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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신앙 2014.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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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5-31 20:23 조회 13,126 댓글 0
 
순교자의 신앙
 
 
1784년 음력 9월 이승훈(1756-1801)은 서울의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1754-1785)의 집에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저들은 나중에 둘 다 순교했다. 초대교회의 시대로부터 구한 말 조선 땅에 개신교의 복음이 전파되기까지에도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온갖 핍박과 박해와 환난을 이겨 내야 했으며 순교하기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이 그러하지 않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앞장섰고 사탄의 꾐에 빠진 가롯 유다의 배반에 의하여 십자가상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헤롯의 불의를 고발하던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혀 있던 중에 목이 잘렸고 쟁반에 그 목이 담겨 나갈 정도의 아만적인 손길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전부 다 순교 하였다. 순교가 귀한 것이지만 그 어느 누가 감히 순교 당하기를 자원하겠는가. 그러나 복음을 지켜 가기 위하여 순교를 강요당하는 핍박의 시대가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초기 선교가 그러하였고 특히 가톨릭의 초기 조선 선교가 그러하였다. 순교(殉敎)란 종교적인 외압 앞에서 종교적 신념인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지켜 가다가 맞이한 죽음을 일컫는다. 이 땅에 더 이상의 순교자가 없는 평화의 땅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이천년 교회 역사 중에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든 순교자가 없던 시대가 있던가. 즉 박해와 핍박이 없던 때란 거의 없었다. 지난 주 중에 창원 서지방 웨슬리 성회가 진해에서 열렸다. 며칠간 그 곳에 머물러 말씀을 전하면서 오후 시간에 주기철 목사의 생가 마을과 그가 복음을 영접한 고향 교회인 웅천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주기철(1897-1944)목사는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감옥에서 순교 하였다. 그의 장남 주영진 전도사는 공산당들에게 생매장 당했고 주영진 전도사의 부인도 1970년대에 북한에서 공산당에 의하여 처형당하였다. 소양 주기철 목사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그 중에 셋째 아들을 통하여 태어난 손자인 주승중 목사는 장로교 신학대학교의 교수로 있다가 몇 해 전에 인천 주안장로교회의 후임 목사가 되었다. 주기철 목사는 경상남도 창원시의 웅천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웅천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에 다녔다. 졸업 후에 서울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하였으나 안질 때문에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웅천교회에서 오늘 날의 집사와 같은 권찰로 교회를 섬기던 그는 김익두(金益斗) 목사의 설교에 감동되어 성령을 받고 중생(重生)하는 체험을 하였다. 그 후 24살 때에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29살 때에 부산 초량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였는데 그 곳에서 경남성경학원을 세워 후진교육에 힘썼다. 그 후 34살 때에 마산 문창교회의 위임목사로 부임하였는데 당시에 전국에 그의 이름이 알려 지기 시작하였다. 5년 후 그는 평양의 산정현교회에 부임하였다. 그 교회는 민족주의자 조만식(曺晩植), 유계준(劉啓俊), 오윤선(吳胤善) 등이 출석하고 있던 평양의 대표적인 교회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곧 교회당 건축의 필요성을 호소하였고 2년 만에 헌당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 자신은 신사참배를 반대한 이유로 헌당식 직전에 경찰에 검속되고 말았다. 당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평양 지역의 교회들과 신학교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를 거부하던 평양의 숭실학교나 평양신학교는 1938년에 각각 폐쇄되고 말았다. 궁성 요배와 일본국민시 낭송을 비롯한 신사참배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히던 그는 1938년 7월 경상북도 의성의 농우회사건(農友會事件)에 연루되어 검속되었다가 다음 해 2월에 석방되어 평양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그는 산정현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였다. 이 일로 일본경찰이 이틀 후에 그를 검거하였다. 주 목사는 1939년 2월 5일 죄수복을 입은 채로 주일 강단에서 설교하였다. 당시 산정현 교회는 매주일 2천명이 모여 예배드리는 큰 교회였다. 그 주일 설교 본문은 로마서 8장 18절과 31-39절이었다. 그 다섯 가지 기도요 간증 형식의 설교 내용은 이렇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옵소서. 둘째, 장시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셋째, 나의 어머니와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 다섯째, 내 영혼을 나의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 후로 산정현 교회는 폐쇄 되었고 주기철 목사의 목사직은 그가 속한 평양 노회의 결의 형식을 거쳐서 파면되고 말았다. 그는 감옥에서 7년 여간 온갖 고문을 당하는 고난의 시간을 지내며 그를 회유하기 위한 5번의 출옥과 재수감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하였다. 출옥해 보면 병든 노모와 가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던 부인과 어린 네 아들들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는 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순교자의 신앙을 지켜 가던 그는 1944년 부인 오정모 사모의 마지막 면회를 끝으로 그 다음 날인 4월 21일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1968년 국가는 그를 애국선열의 한 사람으로 추대하여 그의 묘를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였고 2007년에는 ‘호국인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그가 속한 장로교단이 신사참배 할 것을 결의하자 ‘일사각오’라는 산정현 교회의 설교를 통하여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양 손과 양 발에 쇠못 박혀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려 죽으셨다. 주님은 나의 죄를 사하시려고 이처럼 죽으셨거늘 나는 어찌하여 죽음이 무서워 주님을 모른 체 하리요. 다만 일사각오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설교하였다. 그는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설교에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가 있습니다. 백성은 나라에 대한 충절의 의가 있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가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다른 신에게 내 정절을 깨지 않게 하옵소서. 이 몸이 어려서 주 안에서 자랐고 주 앞에 헌신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라도 내 주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끊을 수 없으니 오직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라고 고백하였다. ‘예수의 양’이란 뜻의 호를 가진 소양(蘇羊) 주기철 목사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길이 빛나는 보석과 같은 삶을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긴 하나님의 거목이었다. 편법과 술수와 자기 영달과 기독교의 복음을 빙자한 자기 출세와 세상 영광에 혈안이 되어 돌아가는 작금에 피할 수 없던 역사의 난세(亂世)에 복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의 날을 지내다가 순교한 순교 선열들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이처럼 번영한 조국의 이 땅을 지켜 가기 위하여 죽어간 순국선열들의 값진 죽음을 생각하며 호국의 달을 맞는 것은 얼마나 의미가 있나. 스코틀랜드에는 신약성경을 헬라어로 가르친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순교자요 종교 개혁자인 존 낙tm(John Knox, 1513-1572)가 있고 독일에는 히틀러의 학정에 항거하던 순교자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가 있지 않나. 지난 번 미국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남아공의 영웅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1918-2013)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그는 27년간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하여 감옥의 독방에 갇힌 채 기회의 날을 기도하며 기다리던 순교적인 삶을 살던 인물이다. 그는 나중 남아공의 통합 시대의 대통령이요 세계인의 가슴에 기억나는 자유와 정의와 화해의 편에 서는 역사적인 인물로 생을 마감하였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는 복이 있나니...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리라.”(계22:14) 주를 믿는 우리는 고백한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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