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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 14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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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7-09 18:57 조회 12,147 댓글 0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14

 

주님이 눈물을 흘리시다”(The Lord wept)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도미누스 플레빗’(Dominus Flevit)이란 안내 간판이 붙어 있는 예배당이 눈물교회이다. ‘눈물교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장래에 임할 그 곳의 멸망을 예견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우신 것을 기념하여 세운 예배당이다. 감람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그 곳에는 6세기경에 비잔틴 양식의 기념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십자군이 퇴각할 때에 무너진 고대 성당의 폐허 위에 지금의 예배당이 새롭게 건축되었다. 예배당 바닥에는 과일무늬가 새겨진 7세기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의 눈물교회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곳에서 300미터쯤의 거리에 건축되었다. 눈물교회는 크지 않은 규모의 아담하지만 높고 아름답고 중후한 느낌의 대리석 건축물이다. 정원만 둘러보고 내부에 들어가 볼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내부는 30여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교회 내부 강단의 전면에는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형상의 모자이크가 있다. 예배당 내부 정면의 대형 유리창 쇠창살 문양은 가시덩굴의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게 한다. 정 중앙에는 눈물 방울을 성배(聖杯)에 담는듯한 형상이 있고 제단 위에 십자가가 놓여 있다. 예루살렘의 모든 교회들은 동쪽을 향하도록 건축하는데 유일하게 눈물교회만은 서쪽이 바라다 보이는 거대한 투명 유리창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과 황금 돔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건축되었다. 사료에 의하면 천오백십팔년에는 이슬람 사원이 그 곳에 세워졌으며 350여년이 훨씬 지난 1881년에야 프란시스코 수도회에서 교회를 다시 건축하여 봉헌할 수 있었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 그 같은 자리에 1955,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루치(Antonio Barluzzi)가 지금의 교회를 설계하여 건축하였다. 해설에 의하면 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검은 색 지붕도 눈물을 상징한다. 네 기둥으로 이루어진 지붕의 네 귀퉁이에는 예수님의 슬픔과 눈물을 상징하는 네게의 항아리가 놓여있다.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타시고 감람산에서 내려오시면서 그곳에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닥칠 환난과 예루살렘성의 붕괴를 눈물을 흘리시며 예언하셨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40여년이 지난 AD 70년에 로마군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성은 처참하게 불타고 무너지고 말았다.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칼과 창과 화살에 죽고 기근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9만여 명이 포로로 끌려갔고 혹은 노예로 팔려갔다. 그 후 지난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건국되기 까지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는 민족으로 열방에 흩어져서 천대와 질시와 박해와 학살을 피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고난의 삶을 이어 왔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우시거나 눈물을 흘리신 기록은 세 번이다. 그 하나는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신 일이다.(11:17-44) 또 한 번은 겟세마네기도 중에 우셨다.(26:36-46) 그리고 새끼나귀를 타시고 감람산을 내려오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우셨다.(19:41-44) 벳바게 마을에서 끌어 오게 한 새끼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호산나! 호산나!’하며 주를 찬미하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혹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아 놓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 사이를 지나서 예루살렘 성이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곳까지 가셨다. 무리들은 기뻐하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19:38)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높여 드렸다. 그 때에 무리들 중에서 바리새인들이 나서서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하고 대답하셨다. 점점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가신 예수님은 성을 바라다보시며 울고 계셨다. 무리들은 한결같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큰 소리를 외치며 예수님을 높여 드리는데 예수님은 혼자 외롭게 울고 계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19:42-44) 어느 시대나 눈물이 메말라 가는 인생을 사는 것은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거짓된 위선(僞善)의 눈물 말고 진솔한 눈물 말이다. 예수님이 붙잡혀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의 법정으로 이송되는 동안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가 버렸다. 베드로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였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야바의 뜰 밖으로 뛰쳐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 어려운 고난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례 된 이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이 사실을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였다. 그 때까지도 베드로는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숨어있었다. 생각해 보라.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가야바의 뜰 밖으로 뛰어 나가 심히 통곡한 베드로의 눈물과 예수님의 눈물은 그 차원이 다르지 않나. 눈물교회 정원에 있는 그 험한 가시나무가 예수님의 이마에 씌워졌던 그 가시관을 생각나게 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영의 눈물을 흘리신 영루(靈淚)의 주님이시다. ‘눈물 교회의 위치를 알리는 도미누스 플레빗’(Dominus Flevit) 간판에 담긴 그 의미처럼 눈물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주님이 눈물을 흘리시다”(The Lord wept)는 주님의 마음을 되새기는 뜻 깊은 순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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