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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10 201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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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6-13 22:33 조회 11,746 댓글 0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10

 

우리 일행은 해가 기울어 가는 저녁나절에 유대 광야가 한 눈에 들어오는 황량한 산언덕 꼭대기에 올라가서 흩어져 앉았다. 그리고 제 각기 주님의 생애와 교훈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수님께서는 높고 낮은 화강암 능선과 절벽과 계곡과 동굴이 끝없이 펼쳐진 삭막한 그 곳의 어딘가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유대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신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이며 성령의 강권하심이었다. 마가복음은 그 당시의 상황을 매우 간략하게 전해준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1:12-13)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비교적 긴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비둘기와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다. 세례 받으신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마지막 순간에는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 내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굶주리신 예수님께 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우며 뛰어 내리라고 시험하려 하였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산 위에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게 하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하였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려 한 내용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의 상황을 창세기 1장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2)고 했다. 이 얼마나 장엄한 장면인가.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첫 창조 그 이전에 예수님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안에 함께 계셨다. 그처럼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께 마귀가 시험하는 내용을 보면 참으로 엉뚱하지 않나. 마귀가 예수님께 말을 건넨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란 말이 과연 말이나 되는 말인가. 사도 바울이 깨달은 바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그렇다. 예수님은 배고픈 것을 못 참으시거나 명예나 권력에 눈이 머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시다. 그 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활동하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본체이셨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고 말했다. 하나님은 죽음의 쓴 잔을 받았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영광스럽게 높여 주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9-11) 이것이 사도 바울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누리게 되신 영광스러움이다. 우리는 흔히 고난이 없는 영광이란 없다.”(No Cross, No Crown)는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전에 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광야에서의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신 그 고난의 날들을 간과하고는 그 분의 고난의 생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동안에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온갖 고난을 모두 다 당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광야의 고난과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이기셨다. 그렇다. 여호와의 말씀은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이시다. 우리가 이 세상 그 어디를 찾아 간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기독교인들 이상의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으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이기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4:4, 7, 10) 실로 유대 광야는 육체적인 시험과 영적인 시험이 파도처럼 밀려올만한 그런 열악한 환경이었다. 유대 광야는 사해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높고 낮은 구릉지대의 삭막한 광야이다. 아주 간혹 싯딤나무 몇 그루가 보일 뿐 황량한 석회암 층의 그야말로 사막과 같은 광야이다. 지중해로부터 비구름이 몰려오더라도 사해와의 사이에 있는 높은 산악지대에 가로 막혀서 유대 광야 지역에는 결국 몹시 건조한 상태가 계속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풀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풀과는 그 상태가 몹시 다르다. 건조한 자연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앙상하게 버티고 있다. 그야말로 멀리서 보면 광야라기보다는 사막이라고 불러야 맞을듯하다. 그러나 우기 철에 내 리는 빗물이 석회암층에 스며들어 더러 샘으로 솟아나게 되는 오아시스는 주변에 비옥한 숲을 이루게 한다. 다윗이 사울의 칼과 창을 피하여 숨어 지내던 엔게디의 물 샘과 웅장한 폭포수가 그와 같은 자연 현상을 입증한다. 유대광야는 요단계곡을 따라 남북으로 길이 100에 이르는 거대한 황무지이다. 그 긴 거리에 동서로 평균 20의 광야가 해발 400m에서 1,000m 사이의 복잡한 구릉 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 삭막함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마치도 능선마다 계곡마다 황갈색의 돌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은 광경이다. 그런 그 곳에도 우기 철이 다가 오면 짧은 기간이지만 잠시나마 곳곳에 푸르른 빛을 띠게 되고 야생화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대 광야는 밤과 낮의 일교차가 너무 커서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사십일 동안을 금식하시며 그의 곁에 들짐승(1:13)과 함께 계셨다. 그처럼 삭막한 유대 광야에 유목민인 베드윈들이 양과 염소를 몰고 다니며 조상 적부터 그곳을 떠나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이 오늘 날도 눈에 띈다. 광야에서 살아가는 베두인들의 몹시 열악한 생활 보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풍습과 전통과 문화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질문과 함께 그 대답이 궁금해지게 한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마구간 탄생부터 광야 생활이 시작되셨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칼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하여야 했다.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남편될 요셉은 갓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품에 안고 멀고 먼 길 애굽에 가서 머물렀다. 그리고 나중에 고향인 나사렛에 가서 살았다. 예수님은 목수였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하던 일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다. 고향을 떠나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전까지 예수의 직업은 나무와 돌을 다루는 목수이며 석공이었다. 험하고 고단한 일을 주로 하였다. 예수님께서 금식 후에 사역을 시작하신 날마다의 일과도 곧 광야와 같은 날들이었다. 예수님은 화려한 옷을 입은 왕과 귀족들 사이에 앉아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그를 찾아 온 각색 병자들로 넘쳐 났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 흐르는 생수와 같은 분이셨다.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온갖 병에서 나음을 받았다. 흉악한 귀신이 떠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아났다.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만인(萬人)의 친구요 병든 자의 치료자요 죄 사함과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는 주님이셨다. 아니 그분은 그리스도이신 메시아였다. 그 분은 이 땅에 계신 동안에 늘 광야와 같은 곳에 머무셨다. 그리고 그 분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생수의 강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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