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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 201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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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4-11 05:28 조회 13,070 댓글 0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의 산자락
‘제라쉬’
그 곳은 로마 시대
10대 도시였던 ‘데카폴리스’의 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천년 전의 화려했던 영화(榮華)가
폐허의 언덕을 지키고 서 있는 대리석 기둥들에
스산하게 남아 있다.
일만 사천 명이 한 자리에서 지켜보았다는
원형 경기장의 경마 경주장과
오천 명이 한꺼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는
원형 경기장에는
이 세상을 떠나 간 이들의
함성 소리만 허공에 맴돌고 있었다.
저녁나절 도착한
얍복강 나루
야곱이 그 곳에서
천사와 밤을 새워 씨름하며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은 그 강변의
그 물줄기가 여전히 콸콸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 곳...얍복 강변에 둘러서서 기도한
일행들의 손에 손을 맞잡은 기도가 사뭇 진지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둘러 본
모압과 암몬 족속들의 경계였던
‘아르논 골짜기’와
에돔 족속의 ‘페트라’(Petra) 천연 유적지는
그 장엄함을 가히 설명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바다 속이었을
그 거대한 암벽의 형형색색과
물밀듯 쏟아져 스쳐 지나가는 세계의 방문객들...
저 만치 저 곳이
아론의 무덤이 있는 호르산이란다.
저녁 늦게 도착한 ‘와디 럼’은
아브라함처럼...
모세 때의 광야 백성들처럼...
현대 문명을 등 돌리고 살아가는 베두윈의 삶의 근거지였다.
거대한 암산들과
끝없이 펼쳐진 광야의 중간에
오아시스를 만난 이들이 집단 거주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그 끝없이 삭막한 사막의 지하에는
요르단 국민들이 30년 이상 마실 물이
흐르고 있다니
창조의 신비요
도우시는 여호와의 손길이 아닐 수 없다.
별만 총총하게 바라다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베드윈의 천막 속은
3,500여 년 전의 모세와 그 때의 백성들이
생각나는 피할 수 없는 야인(野人)의 밤이었다.
새벽은 멀고 귓가에 모기는 윙윙거리고
멀리 바위 산 꼭대기에서 컹컹 거리는
들개들 짖어대는 소리가 고단한 잠자리를 뒤척이게 하였다.
새벽을 기다려 기어오르듯 찾아 올라간 암 벽 꼭대기에서
드리는 새벽의 묵상과 기도 시간은
지나가는 세월을 멈추어 두게 하고 싶은 영겁(永劫)의 침묵이었다.
그 날 아침 일찍 둘러 본 메드바 ‘성 죠지 교회’의 ‘성지 모자이크’는
엄지 손톱만한 천연석 이백 만개를 연결하여 만들었다고 하니
인간의 지혜와 인내도 대단하기는 하다.
맞은 편 언덕에서 바라 본 천혜의 요새 ‘카락성’
그 대단했던 요새(要塞)의 영화도 무너지고 점령당하고 말았다니
실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음이 분명하다.
한 참을 달려가서 만난 소돔과 고모라의 흔적은
그야말로 폐허와 삭막함 뿐...
그런 땅에서도 남아 있는 마른 풀 몇 포기를 찾아서
수 천 년을 이어 오며 양과 염소를 치는
베드윈 목자들의 척박한 삶이 마음을 애리게 한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남 다른 행복이 있을터이지만...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고
후손을 낳아 번성하게 하였다는 그 동굴을 찾아 오르는
산자락은 한 여름의 더위처럼
숨이 콱콱 막히게 하는 그런 발걸음이어야만 했다.
암몬과 모압의 후손들은
자기들의 조상인 롯을 선지자라고 추앙한다고 하니
성경 해석에 혼란이 왔다.
모세의 비스가 산언덕 자락과 그 곁의 느보 산 정상에는
어느 작가가 만들어 세운 구리 뱀의 형상이
주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었다.
요단강을 국경으로 넘어야 하는
이스라엘 입국 절차는
거의 여호수아 때처럼이나
어렵고 까다로웠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요단강의 그 곳과
에세네 파 선조들의 생활 흔적과
쿰란 동굴 항아리 속에 숨겨 두었던
사해 사본 성경의 발견은
하나님의 선물 중의 선물이 아닌가.
오후 나절 돌아 본
‘여리고’
여호수아 때에 무너진 그 여리고 성의 잔해와
소금을 뿌려서 먹을 수 있게 된
엘리사의 샘물과
세리장 삭개오의 ‘돌감람나무’의 위용이
세월을 붙잡아 멈추어 세운 것 만 같았다.
예수께서 금식하신 시험 산언덕에는
오늘 날도 수도원에 갇혀 지내는 수도사들의
생활 터전이 저 만치 돌산 언덕 한 자락을
지키고 있었다.
어둔 밤길을 북쪽으로 달려와
늦게 머문 갈릴리 해변의 숙소에서
이 글을 쓰고 나니 토요일 새벽 두시가 다 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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