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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의 근본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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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3-24 12:50 조회 13,648 댓글 0
 
동소문인 혜화문으로 이어지는 서울 성곽 밖의 혜화동 언덕 자락에 위치한 기독교 명문 사학 중의 한 곳이 경신중고등학교이다. 감리교의 선교사인 아펜셀러에 의하여 시작된 학교가 배재학당이라면 장로교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에 의하여 1885년에 정동 지역에서 시작된 학교가 경신학교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육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뜻의 구세학당(救世學堂)이란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 해에 고종 임금의 승인을 받은 학교로 자리 잡았다. 여러 해 후인 1905년에  ‘새로운 것을 깨우친다.’는 뜻의 ‘경신’(儆新)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경신학교의 본관 앞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는 성경 구절이 크게 적혀 있다. 이는 잠언 9장 10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란 무슨 의미일까. 지식은 책에서 얻고 지혜는 창조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나님을 잘 섬겨온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열방의 중심에 선 근거는 무엇일까. 물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신앙적인 타락이나 오류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 중에서 회개하고 진정으로 주께 돌아오는 이들을 통하여 거룩하고 장엄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체험하기 이전까지의 사울은 철저한 유대주의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회에 대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딤전1:13) 그런 그가 변화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 앞에 철저하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간 사도가 되었다. 그 후로 지난 이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적지 않다. 오늘 날도 이와 같은 회심과 개종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소위 M. J(Messianic Jews)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의 개종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참 지식이란 진리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그와 같은 이들은 결국 우매한 언행을 자행하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의 내용이 바로 그러하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인체의 게놈 지도를 완성하고 DNA와 RNA의 신비를 벗겨 내며 암을 비롯한 온갖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인간 복제의 기술에 까지 완벽하게 도전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인간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주 공학의 중심에 있는 학자요 혹은 최첨단 IT 분야의 신소재와 프로그램을 발명해 내는 세계적인 석학이라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살아가면 그는 참다운 지식을 가진 자가 아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 영어 성경으로 보면 “The fool says in his heart, 'There is no God'."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할 줄 모르는 인생은 ‘fool' 즉 바보다. 그렇다. 아무리 권력과 명예와 인기와 지식과 재물과 돈이 많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인생은 어리석인 인생이요 바보 인생이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모자라는 인생이다. 하나님을 잘 믿었던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 “네 자신을 알라”는 철학적인 명제의 바탕도 바로 이와 같은 성경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창조자를 알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참다운 지식의 근본이다. 성경은 끝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가치를 제안한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지어다.”(잠3:7) 경신학당이 배출한 역사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선생이다. 흥사단(興士團) 운동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그는 나중에 임시 정부의 내무총장이요 국무총리를 지낸 하나님의 사람이요 독립투사요 애국자요 민족중흥을 꿈꾸던 교육가였다. 그 외에도 독립선언 33인 중의 한 분인 이갑성과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김규식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수학한 곳이기도 하다. 경신학교의 정문 언덕을 오르다 보면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라는 큰 돌비가 새겨져 있다. 평안남도 강서의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그가 12살 때에 돌아 가셨다. 그 후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며 한학을 공부하던 그는 17살이 되던 1895년에 경신학교에 입학하여 기독교 교리와 예배와 성경공부와 서구문물에 대해서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 후에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할 기회를 가졌고 고향인 강서에 남녀공학인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웠다. 이는 내국인이 세운 최초의 서양식 학교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는 학교의 운영을 형 안치호에게 맡기고 결혼하자마자 태평양을 건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동안에도 한인교포들의 권익옹호와 생활향상을 위해서 ‘공립협회’를 창립하여 운영하였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도 야학을 세워 운영하고 교포 교육에 힘쓰며 한글 신문인 ‘공립신보’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07년 봄 서울에 귀국한 그는 당장 시급한 일은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서구선진국가의 앞선 지식을 하루빨리 배워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실력자들을 양성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신채호 등 몇 명 동지들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여 독립 애국청년을 양성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구에 태극서관과 평양에 자기회사를 세워 독립운동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해 나갔다. 1909년에는 최남선, 김좌진, 이동녕 등과 함께 청년운동의 핵심체인 ‘청년학우회’를 조직했다. 청년학우회의 목적은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의 네 가지 정신으로 인격을 수양하고 단체생활을 익히는 데 있었다. 또한 한 가지 이상의 전문기술이나 기예를 반드시 학습하여 직업인으로서의 자격을 구비해 날마다 지덕체(智德體)의 수양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1909년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3개월간 개성헌병대에 갇혀 있다가 1910년 봄 대한제국 멸망 직전 북경(北京)을 거쳐 청도(靑道)로 가서 해외망명인사들과 독립운동에 총력을 쏟기 시작하였다. 왜 한 인물에 대한 이와 같은 일화들을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를 갖는가. 역사는 우연히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수고와 노력과 희생과 헌신에 의하여 역사 발전의 축이 형성되는 것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헬라의 문명이 그러하고 세계 인류 역사의 모든 발전이 그러하다. 특히나 성경을 중심으로 한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보라. 도산 안창호는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씨름하며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며 체포되기와 출옥되기를 거듭하던 중에 중일전쟁 발발 9일전인 1937년 6월 28일에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 해 말인 성탄절 전날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경성대학 병원에서 숨지고 말았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바 있는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인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지식의 대통합, 통섭>(Consilience)이란 책에서 ‘윤리와 종교.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학문적으로 풀어 간다. 개미 연구로 세계적인 학자 반열에 올라 있는 그의 또 다른 명저가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라는 연구이다. 그렇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여호와를 인정하고 경외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진정으로 지식과 지혜의 근본을 깨달은 자인 것이다. 베드로는 편지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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