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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알아요.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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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3-31 21:10 조회 13,187 댓글 0
 
매주 금요일 오전에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에서 전도를 해 오고 있다. 조용히 목례를 하면서 전도지를 건네면 백이면 백, 지나가는 시민들의 표정과 반응은 각기 다 다르다. 요즘은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해 지면서 날씨도 좀 풀리고 나니 전도지를 받아드는 손길들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전도 현장에 나서 보면 시민들의 태도와 반응과 표정이 가지각색이라 아주 짧은 순간에 상대방의 표정과 마음을 읽게 된다. 어떤 중년 남자는 “뭐에요.”하면서 퉁명한 말투를 건네고는 그냥 뿌리치고 가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미 받아 들었던 전도지를 다시 내게 되돌려 주려 하면서 “나는 이미 예수를 믿으니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면 좋겠다."는 인사를 남기는 이들도 있다. 아주 쌀쌀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고 화사한 표정으로 곁에까지 다가 와서 정중하게 “나도 한 장만 달라.”고 하며 받아 가는 이들도 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중에 어느 허리가 몸씨 꼬부라지고 머리가 하얗게 흰 연세 많아 보이시는 노파께서 손을 내 밀더니 전도지인 것을 알아채고는 “나, 알아요.”하고는 꽤나 빠른 총총 걸음으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사라져 갔다. 그 말, “나, 알아요.”라는 말이 전도를 마치기까지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 맴 돌았다. 도대체 저 노파께서 알고 있다고 말하고 떠나간 그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안다’는 말은 부부가 서로를 아는 체험적 용어이다. 한 번은 예수께서 자기가 전한 복음을 믿기 시작한 유대인들을 향해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시다. 그러면 진리를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동양에서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있다.  “조문도석사가이”((朝聞道夕死可易)라고 한다.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그 ‘도’(道)라는 것이 진리를 추구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알아야 한다.”고 선언하신 그 진리란 무엇일까. “나, 알아요.”라는 말을 건네고 떠나간 그 연세 많은 노파께서는 언제부터 어떤 진리를 얼마만큼 깨달아 알고 있다고 대답한 것일까.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머무시던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의 곁에 나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음행의 현장에서 잡아온 여자 하나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는 예수께 판단해 주기를 요청한 적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하고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저들이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하려는 의도였던 것을 알아채신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슨 글씨를 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글씨를 쓰기 시작하셨다. 결국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어른과 젊은이들이 멀쑥한 표정으로 한 사람씩 그 현장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8:11) 남들에 대한 무책임한 비판이나 정죄보다 용서하는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교훈해 주신 사건의 기록이다. 예수님은 이 같은 용서의 힘을 알고 계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고 말하며 곡해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는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알지 못하느니라.”(요8:14)고 대답해 주셨다. 자, 그러면 우리가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하여 알아야 진정으로 알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인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오셔서 이 세상을 사시다가 어디로 가신 분인지를 아는 것이어야 진정으로 알 것을 아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는 그 임재와 동행의 진리를 알아야만 임마누엘의 진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 앞에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는 대답을 해 주셨다. 여기서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신학적인 질문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하고 선언해 주셨다. 그러면 영생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일까. 택함 받은 자를 보호해 주시고(시61:7), 영혼을 정화해 주시고(잠16:6, 벧전1:22), 죄와 죽음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고(요8:32), 거룩하게 해주시고(요17:17, 19), 구원해 주시며(엡1:13),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엡4:24, 약1:18), 진리로 무장하게 해 주시며(엡6:14), 성도 안에 영원히 함께 거하는 진리의 가치를 깨달아 아는 것(요2서 2)이어야 참으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 같이 성도와 영원히 함께 하는 진리를 안다는 것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2서 3)는 말씀의 권위를 깨달아 아는 것으로 계속된다.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진리란 무엇인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서 강도 바라바를 풀어 주고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어준 본디오 빌라도는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대답하신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도 결국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무지몽매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권력자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역사적인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은 이렇게 끝났고 예수님은 끌려가 온갖 모진 고난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진리는 죽지 않는다. 진리는 어떤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며 영원히 숨길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진리는 영원히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진리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적으로 아는 것이 영생이다. 바나 리서치그룹의 설립자인 조지 바나(George Barna)의 <예수처럼 생각하라>(Think Like Jesus)는 책에도 보면,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묵상을 통해서 이와 같은 주제를 심도 있게 전해 준다.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진리가 조롱이나 비판을 받고 오해를 받거나 버려지고 배척 받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진리, 성경의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그 같은 진리를 깨달아 아는 것이 죄 사함과 거듭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생의 시작이다. 몰라서 믿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반복하게 하여 그 진리를 깨달아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구속(救贖)을 받은 영혼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이 진리를 먼저 아는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1974년에 중국 산시성 외곽의 시골마을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흙으로 구워서 만든 6,000여점의 병사와 520점의 말과 130점의 전차 모형이 발견되었다. 아직도 2,000여점이 더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중원천하를 통일했고 아방궁과 만리장성을 축조하며 불로장수를 꿈꾸던 진시황(秦始皇, BC259-210, 재위 247-210)이 37년 간 70만 명을 동원하여 제작하게 한 것들이다. 병마용(兵馬俑)이라고 불리는 그 곳은 진시황릉에서 1km쯤 떨어져 있다. 진시황은 왕으로 있던 37년 내내 이 같은 지하 왕릉을 건설했고 완공 후에는 인부들의 도굴을 막기 위해 생매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그도 49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진시황에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을까. 빈부귀천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진리를 깨달아 아는 믿음은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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