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시 근교에 위치한 초교파 16교회가 연합한 도계읍초교파연합성회를 인도하기 위해 며칠간 도계읍에서 머물 기회가 있었다. 태백은 해발 700미터에 위치한 도시이고 도계는 차로 15분 거리의 산중 계곡에 형성된 탄광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만 여 명이 사는 산중 마을이다. 채탄량이 많던 과거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오만여명이 살던 읍 단위의 산중 도시가 이제는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산과 하늘만 바라다 보이는 첩첩 산중에 평화롭고 조용한 산 중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3년 전에는 강원대학교 태백 분교가 새로 생겨서 매년 700명씩의 대학생들이 선발되어 도계시 근교의 산자락에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양편에 백두대간인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태백산과 함백산이 첩첩이 높고 웅장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함백산은 1,573미터의 높이로 남한에서는 한라산과 지리산에 이어서 여덟 번째로 높은 산이다. 성회 중의 오후 시간에 그 정상에 가까이까지 가 보았다. 수령 500년 이상의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는 곳이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하리만큼 생명력이 높다고 한다. 우리가 달력에서나 봄직한 장관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몹시 더운 날씨였지만 산 정상에는 서늘하리만큼 차고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금번에 오후 시간을 이용하여 둘러 본 곳 중의 또 한 곳이 ‘검룡소’(儉龍沼)란 곳이다. 그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정선의 조양강과 영월의 동강을 거쳐서 단양과 충주와 여주를 지나고 양수리에서 한강으로 유입되고 마지막에는 강화도 입구에서 바다와 만나는 거대한 물 샘의 발원지이다. 후덕지근하게 몹시 더운 날씨에 왕복 한 시간을 걸어서 산중에 있는 검룡소란 곳을 찾아 가 보았다. 설명으로는 1억 5천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곳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샘은 연 평균 수온이 9℃ 정도이고 매일 2,000여 톤의 물이 끊임없이 솟아난다고 한다. 그 곳의 물 샘 곁 숲 속에서 어린 공룡이 뛰어 나올 것만 같은 산의 기운이 느껴지는 울창한 계곡의 분위기였다. 태백시의 시내 한 가운데 있는 또 다른 물 근원인 ‘황소’(黃沼)는 매일 5,000여 톤의 물이 이처럼 솟아 나와서 흐르고 흘러가서 낙동강을 이룬다고 한다. 신비한 생각이 들었다. 검푸르고 맑은 물이 휘휘 돌아 조용하게 용솟음치는 발원지의 현장은 신비롭다는 말 말고는 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분위기였다. 땅 속의 저 깊고 깊은 곳에서 이처럼 끝없이 맑은 물을 뿜어내는 지구의 신비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그 두 물 근원 외에도 처처에서 발원되는 물 샘을 통해서 남한의 오천만 민족이 생수의 혜택을 누리며 이 땅에서 반만년을 살아 온 것이다.
성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아침에 그 곳의 목사님 한 분이 건네 준 책 한 권과 함께 그 책에 소개된 선교사 자신의 아프리카 우물 파주기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축복 받은 땅이란 실감이 더욱 컸다.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란 책을 쓴 이용주 선교사는 해양대학교를 나온 후에 원유 수송선의 기관장으로 10년간 일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긴급 구호와 지역사회개발을 위한 국제구호개발단체인 “Team & Team International"을 설립하고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주로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우물을 파주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집중하는 선교사이다. 1999년에 시작된 그의 사역 지경은 열방을 향하여 넓혀져 가고 있다. 그의 손길은 케냐, 우간다. 수단, 소말리아, 남아프리카, 이집트는 물론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중국을 거쳐서 북한 땅에까지 미치고 있다. 수인성 질병을 퇴치하고 지하수를 개발하며 고장 난 우물의 관정을 복구해 주고 펌프를 수리해 주며 빗 물 저장 시설과 정수기를 보급하는 사역의 배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식지 않는 복음의 열정이 담겨 있다. 기존의 샘물을 보호하는 일과 새롭게 공급하는 일 그리고 저수지를 마련하고 학교를 세워주며 열방을 향하여 복음의 강물이 흘러가기를 염원하는 그의 소원은 점점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의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그의 책에 보면 지구 상에 마실 물이 없거나 오염된 물을 마셔서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이 매년 2,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매일 평균 5만 명이고 굶주리며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인구가 14억 명이라고 한다. 설사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매년 500만 명이고 정착할 곳이 없이 유리방황하는 난민들이 6,700만 명이라고 한다. 이런 통계 자료를 대하다 보면 우리가 주변을 돌아보아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 누군가의 그와 같은 사랑에 대하여 빚진 자들이니까 말이다.
성경 창세기 1장에 보면 에덴동산에 그런 물 근원이 있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1:10)라고 했다. 그 네 강의 이름이 비손, 기혼, 힛데겔 그리고 유브라데이다. 이 네 줄기의 강들이 천지를 적시는 생수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오늘 날 지구촌은 마실 물로 신음하고 있다. 복음서 중에 요한복음 7장에만 나오는 기록이 있다. 초막절에 참석하셨던 예수께서 명절 끝 날에 이렇게 외치신 적이 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7:37-38) 여기서 말씀하신 생수란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는 요한복음 6장 55절에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니라.”고 선언하신 바가 있다. 예수님 자신이 양식이요 음료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도 하셨다.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라야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그를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다.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예수의 피가 없이는 영생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 열방의 구석구석에 나아가서 마실 물도 마련해 주고 예수의 피를 전하는 것은 긴급하고 다급하고 시급한 일이다.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것처럼 예수의 피를 몰라 구원 받지 못하는 영혼들이 지구촌 곳곳에는 얼마나 많은가.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생을 사신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실 때에 “내가 목마르다”(요19:28)고 목마름을 호소하신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예수께서 인간의 근원적인 생의 갈증을 영원히 해결하신 구주이시다. 누구든지 목마를 때에 예수께로 나아가 그 분에게서 마시면 각 사람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된다. 예수께로 나아가서 사랑을 마시고 소망을 마시고 믿음을 마시고 감사를 마시고 평강을 마시고 위로와 기쁨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겸손과 절제 가운데 나누고 돌보고 섬기고 베푸는 은혜의 물을 마셔야 한다. 그리하므로 성령 안에서 목마름이 해결되고 배고픔이 해결되는 영혼육의 만족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맑은 물이 계속하여 넘쳐흐르는 검룡소와 황소에 신비가 서려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그런 신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 분에게로 가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생의 신비를 덧입게 된다.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처럼 말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물이 요한계시록 22장 1절의 생명나무가 자라나게 하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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