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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2015.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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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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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5-02-22 07:24 조회 15,027 댓글 0
 
기다림
   
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 땅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지난 늦가을, 겨울을 준비하고 동면에 들어갔던 곰이나 다람쥐나 오소리나 개구리들은 입춘(立春)이 지나고 올해는 설날과 겹쳤던 우수(雨水)도 지났으니 어김없이 경칩(驚蟄)이 다가오는 것을 체감하며 새 봄을 맞이할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교외의 아름다운 지역인 벤살렘에서 교민 목회를 하던 당시에 마련된 오천여 평의 넓은 잔디밭에 예배당을 건축하기 이전까지 그 곳 한편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다. 사과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단풍나무, 측백나무, 전나무, 버드나무를 비롯한 각종 꽃나무들이 수 십여 그루 서로 어우러져서 봄이면 꽃의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향연을 누릴 수 있었다. 벌과 나비와 각종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들고 밤에는 어린 새끼들을 거느린 스컹크 가족들의 야간 행진이 달밤의 시선을 사로잡는 때도 있었다. 노루와 사슴과 고라니와 때로는 여우까지 출현하였다. 들 토끼와 들 고양이도 흔하게 생활 주변을 오가며 더불어 지냈다. 그 사택 바로 곁에 백 여 년쯤은 된 커다란 버드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한 그루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옆으로 쓰러졌으나 뿌리는 살아 있으니 여전히 울창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버드나무 밑 에 몇 개의 동굴이 있었다. ‘그라운드 호그의 은신처였다. 그 동물은 오소리처럼 생겼으나 덩치는 훨씬 작아서 30센티미터 전후의 크기에 길지 않은 꼬리를 갖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그 동물을 ‘groundhog’라고 부른다. 황갈색의 짧은 털이 덥힌 초식 동물이다. 미국의 동부와 중부에서부터 북쪽으로 캐나다를 거쳐 알래스카까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땅에서 활동 하지만 수영도 잘한다. 여름에 엄청난 양의 풀을 뜯어 먹고 살이 통통하게 찐 후에 겨울잠을 잔다. 이 동물은 굴 파는 실력이 뛰어나서 주 출입구와 피난통로가 따로 있도록 굴을 지혜롭게 마련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동물은 22일에 겨울잠에서 깨어난다고 한다. 우리의 절기로 하면 입춘과 맞먹는 때이다. 이 날을 미국 사람들은 ‘Groundhog Day’라고 부른다. 이 때 쯤에 이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후 굴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그림자 상태를 관찰한다. 이날 겨울이 아직 길지 혹은 봄이 빨리 올지를 예측하고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바깥 생활을 시작한다고 전해온다. 이처럼 미물인 동물들도 기다려야 할 때를 알고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도 기다림의 영성이 누구에게나 깃들어 있다. 문제는 그 기다림이란 것을 지나치게 세속화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도 그 곳의 환경에서 지내는 중에 언제나 교회 건축의 기도 제목을 이룰 수 있을까. 언제나 공부를 마치고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하고 기다리는 기다림 가운데 한 해, 한 해를 보내던 기억이 어언 옛 추억이 되었다. 그런 기다림도 주님을 향한 근원적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별 기다림도 아닌데 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기다림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긴긴 세월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으며 오히려 비난하고 혹평하며 수군대는 중에서도 묵묵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던 노아의 의롭고 경건한 삶은 한 마디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는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 나섰다. 부인 사라와 조카 롯이 함께 하였으나 그에게는 아들딸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외로움과 답답함은 더해만 갔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이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선지 십년 만에 기다림에 지친 그는 아내 사라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아내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행동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시 또 긴 세월이 흘러갔다.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찾아오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17:2) 그 하나님이 때가 되어 이삭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손자 야곱 뿐만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애굽의 종살이가 끝나고 해방과 자유의 날이 다가 오기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던 기도와 절규하던 세월의 끝에 하나님은 모세를 등장시켜 주셨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광야 생활 사십년의 긴긴 세월을 기다림과 씨름하여야만 하였다. 정작은 모세조차도 들어가지 못한 가나안을 향한 꿈의 성취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 가나안 점령의 꿈을 이룬 것은 여호수아의 때였다. 이처럼 세상만사에는 다 때가 있다. 기다림이 가득 차는 때 말이다. 어부들도 철저하게 그 밀물과 썰물의 때를 따라서 기다리며 살아간다. 자주 울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슬퍼하며 작은 부인 부닌나로 인하여 마음에 치밀어 오르는 격동을 억누르지 못하며 답답하게 기도 생활하던 한나도 외로움과 괴로움이 극에 달하던 때에 가서야 하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우울감이 깊어가던 한나에게 아들 사무엘을 기도의 응답으로 허락하셔서 사사시대 말기에 역사의 전환기를 열어가던 위대한 선지자요 제사장으로 쓰신 분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광야와 동굴로 피신하던 다윗 또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얼마나 긴긴 세월을 야인으로 지내며 답답함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때를 기다려야 했던가. 다윗은 자신의 기다림에 대하여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130:6)고 고백하였다.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모든 복음서가 다 그러하지만 최근에 차근차근 다시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은 기다림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교훈해 주는 복음서 중의 복음서이다.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말씀하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예수님은 매우 여러 번 이 에 관하여 언급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171절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며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받아들이고 선포하셨다. 이 세상의 대개의 사람들의 기다림은 대개가 다 거기서 거기이다. 그러나 그 일상적인 기다림이 다 소중한 것 아닌가. 예수님 만나 고침 받은 38년 된 병자나, 베드로를 통해 주님의 능력으로 성전 미문 앞에서 일어나 걷고 뛰게 된 40년 만에 처음으로 걷게 된 걸인의 소식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의 기다림은 이처럼 언제나 약속의 말씀 안에서 기다리는 기다림이어야 할 것이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사가랴, 엘리사벳, 마리아, 시므온, 안나 등의 공통점이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기다림의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들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승천 직전의 예수님께 제자들이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1:6)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하셨다.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바 아니다.” 때와 시기의 주인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확언해 주신 것이다. “요즘,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천사의 방문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받고 당혹스러워 하던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하고 고백하였다. “당신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관련이 있는가 아니면 지극히 세속적인가.” 자문해 보는 사순절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헨리 나우엔은 그의 책, <영성에의 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듯 하나님도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묵상하고 있다. 밝아 오는 새봄,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다림이 꽃 피고 열매 맺기를 바라고 기다리며 주님께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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