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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토기장이 201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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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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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5-02-27 20:49 조회 16,692 댓글 0
 
토기장이
 
 
경기도 이천의 어느 교회 집회를 인도하던 오후 시간에 도요(陶窯) 한 곳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 날 만난 도예공은 이십 오년 이상을 한 길을 걸어 왔다고 하였다. 그의 약력을 보니 수상 경력도 화려하였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시간에 그는 마침 짙은 담갈색의 찰흙으로 녹로 앞에 앉아서 도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게 진행되는 그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도인(陶人)의 숙련된 그 경지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작품 전시실에 들어서니 청자와 백자 류의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동서고금에 나라마다 토기를 사용한 도예의 기술이 역사 속에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가히 그 수준이 세계적이다. 사람이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꽤나 오래다. 우리나라로 하면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로부터 시작해서 그 형태와 용도와 세련미가 점점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흙을 빚어 구운 모든 기물을 도자기’(陶瓷器)라고 한다. 구울 때의 온도에 따라 그 흙의 재료인 태토(胎土)의 굳기가 각각 다르다. 그 굳기에 따라 토기(土器,clay ware), 도기(陶器,earthen ware), 석기(石器, stone ware), 자기(磁器, porcelain)로 구분한다. 토기는 700-800도 정도에서 구운 것을 말하며, 도기는 800-1000, 석기는 1100, 자기는 1200-1400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내기 때문에 그 강도가 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기는 고령토를 사용하는데 고령토란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경덕진 부근의 고릉(高陵)에서 고급의 자토(磁土)가 산출되었던 데서 유래한다. 양질의 고령토는 규석 50%, 알누미나 30%, 포타시움 2.5% 등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령토는 그 함량 비율이 높은 규석의 유리 질화가 태토(胎土)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강도가 매우 좋은 양질의 자기가 만들어 진다. 이와 같은 구분을 알고 보니 성경에서 말씀하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과 인생의 관계를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성경, 이사야서에 보면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64:8)는 말씀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아담의 창조로부터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9:20-21)고 하였다. 이사야서 30장이나 41장에 보면 때때로 토기장이가 토기를 발로 밟거나 깨트려 버리신다고 하였다. 또 이사야 45장에 보면,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인생이 자기를 지으신 토기장이신 하나님을 향해서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45:9)고 반문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예레미야서에도 보면 토기장이는 녹로 앞에 앉아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다가 그릇이 터지면 그 진흙을 짓이겨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든다.”(18:4)고 하였다. 성경의 신구약 시대의 인물들을 비롯하여 지난 이천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의 인물들이 다 그러하지 않나. 히브리서 11장이 말씀하는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사무엘 등의 인물들은 믿음으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려고 씨름했던 빛나는 자기(瓷器)와 같은 주인공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면 가롯 유다는 중간에 깨어져 버린 그릇이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같은 제자들은 순교자의 길을 가며 부활 복음 전파에 매진하던 존귀한 그릇이 되었다. 아벨이나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 집사나 사도 야고보는 순교하므로 이 땅 위에서 오래 살지는 못하였으나 저들은 성경의 역사에 존귀하게 길이 빛나는 아름다운 그릇과 같은 인생들이 아닌가. 기독교 이천년 역사로 하면 초대 교회 핍박 시대의 순교자인 서머나의 폴리갑 감독, 성 어거스틴, 종교 개혁의 중심인물이었던 마틴 루터, 토마스 아 켐피스를 비롯하여 영국 교회의 요한 웨슬리, 장로교의 잔 칼뱅, 스코틀랜드의 잔 낙스, 한국교회의 주기철, 손양원, 남강 이승훈, 월남 이상재, 도산 안창호, 우남 이승만,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이준 열사, 윤치호, 서재필, 전덕기, 신석구, 신홍식, 이동녕 등은 모두가 자기(瓷器)와 같은 빛나는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믿음의 선조들이 아닌가. 개화기의 애국지사요 독립운동가요 Y. M. C. A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독교 지도자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 직후 곧 사퇴한 주인공은 월남 이상재(1850-1927)선생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회장으로 진행된 그의 장례식에 10만 명 이상의 서울 시민이 몰려 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하니 가히 그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당시의 서울 인구가 30여만 정도였다니 말이다. 1925, 월남 이상재는 손자가 졸업하는 배재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였다. 조선 총독부 총독의 축사 등이 대독되던 자리에서 축사를 맡아 등단한 그는 여러분, 조선말 들으실 줄 아시오. 나는 일본말을 할 줄 몰라서...”라며 시작한 그의 한글 말 축사의 일화가 역사에 전해 온다. 한성 감옥에서 만났던 이승만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인이 된 그는 나중에 이승만의 유학 자금을 적극 후원하였다. 그런 그가 말년에 말초신경 부종으로 병석에 누웠다가 임종하자 전셋집을 전전하던 그의 몫의 재산은 한 푼도 없었고 오히려 당시 시세로 쌀 27가마니의 빚만 남아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이승만은 윤치호, 안창호, 송진우 등과 의합하여 그 빚을 해결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월남 이상재! 그의 가슴 속에는 평생 독립과 해방을 소원하던 조국과 고난 받던 동족들과 교회와 성도와 장차 나라의 미래를 짊어져야만 할 젊은이들뿐이었다. 그에 관한 일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일 합방 직후, 어느 저명인사가 이토(伊東)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자원하여 개명하였다. 그의 개명 소식을 들은 이상재는 그의 집 대문에 가서 용변을 보았다. 그가 이상재에게 항의하자 너는 이 똥과 같은 놈이다.”라고 조롱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디모데 후서 2장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과 나무 그릇과 질그릇이 있다고 하였다. 그 그릇들 중에는 귀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이는 것도 있다. 그러나 주인이 즐겨 쓰는 귀한 그릇은 깨끗한 그릇, 거룩한 그릇,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된 그릇이라고 하였다. 이는 기독교 선교 초기인 당시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예수님을 처형하던 당시의 대 제사장 가야바나 그의 장인 안나스를 비롯하여 총독 빌라도와 헤롯 임금 등은 정치와 유대 종교를 등에 업고 출세는 하였을지 모르나 역사의 중심에서 악역을 도맡아 하던 자들이 아닌가. 너나 나나 성공과 출세에 혈안이 되어 있고 높은 자리, 큰 자리를 차지하려고 눈에 핏대를 세우며 살아가는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고 친히 그런 삶을 살다가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6-28) 이 말씀은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출세 시켜 달라고 요구하였던 저들의 어머니의 방문 이후에 하신 말씀이시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20:22) 창세기의 요셉이나 모세, 다윗,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그리고 사도행전의 사도 바울 등은 자기(瓷器)와 같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남다른 고난의 가마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열기를 통과한 역사 속에 길이 빛나는 인물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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