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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빌립보 선교(행16:11-18)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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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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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6-30 22:46 조회 30 댓글 0
 

                  사도 바울의 빌립보 선교(행16:11-18)        2024. 6. 30

 

 

성경에서만 늘 대하던 사도 바울의 빌립보 선교 현장에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선교지 탐방 일행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여 하룻 밤을 지냈다. 다음 날 거의 종일토록 국경을 넘어가서 오후 늦은 시간에야 그리스의 항구 도시 네압볼리에 도착하였다. 튀르키예 접경 지역의 그리스에는 몇 해 전에 불이 나서 한 시간 이상을 달리는 거리의 산야와 올리브 동산이 잿더미로 변한 흔적이 지금도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올리브 나무는 최소한 20년 이상이 자라나야 원하는 올리브 생산량을 기대하게 된다고 하니 농부들의 그 손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11장에 나오는 지명이다. 2천 년 전의 사도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뱃길로 사모드라게를 거쳐서 250km 거리에 있는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네압볼리는 오늘날 카발라Cavalla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에게해의 아름다운 해양도시이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아시아 선교의 방향을 유럽을 향하게 된 바울 일행이 최초로 도착한 곳이 네압볼리이다. 오늘날은 그 역사적인 일을 기념하는 “사도 바울 도착 기념 예배당”이 건축되어 있다. 주일이면 정교회의 예배가 계속되는 곳이다. 일행은 네압볼리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6월 19일 수요일 아침부터 본격적인 선교지 탐방 일정을 시작하였다. 그 첫 도착지가 빌립보였다. 

 

네압볼리에서 심볼론이란 작은 산맥을 넘으면 펼쳐지는 비옥하고 광활한 평원이 마게도냐 지역이다. 강기데스 강이 흐른다. 빌립보 도시는 그 비옥한 평원을 가로 질러 흐르는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작은 샘’이란 뜻의 ‘크레니데스’라고 불려지던 곳이다. B. C 360년에 알렉산더의 아버지 빌립(B. C 360-336)이 그 곳을 점령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부르게 하였다. 주전 42년에 그곳에서의 전쟁에 승리한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곳에 직할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안토니우스의 명령으로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빌립로에 이주하여 살게 하였다. 11년 후에 악티움 전쟁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빌립보에 사는 시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 하고 세제 감면 혜택을 주었다. 동시에 로마의 시민권을 갖게 하였다. 그리함으로 빌립보 시민들은 특권의식과 위엄이 있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군사적으로 빌립보는 로마의 동방 점령 정책의 거점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까이에 거대한 금광이 발견되면서 빌립보는 상업이 발전하고 학문도 발전하는 우수한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상당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에그나티아Egnatia’라는 도로는 동서양을 잇는 군사, 무역의 중심 도로 역할을 하였다. 

 

91 X 45m 규모의 장방형 계단식 광장, 거대한 신전, 도서관, 극장, 목욕탕, 분수대, 기념비 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때 크고 넓고 격조 있게 지어진 집을 통칭하던‘빌라’라는 용어가 그 때 그 곳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미 그 당시에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 당시의 가옥 구조의 흔적을 보면 넓고 웅장하고 화려했던 그 당시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와 아시아권에서 넘어온 이들이 뒤섞여서 활발한 신도시가 발전하던 곳이었다. 하나님은 그 곳에 사도 바울 일행을 보내셔서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셨다. 바울 사도의 빌립보 선교는 마게도냐 선교 즉 유럽 선교의 첫 열매라는 점에서 주목해야만 한다. 오늘, 사도 바울의 빌립보 선교 과정을 묵상하는 중에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바울의 기도 생활.

빌립보 선교의 열매는 성령의 인도하심일 뿐만 아니라 기도하기를 계속하던 사도 바울과 그의 선교 일행이 경험하게 하신 좋은 징조였다. 우리가 익숙하게 잘 아는 사도행전 16장을 자세히 보면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꾸준히 계속하여 기도 생활을 이어갔던 것을 알 수 있다. 13, 16, 25절을 보라.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한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라고 하였다. A.D 52년 경의 일로 추정되는 바울 선교 일행은 바울, 디모데, 실라, 누가 등이었다. 그 외에 저들이 뱃길과 육로로 이동하기 위하여 기용했던 짐꾼들과 짐승을 모는 이들이 늘 함께 하였을 것이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저들 선교 일행은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기도다. 복음 전파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은 기도다.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힘도 기도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늘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주목하신다. 요즘 새벽마다 대하는 엘리야의 대를 이은 선지자 엘리사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기도의 사람 엘리사를 통하여 기사와 이적을 끊임 없이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계신 동안에 밤 낮 없이 기도 생활을 계속하셨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밤이 새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다. 육신의 호흡이 멈추면 죽음이 찾아오는 것처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낯 설은 도시 빌립보에 도착하여 몇날을 지내던 사도 바울 일행은 안식일을 맞았지만 마땅히 예배할 회당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이 강가였다. “문 밖 강가”라는 표현은 성문 밖에 있는 강가라는 말이다. 그 당시의 그 맑은 강기데스 강물이 오늘날도 여전히 맑고 차갑게 흘려 내리고 있다. 그 강변에 루디아 기념 예배당이 세워져 있다. 예배당 내부 중앙에는 직경이1m가 넘는 거대한 대리석 수세대가 놓여 있다. 오늘날도 그곳은 유아 세례를 하는 특별한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안식일을 맞았지만 예배드릴 곳, 기도할 곳을 찾지 못한 사도 바울 일행이 찾은 곳은 성문 밖에 있는 강변이었다. 거기 모여 있던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파된 복음의 말씀이 루디아라 이름하는 여성에게 영접되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시에서 그 곳, 빌립보에 방문해서 자색 옷감을 거래하던 무역상이었다. 옷감 몇 필을 사고 파는 소매인이 아니라 거상(巨商)이었다. 그 당시에 자색 옷감은 최고의 옷감이었다. 루디아는 자색 옷감을 취급하는 큰 의류 사업가였다. 하나님은 그런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셨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다. 

