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우는 새벽
무척 오랜 만에 새벽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존 웨슬리 칼리지는 필리핀 북부 도시 뚜게가라오(Tuguegarao) 시내에 위치해 있다. 1988년에 필리핀 연합 감리교 북부 연회에서 시작한 신학교이다. 창고 같은 허름한 건물에서 작은 신학교로 시작되었으나 오늘 날은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과정이 골고루 운영되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학생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 여건까지 확보한 이제는 정부로부터 인가 받은 어엿한 학교로 자리 잡았다. 600여명의 학생들이 80여명의 교수와 직원들로부터 지도 받고 있다. 금번에 그 곳의 교장과 총장도 만나 볼 기회를 가졌다.
한국교회는 그 곳에 지난 27여 년 동안 선교를 계속해 오고 있다. 그 당시 작은 시작이 오늘 날 큰 겨자나무처럼 성장하였다. 지난주일 저녁 비행기로 출발해서 마닐라에서 묵고 월요일 오전 비행기로 이동한 그 곳은 땡볕이 내려 쪼이는 무더운 날씨였다.
그 곳 필리핀 북부 연회 산하에 있는 몇 개 지방의 목회자들이 원근 각처에서 와서 함께 세미나 시간을 가졌다. 개강 예배는 존 웨슬리 칼리지의 총장인 목사께서 설교하였다. 각오는 하였지만 강의실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후덥지근하고 무덥고 답답하였다. 머리가 띵할 정도의 여건이었다. 다 낡은 에어컨이 세미나 실 한 편에서 돌아가긴 했지만 열기를 식혀 보려고 선풍기 6대를 사방에서 돌리고 있었다. 첫 날 저녁 강의를 마치고 캠퍼스 안에 있는 선교관의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낯 설은 환경에서 맞이한 다음 날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4시 경이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아마 서울 시내에서 누군가가 닭은 키우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서울에서 새벽 마다 닭 우는 소리가 난다면 이웃들의 민원 때문에 더 이상 닭을 키우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무척 오랜 만에 들은 닭 우는 소리였다. 더군다나 이른 새벽에 듣는 닭이 우는 소리는 묘한 감정을 갖게 하였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익숙하게 듣던 바로 그 소리였다. 계속하여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멀지 않은 성당에서 새벽 종 치는 소리도 더불어 들려 왔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침상에 일어나 앉았다. 늘 익숙한 기상 시간에 맞추어 닭까지 울어 주니 이국땅에서 맞는 새벽 시간이 고요하고 신선하게 다가 왔다. 어디서나 새벽의 기도와 묵상은 언제나 새로운 날마다의 새 기운으로 주어진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나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이름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은 사 복음서에 골고루 다 나온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받던 그 새벽에 베드로는 바깥뜰에 있었다. 그 때 한 여종이 그의 곁에 다가 와서“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라고 말을 걸었다. 베드로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서 부인하였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베드로는 당황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앞문까지 나아갔다. 거기서 만난 또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맹세하고 부인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조금 후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베드로에서 또 말을 걸었다.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다.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더욱 당황한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말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그 순간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에 정신이 버쩍 났고 뜰 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왜냐하면 평소에 예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否認)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시던 그날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성령을 받고 변화를 받은 초대교회의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 보면 예배당의 첨탑 꼭대기에 십자가 대신에 청동으로 새겨 만든 닭의 형상을 장식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혹은 십자가 첨탑 위에 닭 형상을 얹어 장식한 곳도 있다. 우리는 예배당 첨탑의 닭 형상을 보며 예수를 부인하던 베드로를 생각하게 된다. 상징이 주는 교훈이란 그런 것이다. 예배당의 안과 밖에 십자가의 형상을 장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는 어떤 상징물을 대하면 그 상징물이 주는 교훈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거나 예배당의 첨탑 꼭대기의 닭 형상을 보면 베드로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필리핀의 현 대통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Rodrigo Duterte, 1945-)이다. 지난 2016년 6월에 당선되었다. 검사요 다바오 시장을 역임한 그는 필리핀의 도널도 트럼프란 별명을 갖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취임한 그는 지난 3년여 동안에 마약 관련 용의자가 6,600명 이상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감시단체인 국제엠네스티를 비롯한 여러 인권 단체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서도 그의 범죄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시장 시절에 자경단을 운영해 범죄 용의자 1,700여명을 재판 없이 처형한 적도 있었다. 인권 침해라는 시민단체들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사형제와 공개처형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시장 시절에는 중국인 소녀를 유괴하여 성폭행한 남성 3명을 공개 처형시키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판단과 범죄자를 다스리는 강력한 통치력에 대한 인권단체의 우려와 저항이 여전히 거센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호한 태도를 지켜 가고 있다. 현직 대통령인 그의 행보는 필리핀의 모든 국민들에게 ‘닭이 우는 소리’처럼 들리고 있다. 범죄 소탕을 목적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필리핀에서는 마약을 거래한다거나 마약을 복용하는 행위는 곧 처형당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공식처럼 인식되고 있다.
귀국하기 위해 마닐라 공항으로 이동하던 오전 시간에 시내의 길가에 누더기를 머리까지 덮어 쓰고 인도에 누워 있는 노숙자를 보았다.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제 3세계의 어느 나라나 그러하긴 하지만 필리핀도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고 몹시 가난한 이들이 넘쳐 난다. 필리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술과 마약과 음란과 동성애 등의 타락으로부터 벗어나서 처처에 복음 운동이 벌어지고 치유와 회복 운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1521년에 탐험가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이후로 무려 350년 동안이나 스페인의 식민지 상태였던 필리핀의 국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삶의 범사에 깃들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하다.
필리핀은 삼모작이 가능하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바다와 강의 수산 자원도 풍성하다. 인구도 1억 명이 넘는다. 땅도 넓다. 그 곳은 가톨릭과 이슬람이 강하나 개신교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뜻하는 ‘INC’(Iglesia Ni Cristo)라는 기독교 이단이 강성하다. 필리핀에 복음이 복음답게 전파되는 건강한 땅이 되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