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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시집가고 장가가던 날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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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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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07-13 18:03 조회 15,735 댓글 0
 
‘갑돌이와 갑순이’란 노래의 가사는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저들은 한마을에서 살았다. 저들은 서로서로 사랑을 했으나 마음뿐이었고 정작은 서로를 모르는 척 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순이가 시집을 가 버리고 말았다. 시집간 갑순이는 첫 날 밤에 한 없이 울었다. 그런 갑순이의 사연을 신랑이 눈치 챌 리가 없었다. 갑순이의 마음은 갑돌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고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에 갑돌이도 홧김에 장가를 가고 말았다. 갑돌이는 장가 간 날 첫 날 밤에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보며 갑순이가 생각나서 울었다. 그러나 신부는 갑돌이가 우는 사연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갑돌이의 마음은 오로지 갑순이 뿐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런 식의 결혼은 참으로 불행한 결혼의 출발이 아닌가. 결혼이란 남녀가 만나서 사귀고 장래를 기약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단 말인가. 결혼이란 둘이 만나 결혼을 통하여 하나 되는 ‘몸의 하나 됨’뿐만 아니라 ‘마음의 하나 됨’이 반드시 우선되어야만 한다. 창세기 2장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떠나’(leave)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일정한 때가 되면 그의 부모를 떠나는 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환경이나 공간이나 지리적으로 떠나는 분리(分離)일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의 독립(獨立)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된 삶이란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여야만 한다. 여기서 언급된 ‘분리’란 부모에게서의 분리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모든 이성들과의 결혼 상대자로서의 가능성으로부터의 분리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남편의 아내 됨’과 ‘한 아내의 남편 됨’을 지켜가는 분리요 독립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부모가 사윗감이나 며느릿감을 정해놓고 결혼을 하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하다보니 주인공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결혼 풍습에 젖어 온 민족이었다. 그런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결혼 문화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결혼은 남녀의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성(聖)스럽고 거룩한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결혼은 신부와 신랑뿐만 아니라 저들이 장성해 온 양가의 가정(家庭)과 가문(家門)이 만나는 일이다.

신부와 신랑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던 보금자리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한 그 가정의 삶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편부모에게서나 위기 가정에서 자라난 젊은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가정의 문화가 한 인격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한 사람의 인격은 그 가정의 크고 작은 삶의 습관들을 통하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몸과 몸의 만남 이전에 지정의(知情意)에 바탕을 둔 두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사상과 인생관과 가치관과 신앙관이 만나고 결합하는 일생의 거사(巨事)가 아닐 수 없다. 부부의 만남이란 서로 입맛이 다르고, 기호와 취미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인생의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른 두 남녀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결혼은 그 다른 것의 차이로 인한 신비와 매력과 기대감과 장점을 서로 잘 발전시켜 나가려는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날 어떤 부부들은 서로의 그런 신비와 장점들을 발전시켜 나가고 삶의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제대로 가꾸지 못한 채 조급하게 불행한 결정으로 치닫는 모습을 볼 때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예술>(The Art of Loving)이란 그의 책에서 “사랑은 관심, 책임, 존경, 이해, 헌신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유대인 출신 철학자요 정신분석학자인 그는 삶의 소외로 인하여 고뇌하는 인류를 향하여 성경에 기초한 치유책과 처방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세상에 내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 사랑이란 살아가면서 상대방에게 자상하고 진실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관심(觀心)을 계속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이란 상대방에 대하여 끝없이 책임감(責任感)과 의무감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랑은 병들고 만다. 원만하고 건강한 사랑은 서로에 대하여 따뜻한 마음이 담긴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尊重)하고 존경(尊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우자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하여 헌신을 다하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많은 천국 비유의 말씀과 치유의 업적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까지의 그 모든 삶의 바탕은 ‘성육신(成肉身)의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를 위하여 성육신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주 안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서로를 위한 이타적인 사랑은 백향목과 같이 번성하고 종려나무와 같이 발육하게 될 것이다. 재물만 쫓지 말고 명예와 은총을 추구하고 성공과 출세만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가정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내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몇 달 후면 결혼 3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결혼과 더불어 개척 교회 설립 준비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었다. 당시에 20대 중반을 넘어선 청년의 불타는 선교열과 주를 향한 믿음이 가진 것의 전부였고 손에 들린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목회 초기의 7년간의 개척 교회를 섬기는 동안에 깨달은 것이 많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의 두 아들들은 그 가난하던 개척 교회 시절에 태어났고 자라났다. 사고도, 질병도, 그리고 여유롭지 못한 경제생활도 감당하여야만 하였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두 아들 중에 둘째가 내일 모레면 먼저 결혼을 한다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물론이고, 양가의 어머님들께 감사하고, 아내에게 감사하고, 큰 아들에게 고맙고, 결혼할 둘째 아들과 예비 자부에게도 고맙고, 예비 사돈에게도 감사할 뿐이다. 아마도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실감이 날까 모르겠다.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되는 일이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걸 절절이 깨달은 인물이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아닌가. 그는 산허리를 덮는 수많은 양과 염소와 소와 나귀와 약대를 거느린 거대한 목축을 경영하는 족장이었다. 그는 위기 때에 동원할 수 있는 집안의 남자만도 318명이나 되었다. 그런 그였지만 정작은 슬하에 자녀가 하나도 없었다. 아들이나 딸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힘으로나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울어도 못하는 것이 자식 낳는 일이다. 최근에 만난 서울대학교의 모 교수는 불임학을 연구한 유학파다. 그는 귀국 후에 강남의 유명한 산부인과를 거쳐서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평생을 불임의 원인과 치료를 연구해 온 학자이다. 또한 기초의학인 ‘발전의학’(development biology)연구에 몰두하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들 내외간에는 자녀가 없다. 의사인 그의 아내와의 사이에 불임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지 말이다. 성경은 생명의 탄생이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어서야 90살 된 아내 사라를 통하여 이삭을 낳은 것을 보라. 이는 이삭이 결혼 20년 만에 쌍둥이를 낳고, 한나가 기도하여 뒤늦게 사무엘을 낳고, 사갸랴와 엘리사벳이 나이 많은 때에 아들 세례 요한을 낳은 경우가 모두 다 그러하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다. 생명의 잉태와 탄생이 그러하듯 장성하여 결혼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가 임하여야 한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 착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다자다복(多子多福)한 가정이 되길 기도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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