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혹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가요. 0108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관리자
관리자
작성일 12-01-07 17:05 조회 15,921 댓글 0
 
지난 금요일 오전에 녹번역 4번 출구에서 전도지를 돌리고 있었다. 행인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어떤 이들은“저도 교회 다니는데요.”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이 지나가거나 전도지를 읽어 볼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기도 하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100여장의 전도지가 누군가의 손에 건네졌다. 어느 중년 부인은“혹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가요.”하고 물어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사라져 갔다. 맞다. 우리가 곧 여호와의 증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호와의 증인들로 말미암아 정통 교단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이란 용어를 사용하기가 껄끄러워 지고 말았다.‘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이란 그 자체의 표현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이란 이단의 출현과 함께 정통교회는 그 숭고한 성경적인 표현을 빼앗기고 말았다.‘구원파’에서는‘구원’이란 단어를 빼앗아 가 버렸고, 신천지에서는 요한 계시록 21장의‘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말씀을 퇴색시켜 버리고 말았다. 통일교에서는 에베소서 4장 6절의“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는 말씀 중에 나오는‘만유를 통일’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불러 오게 하고 말았다. 이처럼 정통교단의 복음이 위협을 당하는 때에 우리가 진정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여호와 즉 야웨(YHWH)란‘스스로 계신 분’이란 뜻으로서 출애굽기 3장 14절의 말씀에 근거한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 창조 이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선재(先在) 하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에 이미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스스로 계신 영이시다. 그 분은 어제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에도 계실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는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원한 현재로 현존(現存)하시며 영존(永存)하시는 창조의 영(靈)이시다. 모태에 조성된 아기의 육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세상 중에 가득한 공기를 호흡하기 시작하면서 일생이 시작된다. 그 생을 마치는 순간이란 호흡이 멈추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말할 때에“숨을 거두었다, 숨을 끊었다, 숨을 멈추었다.”고 하지 않는가.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니라.”고 했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둘째 아담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본성을 회복하고 죄 사함과 영생을 선물로 받은 후에 그 진리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숭고한 표현인 여호와의 증인이란 용어를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872년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세운 '국제성서연구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가 그 시작이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은 1931년 러셀의 후임자 조셉 프랭클린 러더퍼드(1869~1942)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교단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으며 모든 세속 정부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과 정당들이 무의식중에 사탄을 돕는 동맹자라고 간주한다. 이 때문에 어떤 국가의 국기에 대해서든 경례를 하거나 집총과 병역 의무를 거부하고 공공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교단들은 사탄의 교묘한 수단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며 조직에서 목사, 교회, 회중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신정국가인 하나님의 왕국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이 왕국의 다스림은 아마겟돈 전쟁 다음에 등장할 것으로 믿으며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을 중시한다. 그들은 이 두 책들이 세계사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계획표이며 인간의 운명에 대해 유일하게 권위를 지닌 통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창시자 러셀은 묵시 문학적인 계산법에 따라 1874년을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재림'의 해라고 주장했었다. 1914년을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이방인 시대'를 마감하는 해로 계산하기도 했었다. 신학적인 면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정국가의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이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자적인 지옥 개념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생을 배척하며 육체의 죽음이 철저한 멸절(滅絶)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현세 중심이며 천국과 영생의 신앙이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그들은 '왕국회관'이라고 부르는 교당에서 집회를 가지고 침례를 행하며 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생활을 요구한다. 간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상황에서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성서적인 근거로 어떤 경우에라도 수혈을 거부한다. 왕국 회관에 속한 회중의 대부분은 왕국 선포자 들로서 이들에게는 1주일에 5시간을 왕국회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많은 시간을 호별 방문 전도에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파이오니아라고 이름 하는 개척 선포자들은 시간제 세속 직업을 가지며 1개월에 100시간을 종교 사역을 위해 일한다. 특별 개척자들은 실비 보상을 받는 봉사자들로서 1개월에 적어도 140시간을 종교 봉사에 사용해야 한다. 회중마다 정해진 구역이 있으며 증인마다 전도할 이웃들이 정해져 있다. 이 종파는 호별방문과 재방문 그리고 성서연구를 함께 할 것을 요구하며 도서와 잡지 보급의 수를 기록하여 매월 보고한다. 월 2회 간행되는‘파수대’(The Watchtower)와 유사 간행물인 '깨어라'(Awake)는 1990년 이후 오늘 날까지 계속되는 저들의 포교 수단이다. 단지 우리가 저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과 신념에 대한 전도의 열정이다. 우리 정통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런 복음 전파의 열정이 불 붙여지기를 소망한다. 복음의 왜곡은 엄청난 나중 불행을 부른다.

  금번에 한국을 방문하고 여러 번의 집회를 인도하는 존 비비어(John Bevere)목사는“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답하기를“예수님과 항상 신선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열권이 넘는 책 중에 <관계>(The Bait of Satan)라는 책에 보면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 마을을 방문하셨을 때의 장면을 소개한다.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저들은 단지 예수를 세상을 일찍 떠난 나사렛의 목수 요셉의 아들 정도로 알고 말았다. 결국 동네 사람들은 예수를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고 하였다. 이처럼 진리(眞理)를 모르면 만행(蠻行)이 저질러지는 것이다. 예수의 친족들은 예수를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막3;21) 일가친척이라도 예수의 실체를 모르면 어리석게 말하고 바보같이 행동하게 마련이다.“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 그리스도는“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했다. 창세기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만난 후에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모세는 호렙산의 불붙는 떨기나무 환상 가운데 찾아 오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애굽의 동족들을 광야 길로 이끌어 내는 여호와의 증인이요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평생토록 살아갔다. 이 같은 모습은 사무엘도 다윗도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엘리야나 엘리사도 세례 요한도 다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잘 나가는 것도 다 좋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여호와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가 아닐까.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설교문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마6:2..최고관리자
"감사해"최고관리자
"바울의 소식"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최고관리자
"누군가 널 위해 기..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