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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은 한나의 기도(삼상2:1-10) 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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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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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11-19 20:32 조회 14,933 댓글 0
 
            아들을 낳은 한나의 기도(삼상2:1-10)         2018. 11. 18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에게 있어서 은근한 불안은 “과연 내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을까.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기를 임신하게 되면 “내 복중의 아기가 과연 건강한 아기로 자라나서 태어 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군다나 딸이 아닌 아들을 낳기 원하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의 12지파도 야곱을 통해서 태어난 12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라. 예수께서 선택하신 12명의 제자들 중에도 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각 분야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하고 그 역량에 따라서 남녀의 성별을 뛰어 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들 낳기를 소원하기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나는 지금부터 3100여 년 전인 사사시대 말기의 여인이다. 한나는 이스라엘의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엘가나란 남편의 첫 부인이다. 엘가나는 두 부인과 생활하였다. 둘째 부인 브닌나는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러나 본 부인인 한나는 자식이 없었다. 자식이 있는 둘째 부인 브닌나는 자식이 없는 첫 부인 한나를 무시하고 괄시하였다. 

사무엘상 1장 5절에 보면 한나에게 자식이 없었던 이유를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식이 있던 브닌나는 자식이 없이 지내던 한나를 몹씨 격분하게 하였다. 그로 인해서 한나는 늘 괴로운 날들을 지내야 했다. 사무엘상 1장 7절에 보면 한나는 울고 먹지 않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한나의 상태는 우울증의 문턱을 넘나드는 정도로 심각했다. 한나의 일상적인 마음 상태는 거의 늘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1장 6절에 브닌나와 한나의 관계를 ‘적수’(敵手)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저들 두 부인의 관계가 얼마나 심각했나를 짐작하게 한다. 서로 원수처럼 지냈다. 

그런 한나가 절기 때에 실로의 성막에 올라갔다가 성막에서 기도하였다. 한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오래도록 입술만 움직일뿐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 본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을 마시고 와서 취한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제사장 엘리는 기도하는 한나에게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엄히 말하였다. 그 때 한나는 자기의 기도하는 형편을 돌아보고 관심을 보이는 제사장 엘리에게 자기의 원통한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아들 낳기 원하는 간절한 소원도 말하였다. 그 때에 제사장 엘리가 “평안히 가라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해 주었다. 

에브라임 산지의 자기 마을 라마로 돌아 온 한나는 남편을 통하여 임신하였고 아들을 낳았다. 그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세무아엘’이란 히브리말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이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젖을 떼기까지 키운 후에 어린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성막에 데려가 놓았다. 제사장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의 집에서 성장기를 보내도록 어린 사무엘을 주께 바친 것이다. 그 아이가 우리가 아는 사무엘 선지자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들 사무엘을 낳은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한 기도문이다. 누가복은 1장의 ‘마리아의 찬가’가 수려한 문장의 구속사적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는 것처럼 한나의 기도문은 그 내용이 참으로 아름답고 그 내용이 대단하다. 그래서 혹자는 “이는 나중에 아들 사무엘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쓴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동을 입은 아들 낳은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10절 분량의 말씀이지만 짧은 시간에 그 내용을 자세히 나누기에는 분량이 많을 정도이다. <아들 낳은 한나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자.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는 여호와.
한나는 늘 슬프게 지내고 늘 괴로운 마음으로 지내고 잘 먹지도 않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그런 한나의 마음을 자주 격분 시키는 둘째 부인 브닌나와 브닌나를 통해서 태어나 자나라는 여러 아이들을 지켜보아야 했던 한나의 심정은 언제나 우울하였다. 그렇던 한나가 드디어 하나님의 선물로 아들 사무엘을 낳아 키우면서 그의 마음에도 슬픔과 괴로움이 떠나가고 즐거움과 기쁨이 찾아 왔다. 한나는 기도 중에 그 기쁨과 그 즐거움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1절을 <현대인의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여호와께서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축복하시고 높여 주셨으므로 
내가 원수들에게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구해 주셨으니 나는 정말 기쁩니다.”

아들 낳아 건강한 아들 사무엘을 키우는 한나의 기쁨과 즐거움이 전해지지 않나. 한나의 기도는 겸손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은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나가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자기 스스로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써서 얻은 기쁨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나에게 선물로 주신 기쁨이다. 한나는 평생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밤낮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둘째부인 브닌나로 인해서 속을 썩히고 격분하며 지내다 끝낼 인생만 같았다. 

