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받아라 불
엊그제 금요일 오후에 급하게 볼 일이 있어서 종로에 잠시 다녀왔다. 건널목을 건너려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오십대 쯤 보이는 남자가 두 손을 앞으로 쭉 뻗고 뭐라고 말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 왔다. 운동을 하나보다 하고 지켜보았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어 건널목을 건너면서 저쪽의 그 남자가 다가오기에 뭐라고 말하나 하고 지켜보았다.
“불 받아라 불”
그가 하는 말은 이 다섯 자였다. 그렇다고 시끌벅적하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도 아니었고 기어 들어가는 모기소리 같이 작은 소리도 아니었다. 그의 행동으로 봐서는 누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의 생각과 최근의 관심을 말로 표현하며 지나가는 것 같아 보였다.
불을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일까. 무속(巫俗)에서는 신이 내린다고 하여 ‘강신’(降神)이란 용어를 쓴다. 신이 내려서 무속행위를 하는 이들을 ‘강신무’(降神巫)라고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의 상징이다. 창세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리는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는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다. 제단을 쌓은 노아는 모든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들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드렸다. 번제란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여호와께서 노아가 드리는 제물과 그 향기를 받으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그 제사의 장면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의 종류도 친히 하나님이 정하셨다.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창15:9)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다하여 놓았다. 새들은 쪼개지 않고 준비하였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였다.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그날 하나님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 할 것을 예언해 주셨다. 그 후로 사대 만에 출애굽의 기회를 얻게 되리라는 말씀도 해 주셨다. 요단 강 저편의 가나안을 점령하고 살아갈 백성이 되게 하리라는 언약(言約)도 해 주셨다.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은 환상 가운데서 아브람을 만나 주셨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고 말씀해 주셨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불과 관련된 내용들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역시 모세의 경험이다.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당시 모세의 나이는 팔십 세였다. 사십 년째 양을 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양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소유였다. 그 때까지도 모세는 처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광야를 지난 모세는 양떼를 이끌고 호렙 산자락에 도착하였다. 성경은 그 산을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하였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신비한 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모세는 분명히 불이 붓는 광경인데 불붙은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길 원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리고 떨기나무 가운데서“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셨다.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이끌어 내실 출애굽의 계획에 대하여 자세한 언약의 말씀을 해 주셨다. 자신 없어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는 말씀으로 격려하셨다.
모세는 그 날 이후로 나머지 사십 년의 생애를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 가운데 여호와의 거룩한 불이 임한 자로서의 존귀한 사명자의 삶을 살아갔다. 하나님은 출애굽하게 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덮어 진행하게 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추어 그들의 가는 길을 인도하셨다.(출13:21)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시고 만나 주셨다. 그 장면을“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19:18)고 했다.
사사 삼손의 아버지는 마노아이다. 그는 오래도록 자녀가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장차 아들을 낳으리라고 알려 주었다. 마노아는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제사하였다. 성경은 그 때의 상황을“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삿13:20)고 설명해 주고 있다.
엘리야도 여호와의 불의 임재를 체험한 선지자였다.(왕상18:38), 성막과 성전의 봉헌 때에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다.(레9:24, 대하7:1) 성전의 거룩한 불은 언제나 제사장들이 특별하게 관리하였다. 왜냐하면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사31:9)라고 하였다.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심판을 의미하기도 한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 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불꽃 가운데 재림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소개 하면서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고 하였다.
고대 이교도들은 불을 숭배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불 사이로 지나게 하여 몰렉에게 바쳤다(왕하17:17, 렘7:31, 겔16:21, 겔23:37).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명령을 따라서 안식일에 불을 지필 수 없었다.(출35:3) 필요한 경우에는 이방인 종들을 통하여 그 일을 하게 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세상의 끝을 불의 심판으로 설명하였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고 하였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보라. 히브리서 12장 29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을 비교하여 교훈하셨다. 지옥에 간 부자는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16:24)라고 절규하였다.
여호와로부터 성령을 받고, 불을 받은 자다운 삶을 살아가면 나중 불의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안식과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는 불을 받은 자들을 통한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