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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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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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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1-10-29 21:46 조회 14,021 댓글 0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자 탁월한 오락이다.”라는 말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대하역사 평설의 시리즈 작가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시오노 나나미(1937-)의 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정부가 6.25 전사자에 대한 가족들의 보상금 신청 건에 대하여 전쟁 당시의 보상금 기준인 5만환을 현재의 금리로 환산하여 5,000원을 지급한 최근의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국가적으로 수치스럽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야 서둘러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아직 확인되지 못한  6. 25 전사자의 유해가 1만 8,000구에 이른다. 젊은 피를 뿌려 죽어 가며 이 땅을 지켜낸 전사자들에 대한 국가적인 무관심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성경에 보면 인간의 목숨을 함부로 대한 현장이 몇 군데 나온다. 아브라함의 증손자들이었던 열 명의 형제들은 열한 번째의 배 다른 동생으로 태어난 요셉을 미디안의 장사꾼들에게 은 이십에 팔아 버린 적이 있다.(창37:28) 당시 요셉의 나이는 17살이었다. 나중에 그는 애굽의 노예 시장을 거쳐서 거대한 국가였던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아니, 하나님이 요셉으로 하여금 그런 인물이 되게 해 주셨다. 요셉의 생애는 철저히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는 제자로서 삼년간 따르던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의 대 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받고 팔아 넘겼다.(마26:15)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생명은 팔려 갈수도 없고 매매될 수도 없고 보상될 수도 없는 것이다. 생명은 생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생의 본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판다고 팔릴 수도, 죽인다고 죽일 수도 없는 생명, 그 자체요 영생, 그 본체이신 분이시다. 생명과 진리의 가치는 가격을 먹일 수 없는 것이다. 동양에서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 진리의 발견이란 그런 것이다.

한 인간이 국가나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그 숭고한 가치는 천하의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절대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것이 순국자의 존귀함이요 순교자의 거룩함이다.“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14;13)고 했다. 예수께서도 친히“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고 하였다. 또한 구원 받아야 하는 한 인간의 가치는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미군이 전사할 경우 1인당 총 보상액이 거의 1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기업 등의 조의금을 포함하면 그 액수가 적지 않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실종으로 처리된 군인이 나중에 유해 발굴로 신원이 확인되면 보상금이 소급 적용돼 이자까지 계산해 지급된다. 미 국방부 기록에 따르면 한화 약 45억 원 이상의 금액인 최고 400만 달러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6. 25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에 벌어진 전쟁이고 이미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 된지가 60여년이 다 되어 온다. 그 누가 무어라고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가며 헌신한 순국선열들과 6. 25 전쟁 중에 남북의 산하(山河)에서 죽어간 전쟁 영웅들의 흘린 피의 열매로 오늘 날의 번영된 국가를 건설해 오는 기반을 이루었다. 어느 한 인간의 생명인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장군의 생명이든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의 생명이든 생명은 누구나 다 고귀한 것이다. 국립묘지에 가보면 장군들의 화려한 묘역도 있지만 거대한 묘비에 나란히 이름과 생년월일과 전쟁 중에 죽은 사망일을 기록한 수많은 전쟁 용사들의 명단을 대하게 된다. 심지어는 사망일을 추적할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도 수 없이 많다. 전쟁 중에 한 나라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같은 전쟁 일선의 포화 속에서 장열하게 총탄에 맞아 죽어간 용사들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죽음이 모아져서 평화를 회복하고 전쟁이 멈추게 된 것이 아닌가.

지난여름 이박 삼일의 일정으로 몇몇 가정이 함께 가서 머물렀던 부산에서 U. N 공동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곳에는 호주의 17살 난 병사의 죽음을 기리는 좁고 긴 물줄기를 조성한 곳이 있었다. 갓 고등학교 쯤 다닐 나이에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에 참전하여 죽어간 소년의 죽음이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다. 오늘 날, 이렇게 잘 살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가능하게 한 배후에는 이처럼 6. 25 동족 전쟁의 참극 속에서 전쟁에 참가하였다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거나 부상을 당하고 평생을 상이군인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나의 선친도 21살 때에 시작된 6. 25의 전쟁 중에 강원도의 최전선에서 전쟁에 참전하였고 부상도 경험한 참전용사였다. 인류 역사에 전쟁이 없었던 때는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극동 아시아의 반도 국가로서 지정학적으로 늘 끊임없는 주변 국가들의 전쟁의 터전이 되고는 하였다.

성경에 보면 인류의 역사는 싸움과 전쟁의 연속이었다. 에덴의 하와는 뱀과의 영적 싸움에서 졌고 결국은 남편 아담과 함께 에덴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아담이 낳은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 이후에 제사가 응답되지 않은 불편한 심기를 동생 아벨에게 쏟아 부음으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서 죽여 버리는 가족 전쟁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노아 홍수 시대 이후에 번성해 가던 인류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한 한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께서 지시하시는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고향을 떠날 때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동행하였다. 삼촌인 아브라함과 조카인 롯은 서로 번성하여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떼를 이루게 되자 살림살이를 나누어 헤어져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 롯이 그 지역 근동의 그돌라오멜 왕이 지배하는 엘람 왕국과 주변의 여러 왕국간의 전쟁에 휘말려서 전쟁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늙은 노인 아브라함이 집안 살림을 돕던 일꾼들 318명을 이끌고 쳐들어가서 조카 롯과 그의 부녀자들과 친척과 재물을 모조리 다 되찾아 왔다. 전쟁은 언제나 잃는 것이 많은 법인데 아브라함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전쟁의 영웅이었다.

전쟁의 역사 편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은 철저히 전쟁의 기록이다. 바탕에는 하나님 신앙과 우상 숭배의 영적 전쟁에 관한 역사와 교훈일 뿐만 아니라 실제 이 세상의 삶으로 하여도 끊임없는 전쟁과 싸움의 역사가 성경의 기류를 이룬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우물 지키기 싸움이 그러하고 야곱과 에서의 형제 싸움이 그러하다. 요셉과 열 명의 형들 간에 벌어지는 배 다른 형제들의 힘겨루기 싸움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나중에 모세 때로 이어지는 출애굽기의 전쟁 이야기와 여호수아와 사사기와 사울 왕과 소년 다윗의 힘겨루기에 이르기 까지 끝이 없는 안과 밖의 전쟁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곁에는 언제나 블레셋이란 거대한 전쟁 상대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동안도 나라 안에서는 사울 왕의 미움과 시기와 증오와 살기가 퍼덕이는 죽음의 어두운 강을 건너고 또 건너서 왕이 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보다 더욱 더 심각하고 무서운 전쟁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이다.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의 고민 속에 우리 모든 인간의 구원을 향한 고뇌가 다 담겨있다.“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는도다.”(롬7:23)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끝없이 그를 죽이려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틈바구니에서 결국은 붙잡혀 골고다로 끌려갔고 십자가에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남으로 영적 전쟁의 승리자가 되신 것이다. 선한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만 하고 영적 전쟁은 항상 승리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처럼 존귀한 것을 대신할 것이란 그 어디에도 없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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