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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나중 눈물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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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1-06 07:19 조회 13,884 댓글 0
 
최근에 대구의 모 중학교의 14살짜리 남학생이 동료 학생들로부터 당하던 끝이 없는 괴로움 즉 왕따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서 세상이 큰 충격 속에 연말을 보내며 새해를 맞았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통계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중학생들 간에 왕따를 당하는 피해 학생들만도 11만 명 이상일 것이라고 한다.(2011. 12. 30, 조선일보 1면 자료) 여기저기서 별의 별 왕따 사건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이 전해지고 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잘 보내고 건강한 청년으로 사회 생활하기가 심히 어려운 때를 만났다.

아들이든 딸이든 늠름한 청년기를 맞고 지덕체를 겸비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하기 까지 지뢰밭과 같은 생사의 갈림길을 통과해야 하는 갖가지의 위험이 여기 저기 도사리고 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증손자요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은 열일곱 살에 형들에 의하여 미디안 장사꾼들에게 팔렸다. 원인은 배 다른 형들에 의한 미움이었다. 요즘으로 하면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이다. 요셉의 열 명의 형들은 세 어머니에 의해서 태어난 복잡한 관계였다. 말이 형제이지 요셉은 아버지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어머니에 의해서 태어난 네 어머니들 간의 묘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가고 있었다. 마치도 한 가족이 세상의 축소판과 같은 몹시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였다. 알몸으로 팔려간 요셉은 애굽의 노예 시장에서 군대 장관 보디발의 집으로 다시 또 팔려 갔다.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탁월해 졌으니 망정이지 어쩌면 그냥 그렇게 노예의 신세로 우여곡절 많은 한 생을 남의 나라에서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별 볼일 없이 죽어 갔을 것이다. 요셉은 자기 의지와 아무 상관이 없이 주변 환경이 미움과 증오와 대립과 형제 갈등의 소용돌이로 돌변해 갔고 결국은 애굽으로 노예 신세가 되어 팔려 가고 만 것이다. 팔려 갔다기 보다는 죽음의 땅을 향해서 끌려가고 있었다. 배다른 형제들 간의 집단 괴롭힘 즉 형제 ‘왕따’가 그런 안타까운 불행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요셉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꾸게 해 주신 꿈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꿈이 나중에 요셉을 요셉 되게 한 원동력이었다.

요즘의 십대들을 보면 인터넷과 게임기와 PC 방의 어둠침침한 분위기와 핸드폰 문자에 가리어서 청순한 십대의 호연지기를 키울 마음의 여유가 점점 좁아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불행은 언제나 있었고 사건도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고난극복’ 운운하는 것처럼 ‘위기극복’의 주인공으로 어린 시절과 십대를 통과하는 후세들이 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가슴이 답답하도록 마음이 절이고 몹시 안타까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한창 청순하고 순결하게 하늘같이 맑고 밝고 드넓은 마음과 생각으로 꿈을 키우며 성장해가야 할 십대 시절에 이런 끔찍한 일들이 가득한 세상을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하긴 아담이 하와로 하여금 낳은 두 아들들 중에서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제사 후에 죽여 버린 사건은 성경의 아주 앞부분에 나오는 형제 살해 장면이다. 더군다나 저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후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오늘 날로 하면 주일 예배 잘 드리고 집에 돌아가서 형이 동생을 쳐 죽인 사건이 벌이진 것이다. 사실 그와 같은 창세기 초반부에 나오는 사건의 전모는 오늘날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요즘의 한국 교회와 소위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더러 그렇게 타락해 가고 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말이다. 예배는 예배대로 하나님께 드리고 인간의 악은 악대로 자행하는 모순의 동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감투싸움과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버린 무리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믿음으로 서로를 섬기고 나누고 돌보는 생활에 기초해야 하건만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직책과 감투 싸움장이 되고 말았다. 성령이 탄식하는 어두움의 영이 뒤 덮는 시대를 맞았다. 참으로 겸손하게 마음을 찢고 회개하여야 할 때인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필리핀의 팔라완 선교 현장에 갔다가 오후 시간에 수중 동굴을 둘러 본 적이 있다. 길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왕복 수 킬로미터의 물길을 따라 동굴 속을 쪽 배를 타고 다녀 나오는 것이었다. 그 동굴 안에는 천연 환경 보존을 위하여 조명도 설치하지 않았고 배를 모는 현지인 뱃사공이 손에 작은 전등을 하나 비추는 것이 전부였다. 그 동굴 안에는 수십만 마리의 박쥐 떼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 박쥐가 울어대는 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기도 하고 스산한 기분을 갖게 했다. 음습하고 빛이 없는 동굴에서 자생하는 박쥐 떼를 상상해 보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보금자리여야 할 가정이 제 기능을 잃어버리면 맞벌이 나간 부모의 빈 집이 이처럼 청소년들의 악의 소굴이 되고 만다. 집은 있으되 가정이 사라져 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면 종탑 꼭대기에 십자가 LED 조명만 휘황찬란할 뿐 그 빌딩 속에서 온갖 죄와 악이 자행되는 것이다. 꿈을 말한 동생 요셉을 팔아 버리는 야곱의 10명의 아들들처럼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다. 교회가 복음을 잃어버리면 동굴과 별 차이가 없게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할 성도들이 복음을 떠난다면 그런 무리는 동굴 속에서 서식하는 박쥐 떼와 별로 다르지 않다. 박쥐 떼는 그 음산한 동굴 속에서 작은 벌레와 미물들을 잡아먹고 생명을 유지하면서 번식에 번식을 거듭해 가고 있다. 끔찍한 악을 자행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요즘의 어떤 청소년들은 그 눈빛을 마주 대하기조차 섬뜩한 때를 만났다. 마치 소돔성에 찾아 들어갔던 두 천사들을 롯의 집 밖으로 끌러 내어 상관하려 하던 타락한 폭도들의 모습과 같다. 창세기 19장에 소개된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직전의 소돔 성의 장면이다. 그 앞 장에 보면 소돔 성을 용서해 주시기를 비는 아브라함의 유명한 기도가 나온다. 기도의 흥정은 의인 50명에서 10명을 찾는데 까지 계속되었으나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기도 대화를 마치시고 그의 곁을 떠나셨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다. 의인 10명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예루살렘 성을 용서하리라고 하셨다. 모두가 타락한 세상에서 의인을 키워내고 의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특히나 가장 꿈이 많아야 할 청소년들 중에서 끔찍한 악의 뿌리를 끊은 의인을 키워내야 한다. 과연 누가 의인(義人)인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자가 의인이다. 아더 핑크(Arthur W. Pink, 1886-1952)는 <네 하나님을 알라>(The Attributes of God)는 그의 책에서 이런 강조를 한다. 언제나 회개와 회심을 외친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별 인기가 없는 배척 받던 목사였다. 늘 하나님 이야기만 하니 말이다. 호세아 6장 3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권면했다. 다니엘은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단11:32)고 했다. 창세기의 요셉이 바로 그런 주인공이었다. 총리 요셉이 39살 때에 아버지 야곱이 숨을 거둔 후에 불안해하는 형들 앞에서 울며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50:20-21) 요셉의 나중 눈물! 그런 넉넉한 구원자의 나중 눈물을 준비하는 청소년기를 지내며 극심한 고난과 억울함을 소화하며 늠름하게 잘 자라나 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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