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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밤중에 아들과 함께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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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5-06 07:06 조회 14,579 댓글 0
 
몇 주 전의 주일날에는 종일토록 비가 내렸다. 여러 차례의 예배와 일과를 마치고 밤을 맞았다. 모처럼 곁에 와서 두어 달을 지내는 작은 아들과 함께 밤중에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아들은 달리기를 하였다. 머뭇거리던 비가 오히려 더 내리기 시작하였지만 그래도 부자간에 추억을 만들려고 밖으로 나갔다. 옷이 흠뻑 젖도록 뛰고 달렸다. 아들이 저 만치 앞서 달리고 나는 뒤따르기로 하였다. 얼마를 달리던 중에 아들은 내가 자전거로 앞장서서 달려가 줄 것을 원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봄비가 내리는  깊은 밤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유약한 모습으로 자라나던 어린 아들이 저렇게 커서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빠른 세월의 흐름이 참으로 무상하다. 맞은편에서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를 맞으니 눈을 뜨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가로등의 조명 아래로 비바람에 벚 꽃잎들이 흩날리는 것이 꼭 눈발이 날리는 것만 같아 환상적이었다. 9년 전에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 온 후로 아들과 함께 이렇게 긴 날들을 같이 지내기는 두 번째 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시간이 다시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몇 주 전에 뉴욕에 사는 큰 아들이 전화를 걸어 와서 자기만 가족 곁에서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네 명의 가족이 한국과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세 곳으로 서로 흩어져서 살기 시작한 때에 작은 아들은 16살 반이었고 당시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렇게 헤어져서 큰 아들은 뉴욕의 대학교로 입학하여 가고 부모인 우리는 한국 목회를 위해 귀국하고 작은 아들만 가족이 함께 살던 동네에 작은 방을 구하여 따로 지내며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 외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 얼마간 애들 이모님의 희생이 컸다. 그 동안 이렇게 저렇게 서로 만나는 시간을 갖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두어 달 씩이나 한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어해 전에 서울에 머물 때에는 학교의 연구소 곁에서 방을 마련해 따로 지내다 보니 주말에 잠깐 얼굴 보고 서로 자신의 일하기 바쁜 날들을 지내야만 했었다. 앞으로 이 날들이 다 지나가고 계속되는 공부를 위해서 다시 떠나가고 나면 이런 시간이 또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가 되어 저들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분주해지는 사회생활에 매이기 시작하면 네 가족이 함께 일주일의 시간을 같이 하기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찍이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가 서로 헤어졌거나 부모의 살아가는 생활에 설명하기 어려운 가슴 아픈 사연이 있거나 혹은 질병이나 사고로 자녀를 앞서 보냈거나 평생 자녀 없이 살아가거나 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가족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가족’(家族)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와 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이라고 정의 해 놓았다. 그렇다. 가족의 출발은 결혼에 근거한다. 부부인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가정이 형성되고 부모를 통해서 자녀의 생명이 태어난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천지 창조 후에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만들어진 첫 인간인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안쓰럽게 보신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고 그의 갈비뼈를 하나 취하여 돕는 배필로 만들어 아내로서 더불어 살아가게 해 주셨다.(창2:18-25) 비로소 부부가 탄생된 것이다. 그것이 가정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거나 국가를 건설하시기 이전에 가정을 만드셨다. 그 가정의 구성원이 바로 ‘가족’이란 것이다. 가족이란 서약에 의해서 맺어진 부부이든 혈연에 의하여 맺어진 부모 자녀 혹은 형제자매이든 그 바탕은 끝이 없는 사랑의 나눔을 통하여 맺어진 구성원들이다. 최근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의 가문에서 벌어진 형제지란은 가족의 위기를 교훈하는 씁쓸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고인이 된 박완서 선생을 비롯한 문학인 20여분이 함께 쓴 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에 보면 박완서 선생은 “엄마가 나에게 걸었던 과도한 기대는 언제나 부담이 되었다. 내가 늦은 나이에 처녀작을 쓸 때에 때려 치울까하다가도, 이게 만일 당선이 돼서 내가 신문에 나면 엄마가 얼마나 으스댈까, 아마 딸 기른 보람을 느끼겠지, 하는 생각이 채찍이 되었다.”는 글로 어머니에 대한 잔잔한 정과 가슴에 품고 사는 추억을 되살려 내고 있다. 작가 문태준은 ‘아버지는 영원한 첫 문장’이란 회상의 글에서 “우연히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아버지가 아궁이 앞에서 새벽 군불을 때고 계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우리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 오셔서 이불을 끌어서 덮어 주고 나가셨다. 논밭일로 굵어지고 투박해진 아버지의 손길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썼다. 작가 공애린은 병상에서도 가족들의 식탁 차리는 일을 걱정하시던 연세 많으신 어머니의 마음을 잠잠히 써내려갔다.

지지난 해 가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문뜩 난다. 이르지 않은 나이에 유학을 결행하는 아들의 진로를 위해서 염려가 많으셨던 아버지시다. 10여년 미국의 이민교회를 섬기며 교회건축을 은혜 중에 마치고 공부도 마치고 학위를 받고 귀국해 보니 양가의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훌쩍 연세가 많이 들어 계셨다. 그렇게 한 해씩 지내며 명절이나 애경사에 잠깐씩 뵙고 지내던 아버지께서 쓰려지셨고 병원에 누워 투병하신지 몇 해 만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 계신 그해 가을, 몇 주 후에 모교 신학교의 신학세미나에 강사로 초청을 받았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신학교를 찾아 가는 기차 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 기억이 새롭다. 신학 동문회의 전국 임원들과 대학의 총장과 신학교의 학장과 모든 교수와 신학부와 대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의 신앙 나의 신학”라는 제목의 특강이 진행되었다. 나는 그날 은혜 중에 특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혼자 생각했다. 오늘 같은 날 아버지께서 건강하시다면 아들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평소의 유지를 따라서 시신이 기증되었다. 발인식을 대신하여 송별 예배를 드리던 날 이른 아침에 가족들이 병원 안치실의 냉동고에 안장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송별 예배를 드렸다. 지금도 어느 의학도의 손길엔가 들려져 있고, 의대의 어느 연구실에선가 쓰임 받고 계실 아버지의 두고 떠나신 유골을 돌려받아 고이 모실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만드실 때부터 이미 말씀하셨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때가 되어 그 길을 갔다.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애굽의 출세한 총리 요셉이 147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장엄하게 치루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후에 요셉도 11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요셉은 유언으로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창50:25)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에 모세가 출애굽을 하던 때에 4대 선조인 요셉의 유골을 챙겨가지고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갔다. 출애굽기 13장 19절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이 세상에 부모 없는 자녀는 없다. 또한 부부 없이는 가족의 탄생도 불가능하다. 양가부모의 은덕은 물론이고 29년을 한 결 같이 가족의 오늘을 위해서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자리를 잘 감당해 온 아내에게 감사하고 아들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우여곡절 많은 목회 사역을 위하여 동반자의 길을 함께 걷느라 겪어야 하는 남모르는 사연이 얼마나 많으랴. 몇 해 전 나는 일기책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주여! 나의 아들들이 승리 앞에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소서. 깨끗한 마음으로 높은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를 잘 다스려 나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소박하게 사는 위대함과 남을 너그럽게 대하는 참다운 힘을 알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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