그러나 울며 먹지도 않고 통곡하며 기도하던 한나의 기도를 주께서 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보통 아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길이 빛나는 사무엘로 성장하였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요 제사장 가문이 아니었지만 제사장으로 쓰임 받은 자요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 삼은 시대적인 선지자였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나중에 대하여 “그가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서리라.”(삼상2:35)고 까지 축복하는 말씀을 미리 해 주셨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참 즐거움과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즐거움이요 기쁨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나. 이 세상 그 어디에 참 기쁨이 있나. 돈 많이 벌면 기뻐질까. 부자되면 기뻐질까. 출세하면 기뻐질까. 높은 지위에 오르면 기뻐질까. 유투브에 수억 명의 팔로어가 생기면 기뻐질까.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전국에서 100여명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일영에 있는 감리교 연수원에서 정회원 목회자 연수 교육을 받았다. 거기서 만난 목회자 중에 그 누군가가 말했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는 고급 승용차 타고 양복 차려 입고 드나들다가 두 세 달 만에 빈털터리가 되고 승용차마저도 저당 잡히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노숙자처럼 지내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이들 중에는 현직 의사, 고위급 영관 장교로 전역한 이, 경찰 간부 출신 등이 섞여 있다고 한다. 저들은 나중에 가족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오갈 데 없는 초라한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한 끼 음식을 구걸하는 폐인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참다운 기쁨과 즐거움이 어디서 오나. 돈인가, 권력인가, 인기인가, 명예인가, 지위인가, 젊음인가. 물론 다 좋다. 그러나 ‘여호와로 말미암아’ 누리는 즐거움과 기쁨이 아닌 것은 그 수명이 짧다. 오래가지 못한다. 

한나는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 동안 한나는 여러 자식 낳아 키우며 한나를 무시하고 괄시하던 둘째 부인 브닌나를 인해서 얼마나 속이 상한 날들을 지내야 했나. 브닌나가 마치도 엉덩이에 뿔이 난 것처럼 행동하였고 그 때마다 한나의 마음은 괴롭고 슬프고 그래서 울고 그래서 잘 먹지도 않으며 지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랬던 한나가 지금 아들 사무엘을 낳아 키우며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아들 사무엘이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나. 그런데 마치도 한나는 아들 사무엘의 장래를 이미 다 알기라도 한 것처럼 기도하고 있다. 장차 아들 사무엘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여 지는 뿔과 같은 인생이 될 것을 믿고 기대하며 지금 품 안의 어린 아들 사무엘을 키우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뿔’이란 들소의 뿔을 상징한다. 신명기 33장 17절에 보면 12지파를 일일이 축복하는 모세의 축복 가운데 ‘요셉’ 지파에 대하여 축복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라고 하였다. 들소가 그 힘센 뿔로 받아 치면 사자라도 공중에 날려 버리고 만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다.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7절 말씀처럼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 도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한나처럼 슬프고 괴롭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음식조차 먹기도 싫은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형편은 아닌가.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우리가 통곡하고 우리가 술에 취한 자처럼 입도 떨어지지 못한 채 마음에 가득한 소원을 갖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그 기도 제목을 외면하지 아니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지금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낳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기도하는 그런 만족스러운 기도의 순간이 우리 각 사람에게도 꿈처럼 찾아오는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뿐만 아니라 한나의 기쁨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기쁨이었다. 한나의 이와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한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아들 사무엘을 통하여 계속되었다.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은 사무엘 개인의 기쁨으로 제한되는 기쁨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나가는 기쁨이요 즐거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나를 통해서 태어난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왕이 되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그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장차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런 구원의 감격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범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행동을 달아 보시는 반석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기도하는 주의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 일상의 행동을 달아 보시는 전능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반석과 같은 분이시다. 

교만한 생각이나 오만한 마음가짐은 그의 입의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생각이 겸손하고 마음가짐이 온유한데 그 입의 말이 교만하고 오만한 경우란 없다. 마음의 생각이 입의 말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절의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여호와이심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브닌나처럼 심히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로 한나의 마음을 들 쑤셔 놓는 그런 말들을 귀 기울여 들으신다. 그리고 그런 말을 신중하지 못하게 뱉어내는 이들의 행동을 달아 보신다. 

