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승천과 성령의 약속(행1:1-11) 2020. 5. 24 요한 웨슬리 회심 282주년 기념주일
기독교의 역사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에 예수의 약속대로 성령을 받은 이들에 의한 역사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그런 인물이었다. 4세기에 성 어거스틴, 중세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를 빼어 놓을 수 없다. 토마스 아 켐피스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 체코슬라비아의 화형을 당한 순교자 얀 후스(Jan Hus, 1372-1415)도 후대에 길이 길이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 후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 쯔빙글리, 잔 칼빈 등 또한 기독교 역사에 각각 소중한 인물들이다. 그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700년대에 기독교 신앙을 집대성한 역사적인 인물이 영국의 요한 웨슬리이다. 1703년에 영국 성공회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요한 웨슬리는 88년을 살았다. 그는 160cm정도의 크지 않은 키에 몸무게 55kg 정도의 아담한 체구였지만 그의 생애는 위대하였다.
그는 양가의 어른들로부터 삼대째 이어져 오는 영국 성공회의 목회자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는 역사 성공회 목회자의 딸인 요한의 어머니 수산나를 아내로 맞았다. 요한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실력자이고 시인이었다. 요한의 어머니 수산나는 사무엘 아네슬리 목사의 25번째 딸로서 신약 성경이 쓰여진 헬라어 라틴어 불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실력자였다. 그러하다 보니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가르쳤다. 요한 웨슬리의 부모는 자그마치 19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중에 아홉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세 아들과 일곱 딸들만이 장성하였다. 요한 웨슬리는 그들 중에서 15번였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과 같은 찬송시를 10000여곡 쓴 음악가요 목사였던 동생 찰스 웨슬리는 18번째로 태어났다.
저들 형제가 모두 기독교 역사의 존귀한 인물들이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특히 성령 받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무슨 공부를 해라, 어떤 학교를 가라, 무슨 장사 혹은 무슨 사업을 해라, 어떤 직업을 가져라,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라, 어떤 집에서 살아라, 오늘날로 말하면 어떤 자동차를 타라, 어느 나라로 여행을 다녀와라, 무슨 취미 생활을 해라 뭐 그런 말씀을 단 한마디도 하신 적이 없으시다.
예수는 늘 비유를 통해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 만을 일관되게 해 주셨다. 각색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어 쫓고, 죽은 자를 살려내셨다.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도 하셨다. 배가 고픈 벳세다 광야의 그 많은 무리에게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앞에 두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배부르게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예수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생활이며 왜 하나님의 나라 신앙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늘 일관된 주제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오늘은 요한 웨슬리 회심 282주년이 되는 날이다. 1738년 오늘, 5월 24일 밤 8시 45분경의 요한 웨슬리의 성령의 임재 체험이 오늘날의 감리교회를 탄생시킨 시작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그해에 35살이었다. 그는 명석하게 성장하였다. 그의 어버지가 목회하시던 웹워스에서 런던으로 유학하여 생활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링컨 칼리지를 졸업하였다. 23살에 같은 학교의 연구 교수가 되었다. 그가 연구실로 사용하던 공간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링컨 칼리지 안에 지금도 그래도 보존되어 있다.
그는 25살에 영국 성공회의 목회자인 사제가 되었다. 32살 때에 동생 찰스와 함께 미국 조지아 주의 사바나란 곳으로 선교사로 떠났다. 선교사로 출발하기 전에 그러한 기도 제목을 들은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내게 스무 명의 아들들이 있다면 모두 다 그렇게 쓰임 받았으면 좋겠구나”라고 축복해 주었다. 저들 형제는 대서양을 건너가던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났다.
