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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말씀의 동행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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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1-29 15:17 조회 1,255 댓글 0
 

                                      말씀의 동행

 

 

신앙생활이란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생활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다.”(12:4) 그래서 우여곡절을 뒤로 하고 믿음의 조상, 언약 신앙의 조상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하나님이 저들 대대로 한결 같은 언약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저들이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 오늘 날 이스라엘 민족의 언약 공동체의 조상이 되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오후에 글로바라는 이름의 제자와 또 다른 한 제자의 곁에서 함께 걸으셨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이십오리 길을 가고 있던 저들 두 사람 곁에 다가 가셔서 저들과 세 시간 정도를 함께 걸어가시면서 말씀하셨다. 생각하여 보라.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늘 누군가에게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세 시간 정도 분명한 천국 교훈을 주제로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그 누구라도 분명한 깨달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글로바와 또 한 제자는 곁에 함께 걷고 계신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르고 오히려 예수께 이런 저런 최근의 일들을 설명해 주려 하였다. 예수께서 저들에게너희가 길을 가면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저들은 대답하기를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모르고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시치미를 떼신 예수께서는 무슨 일이냐고 반문하셨다. 그 때 저들이 대답하였다. 저들은 그동안 예수가 이스라엘을 속량(贖良)할 자라고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의 시체는 보이질 않았다.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만 소문에 들릴 뿐이었다. 저들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으며 함께 걷던 예수께서 하신 대답 속에 말씀의 교훈이 담겨 있다.

 

첫째,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예언을 따라서 이 땅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칠팔백년 전에 미가 선지자나 이사야 선지자등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 실 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베들레헴에 오신 것이다. 예수가 어디서 태어날지, 누구를 통해서 태어날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어떤 모습으로 성장기를 보낼지, 그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후에 어떤 삶을 살지, 어떤 죽음을 죽을지, 어떤 부활을 이룰지를 미리 예언하셨다. 그리고 그 예언을 따라 보냄을 받으셨다.

 

예수께서는 글로바와 또 한 제자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4:25)라고 비탄이 섞인 책망조로 말씀하셨다. 헬라어 원문에는 ’(Ω)라는 감탄사로 시작된다. “깊게 생각하지 못하여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예언들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는 책망의 말씀이시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나사렛, 갈릴리 주변 마을들, 가나, 베다니, 감람산,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등에 가보면 그 당시의 예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경을 접하다 보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부터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창세기의 요셉과 출애굽의 주인공 모세와 가나안 시대의 여호수아, 갈렙 등의 생생한 기록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예수는 역사 속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다녀 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믿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 이유는 예수는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 이 땅에 보냄을 받으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며 살아간다. 그러면 질문해 보자. “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신가마태복음 3장에 보면 광야에서 복음은 전파하던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선포한 말씀의 내용이 실려 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의 예언처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 물 세례는 세례 요한에게 받으셨다. 그러나 예수는 이 땅에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 누가복음 2432절에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는 고백처럼 예수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130년 전에 우리나라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와서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들을 보라. 감리교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 장로교의 호레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교육과 복지의 헌신자들이 복음의 힘을 입고 와서 생명을 바쳐서 희생적은 삶을 살았는가. 성령과 불로 세례받은 저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낯 설은 가난한 나라에 와서 그렇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생명을 다 바쳐 복음 전파에 전념할 수 있었겠는가.

 

늘 말하고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공동체를 이루고 여기 까지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도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 각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와 인도하심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둘째,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는 심지어 그가 자라난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에게조차 배척을 당하셨다. 예수는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 대제사장들에게 늘 시기와 배척과 반복의 대상이었다. 결국은 붙잡혀 심문을 받았다. 예수를 죽이려는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와 역대 대제사장 문중과 바래새인, 서기관들이 작당을 해서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의 십자가 처형장으로 몰고 갔다.

 

이사야 53장의 예언에 보면 그 예언이 너무나도 자세하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은혜, 평화, 안식, 축복을 바라고 소망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이덕호 목사의 설교 제목처럼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이 세상 어느 시대 그 어디에도 예수 믿어 평생 꽃길만 걷다가 주님 앞으로 간 신앙인은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시밭 길을 가면서 간혹 들장미 향기와 들국화 향기를 맡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하시면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다.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하시는 주님이시다.(43:20) 한숨과 눈물과 탄식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이사야 43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올 한해,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사람들답게 눈물과 애통과 아픔을 뒤로하고 동행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벅찬 감격으로 주를 찬송하며 살아가는 말씀 동행의 은총이 임하기를 소망한다.

 

셋째, 영광스러운 부활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 부활 신앙이 불명확하거나 불분명한 상태에서 교회 다니고 예배드리고 직분 받고 신자인양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사울이 그런 주인공이었다. 그는 부활 신앙을 몰라서 모세의 율법에 갇혀 지내던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당시 대 석학인 가말리엘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문하생이었다. 그는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가장 주목 받던 젊은 최고의 율법학자였다. 그에게는 부활 복음을 대적하는 혈기 또한 대단하였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어도 싸다고 여기던 자였다.

 

사도행전 91절에 보면 사울은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 그런 그가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그를 부르셨다. 주께서는 아나니아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5-16)고 말씀해 주셨다. 장차 사울을 통해서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하여 언급해 주셨다.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은 사울은 사흘만에 눈의 비늘같은 것이 벗겨졌다. 다시 보게 되었다.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 음식을 먹고 강건해 졌다. 그 날 이후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이 탄생한 것이다. 예수 부활 복음에 붙잡히고 나니 그는 오직 예수 한분 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배설물같이 여기며 겸손한 열정의 부활 복음 전파자로 평생을 한결같이 살아갔다.

 

맞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예정과 섭리가 분명히 있으시다. 화살 같이 빠른 세월, 시간과 세월을 아껴서 부활 복음이 처처에 번져 나가도록 말씀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예수님의 사람들, 말씀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소망하자.

 

유튜브 검색 예수사랑교회 은평뉴타운

-위 내용은 2021. 1. 10. 주일 설교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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