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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말씀의 기름부음(사61:1-3) 12. 11 성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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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12-16 13:32 조회 18,509 댓글 0
 
성경은 말씀의 책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살아 계셨고 그 하나님의 말씀 또한 이 세상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하나님 안에 계셨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책이다. 가령 레위기에서 말씀하는 그 모든 복잡한 제사의 행위들은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이다. 레위기의 말씀과 히브리서의 말씀을 한 번에 같이 읽으면 그런 내용이 더욱 더 명확해 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 제사의 희생에 의하여 레위기의 제사를 완성하신 어린 양이시다. 복음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했다. 복음서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과 수많은 교훈의 말씀들로 넘쳐난다. 또한 그 분이 행하신 수많은 치유와 기적의 사건들로 가득하다.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육체의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고 승천하셨는지를 말씀한다. 신약의 서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사도들과 그 형제들의 편지들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 관하여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의 기록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받은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았다. 성경은 가정이나 사무실이나 자동차 안에 보관하므로 복이 되는 책이 아니라 펼쳐서 읽고 깨달아 알고 믿고 따를 때에 복이 되는 책이다. 요한 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다.

문명국가의 차이는 물의 사용량과 함께 기름의 사용량으로 비교된다. 세계는 물과 기름의 전쟁이 계속된다. 요즘 한강물이 녹조 현상이 심해서 냄새가 나고 마실 수가 없다고 한다. 적조 현상이나 녹조 현상이 생기면 그렇다. 흔히 바다에 생기는 적조 현상이나 민물에 생기는 녹조 현상은 모두가 다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자연 이상 현상이다. 바닷물의 적조 현상은 물의 온도가 높아지는 경우와 장마나 폭우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영양염류가 대량 유입될 경우에 어패류의 아가미가 막히거나 산소 공급의 부족 등으로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민물도 마찬가지다. 청정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녹조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원인적으로 해결하려면 영양염류의 발생 양을 줄일 수 있는 물가의 숲을 늘리고 물가에 나무를 많이 심는 방법이 제일이다. 우리나라는 서해와 남해에 개펄 면적이 넓은데 이는 세계가 주목하는 녹조현상을 막을 수 있는 최고의 자연적인 조건이라고 하니 하나님의 창조섭리가 놀랍지 않은가. 이처럼 바다와 강물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물이 이처럼 귀하듯이 기름이 귀하다. 물론 기름 중에도 원유는 현대 문명이 오늘 날처럼 발전하게 된 가장 큰 자원 중의 하나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름이란 성령의 임재를 상징한다. 특히 기름 부음이란 거룩함과 성별을 상징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30장 23절부터 25절까지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관유라는 기름을 만들어 사용하라고 명령하셨다. 관유란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를 감람기름에 골고루 일정 비율대로 섞어서 만든 거룩한 기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름으로 성막의 구석구석에 바르고 증거궤와 상과 그 모든 기구들과 등잔대와 그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간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대에 골고루 바르게 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이것에 접촉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출30:29)고 했다. 이 관유는 오직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만 부어서 거룩하게 구별하도록 되어 있었다. 제사장 직분을 구별하는 상징이 이 관유로 기름을 바르는 의식을 통해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거룩함이 선포되었다. 이 관유는 다른 사람에게 부으면 안 되게 규정되어 있었다. 사사로이 관유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렇게 명령하셨다.

그와 같은 기름 부음이 한 개인에게 임할 것을 예언한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다. 주 여호와의 성령의 이사야에게 임했다. 이사야 61장 1절에 언급되는 ‘나’는 이사야가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이다. 소위 메시아 예언인 것이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그리고
중간 부분에 ‘나를 보내사’라고 했다. 여기서 언급되는 일인칭인 ‘나’는 모두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이다.