10월 14일에 출발한 배에 탄 이들 중에는 독일 헤른후트 노동공동체에서 온 개신교 신도들인 모라비안 26명도 있었다. 장장 4개월 23일 간 계속된 항해에서 시몬즈 호는 몇 번이나 전복될 뻔 하였다. 바닷물이 객실 창을 부수고 돛대까지 부러뜨릴 정도였다. 자신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평온하게 둘러 앉아 시편을 찬송하며 기도하는 모라비안 신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저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하고 한결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들에게서 받은 충격은 요한 웨슬리로 하여금 계속하여 질문하게 만들었다. “저들은 어떻게 나와 똑 같은 두렵고 불안한 상황에서 저렇게도 평온하게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선교 현장에서의 그의 사역은 쉽지 않았다. 보수적이고 엄격하던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스리는 그 곳에서 철저하게 선교의 높은 장벽 앞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인디언 원주민들은 죄에 물들지 않은 창조 본연의 모습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도착한 저들 형제는 실망에 빠지고 말았다. 선교를 방해하는 원주민들의 악의적인 협박 앞에서 크게 실망하고 당황하고 말았다. 동생 찰스는 선교지에서 6개월 만에 영국으로 되 돌아 가고 말았다. 결혼 전이던 요한 웨슬리는 선교지의 조지아 주지사 오글소프로부터 치안장관 토머스 코스턴(Thomas Causton)의 조카 소피아 홉키(Sophia Hopkey)를 소개 받았다. 소피아의 나이는 겨우 18살의 아름답고 신앙적으로 신실한 자매였다. 웨슬리와 소피아는 곧 사랑에 빠졌지만 웨슬리는 자신의 금욕적이고 보수적인 경건생활과 사랑 사이에 갈등하기 시작했다. 결국 저들의 사랑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요한 웨슬 리가 고민하는 사이에 소피아 홉키는 윌리엄슨이란 청년과 결혼하고 말았다. 막상 일이 그렇게 되자 마음 속으로 질투와 미움을 갖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는 영성체에 참석한 저들 부부를 성찬 분급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 이 일이 화근이 되어 26명의 배심원이 구성되어 사태를 조사하게 이르렀고 결국 요한 웨슬리는 선교지에서 1년 9개월 만에 선교지에서 도망치듯이 영국으로 되돌아 가게 되고 말았다.
영국으로 돌아가는 대서양의 배 안에서 요한 웨슬리는 또 다시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이때의 심경을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인디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갔다. 그러나 오! 나는 누가 구원할 것인가? 이 불신앙의 악한 마음에서 나를 건져줄 자는 누구인가? 나는 맑은 여름날의 종교를 갖고 있다. 나는 위험이 없을때에는 나 자신을 믿는다. 그러나 죽음의 위험이 가까이 올때에는 나의 마음은 공포에 빠진다.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할 것인가?"
요한 웨슬리는 1738년 2월 1일, 우울한 모습으로 영국의 딜(Deal) 항구에 도착했다. 3일 후 웨슬리는 런던으로 가서 오글소프와 조지아 이사들을 만나 사유서를 제출하고 선교사 임명장을 반환하였다. 오갈 곳도 없던 요한 웨슬리는 동생 찰스의 친구인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제임스 허턴은 웨스트민스터 학교 근처에서 책방과 하숙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요한 웨슬리는 선교에 실패한 무기력하고 우울한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지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282년 전 오늘 밤에 체험한 ‘올더스케잇교회’에서의 수요일 예배 시간에 체험한 성령의 새로운 임재 체험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그날 저녁에 일어난 일을 다음과 깉이 일기에 썼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신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 경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예수께서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요한 웨슬리는 곧 마음에서 경험한 것을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간증하였다. 그리고 밤 10시쯤 되어서는 신도회 회원들과 함께 동생 찰스에게로 찾아가서 이 기쁨을 나눴다.
지난 목요일은 예수의 승천 기념일이다. 오늘은 예수 승천 기념 주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도행전 1장의 말씀을 다시 또 묵상하는 중에 은혜로운 주일이 되길 바란다. 11제자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예수는 승천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는 약속.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는 승천 하시기 전에 하신 예수의 말씀이시다. 예수는 이처럼 11제자들에게 몇 날 후에 너희는 성령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을 해 주시고 승천하셨다.
세례 즉 ‘밥티조마’라는 것은 ‘죄를 씻는다.’, ‘완전히 새롭게 된다’. ‘삶이 온전히 변화된다’는 뜻이다. 예수도 세례 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약속은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을 향하신 약속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날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인 우리들은 각 사람이 성령 세례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여야 한다.
