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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신앙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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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10-26 15:56 조회 12,974 댓글 0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만 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고 만다. 바닷물은 썩지 않는다. 3%의 염도가 바다를 지키는 힘이다.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나라 안과 밖에서 각종 재해를 비롯하여 온갖 불의한 사건들과 무법자들이 난무(亂舞)하는 소식이 신문과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이는 세상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가장 신성하여야 하는 종교계의 고민이요 기독교계의 모습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교회에 편지한 사도 바울은 이러한 현상을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롬1:28)하셨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그 상태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1:29-32)고 지적한 바울의 편지 내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브라함 때에 시작되었고 그의 칠대 손인 모세 때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므로 기강이 세워진 언약 민족이었던 히브리인의 신앙조차도 결국은 타락하고 말았다.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조차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섭리와 인도하심을 깨닫지 못한 광야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 가운데서 불 뱀에 물려 죽기도 하고 땅이 갈라져서 심판을 받기도 하였다. 아브라함의 이천년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보다 육 개월 먼저 와서 활동을 시작한 선지자는 세례 요한이다. 그는 광야 생활하는 그에게 찾아 나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고 일갈(一喝)하였다. 이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신앙의 변질을 책망한 것이 아닌가.
 
예수도 똑 같은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다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신 적이 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11:17)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하고 모의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는 화(禍)를 피할 수 없는 신앙의 타락상을 냉엄하게 진단하시면서 ‘화 있을진저’하고 책망하신 적이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7-28) 겉과 속이 다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불법을 책망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23:30)고 말한다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1-33)라고 듣기 힘든 말씀들을 주저함이 없이 모두 다 쏟아 부으셨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 가롯 유다로부터 배반당하셨고 붙잡혀 끌려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과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온갖 고난을 다 당하신 후에 골고다 언덕에 끌려 가셔서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죽으셨다. 그 후 예수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부활 후 사십일 만에 하나님 곁으로 승천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탄생의 비밀은 성령 안에 있다. 성령을 받은 무리들은 세상의 그 어떤 힘으로도 결박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지난 이천년 기독교의 역사가 아닌가. 히브리서 11장 38절은 저들, 신앙으로 살아갔던 선조들의 믿음을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개혁 신앙으로 살아간 신앙의 선조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11:34-40)고 하였다. 간혹 짧지 않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오늘 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경홀히 여기는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ible) 그것만이 살길이다.
 
주후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수사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종교 개혁을 시작하였다. 그의 나이 34살 때의 일이다. 이 날은 당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비성경적인 탈선에 못을 박는 역사적인 개혁의 불이 붙여진 날이다. 당시의 종교 개혁은 마틴 루터 개인의 일이 아니라 배후에서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따르려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는 “나는 면죄부와 모든 교황주의자들을 반대하였으나 결코 무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썼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교황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그 어떤 군주나 황제도 그 정도의 해를 입힐 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했다.”는 고백의 글에서 그가 어느 정도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신봉하였는지를 잘 나타내 준다. 독일 중산층 광산업자의 아들이며 법학도였던 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벼락이 치는 무서운 경험 이후에 평소의 고민을 멈추고 ‘어거스틴 은둔자 수도회’의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종교 개혁을 지탱한 힘은 십자가 신학이었다. 그를 연구한 한 한자의 글에 보면 “그의 십자가 신학은 인간은 구원을 받을만한 도덕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던 가톨릭의 영광의 신학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강조한 은혜의 신학이기도 하였다.” 폭력에 의한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몇 몇 동료들에게도 그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나는 어느 누구도 폭력과 피 흘림을 통해서 복음을 위해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말씀을 통해 세상은 정복되며, 말씀을 통해 교회는 구원받으며, 말씀을 통해 교회는 부흥한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에 바탕을 둔 개혁 신앙의 선봉에 서서 라틴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혁혁한 공로를 쌓아 나갔다. 개혁 신앙! 이는 오늘 날도 누군가가 주의 손에 붙들려 끊임없이 감당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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