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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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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라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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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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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03-31 01:18 조회 15,185 댓글 0
 
빛은 창조의 시작이다. 창조 이전의 세상은 혼돈과 공허함과 깊은 흑암뿐이었다. 즉 어둠과 무질서였다. 그와 같은 흑암의 우주공간에 빛이 창조 되므로 창조의 질서가 시작되었다. 성경, 창세기의 창조의 시작은 이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4)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날까지의 인류문명의 발전사도 결국은 빛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불을 피워 빛과 열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빛 아래서 인류 문명을 발전 시켜온 시작이었다. 불과 열을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날 음식 대신에 구워 먹고 익혀 먹는 식생활이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주거 환경도 계절과 기온의 변화를 이겨 내며 원하는 적정 온도를 가능하게 하는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빛의 사용은 어둡고 캄캄한 밤을 환한 낮의 연장선상에 놓고 생활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전기(電氣)의 발명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어려서 태어나고 자라난 강화도의 섬 마을에는 전기가 없었다. 1950년대 말의 이야기이다. 해가 서해 바다로 모습을 감춘 후에 어둠이 천지를 덮기 시작하면 시골의 밤은 적막강산이었다. 그러던 세월이 지나고 시골의 섬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 왔다. 방마다 전구를 매어 달아 불을 밝혔다. 온 세상이 대명천지가 된 것이다. 집집마다 밝은 전기 불을 밝혔고 마을 안에 있던 초등학교에도 환한 전기불이 켜졌다. 동네 한 가운데 있던 예배당에도 호롱불이 사라지고 전기불이 예배당을 환하게 밝혔다. 전기의 공급은 시골 섬 마을의 여려가지 생활 문화를 일순간에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몇 해 전에 네팔의 선교지에 가서 한 주간을 머물며 네팔 전역과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기차를 타고 멀고 먼 길을 와서 목회 세미나에 참석한 현지인 목회자들을 만나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숙소에 전기 공급이 수시로 끊기는 것이었다. 한 밤 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더듬거리며 찾아가야 했다. 강사 숙소라고 특별히 전기장판을 깔아 주었지만 전기가 끊긴 상태의 전기장판이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춥고 어둡고 긴긴 밤에 새우잠을 청하며 낮에는 종일토록 릴레이 강의를 계속하던 때가 기억에 새롭다. 우리나라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것은 A.D. 1879년이다. 우리나라는 그 3년 후에 한미통상협정에 의하여 미국의 에디슨전등회사와 설치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갑신정변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1886년 말에 공사를 마치고 그 다음 해 초에 조선 땅에도 전기가 들어 왔다. 고종 임금이 거하던 경복궁의 건청궁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전기불이 밤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해에 고종 임금의 명령으로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오가는 전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1900년에 처음으로 서울의 종로 거리에 3개의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세월이 지나 오늘 날 대한민국의 개인당 전기 사용량은 가히 세계적이다. 절전을 강조하지만 전기 없는 하루 생활이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예수사랑교회가 은평 뉴타운에 교회를 건축하는 일은 어느 개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일부 이웃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건축도 늦어졌지만 도로를 절개하여야 하는 전기 인입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방해로 인하여 거의 일 년이 늦어진 이제야 전기 인입 문제가 해결되었다.‘이웃이 사촌’이란 말도 있듯이 선한 이웃을 만나서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은 아무리 이기적이고 척박한 도심 생활이라지만 얼마나 큰 축복일까를 절절이 실감하게 된다. 삼년 전만 하여도 뉴 타운 안에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종교 용지가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세월이 지나고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이제야 그 땅에 예배당 건물의 외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한다.‘성전’(聖殿)이란 제사나 예배의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는 집이란 뜻이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는 돌로 단을 쌓고 그 앞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였다. 모세 시대에 하나님께서‘성막’(聖幕) 건설을 명령하셔서 광야의 성막시대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그 성막을 중심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년간이나 한 결 같이 인도해 주셨다. 세상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지만 성경의 역사가 그러하고 지난 이천 년의 기독교의 역사가 그러하다.

다윗 임금이 소원하던 성전 시대도 다윗 왕의 의지대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임금의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가능하였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겪으며 무너지고 불태워지고 금과 놋으로 만든 성물들을 모조리 빼앗겼던 아픔을 회복한 것은 훨씬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의 역사였다. 오늘 날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의 남은 흔적인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일을 귀하게 여긴다. 역사에 따르면 주전 167년에 헬라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는 왕이 예루살렘에 쳐들어가서 팔만 명에 이르는 사람을 학살하고 유대교를 탄압하며 율법을 불태웠다. 할례를 행하지 못하게 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가져다 놓고 유대인들이 가장 꺼려하는 돼지를 제물 삼아 제사지냈다. 이 일로 인한 유대인들의 충격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뼈아픈 수난의 세월을 지내며 유다 마카비와 그 형제들이 군사를 일으켜 삼년간의 전쟁 끝에 침략군을 물리치고 주전 165년에 승리하였다. 주전 586년, 유대의 멸망 이후 421년 만에 이룩한 독립국가였다. 나라의 독립을 이룬 유대인들은 헬라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케 하고 성전을 수리했다.‘수전절’(修殿節, the Feast of Dedication)이라는 이름은 전쟁에 승리한 후에 성전의 제사 기능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헬라의 세력을 물리치고 성전에 들어갔을 때 버려진 등잔을 찾고 불을 켜려고 하였는데 하루 분량의 기름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을 켜니 팔일 간을 불이 붙어 있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제사장들은 이 팔일 동안에 성전을 다시 정결케 할 수 있었고 새 기름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을 빛의 날이라고도 한다.

요한복음 10장 2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의 행각을 거니신 장면이 소개된다. 이 같은 수전절을 전후로 하여 예수님은“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는 선포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진정한 성전이며 세상을 영원히 밝히는 빛이신 것을 천명하셨다. 유대인들은 오늘 날도 수전절인 하누카(hanukkah)가 되면 팔일 동안 차례대로 여덟 개의 촛불에 불을 밝히며 수전절의 기적과 하나님의 회복의 축복을 기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을 포함한 이 땅의 천하 만민들의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영원한 구주이시다. 예수님은 이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어둠을 이기는 진리의 빛으로 주님의 집에 임하셔서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둠과 죄악 중에 빠져서 죽음의 영에 짓눌려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일일이 부르셔서 구원하시고 그를 깨달아 아는 자들을 영원한 빛의 자녀로 인도하실 것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선지자 시므온은 어린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이는...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30-32) 요한사도는“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고 하였다. 장차 환한 불을 밝히게 될 새 성전은 이 같은 은혜와 진리의 빛을 어둠 속에 비추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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