이렇게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충만이란 나의 삶의 범사를 성령께서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는 성령 주도적인 삶으로 자신의 범사를 성령께 위탁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때때로 잠시만 성령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정, 나의 판단, 나의 모든 것을 매 순간마다 성령께 맡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이 성령 세례 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가령 “오늘 교회를 갈까요 말까요, 수요 예배를 갈까요 말까요, 새벽 기도에 일어나 갈까요 말까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까요 말까요, 내가 지금 상대방에게 이 말을 할까요 말까요, 내가 지금 이 물건을 살까요 말까요, 내가 주님께 시간, 재물, 경험, 은사를 드려서 헌신할까요 말까요” 이런 크고 작은 모든 상황 속에서 내 판단, 내 고집, 내 결정, 내 의지에 붙잡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성령 세례를 받고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이다.
그래야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달라진다. 그래야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기도 생활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야 복음을 누군가에게 전파해야 겠다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진다.
요즘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아빠가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날마다 마주 앉아서 한 시간씩 성경을 소리 내서 돌려 가면서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흐믓하였다. 그런 생활이 쌓이고 쌓여서 각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요즘 실시간 영상 예배를 드리다 보니 모든 예배를 영상으로 다시 접할 수 있다. 가령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함께 새벽 기도를 못 드리더라도 그 어느 시간을 할애해서 새벽 5시에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이들은 무슨 찬송을 부르고, 무슨 말씀을 묵상하며, 무슨 기도를 드리는지 함께 어느 시간에라도 다시 찾아 듣고 보고 기도에 동참하고 말씀 묵상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날마다 그렇게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일년 365일이 지나고 나면 차이가 엄청난 것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우리는 소나기 같은 성령도 좋고 폭포수 같은 성령도 좋지만 헐몬의 이슬 같은 성령의 임재도 사모해야 한다. 헐몬의 이슬이 유다의 온 들판을 비가 내린 것처럼 적시듯이 우리는 날마다 꾸준히 그런 성령의 임재와 은혜와 인도하심을 사모할 줄 알아야 한다.
회복에 대한 기대.
예수께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건만 제자들의 관심은 달랐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고 물었다. 세상 나라의 회복에 대하여 여쭌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하다 보니 그런 질문을 할 만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겠나. 가령 우리나라로 하면 일제 식민지 시대에 얼마나 많은 기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여쭈었겠나. “하나님 언제나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광복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회복을 원하고 바라며 살아간다. 건강의 회복, 경제적인 회복, 인간 관계의 회복, 사회적인 지위의 회복 등등 말이다.
어느 중학교 학생이 겪은 일이다. 경제적인 가정 불화로 엄마가 가출하였다. 날마다 아빠는 도시락을 싸 준다. 달걀 후라이 한 개와 김치와 밥이 전부다. 날마다 똑같은 도시락 내용물, 화가 난 날은 점심을 굶고 집에 돌아 오다가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런 어느 날 쓰리기 통 앞에서 도시락을 엎어 음식물을 버리려는데 도시락 가방 속에서 작은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아들아! 아빠가 미안하다. 부족한 아빠를 용서하렴.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렴. 사랑한다.” 그 중학생은 커서 9년 후에 신학생이 되었다. 신학대학생 초청 설교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그 자리에는 엄마 아빠가 나란히 와서 기념 사진을 함께 찍었다.
