모든 선한 일과 선한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고 전하고 싶은 진심을 담아 편지하고 있다.
자, 그러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기억하면 기도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처음부터 택(擇)하심.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구나 각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여 복음으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수 많은 성도들 중에서 우리는 이 곳, 예수사랑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신앙생활하는 이들로 택하여 부르신 것이다. 서울 장안에 수만개의 크고 작은 교회가 있다. 그 중에 우리는 이 곳에 정한 마음을 두고 이 곳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 간의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고통 등 그 모든 것들을 더불어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 각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가족들과 친척들 중에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저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고 있나.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어떠하여야 할까.
“하나님. 나의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나의 아들딸, 나의 사위, 며느리, 나의 손자손녀들이 주님께서 자녀 삼으시기로 예정하여 택하시고 부르신 은혜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 하지 않는가.
맞다. 하나님 아버지의 택하심과 부르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구원 받은 주의 자녀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 각 사람을 택하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주를 믿는 자로 택하신 목적을,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고 교훈하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늙기까지 아들딸 없이 사는 것이 외로워 보이니까 이제라도 아들 낳아서 무릎 위에 앉히고 노년기에 외롭지 않게 살아가라고 아들 이삭을 주신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언약을 세우시고 아들 이삭을 낳으셔서 그 언약을 계승해 가는 언약 자손의 삶을 살아가길 원하셨던 것이다.
언약의 아들을 기다리다 지친 아내 사라가 자신의 몸종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의 침소에 들어가게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원하신 언약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아내 사래의 나이 9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언약의 아들 삼으셨다. 이것이 “처음부터의 택하심”이다.
우리의 신앙은 택하심의 신앙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다. 구한말인 1885년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 왔다. 그것이 우리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제가 태어나고 자라난 강화도 섬 마을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다리도 없던 그 곳에 여기 저기 복음이 전파되고 마을마다 예배당이 세워지고 은혜를 알게 된 성도들이 생겨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며 부르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야곱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들이 열둘이다. 그 중에서 요셉은 배다른 열 명의 형들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 시장으로 팔려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의 사람으로 택하신 요셉과 날마다 동행하셨다.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될만한 그릇으로 준비해 가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세를 택하셨다. 여 사사 드보라를 택하시고 다윗을 택하시고 에스더를 택하시고 느헤미야를 택하시고 엘리야를 택하시고 엘리사를 택하시고 세례 요한을 택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12 제자들을 택하시고 다메섹성을 향해 가던 사울을 택하셨다. 살기가 등등하던 핍박자 사울로 하여금 이방 선교의 사도가 되도록 택하신 것이다.
어제 은평 지방 찬양제의 모든 순서가 은혜로웠지만 특별히 주 사랑농아교회 성도들의 수화 찬양 시간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요게벳의 노래”수화 찬양 중에 삼개월짜리 어린 아들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에 떠내려 보내는 어머니 요게벳의 심정을 몸찬양으로 찬양할 때에 누구나 뭉클한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그것이 택하심이 아닌가. 그 당시에 모세처럼 불운한 시대에 애굽 땅에서 태어난 히브리 노예의 아들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악어 떼가 우굴 대는 죽음의 나일 강에서 살려 내셨고 아기 모세를 나일강에 떠내려가는 갈대 상자 안에서 건져 내셨다. 하나님은 바로 왕의 딸 공주를 통해서 일하신 것이다.
그리고 장차 80년 세월이 흐른 후에 80세의 노인이 된 양떼를 몰던 모세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애굽의 동족을 출애굽하게 하는 선봉에 붙들어 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신앙으로 살아가야 할까. 그냥 이 시대의 벳세다 들판의 무리 가운데 뒤섞여 앉아서 기적의 보리떡과 물고기로 배부르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눈을 들어 주를 보며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며 따르는 주의 신실한 제자들이 모두 다 되기를 축원한다.
성령(聖靈)의 거룩하게 하심.
우리 각 사람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또한 우리 각 사람 안에서 그 구원 사역을 완성해 가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서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다.
도우시는 성령, 가르치시는 성령, 깨달음을 갖게 하시는 성령, 은혜 주시는 성령, 감동과 감화와 감격과 회개와 결단과 변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믿음으로 살아가는 각 사람의 마음에 찾아 오셔서 일하시고 힘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성도들 각 사람의 삶을 거룩하게 하신다. 죄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신다.
성령은 거룩하게 하시는 영이시다.
성령은 진실하신 영이시다.
성령은 깨끗하게 하시는 영이시다.
성령은 온전케 하시는 영이시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후에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다. 아기 예수는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25절부터 35절까지에 보며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그 당시에 성령 충만한 한 사람 시므온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온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고 이스라엘의 위로이신 메시아를 기다리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 그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다. 25, 26, 27절에 계속하여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맞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시므온처럼 성령의 임재 앞에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고, 성령의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으로 출입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찬송하며 살아가는 날마다의 삶이어야 한다.
이처럼 예배를 잘 드리고 성령님을 예배당 안에 머물러 계시도록 하지 말고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성령을 모셔 드려서 성령이 내 안에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령의 지시에 순복하며 성령 안에서의 생각과 말과 행실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바를 따르는 신자의 모습이 아니겠나.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님은 성령 안에서의 <거룩한 삶을 위한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하여 교훈하였다.
1.항상 기도하는가.
2.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4.욕심내는 것은 없는가.
5.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또 존 웨슬리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 일곱 가지>도 강조하였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에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네가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Do all the good you can,
By all the means you can,
In all the ways you can,
In all the places you can,
At all the times you can,
To all the people you can,
As long as ever you can.
그러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안에서 성령과 동행하는 날마다의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진리(眞理)를 믿음으로 구원(救援)받게 하심.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관하여 항상 감사하되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또 하나의 내용이 무엇인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구원의 길은 진리를 믿는데서 출발한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무 종교를 믿든지 사람이 착하게 살면 구원 받는 다는 말은 엉터리다.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구원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는 길 밖에는 없다.
요즘 우리나라에 극성을 부르는 각종 이단과 사이비의 교주를 따라 다닌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니다. 때가 되면 저들은 다 이 세상을 떠나고 저들을 쫓던 무리들은 뭐를 좇던 뭐들처럼 허망한 생각을 갖고 뿔뿔이 흩어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진리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바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252장 찬송 "나의 죄를 씻기는”찬송의 고백 그대로이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의 죄 속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O precious is the flow That make me white as snow;
No other fount I know,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493장 찬송 “하늘가는 밝은 길이”의 2절 후반부에서 우리는,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라고 찬양한다. 맞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의 죄와 악과 어둠과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유일한 길은 골고다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예수의 보배로운 피 밖에는 없다.
우리는 인간의 허탄한 신화를 믿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신앙 즉 미신에 빠져 사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바위 앞에 빌고 큰 나무 앞에서 절하며 금과 은과 돌과 나무로 깎아 만든 우상 앞에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무당과 박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신격화하며 사람에게 굽신거리고 사람에게 절하고 사람에게 맹종하는 자들이 아니다.
16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하고 있나.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영원한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위로 하시는 하나님. 모든 선한 일과 말에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다.
맞다. 우리가 믿고 섬기고 따를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미국의 전도자 D. L. 무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 “너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스스로 실망할 것이다. 그대는 가까운 친구를 믿어 보라. 그도 때가 되면 그대 곁을 떠나가고 말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그 명성이 너에게 찌르는 가시처럼 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현세와 장래에 그리고 영원히 후회함이 없게 될 것이다.”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각 사람이 주 안에서 온전한 구원을 선물로 받아 누리를 축복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