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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창17:1-8) 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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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3-05 16:30 조회 7,534 댓글 0
 

하나님의 언약(창17:1-8)               2021. 2. 28       3.1절 102주년 기념 주일



요즘 날마다 일정한 분량을 나누어 대하는 마태복음의 교훈 가운데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들 중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교훈의 말씀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천국도 실존의 영원한 세계이고 지옥도 영원한 심판의 세계임을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 들인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이 세상의 나라로 비유하자면

경찰은 영국인, 기술자는 독일인, 요리사는 프랑스인, 의복 페션가와 연인은 이탈리아인, 음악가는 러시아인, 영화제작자는 미국인 그리고 10대 아이들은 일본인, 이 모든 이들을 모아서 나라를 조직하는 이들은 스위스인들이라면 천국과 비슷하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반대로 지옥은 어떤 곳일까.

역시 이 세상 나라로 비유하자면

경찰은 독일인, 기술자는 프랑스인, 요리사는 영국인, 연인은 스위스인, 10대 아이들은 미국인, 영화 제작자는 일본인 그리도 이들을 모아서 나라를 구성하기는 이탈리아인이 한다면 그런 곳은 지옥이 되고 말 것이란 말이 있다. 


커피숍에서 커피 잔에 파리가 빠진 걸 본 각국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다. 

영국인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미국인은 셀카로 찍고 주인을 고소한다.

스위스인은 파리를 재빨리 건져 내서 살려 볼 궁리를 한다.

멕시코 인은 커피에 떠 있는 파리를 후후 불어 가면서 마신다.

중국인은 그냥 파리째 마셔 버린다.

일본인은 자기 커피를 중국인에게 팔아 버린다.

한국인은 커피잔을 뒤 엎고 크게 소란을 피우며 배상하라고 야단법썩을 떤다. 


하나님은 4천 년 전에 우상 숭배꾼이고 우상을 만들어 판매하며 살아가던 데라의 아들 중에서 75세 된 아브람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언약을 성취하기 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언약의 바탕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민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민족 삼으시려는 주권적인 섭리이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430년 애굽의 노예 생활, 40년의 광야 생활, 70년의 포로 생활을 거치는 연단과 환난과 시련기를 거쳐서 하나님의 언약 앞으로 조금 씩 조금 씩 점점 다가가는 민족으로 다듬어져 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를 이 땅에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보내셨다. 


하나님은 이 땅의 열방 백성들이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고 어리석은 믿음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디모데전서에 보면“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라고 하였다. 


어떻게 해서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의 언약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브람의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고 섬기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2장 1절부터 소개된 아브람의 부르심에 대한 내용을 잘 안다.


그렇지 않나. 아브람에게는 75살이 되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었다. 어느 날 아브람에게 찾아 오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1-3)


아브람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살해 버리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아버지 하란을 잃고 살아가는 외로운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출발을 시작하였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라고 하였다. 

아브람은 그 때까지 자녀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그를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났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다. 10년차에 아내 사래의 요구를 받아 들인 아브람은 사래의 여종인 하갈을 침소에 들여서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스마엘을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들의 탄생이 아니었다. 그 후 다시 13년 세월이 흐른 후에 아내 사래를 통해서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는 100세였고 아내 사래의 나이는 90세였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의 나이 99세, 아내 사래의 나이 89세 때의 일이다. 99세 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고 불가능한 것이 없으시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와 상관이 없이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사래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침소에 들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사건 이후 하나님은 13년 동안 침묵하셨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렇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출발하긴 했지만 늘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아내와 함께 애굽을 갔다가 하마터먼 아내 사래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길 뻔 한 적도 있었다. 그 때 아브람은 제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기도 하였다.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덜컹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도 하나님의 기대에서 벗어난 일방적인 자기 판단이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 행동은 제멋대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내 속에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다 알아서 판단하고, 내가 다 알아서 결정하고, 내가 다 알아서 추진하고 아쉬울 때만 잠깐씩 ‘주님. 도와 주세요.’라고 매달리는 것은 간사한 행동이다.  


