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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받는 날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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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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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05-04 21:12 조회 13,659 댓글 0
 
사월을 마지막 보내는 날인 지난 화요일에 교회 건축 현장을 방문하였다. 현장 사무실에서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전기 가설 반장이 현장 사무실에 들어 왔다. 그는 소장과 이런 저런 진행 사항을 의논하던 중에 “5월 3일이 불 받는 날인데 뭐 맛있는 것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요청하였다. 곁에서 함께 있던 나는 귀가 퍼뜩 열렸다. ‘불 받는 날’이란 표현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성전 건축이 거의 다 마무리 되도록 전기 인입을 해결하지 못해서 속이 상하기도 하고 답답한 긴긴 세월을 지낸 우리다. 건축 자체를 반대할 길을 찾지 못하던 일부의 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극렬하게 건축 현장 밖의 도로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전기 인입을 1년 이상 교묘하게 훼방하여 왔다. 우여곡절과 줄다리기를 거쳐서 지난 3월 29일에 전기 인입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마침 그 날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기념하는 성(聖) 금요일이었다. 그 후에도 전기 사용을 위한 설비 안전 점검 등의 절차를 마치고 계량기를 연결하고 전기 사용승인을 받기까지도 또 다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려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기 사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날을 전기 가설 회사의 반장은 ‘불 받는 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문명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회가 되었다. 오늘 날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생활의 이기란 거의 없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우주선이나 전쟁용 로켓이나 핵 관련 산업이나 바다 속의 잠수함이나 다양한 종류의 해상, 육상 교통수단들도 다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가정의 편리한 생활 용품들이 모두가 다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전제품’(家電製品)이라고 이름붙일 정도가 아닌가. 가령 작게는 면도기 하나로부터 크게는 냉장고와 세탁기와 청소기, 믹서기, 밥솥 등등 얼마나 다양한 제품들이 모두 다 전기 제품이란 말인가. 사무실의 사무용 집기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최첨단 컴퓨터나 손바닥 안의 최신 핸드폰이라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작동 될 수 있는 것이란 단 한 가지의 제품도 없다. 그야말로 불을 받지 않고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동차도 전기의 공급 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아무리 연료 탱크에 연료가 가득하더라도 시동조차 살아나지 않는다. 난 실제 자동차의 전기 이상으로 긴급 현장 출장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있기에 이런 점에 있어서 더욱 실감이 나는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다. 전기 공급 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나라의 대통령도 이웃 나라 정상을 만나러 가는 하늘 길이 막막해 지고 삼성과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 총수의 자가용 비행기라도 하늘을 날수가 없게 될 것이다.

덴마크의 고고학자인 크리스찬 톰센은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로 구분한다. 또한 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누는데 구석기 시대의 특징 두 가지는 돌을 다듬어 만든 연장의 사용과 불의 사용이다. 화산이나 벼락에 의한 자연 발화 이외에 인간은 돌이나 나무토막을 비벼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불의 사용은 날로 먹는 생식(生食)과 불로 익혀 먹는 화식(火食)으로 인류의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뿐만 아니라 불의 다양한 사용은 난방과 음식의 조리와 조명 등에 꾸준한 변화와 발전을 가져 왔다. 오늘 날은 불을 통하여 의식주와 농경과 교통과 통신을 비롯한 과학기술, 가공생산, 자원 환경 등 다양한 에너지를 활용하는데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불의 다양한 사용과 더불어 전기의 사용이 일반화 된 것은 인류의 문명 발전에 가속도를 붙게 하였다. 1752년에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은 연(鳶)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번개와 전기의 방전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내었다. 번개도 구름에 모인 마찰전기가 일으키는 불꽃이다. 전기의 ‘전’(電)자는 번개를 뜻하는 ‘뇌’(雷)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야생의 전기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이다. 그는 1800년에 최초로 전지를 발명했다. 볼타가 발명한 전지는 말 그대로 '전기를 담아 놓는 연못'이란 뜻이다. 1879년에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함으로써 비로소 전기의 정체를 규명하게 되었다. 그 후 20년쯤이 지나서 영국의 물리학자인 J. J. 톰슨은 여러 가지 실험 끝에 전기라는 것이 아주 미세한 입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 작은 입자가 빛도 만들고 열도 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전자(電磁)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말까지는 왕궁에서 살아가는 왕족이라도 전기의 혜택은 상상도 못하는 긴긴 세월을 살아 왔다. 그런 우리나라에 전기 사용이 가능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궁금하지 않나. 1883년에 미국에 파견되었던 조미친선사절단이 에디슨전기회사에서 보았던 전등의 신비함에 대하여 고종 임금에게 보고하였고 왕은 즉각 발전기를 비롯한 전등 일체를 발주해서 수입하게 되었다. 이때에 미국으로부터 전기 기술자가 따라 온 것은 물론이다. 드디어 1887년 3월에 경복궁의 건창궁에 설치된 750개의 백열등이 불을 밝혔다.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과는 다르게 문호를 개방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커피의 애호가로도 알려진 고종 임금은 전기뿐만 아니라 전화기의 사용과 전기철도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런 전기를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최소한 쌀 3말 값이 필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창기의 전기 사용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시대에는 전구에다 담뱃대를 대고 불을 붙이려던 노인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전구를 빼고 소켓 안에다 담뱃대를 밀어 넣고 불을 붙이려다가 퓨즈가 끊어져서 소등(消燈)이 되는 정전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대속자의 생을 마치고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전기의 혜택이 전혀 없던 시대에 이 땅을 다녀가셨다.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이방의 사도가 된 사도 바울도 그런 문명의 혜택은 상상조차 못하던 시대에 선교를 위하여 온 몸을 바쳐 충성스러운 한 생을 살다가 순교자의 생을 마감하였다. 성 어거스틴도 토마스 아켐피스도 잔 칼빈도 마틴 루터도 요한 웨슬리도 오늘 날과 같은 전기의 문명의 이기를 통한 혜택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시대의 인물들이 아닌가. 우리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저들은 밤을 밝히는 불빛은 어두웠으나 침침한 등잔불이나 호롱불 앞에서라도 주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의지하던 신앙의 선배들이 아니던가. 오늘 날과 같은 최첨단의 음향이나 영상이나 조명 시설이 전혀 없던 모세의 성막시대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시대나 기드온과 드보라나 사무엘과 같은 사사 시대에나 다윗과 솔로몬과 스룹바벨의 성전 시대에도 저들은 나름대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신의 임재를 체험하던 주인공들이 아니었나.

이 세상의 죄와 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천국백성의 삶을 살려면 누구나 개인적으로 이 같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불 받는 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불의 능력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냉랭한 세상을 주님의 그 사랑으로 녹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비겁하게 부인하고 숨고 도망 다니던 심약하고 이름뿐이던 제자 베드로도 성령의 불을 받고 나니까 초대 교회의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사울도 성령의 불을 받고 나니까 초대 교회 시대에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불을 받아야 인생이 바뀐다. 성령의 뜨거운 불을 받아야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말씀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분부하셨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1: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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