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의 힘
성경, 잠언에“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 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말씀하는 혀의 힘이란 말의 위력을 의미한다. 그 바로 앞 구절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잠18:20)는 교훈도 있다.
사람이 동물들과 다른 점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문자를 개발하여 사용하기 이전부터 나름대로 말을 사용해 왔다. 말에는 그 사람의 생각, 사상, 철학, 경험, 의지, 지식, 주장, 감정 등이 다양하게 담겨져 있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힘도 대단하지만 짧은 시 한 편이 주는 힘이 적지 않은 것은 정제(整齊)된 언어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통에 있는 교보빌딩 벽면에는 사계절마다 대형 간판에 누군가의 시 한 구절을 바꾸어 적어 넣고는 한다. 이번 겨울 동안에는 이런 시가 적혀 있다.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네
이런 시를 읽고 나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것이 시의 매력이며 언어의 힘이고 말의 능력이다. 위의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라는 시 중의 마지막 구절이다. 원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다트머스와 에머스트 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교수이며 문인이다. 우리나라에 김소월, 윤동주 같은 시인들이 있듯이 그는 미국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시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열 살 때에 음주와 도박에 빠져 지내던 그의 아버지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폐결핵으로 객사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 대학교 출신으로 남북 전쟁 당시에 남군의 로버트 리(Robert E. Lee)장군 곁에서 싸운 군인이었다. 그래서는 아들 이름에 ‘Lee’라고 붙여 줄 정도였다. 그런 그는 아버지의 시신을 가져오고자 어머니와 함께 매사추세츠에 갔다가 돈이 떨어져서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머니와 어린 프로스트 남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남기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성실하고 강인한 의지를 지닌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어머니는 교사로 일하면서 남매를 키웠다. 미국 역사에 길이 남는 로버트 프로스트에게 문학적으로나 인생의 모든 면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야구나 풋볼을 좋아 하는 매우 활동적인 성장기를 보냈다.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는다든지 공부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음에도 그의 남매가 계속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곁에서 뒷바라지하고 격려 해 준 어머니의 덕분에 뉴햄프셔 세일럼 문법학교를 졸업한 후 로렌스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공부하는데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고 우등으로 졸업한 후에 다트머스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방황을 계속하다가 한 학기도 마치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그 후에 학교 보조 교사나 방적공이나 신문기자 등의 일을 전전하였다. 한창 젊은 나이인 21살 때에 고등학교 동기였던 엘리너 화이트와 결혼한 후에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사립학교에서 아내와 함께 일을 맡아 보기도 하였다.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대표 연설을 할 정도의 명석하고 주목 받는 자매였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어머니에 관한 언급을 길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는 그의 성장기와 청년기의 배후에는 끝없는 격려자로 아들과 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켜 주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을 의지하던 믿음의 사람인 그의 어머니의 역할과 말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과 사물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통해 평범하고 단순한 문장의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갔다. 그런 그는 4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1961년의 J.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받아 시를 낭송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전 국민에게 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미국의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평생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과 서정이 깊게 풍겨 나는 시들을 써 온 시인 김용택(1948-)은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한다. 그의 책 중에 <어머니>라는 시화집이 있다. 어머니의 일상과 어머니와의 일화를 담은 수상록이다.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고 오래 도록 살아왔다. 그는 “어머니는 자연에서 사는 것이 공부였다. 어머니는 빛 낯이 드는 것을 알고 장독을 덮었고 참나무 이파리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비가 오는 줄을 알았다.” 고 말했다. 또 “어머니는‘꽤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도리깨 소리를 듣고 토란이 난단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을 받아쓰면 시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다니면 저절로 시를 쓰게 된다.”고 말했다. 시인 김용택은 “나는 어머니의 가슴을 뜯어 먹고 이 세상에 나와 시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도 하셨다. “사람이 그러믄 쓰간디...”
케냐 출신의 유학생이 하와이에서 만난 백인 여학생을 통하여 낳은 아들 버락 오바마가 커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버락 오바마는 탁월한 연설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감동적이고 뛰어난 연설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가 한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세계인의 기대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연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인 2009년 5월에 백악관에서 말의 힘을 찬양하는 ‘시 낭송 파티’를 열었다. 개막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오늘 ‘말의 힘’(power of words)을 찬양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말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알고, 고통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라고 말했다.
잠언 말씀이 맞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와 혀에서 나오는 열매를 먹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도 지으셨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靈)인 지정의(知情意)가 담겨 있다. 그 지정의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입의 열매이며 혀의 열매인 것이다.
우리는 동서고금에 만나 본 적이 있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말을 기억한다. 세익스피어는 이런 말도 남겼다. “행동은 가장 강력한 설득력이다. 만약에 오늘 가장 설득력 있는 행동으로 시작한다면 내일은 가장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