자 그러면 13년 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다시 아브람에 나타나셔서 하신 언약의 말씀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크게 번성하리라는 언약.

2절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세우셔서 이루길 원하셨다. 그 첫 언약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는 내용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 많은 인생들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번성하길 원하신다. 크게 번성하길 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시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문화명령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축복하셨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물고기와 새와 땅의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복을 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나.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이 세상 아버지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나. 아들 딸이 빈손으로 시작해서라도 각 분야에서 창성하고 창대하고 번성하고 융성하고 왕성하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발전해가고 성장해 가길 원하는 것 아닌가. 하물며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향하신 기대이시랴.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기 원하는 인생들이 이 땅에서 잘되고 크게 번성하길 원하시지 않겠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적과 원수에게 밟히고 패하고 망하길 원하시겠나. 그 어떤 원수라도 이기고 승리하길 원하시지 않겠는가.


요즘 뒷동산에 딱따구리 소리가 들린다. 딱따구리는 1초에 20번을 나무를 쫀다고 한다. 신비하지 않나. 그 소리는 나는 이제 짝을 지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라고 한다. 또한 이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은 내 활동 영역이니 감히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신호라고 한다. 


하나님은 왜 75세 된 노인 아브람을 부르셨나. 이미 그 당시에 어마 어마한 양과 염소와 소와 약대를 거느리고 살던 대 족장 중에 한 사람이었던 아브람을 왜 부르신 것일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크게 번성하게 하시려는 섭리가 계셨다. 그로 하여금 그의 몸에서 그의 아내 사래를 통하여 태어나게 하실 아들 이삭을 통하여 언약의 계승자가 되게 하실 원대한 섭리를 갖고 계셨다. 


이미 아브람은 재산가였다. 그러나 그런 정도를 번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말을 받아 들이고 아내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은 것이다. 창세기 16장 16절에 보면 그 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아브람이 자기 방법으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할 아들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으로 살기를 기대해서 부르신 것이다. 


오늘 날 우리 각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하나님 모르고 살면서도 아들딸 낳고 명문대학 보내고 출세시키는 가정들이 많다. 의대도 보내도, 의전원에도 보내고, 의사 고시고 합격되게 하고, 전문의 과정도 가능하게 하고 할 것 다 한다.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건 하나님이 선택하신 길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편법을 원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브람보다 생각이 깊고 넓고 원대한 전능자이시다. 13년 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말씀이 이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서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대로 아브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이루시길 원하셨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을 여쭙지도 않고 제 판단대로 결정하고 아들 이스마엘을 낳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길이 아니라고 하신다. 


아브람의 경솔한 소행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하나님은 13년 동안 아브람이 엄청난 속앓이를 하고 그 실수의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깨달음을 갖게 하신 후에 뒤늦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여기서 말씀하신 번성의 언약은 양과 염소와 소와 약대의 수가 번성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언약의 아들 이삭을 주셔서 장차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언약을 계승해가는 번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통하여, 쌍둥이였지만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하여, 야곱의 장남 르우벤이 아닌 유다와 그의 자손의 혈통을 따라서 다윗이 탄생되게 하셨다. 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게 하셨다. 누가 한 일인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나 자신을 믿으면 안된다. 이스마엘을 낳는 것은 인본적인 행위이다.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이 침묵하실지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이루기까지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모습인 것이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그 간격이 크고도 크다. 


말로는 순종한다고 하면서 제 맘대로 살아가면 안된다. 이는 시간, 돈, 재물, 건강, 경험, 역량 등 그 어떤 무엇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완전한 신앙을 추구하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요즘 우리가 마태복음을 날마다 묵상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인 5장 48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너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다. 