자!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각 사람이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기 시작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 모든 놀라운 은총이 우리 각 성도들의 머리 위에 또 다시 기름 부으심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기름 부으심이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이게 임하는가. 말씀을 통하여 거룩하게 임하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기름이 귀하던 때에 피마자기름을 의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열매에 독성이 심하다지만 적당량을 변비나 이질이나 식중독이나 위장염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피부의 종기나 옴이자 버짐을 치료하는 치료약으로도 쓰였다. 피마자 이파리를 삶아 말려서 나물로 먹기도 했다. 한방에서는 중풍으로 인한 구안와사나 반신불수 현상의 치료약으로도 사용하였다. 불에 덴 화상 치료나 각기, 해소 병의 치료약으로도 쓰였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있는 식물 하나에서도 이와 같은 치료와 회복을 위한 각종 약 재료들을 얻을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기름 부으심은 인생을 살리고, 가정을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번영하게 하는 치료약이며 회복제인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
여기서 말씀하는 가난한 자란 영 육간에 고통 받는 모든 인생들을 일컫는 것이다. 마치도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말씀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하는 말씀과 통하는 내용이다. 그렇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그 모든 가난한 자의 희망이며 꿈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이 같은 회복과 충만의 역사가 있었다. 덴마크의 동화 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동화 중에 <성냥팔이 소녀>가 있다. 동서고금의 세계 모든 어린이들의 친구요 연극 배우였던 안데르센은 나중에 200여 편의 동화를 남겼다. 성냥팔이 소녀의 내용은 이렇다. 추운 한겨울에 굶주린 채 눈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성냥을 파는 소녀가 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성냥을 한 갑도 팔지 못한 소녀는 그냥 돌아가면 술 취한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것을 생각하니 돌아가질 못하고 건물 벽에 기대어 손발을 호호 불고 있다. 너무나도 추워 성냥이라도 태워 몸을 따뜻하게 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 성냥의 불빛은 큰 난로가 되었다. 하지만 금세 꺼지고 말자 두 번째 성냥을 태웠다. 이번에는 맛있고 푸짐한 음식이 한껏 차려진 식탁이 보였다. 세 번째 성냥에는 멋진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으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점점 꺼져갔다. 그래서 소녀는 할머니를 계속 머무르게 하기 위해 남은 성냥을 다 써버렸고 결국 할머니의 품에 안긴 채로 함께 하늘로 날아갔다. 소녀는 천국에 도착하여 할머니와 일찍 돌아간 어머니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추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사람들은 소녀가 미소를 지닌 채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제야 소녀의 성냥을 한 갑도 사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세상은 나눔으로 행복해 지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죄와 악에 빠져 있던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신 은총의 사건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은 그런 면에서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이나 부활절만큼이나 의미가 크고 깊은 절기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 보냄 받은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올해에도 길거리의 자선냄비에 수 천 만원 혹은 1억이 넘는 자선기금을 쾌척하는 이웃들의 소식을 듣지 않는가. 공부 열심히 해서 남 섬기고, 돈 잘 벌어서 남 섬기는 그런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나 한 사람만 복음을 깨달아 알고 믿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이 아름다운 소식을 계속하여 전해야 한다. 성탄의 소식은 그런 면에서 메리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즐거운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요 아름다운 소식인 것이다.

