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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 16 201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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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7-23 10:48 조회 12,339 댓글 0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16

 

 

드디어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섰다. 동북쪽에 위치한 성문 중의 한 곳인 사자문이라고도 하고 스데반문이라고도 하는 성문을 통과하여 성 안네 교회’(Church of the St. Anne)를 지나 베데스다 못을 방문하였다. 성 안네 교회는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예배당이었다. 예루살렘 성 안의 4월은 아름답고 화창하였다. 우기 철이 끝나가는 때라서 사방이 푸르고 가는 곳마다 꽃이 만발하고 각종 새들의 노래 소리가 합창을 이루었다. 마침 그 교회의 연세 많은 사제 한 분이 발등까지 덥히는 흰색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그의 환하고 친절한 표정이 평생 성직자로 살아 온 참으로 온화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예배당 내부에서 찬양을 불렀다. 얼마나 그 공명이 아름답던지...알려진 바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주변의 그 많은 성당과 예배당들 중에서 최고로 공명(共鳴)이 좋은 건물이라고 한다. 애굽의 살라딘 장군은 예루살렘 성을 침략한 후에도 성 안네 교회의 아름다움과 그 공명에 반하여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여 이슬람의 신학교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원래 베데스다 연못은 샘이 솟던 곳이 아니다. 물이 귀한 예루살렘 성 안에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사용하던 인공 연못으로서 솔로몬 왕 때부터 개발되었다. 기드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모아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거나 빗물을 저장하여 제물로 사용되는 양()을 씻던 저수조의 용도로 쓰였다. 이사야서 73절에 보면 윗 못과 아래 못이 있었다. 열왕기하 1817절에도 베데스다 못에 대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앗수르 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쳐들어 왔다.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다. 앗수르의 군대는 윗 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왕하18:17)고 했다. BC 2세기에는 성전에 물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어 확장공사를 하였고 두 곳의 못을 연결하여 주위에는 기둥을 세웠다. 요한복음 5장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5:2)라는 설명처럼 그 측면은 다섯 개의 회랑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고대로부터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는 종교적인 목적과 의학적 목적을 위한 건물들이 있었다. 그 곳의 물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각처에서 각색 병자들이 모여 들었기 때문이다. 연못 동쪽에는 BC 150년경부터 AD 70년경까지 욕실과 병실 등이 지어져 있어서 병든 사람들을 위한 치료소로 활용되어 왔다. 그 곳은 치료의 연못으로 소문이 나면서 AD 134년경에 유대의 2차 항쟁을 진압한 로마의 황제 아드리아누스가 자기들이 믿는 치료의 신인 에스쿠라피오’(Esculapio)신전을 그 자리에 건축하였다. 그처럼 로마의 이교(異敎) 신전이 세워졌던 자리에 AD 5세기에 비잔틴 교회가 세워졌다. 그 후 AD 614년 페르시아에 의하여 파괴되었고 십자군 시대에 다시 재건되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연못이 예루살렘 성 밖에 있었는데 오스만 터키 시대에 예루살렘 성을 개축하면서 성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연못은 50m정도의 폭에 길이가 150m정도였고 깊이는 13-15m정도였다. 수백 년 동안 흙으로 덮여져 있었으나 1888년에 다시 발굴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내용대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곳이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5:4)라는 내용을 보면 아마도 간헐온천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38년 된 병자는 그 물이 동할 때에 물에 들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고침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 받았다.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힘을 얻어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치유의 축복을 받았다.

북쪽의 넓게 자리한 곳에 위치했던 교회당의 바닥에서는 화려한 장식의 십자가 형상을 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 때부터는 십자가 형상을 바닥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그 이유는 거룩한 십자가의 형상을 사람이 발로 밟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교회당 바닥의 십자가 형상 모자이크는 AD 427년 이전의 건축물 잔해임을 입증하는 사료이다. 11세기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요한복음 5장의 치유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비잔틴 성전의 폐허 위에 작은 기념 성전을 다시 지었다.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던 성전의 그 골격이 오늘 날도 남아 있어 순례객들의 눈길을 끌게 한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고고학 발굴 작업은 1871년에 시작되었다. 그 후로 두드러진 발굴 작업은 1954년과 1957년에 이루어졌다. 발굴 작업을 통해서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전의 골격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깊은 연못 위에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버팀목으로 세워진 웅장한 돌기둥의 폐허들이 남아 있어 역사의 명암(明暗)을 생각해 보게 한다.

베데스다(Bethesda)는 고대 아람어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자비의 집이란 뜻이다. ‘스데반 문양문’(5:2)으로도 불렸기 때문에 그 옆에 있었던 베데스다 못이 양의 못으로 불리기도 했다. 38년 된 병자의 상태는 어떠하였을까. 거반 죽은 자와 같지 않았을까.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늘 날도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서성거리며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막연하게 기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다. 예수님은 그 후에 성전 안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예수님은 그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5:14)는 말씀을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은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점점 더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고 반응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는 말씀을 이룩하기 위하여 일하셨다. 예수님이 하신 일 중의 일은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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