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앞날이 점점 형통해 지길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들딸들이 이 세상에서 능력 있게 태어나서 성장하고 역량 있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으랴. 한 생명이 모태에 잉태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기대를 한다. 그래서 옛 왕실에서는 왕과 왕비가 침소에 드는 날과 때도 정하여 안내할 정도로 하늘의 도우심을 간절히 의지하였다고 한다. 이런 것을 천시(天時)라고 하는가. 그러므로 먹는 음식과 마시는 음료와 앉고 눕는 자리와 눕는 방향과 생각하는 것까지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어느 시대에나 평범한 환경에서 인물이 출현하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는 학습 기회가 잘 제공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중에서 사회 적응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되는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온 말 중에 ‘대치동 엄마들’이란 표현이 씁쓰름하게 거론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들은 야생화처럼 열악한 환경을 딛고 살아온 가정의 악조건을 뚫고 배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말 새벽(2012. 3. 24)에 배달된 조간신문 전면에는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된 재미한국인 김용 박사에 대한 사진과 기사로 가득 메웠다. 사진 중앙의 김용 박사와 그 좌우에 함께 서서 그의 등용을 축하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두 인생의 그런 악 조건을 딛고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명사들이 아닌가. 1959년 생으로 올해 52살인 그는 현재 미국 10대 명문 대학 중의 한 곳인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이다. 그의 아버지인 김낙희 씨는 17살 때에 6. 25 전쟁 중에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여 서울대학교 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아이오와 대학에서 치의학 연구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어머니는 경기여고를 수석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퇴계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김옥숙 여사이다. 김용 세계은행 신임총재는 가난과 전쟁의 폐허 세대인 그의 부모가 걸어 온 길고 먼 길을 따라 걸어서 세계적인 기구의 최고위직을 맡게 되었다.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와 IMF의 총재직은 세계적인 3대 요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 두 자리를 한국인 일세와 이세가 맡게 되었다는 점은 21세기 초에 대한민국을 세계 중심 국가로 높여 가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2010년의 G-20 세계 정상회의에 이어서 올해에 열리는 세계 핵 안보 정상회의의 유치 등이 시사하는 바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김용 신임 총재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다섯 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미 2세다. 그는 의학도로서 지난 20년을 세계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결핵 치료와 에이즈 퇴치 등을 위해서 앞장서서 활동해 온 역량과 박애 정신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실무적인 아버지와 큰 사상을 연구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이상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리고 “한국인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외로움과 설음을 많이 겪었지만 꿈과 용기를 갖고 도전하면서 극복해 왔다.”는 성장기의 추억을 털어 놓기도 했다. 부인이 소아과 의사인 그는 후배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에 대하여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해라.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아가라.”고 충고했다. 자녀 교육에 열심인 부모세대들을 향해서는 “너무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 하지 말라.”는 쓴 소리도 남겼다. 그의 인터뷰 기사 중에 인생을 발전시켜 나가는 비밀이 면면히 숨겨져 있다. 열악한 환경과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성실한 삶의 의지가 나중에 점점 형통하고 복된 날을 맞이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성경과 역사에는 이와 같은 형통한 삶을 제대로 잘 가꾸어 갔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넘쳐 난다. 노아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아닌가. 홍수 시대 이전의 100년을 남들과 다르게 살았던 노아를 보라.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길고 먼 길을 백년의 오랜 세월동안 흐트러짐이 없는 걸음으로 한 길을 걸어갔던 신앙 의지의 승자다. 나중에 히브리서는 그를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고 극찬했다. 기회주의자가 되어 정당 바꿔 타기와 말 바꾸기로 표심 몰이에 혈안이 되어 뛰어 다니는 요즘의 정치인들과는 그 무게감과 됨됨이가 너무나 다르지 아니한가. 형통함이란 무엇인가.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는 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이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미국 역사의 순수 고전시인이란 평가를 받는 그는 열 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그 후에 어머니를 따라 미 동부의 버몬트 주로 이사하여 날이 맑은 때에는 종일토록 농장에서 일을 하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책을 읽으며 지냈다. 이처럼 그의 글과 시들은 그가 살아온 삶이자 고백들이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로 태어난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의 하나인 요셉의 생애가 그러하였다. 그에게는 서로 어머니가 다른 배 다른 열 명의 형들이 있었다. 요셉은 다른 세 어머니들을 통해서 먼저 태어난 배 다른 열 명의 형들 틈바구니에서 눈총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그런 그가 결국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 시장으로 팔리어 갔고 바로 임금의 측근인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다시 팔려 들어갔다. 고생도 많이 하고 억울한 일들도 수 없이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셔서 점점 형통한 자가 되어 갔다. 형통함이란 무엇인가. 고난과 질병과 역경과 환란과 억울함과 우울과 답답함 속에서도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을 가꾸며 살아가고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준비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형통함이 아닐까. 결코 남의 형통함만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신분과 여건 그 자체를 감사하며 주어진 행복의 조각들을 누리며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며 자기를 계발하고 성숙해져 가는 것이야 말로 형통한 나날이 아니겠는가. 에드 트레너(Ed Trenner)의 말 중에 “Life without goals is like a race without a finish line.”(목표가 없는 삶은 마치 결승점이 없는 경주와 같다.)는 말이 있다. 멀리 바라보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자신을 키워가고 이웃을 배려하며 서로를 위하는 삶을 더불어 살아가노라면 누구에게나 행복하고 형통한 나날이 선물처럼 주어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는 희망의 책을 세상에 내어 놓은 국제 사회복지사 김해영 씨의 삶이 바로 그러하다. 키 134cm의 단구인 그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그를 방 안에서 집어 던져서 척추 장애를 입었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월급 3만 원짜리 남의집살이를 하던 곤고한 인생에서 겨우 익힌 편물 기술로 하루 14시간씩 중노동을 하며 세계기능올림픽을 석권하고 반듯하게 눕지도 못하는 장애와 날마다의 고통을 이기며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넘나드는 선교사요 국제훈련복지사로 제 3세계의 영혼들을 14년간 섬기며 꿈을 키우며 공부해서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의 석사 과정을 마쳤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는 인생을 고난에서 건지시고 형통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전능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