지난 200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제 1호 한의학 박사 출신인 류근철(1926-2011. 3. 8) 박사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78억 원을 기부하였다. 그 해로는 이 전에 없던 역사상 최대 금액의 기부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919년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 지고 어머니마저도 정신 분열 증세로 고생하셨다. 나중에 충북 충주시 노은면으로 일본 경찰들에게 쫓겨 가서 어렵게 지냈다. 그런 여건에서도 어머니는 거지들이 오면 자신이 아침밥을 못 먹는 한이 있어도 밥을 챙겨 먹이고 먹을거리를 담아 보내고는 했다. 그런 환경에서 아들 류근철은 열심히 공부했고 모스크바 의공과대학에서 의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나중에는 경희대 한방 의료원 부원장까지 지내는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한의가 되었다. 자신은 남대문에서 5,000짜리나 만원짜리 옷 사 입고 가구도 남들이 버린 것 주워다 쓰면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한국 과학 발전 기금으로 내어 놓은 것이다. 어려서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서 11살 때에 직접 학교에 찾아 갔고 공학박사가 되고 싶어서 옷깃에 한자로 ‘공’자를 새겨 넣고 지낼 정도였던 그는 나중에 한의학 박사가 되고 우리나라 최초로 1972년에 침술에 의한 제왕절개 수술 마취에 성공한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복음의 사람의 특징은 어떠해야 하는가.  실력도 남에게 주고 은사도 남에게 주고 재주도 남에게 주고 힘도 남 주고 재물도 남 주고 이처럼 남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섬기고 돌보고 나눌 줄 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중에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고 돌아가신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발전의 배후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이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향한 아름다운 소식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불길처럼 번져 가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치유.
신앙의 유익은 치유가 임하는 것이다. 예배의 유익도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목욕이나 사우나나 불가마 좋아하는 분들은 하루걸러 다니고 날마다 다니는 것처럼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배의 회복이란 그런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그의 믿음이 의로워 질 수 있는 배후에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는 제사신앙 즉 예배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 뜨는 시간이 짧은 북 구라파의 노르웨이나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국민들이 잘 살게 된 배후에는 하나님 신앙이 있다. 이미 천 년 전부터 하나님 중심, 성경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온 그 저력이 오늘 날까지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아무리 무어라고 하여도 구라파의 문명의 저력은 하나님 신앙이다. 이천 년 전에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사도 바울이 찾아 들어간 구라파 땅의 복음의 역사는 오늘 날의 프랑스와 독일과 스위스와 영국과 같은 나라들을 가꾸어 온 것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잔 낙스, 영국의 존 웨슬리, 독일의 마틴 루터, 스위스 제네바에는 잔 칼뱅이 있었다. 캐나다나 미국과 같은 북미주의 발전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겨온 청교도들의 믿음이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살다 보면 그 누구나 몸이 병들고 마음이 상하고 영혼이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그 모든 영혼육을 고치고 치료하고 회복하고 새롭게 하고 변화되고 강건해지는 치료의 능력이 어디서 오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 포로가 된 자를 자유하게 하고 갇힌 자에게 석방과 해방의 기쁨을 주는 힘이 어디서 오는가.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살인마라도 변하게 되어 있다. 포로 되기 전에 감옥에 갇히기 전에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 설령 포로 되고 감옥에 갇혔더라도 복음만 들어가면 달라지고 변화된다. 복음은 포로를 자유케 하고 옥에 갇힌 자를 석방하게 하는 힘이다. 포로의 땅에서 돌아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복음을 깨달아 알아 믿는 회개이다. 청년 다니엘과 같은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리어  갔던 바벨론과  나중의 메대와 바사 시대를 거치며 처절하게 깨달은 것이 이것이다.


대신하게 하시는 주의 은혜.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용서와 회복과 위로의 주님이시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되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어떻게 임하는가. 시편 126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다. 지금 울고 있고 요즘 슬퍼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나님 안에서 임할 은혜의 날과 은혜의 해를 사모하라. 그리고 선악간에 참과 거짓을 판단하시고 의와 불의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기다리며 참고 인내하며 주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라.

요즘은 몸의 병도 다양하지만 마음의 병이 참으로 심각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불쌍한 자이며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 주심을 기도하고 의지해야 하는 자들이다. 북한말 중에 ‘기쁨슬픔병’이란 단어가 있다. 조울병(躁鬱病)을 일컫는 북한 말이다. 의학에서는 ‘양극성 기분 장애’라고 한다. 정신이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둘 가운데 한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이다. 이 병을 고치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말씀의 기름부음이다. 찬송가 91장의 1절 가사를 보라.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라고 했다.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것으로, 더 나은 것으로, 더 축복된 것으로 대신하시는 아버지이시다. 본문 3절에 보면 ‘대신’하시겠다는 말씀을 반복하신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대신하여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우리 중에 그 어느 누구가 재와 슬픔과 근심을 좋아할 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런 재난의 순간과 피할 수 없는 슬픔과 근심의 날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날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슬픔과 근심스러운 일이 있었을지라도 저녁에는 회복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저녁에 슬픔과 근심의 잠자리에 누었을 지라도 그 다음 날 아침이면 동이 트기 전에 슬픔과 근심이 사라지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물론 평생 지고 사는 슬픔도 있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근심도 있을 수 있다. 민족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다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은 다르다. 그 모든 재와 같은 슬픔과 근심으로 뒤로 하고 머리에 영광의 화관을 쓰게 해주시며 기쁨의 기름을 바르고 찬송의 옷을 입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령 받고 은혜 받고 주의 부르심과 택정하심을 깨달아 알고 나면 이것이 점점 분명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나면 말씀이 보이기 시작하고 깨달아지기 시작하고 믿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다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사는데 주의 은혜가 필요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인생이 있다면 그런 생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인생의 슬픔과 근심이 변하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전능자 하나님 아버지뿐이시다.

본문 3절 하반절에 언급되는 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의의 나무이시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어 놓으신 주의 영광의 본체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치유와 회복의 온전한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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