온전하지 못하며 달나라에도 못가고 화성에도 못간다. 생명과학과 우주 과학등은 실수나 오차를 용납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일컫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산업에는 조금의 실수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완벽을 지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영이시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는 허점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 그 하나님이 75세의 아브람을 부르실 때에 이미 아브람을 통해서 이룩하시려는 하나님이 계획과 섭리가 있으셨다. 그런데 그 동안 아브람이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잃고 하나님의 기대에서 멀여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이 언약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네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미 창세기 12장 2절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언약하셨다. 13장 16절에서는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15장 5절에서는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창세기 17장 2절에서 다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큰 번성’이 사람의 노력, 사람의 계획, 사람의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때가 되면 순종하는 언약 인생을 통해서 그런 날을 보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해 주신 것이다.


이는 오늘 날 우리 각 사람, 각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 낳아 키우듯 하지 말고 세월이 가고 더딜지라도 언약 자손 이삭을 낳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대하며 언약 안에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언약 안에서 나중이 점점 크게 번성해 가는 것이다.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언약.

오늘 귀 기울여 들으신 분들은 아브라함이라고 하지 않고 그 동안 아브람이라고 발음한 것을 아실 것이다. 맞다. 창세기 17장 1절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시던 그 때까지 아브람의 이름은 아브람(אברם)이었지 아브라함( אברהם)이 아니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4절에 보면 땅에 엎드린 아브람에게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라고 축복해 주셨다. 5절에 보면 새 이름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주시면서“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고 하셨다. 맞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열방의 만민을 구원할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것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이어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 보면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다. 그 때에 잔의 포도주를 나누어 주어 마시게 하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곤 언약(言約)의 피니라”고 하셨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1장 25절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다시 반복하여 강조해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되게 하고 아내 사래를 존귀한 어머니란 이름에서 ‘열국의 어머니’란 뜻의 ‘사라’라고 개명해 주신 배경이 이것이다. 하나님은 열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열국의 어머니인 사라를 통하여 낳게 하신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과 그의 아들 유다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방 구원의 대업을 성취하신 것이다. 이것이 언약의 성취이다. 


6절에 보면 ‘심히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접하다 보면 경제적인 용어로만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정도의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시다.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 번성이란 개념을 그런 정도로 제한 하신 것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장차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언약의 피흘림 가운데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원대한 계획과 섭리를 갖고 계셨다. 


이를 깨달아 알고 믿고 전파하는 것이 언약 자손의 사명이요 오늘 날 성도의 사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영원한 언약.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신 언약이다. 7절에 보니까‘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셨다. 창세기 9장 12절과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노아와의 홍수 이후 언약에서 ‘영원한 언약’을 이미 약속하셨다. 그렇다. 사람과 사람과의 약속은 깨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시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충만을 받은 사도 베드로가 부활 복음을 증거하였다. 사도행전 2장 39절에 보면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여기서 언급한 약속이 하나님의 언약을 일컫는 말이다. 그 앞절인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바탕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영원한 언약을 이루려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 때에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요  권세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가 되려면 물과 불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8절의 ‘거류하는 이 땅’이란 나그네 인생길이다. 장막을 치고 거두며 살아가는 유목민의 일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복락은 오래 누려야 100년이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언약 백성으로 누리는 상급은 영원무궁한 것이다. 


나라의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던 1919년은 102년 전의 일이다. 그 후에 해방, 신탁통치, 6. 25 동족 전쟁, 군정, 민주화, 산업화의 우여곡절을 거쳐서 오늘 날에 이르렀다. 오늘 날 대한민국은 국가 정체성의 대 혼란기를 겪고 있다. 혼란과 무질서와 거짓 가운데 집권자들의 권력 재 집권 연장에 혈안이 되어 국가의 나아가는 방향을 잃고 있다. 세상 정부는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그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너는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내가 너로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리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리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오늘 8절까지 대하였다. 그러나 9절 이후에 긴 내용에 보면 할례의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된 민족으로 살아가길 원하셨다.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같은 상징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다. 


4천 년 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언약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오늘 날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섬기며 예배하는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영원한 언약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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