사실 제자들은 정치적인 회복의 때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고 예수는 구속사(救贖史)적인 면에서 대답하신 것이다. 구속사적이란 표현이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예수의 관심은 물론 정치적인 회복도 중요하지만 성령 받고 부활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욱 더 급선무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대답은 이러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시라고 대답하셨다. 맞다. 모든 범사의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다. 그 유명한 교훈이 전도서 3장의 말씀이 아닌가.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렇지 않나. 우리 속담에 “우물 앞에 가서 숭늉을 찾느냐”는 말처럼 다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다. 헬라어로 보면 앞의 ‘때’는 ‘크로노스’의 시간이고, 뒤의 ‘시기’는 ‘기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앞의 시간은 환경과 관계 없는 절대 시간이고 뒤의 시간은 결정적인 시간, 사건 중심의 시간이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든 인생의 대소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때와 시기와 기한이 모두 다 하나님 안에 있는 법이다. 늘 말씀 나누지만 우리 중에 예수사랑교회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여기 까지 함께 올 것을 미리 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은 목사인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도 우리 속에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이 길을 가는 우리 각 사람도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 각 사람과 우리 가정사와 우리 공동체의 때와 시기는 범사가 하나님의 권한 즉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받은 예수의 증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예수는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11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더 이상 예수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천사가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맞다. 우리는 예수의 베들레헴 마굿간에서의 탄생을 안다. 예수의 나사렛 생활도 안다. 예수의 요단강 세례도 안다. 예수의 광야 금식 사십일도 안다. 예수의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 대화도 안다. 예수의 나귀 새끼 타신 예수살렘 입성도 안다.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 옥합을 깨트려 부어 드린 일도 안다. 예수의 마지막 밤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신 일도 안다. 예수의 유월절 마지막 식탁에서의 가롯 유다와의 대화도 안다.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도 안다. 예수의 부활도 안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과 숯불 지펴 놓고 조반 잡수신 일도 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반복하여 물으신 내용도 안다. 우리는 예수의 승천 장면과 마지막 하신 말씀도 안다.
마지막 말씀이란 유언과도 같은 것이다. 그 승천 직전에 하신 마지막 분부의 말씀이 무엇인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강조이시다. 맞다. 성령 받아야 한다. 은헤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되고 그래야 달라지고 그래야 개인도, 부부도, 가정도, 나의 범사도, 나의 신앙 생활 나의 교회 생활, 나의 일상도 달라지고 변화될 수 있다.
다음 주일이 성령 강림 주일이다. 이 한주간 성령에 대하여 묵상하고 의지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찬송하고 기도하고 간구하길 바란다. 벤살렘교회는 21년 전인 1999년 6월 10일, 성령 강림절 날 밤 창고에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던 70여명에게 임한 성령 강림으로 교회도 건축하고 오늘 날에 이르렀다.
올 2020년 성령 강림절을 기다리며 각 사람이 성령 충만해 지길 소망한다. 성령이 임하고 권능을 받아야 땅 끝까지 예수 부활의 복음 전파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냥 뭘 먹고 뭘 마시고 뭘 입고 어떻게 살까만 궁리해선 안된다. 생각해 보라.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서 사업이 멈추고 경영이 멈추고 하던 일이 ‘0’ 상태가 되지 않았나.
어제 친구 목사 아들 결혼식에 덕수궁 돌담길 지나 배재학당 정동 빌딩 야외 잔디밭에서 있었다. 금요일도 날씨가 않좋았다. 그런데 토요일 날씨가 참 좋았다. 날씨가 맑고 궂는 것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나. 범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다. 성령 받아야 한다. 권능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신앙 생활 해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리고 인도해 가신다. 성령이 내 안에 주인이 되시고 나는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참 행복, 참 소망, 참 기쁨, 참으로 생의 보람이 있게 되는 법이다.
우리 은혜 받고 성령 받아 평생 성령 충만한 복음 전파의 증인으로 살자.
요한 웨슬리는 35살 때인 오늘 1738년 5월 24일 그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은혜의 체험을 한 이후 88살에 주님 앞에 가기 까지 53년을 성령 충만한 복음 전도자로 살았다. 말을 타고 하루에 100KM씩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하루 평균 2번씩 설교하였다. 지구를 12바퀴 돌 정도로 말을 타고 다녔다. 4만 번 이상의 설교를 하였다. 마지막 3년은 기운이 딸려서 마차를 탔다. 그런데도 날마다 일기를 썼다. 1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였다. 시장, 농촌, 탄광촌, 술집 골목, 창녀 촌, 항구 도시의 바닷가 그 어디에든 닥치는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건물 밖 설교가로 널리 알려 져 있다.
영국 국교회에서 쫓겨 나고 예배당 안에서 설교할 권한이 제한되자 그는 야외에서 그 어디에서나 설교하고 그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세계는 나의 교구다”(The World Is My Parish)라는 말이다. 그는 그와 같은 뜨거운 마음을 가진 복음의 동지 100명만 더 있다면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오늘 날 우리 회중, 우리 공동체 가운데서도 요한 웨슬리와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음이 뜨거워지는 주의 자녀들이 자리 매김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