 

루디아는 자기 자신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가 모두 다 세례를 받았다. 아마도 루디아의 초청과 권면을 온 가족이 모두 다 받아들인 것을 보면 집안에서 가족들에게 루디아의 권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온 가족이 모두 다 세례를 받게 된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며 주께서 루디아의 온 가족을 구원하시려는 섭리였음이 분명하다.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루디아는 자기의 집에 바울 사도와 선교 일행이 머물도록 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루디아가 방 한칸에서 근근히 살고 있었다면 그 여러 명의 사도 바울 선교 일행이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할 수 있었겠는가. 루디아는“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 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였다. 사도 바울 일행은 여러 날 루디아의 집에 머물면서 빌립보 선교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많이 가지고도 베풀 줄 모르는 수전노 같은 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여유가 있어야 인심도 쓸 수 있는 것이다. 루디아는 자색 옷감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14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섬기는”이였다. 사도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 그녀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믿고 지내던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만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전해 듣고 복음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 일행의 빌립보 선교의 첫 열매가 되었다. 루디아는 자기 집을 빌립보 선교의 거점이 되게 하였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과 그의 곁에 동행하던 디모데, 실라, 누가 등 여러 명의 선교 일행의 의식주를 도맡아 섬겼다. 자기 집에 묵도록 강권하고 그 모든 필요를 충당하였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루디아를 통해서 빌립보 선교의 시작이 활발해져 가도록 이처럼 성령으로 역사하셨다. 

 

기도에는 힘이 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분주해 지신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태양이라도 멈추게 하신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예수의 뒤에서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에게도 열두 해 혈루병이 낫는 은헤를 입게 하신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우기철이지만 우리는 내일부터 헐몬산 새벽 기도회로 모일 것이다. 열흘간 계속될 특별 새벽 기도회에 기도의 용사가 되길 바란다. “난 기도해도 소용 없더라. 우리 집은 기도해도 별일 없더라”라고 기도 무용론에 사로 잡히지 말고 훌훌 털고 일어나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루살렘에 살던 시므온 이란 사람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였다.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눅2:25-26)‘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늘 기도 생활하던 자였다는 말이다. 기도는 우리 각 사람의 일상 생활 속에서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는 순례의 과정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된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가슴에 받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라고 주를 찬송하며 축복하였다. 아기 예수를 만난 연세 많은 안나라는 이름의 선지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기도하며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이들을 통하여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목격하게 하신다. 이루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경험하게 하신다. 

 

사도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기도했고 어디서나 기도하였다. 그는 매를 맞아도 기도했고 감옥에 갇혀도 기도하였다.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간수와 그의 가족이 세례를 받고 바울과 실라의 매 맞은 상처를 치료하고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하고 저들을 정성으로 섬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126:6)라고 약속해 주셨다. 기도의 간증이 넘쳐나는 헐몬산 새벽 기도회 기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바울의 노방 전도 열매.

루디아의 집에 머물며 날마다 기도처를 찾아 나서던 사도 바울 일행은 길거리에서 점치는 여종 한 명을 날마다 만나게 되었다. 귀신 들린 그 여종에게는 여러 명의 배후 세력이 있었다. 길거리의 귀신 들린 점쟁이지만 그 수입이 만만치 않았던 그 여종을 배후에서 붙들고 금전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악덕 배후 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귀신 들린 그 여종은 날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도 바울 일행이 누군지를 알아보았다. “귀신같이 알아 맞춘다”라는 말처럼 그 귀신 들린 여종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따라오면서 소리쳤다. 