4절부터 8절까지는 대구법에 의한 표현들이 나열된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인하고 높여 드리는 기도로 가득 차 있다. 
 
용사와 넘어진 자
풍족하던 자와 품을 팔고 주리던 자
전에 임신 하지 못하던 자와 이미 많은 자녀를 둔 자
죽음과 생명
스올 즉 지옥과 천국에 대하여 기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시인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가난하고 빈궁한 자와 귀족들의 삶을 비교하는 기도도 드리고 있다.

한나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그 모든 형편을 얼마든지 그 반대의 처지로 역전 시키실 수 있는 여호와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그런 창조의 능력과 섭리하시는 힘을 이길 인생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전능자이시다. 

한나가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9절)라는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서 말씀하는 ‘거룩한 자’란 의로운 자를 말한다. 노아 시대에 노아가 그런 인물이었다. 마가복음 1장 19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한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이 그런 인물이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아내 될 마리아를 보호하여 장차 그에게서 태어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장기에 보호자로 쓰임 받을 믿음이 생겼다. 하나님은 착잡한 마음으로 가만히 마리아와의 약혼 관계를 정리할 고민에 빠져 있던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그리고 의로운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거룩한 남편이요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자요 양육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분부하시는 말씀에 준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원했던 방주 지은 노아나 하나님의 말씀 따라 나선 아브라함이나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이나 동족을 노예의 땅 애굽에서 이끌어 낸 모세 등을 통해서 거룩한 자다운 생을 살아가게 하셨고 그들의 발을 지켜 주셨다. 

오늘 날 우리들도 그런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4절의 한나의 기도 내용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넘어져 있는 인생이라도 힘으로 띠를 띠게 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택한 자의 뿔을 높이시는 여호와.
7절의 기도 내용처럼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는 여호와 이시다.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기고 높이기도 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아무리 지금 가난하고 빈궁한 자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일순간에 귀족과 함께 앉게 하시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다 그 이유가 있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끊임없이 희생하고 응원을 해준  그 누군가가 있다. 그가 부모이든 형제이든 이웃의 그 누구이든 말이다. 

오래 전 미국 명문대 중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의 졸업식장에는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참석하여 졸업생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여기저기 고급 차들이 가득했고 명품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아주 꽉 채워졌다. 수석 졸업생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시간이었다. 수석 졸업생은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면서 하나님과 어머니와 스승들에게 감사하는 인사말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졸업식에 입고 갈만한 변변한 정장 한 벌도 없었다. 졸업식장에 참석하기를 꺼려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강권하여 모시고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 날 메달을 받은 수석 졸업생은 자신에 목에 메달을 걸지 않고 양손으로 받든 채 연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축하객 사이에 끼어 앉아 있는 자기의 어머니에게 다가 가서 목에 걸어 드렸다. 

그 수석 졸업생은 가난한 홀어머니에게서 자라난 청년이었다.

 “지금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가 이루어주신 겁니다. 
이 메달은 당연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받으셔야 합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메달을 걸어드리는 순간 졸업식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미국 남부 버지니아 스토턴이란 시골에서 자라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린 시절 낮에는 양계장에서 닭을 키우고 밤에는 남의 옷을 만드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가난한 환경에서 그를 키웠다.   훗날 그 수석 졸업생은 46살 때부터 8년 동안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냈다.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그는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미국 28대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이다. 

우드로 윌슨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공경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늘 귀감이 되었다.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으로 지내던 기간인 1914년 미국 의회는  5월 둘째 주일을 거국적인 어머니 주일로 제정하였다. 이는 우연힌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본문에 보면 ‘힘’이란 단어가 4절, 9절, 10절에 3번이나 나온다. 맞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 중에서 넘어진 자에게 힘으로 띠를 띠워 주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이 힘으로 하나님을 이길 인생이란 없다. 하나님은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는 전능자이시다. 사무엘을 그런 아들로 자라나게 하여 쓰신 하나님은 다윗을 그렇게 붙들어 쓰시고 에스더와 느헤미야를 그렇게 사용하셨다. 택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고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 몸을 입고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런 존귀한 구원주의 자리에 앉게 해 주셨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6절 이하에서 그런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광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16-23)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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