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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카이샷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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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1-22 13:25 조회 14,230 댓글 0
 
최근의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발전상과 그 활용의 폭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일 년 전인 2011년 1월 21일에 우리의 군대인 청해부대는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침입을 받았던 삼호주얼리호에 투입되어 해적을 모조리 제압하고 승무원 18명 전원을 구출해 내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물론 이는 철저하게 준비된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 D. T)의 용맹이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첨단과학장비의 활용의 덕이 결코 적지 않다. 그 중의 하나가 카이샷(KAISHOT)이라고 이름 붙여진 무선영상전송시스템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에서 생산해 내기 시작한 카이샷은 미국 경찰에 이미 1,000대 이상 수출되어 그 성능과 효과를 인정받아 왔고 미국 군대에 까지도 납품이 시작되었다. 한 대에 1억 4천만 원씩 하는 카이샷은 현장에 투입된 군인의 방탄 헬멧과 저격수의 총에 장착된 특수 장비에 의한 음향 영상 전송 시스템을 말한다. 아덴만 구출작전 당시에도 카이샷 덕분에 지휘부인 최영함과 국방부 청사 지하벙커 지휘통제실은 작전 장면을 동시간대에 생생히 확인하며 작전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UDT대원들의 주력화기인 K-1A와 더불어 사용 중인 독일 H&K의 MP5는 분당 800발까지 발사하는 최첨단 고성능 소총이다. 또한 엄청난 파괴력으로 철문까지 부수는 산탄총과 적외선 투시경과 레이저 조준경 그리고 비살상무기인 전자충격총 테이저건과 엄청난 굉음과 빛으로 해적들의 눈과 귀를 순간적으로 멀게 만드는 섬광탄도 작전의 성공에 크게 한 몫을 하였다. 해적들이 사용하는 7.62mm 총탄정도는 거뜬히 무력화할 수 있는 무게 30kg의 이중 방탄조끼 의 착용 등이 해적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요인들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 퇴치를 위해 마련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1816호)에 따라 2009년 3월에 창설되었다. 4,500t급 한국형 구축함을 모체로 링스헬기 1대와 고속단정 3척과 특수전 요원을 포함한 300여명 병력으로 구성되어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 근무 중이다. 청해부대는 파병 이래 2011년 8월까지 한국 선박 261척을 포함해 총 3,200여척의 국내외 선박을 안전하게 호송하였고 15차례에 걸쳐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했다. 이 같은 소식은 지난 해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도발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긴장과 불안을 갖고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긍지와 자신감을 갖게 해 준 낭보(朗報)가 아닐 수 없다.

싸움과 전쟁은 크던 작던 이길 때에 그 의미가 있다. 진자와 이긴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큰 것이다. 전쟁에 이긴 개선장군과 그 전쟁에 실패한 패잔병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인생이란 이처럼 끝없는 선한 싸움의 연속이다. 천국도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싸움의 연속이다. 성경에 소개되는 인간의 역사도 진자와 이긴 자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끝이 없는 승패의 연속이 아닌가. 인간은 모태에 잉태되는 순간에 이미 최소한 3억분의 1의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280여 일간의 태아기를 마친 한 생명이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면 평생토록 무한경쟁의 파도처럼 밀려드는 장벽들이 그 나아가는 앞을 가로 막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교육과 훈련에 의하여 경쟁사회 속의 한 시민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심지어는 아프리카나 태평양 상의 작은 군도에서 살아가는 밀림 속의 원시인이라고 하더라도 물고기나 짐승을 잡고 혹은 20-30미터의 높은 나무에 원숭이처럼 기어 올라가 나무의 열매를 딸 줄 아는 생존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웃 종족으로부터 자신의 종족을 보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세상은 이처럼 어느 시대나 능력을 요구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밥처럼 여기는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원리는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이 같은 현상은 식물계에도 마찬가지이고 동물계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기대와 뜻대로 살아가려면 끝없는 대적(對敵)의 도전과 시험과 시련과 유혹 앞에서 자신을 지켜 나가는 영혼육의 자기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악한자의 독침이 날아 와서 나의 생명을 해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최근의 해외 뉴스에 의하면 주인집의 어린 두 딸이 정원의 풀밭에서 그네를 타며 즐겁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숲 속에서 뛰쳐나온 거대한 독사가 달려들었다. 이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주인집의 개가 순식간에 그 독사에게 달려들어 주인의 두 딸을 위기에서 건져 냈다. 그러나 주인의 개는 독사에 물리는 바람에 동물 병원에 입원되어 치료 중이다. 실로 충견(忠犬)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처럼 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필요하시면 때로 불 말과 불 병거를 동원하여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라도 송장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다. 혹은 직접 인간이 고통당하며 탄식하는 고난의 현장에 내려 오셔서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 위험에서 건져내고, 압제의 땅에서 인도해 내시며, 약속된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이끌어 가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이시다.(출3:7-12) 성도의 믿음은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힘에 근거한다. 아무리 강력한 훈련을 마친 UDT요원이라도 현대화된 최첨단 장비의 도움이 없이는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에 소임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전쟁의 실전상황이란 훈련이나 연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멜산 정상의 엘리야나 사자 굴의 다니엘이나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웠던 풀무불 속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위대함은 그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40일간의 소강상태에 있던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손에 든 물매 돌 한 개로 끝마친 소년 다윗의 전쟁승리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사탄은 숲 속에서 튀어 나오는 뱀처럼 달려들어 수만 명이 회집하던 세계적인 교회의 목사를 쓰러트리고 수천 명이 모여 드는 교회의 목사를 감옥으로 끌고 들어가고 기독교의 연합체와 각 교단을 세상 법정의 젊은 판사 앞으로 끌고 다니며 우롱하고 있다. 이는 평신도들의 세계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면 그처럼 성도들을 조롱하며 요한 계시록 12장의 그 크고 붉은 용처럼 일곱 왕관을 쓴 일곱 머리와 열 개의 뿔을 뽐내며 달려드는 사탄의 간계(奸計)를 무기력하게 할 수 있는 전략 무기는 무엇일까. 음란과 물욕과 집요한 감투 쓰기와 권력 지향의 병이 염병처럼 교회와 교단과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번져가고 있다. 이 곤고한 타락을 어찌할 것인가. 세상은 쉼이 없는 영적 전쟁터이고 성도는 천국으로부터 파견 받은 하늘의 군대다. 그런 군대의 특수 임무를 띤 전사라고 하면 그 헬멧과 소총에 달린 영혼의 카이샷의 성능을 십분 활용하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 놓으시고 매 순간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불꽃같은 눈길을 의식하자. 아이 성 전투 현장의 아간은 시날 산의 외투와 금과 은 덩어리에 무너졌고 삼손은 들릴라로 말미암아 쓰러졌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재물의 유혹으로 제 몸에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옮겨졌고 다윗은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것으로 부끄러운 과거를 지닌 왕이 되고 말았다. 솔로몬은 다윗의 염원이던 성전 건축을 마쳤으나 그의 나중은 이방여인들로 인한 우상 숭배에 빠져서 초라해지고 말았다. 통곡하며 회개한 후에 성령 받은 베드로와 마지막까지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만 가롯 유다의 차이를 보라. 전쟁과 싸움은 이겨야 맛이다. 이제라도 주님과의 교통을 시작하자. 지금 당장 구원의 투구를 댕겨 매고 그 영혼의 카이샷을 점검하자. 성령의 검 끝에 달린 영혼의 카이샷의 도움을 의지하자.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성령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다윗처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고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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