 

날마다 그 여종의 앞을 지날 때마다 따라 오면서 소리를 치는 그 여종에게 사도 바울이 괴로운 심정을 갖고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16:18)

 

그 때에 귀신이 즉시 그 여종에게서 떠나갔다. 여종이 깨끗해졌다. 문제는 수입이 끊기게 된 주인들의 반응이었다. 저들은 자기들의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 관리들에게 끌고 갔다. 저들은 바울과 실라를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갔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행16:20-21)라고 고발하였다. 상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매로 치게 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 밤에 감옥에 갇혔다. 그 돌로 지은 감옥이 지금도 남아있다.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감옥이다. 바울과 실라는 그 곳에서 기도하고 찬송하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빌립보는 간헐적으로 지진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를 결박한 것이 풀려지는 일이 벌어졌다.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깨어난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로 알고 자결하려 하였다. 그 때 바울이 소리쳤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마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간수가 등불을 달라 해서 불을 밝혀 들고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던 감방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불을 밝히며 바울과 실라를 감방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질문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로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라고 설명해 주었다.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간수와 그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갑작스럽게 심야 전도 집회가 열린 것이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매 맞아 아픈 상처를 씻어 주고 싸매어 주었다.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하였다.”다음 날 상관들은 부하를 보내서 바울과 실라를 풀어 주라고 명하였다. 저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전해지면서 상관들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상관들은 직접 바울과 실라에게 찾아와서 빌면서 “제발 빌립보 성을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 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에 가서 일행들을 다시 만났다. 거기서 바울과 실라를 기다리던 믿음의 형제들을 위로하였다. 빌립보를 떠난 저들은 암비볼리아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였다. 

 

문익점(文益漸, 1323-1398)이 A. D 1363년, 고려 공민왕 13년에 중국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붓 뚜껑 속에 목화씨 세 톨을 담아 가지고 왔다. 이것이 한 반도에 번져 가서 의류 혁명, 산업 혁명을 이루었다. 솜옷과 솜 이불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원래 지리산 자락의 농부 출신이었던 문익점은 그는 장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목화씨를 보이고 함께 밭에다 정성껏 심었다. 그런데 세 개 중에 싹이 튼 것은 한 개뿐이었다. 이를 정성껏 돌봐서 그해 가을에 씨앗 100여 개를 얻었다. 이를 다시 심어서 3년 만에 경남 산청군 단성군 배양마을의 들판을 온통 목화꽃으로 가득해지게 하였다. 해를 다하며 목화씨는 전국으로 번져 갔다. 이처럼 복음 전파에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있다. 길거리의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게 한 일로 인해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변화 받고 그의 가족이 세례를 받고 복음을 받아 들였다. 빌립보 교회는 점점 큰 부흥을 이루었다. 

 

우리가 빌립보서를 통해서 아는대로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통한 선교지의 열매 중에 큰 열매였다. 빌립보 성도들은 주님을 잘 믿고 섬겼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사랑하였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귀하게 여겼다. 빌립보서 4장 18절에 보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를 대표하는 에바브로디도를 앞장세워서 옥중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의 옥바라지에 정성을 다하였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라고 하였다. 

 

 

귀신을 내어 쫓은 바울.

사도행전 16장 18절의 귀신(鬼神)을 내어 좇은 장면을 보라. 사도 바울은 귀신의 실체를 알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귀신을 내어 좇은 것이다. 귀신이 무엇인가. 귀신이란 영어로는 사탄(Satan)이다. 악령(惡靈), 마귀(魔鬼), 귀신(鬼神), 사탄 등등으로 쓰인다.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보면 가롯 유다에게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사탄 마귀가 가롯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니 예수를 배반하고 예수를 팔아 버렸다. 자신도 불행하게 생을 마쳤다. 

 

독감에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 독감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유행성인플루엔자를 처음으로 정확히 서술한 것은 1601년이었다. 현대에 와서 가장 심하게 발생했던 경우는 1918년이다. 스페인독감으로 이름 붙여진 이 독감으로 몇 개월 사이에 2,000만명 가량이 죽었다. 인도에서만 1,25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에서는 55만명 가량이 죽었다. 1918년 가을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미군 4만 4천 명이 희생됐다. 우리나라도 1918년에 통계상으로 742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죽었다. 이처럼 악령인 귀신은 사람을 망친다. 귀신인 마귀는 성령을 대적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라고 하였다. 

 

악한 영의 지배가 처처에서 드러나는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18-19)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각색 병자와 수 많은 귀신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내어 좇으셨다. 귀신은 내어 좇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면 그가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예수의 비유처럼 집을 나갔던 귀신이 자기가 머물던 곳에 와 보니 비어 있는 것을 알았다. 일곱 친구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 집에 거하게 되니 그 집의 형편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형편 없게 되었다. 비유로 하신 교훈의 말씀이다. 

 

예수의 영으로 충만하자. 예수의 말씀으로 충만하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자. 지도하시는 성령, 도우시는 성령, 깨우치시는 성령,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 각양 은혜와 은사로 충만하게 하시는 성령을 의지하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개인의 신앙을 지키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령 충만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 가는 각 사람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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