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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가치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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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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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11-15 16:55 조회 15,692 댓글 0
 
역사는 철저히 고독을 체험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di Lodovico Buonarroti Simoni,1475-1564)피에타란 조각을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었다. 잘 알려진 바대로 피에타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려 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가 산헤드린 관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해서 내려지자 처참하게 숨진 아들 예수의 시체를 품에 앉고 오열하는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적 묵상에 근거하여 묘사한 기독교 이천년을 대표하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 예술가 미켈란젤로에게 고독한 자기와의 씨름의 순간이 없었다면 어찌 그런 역사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동네의 청년들과 둘러 앉아 시시덕거리는 것으로 시간을 소일하고 낚시와 사냥만을 일삼으며 청년의 정욕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갔다면 어찌 그런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사년이 지난 29살 때에 조각상 다윗을 완성함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다. 로마 대성당의 설계와 시공에 참여한 일이나, 그 천정화 중의 하나로 잘 알려진 천지창조같은 작품의 영성은 가히 어찌 필설로 다 묘사할 수 있겠는가.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사대부들에게는 단순한 환쟁이로 무시 받았던 것처럼 미켈란젤로가 태어나 자라나던 어린 시절의 시대상도 별 차이는 없었다. 후대가 그를 조각가요 건축가요 화가요 시인으로 추앙하고 기억하지만 그의 출발은 결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을 그의 부모는 못마땅하게 여기며 꾸지람을 자주하고는 하였다. 워낙 그림 그리기에 심취하는 그의 소양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13살 때에 화가 도메니코와 기를란다요에게서 배우고 이듬해 조각가 베를톨드에게 옮겨 도나텔로 작품을 배웠다. 아울러 메디치 가의 고대 조각품을 수집 연구하던 중 선생의 추천으로 피렌체의 실력자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이 거느리고 있는 화가 집단에 들어가 대 로렌초의 총애를 받았다. 그 집에서 조각과 인체 해부에 전념하며 그는 신화와 신약과 구약 성서 등 많은 고전을 탐독하며 교양과 기독교 영성을 쌓아나갔다. 1496년 로마로 나가 고대 미술과 접하게 되었고 그 몇 해 후인 1499년 프랑스 추기경의 위촉을 받아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다가 피에타를 완성하였다. ‘피에타는 바닥 넓이 195cm에 그 높이가 174cm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이다. 마리아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교의 영성이 깊이 있게 배어나오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에는 그가 이미 십대 시절부터 신구약 성경을 탐독하며 묵상해온 고독한 자기와의 씨름의 세월이 때가 찬 경륜으로 작품 속에 표출된 것이 아니겠는가.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정면 대벽화를 위촉 받은 것은 그의 나이 59살이 넘어가던 때였다. 그는 무려 6년간의 길고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의 날들을 지내며 높은 발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피부병과 안질과 과로로 인한 고통과 씨름하면서 역사에 길이 빛나는 작품,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후대의 미술 역사 평론가들은 그를 인생의 고뇌 속에 고독과 씨름하며 사회적인 부정과 대결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동시대의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쌍벽을 이루며 불편한 경쟁자의 관계를 유지했던 미켈란젤로! 그의 고독한 청소년기와 청년기가 없었다면 나중의 원숙한 그림과 조각과 건축들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는 로마의 성 바울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다가 89살의 고령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고독은 역사를 바꾸어가는 동력이다. 사람이 그 시대의 세류를 따라서 쉽게만 살아간다면 고독할 것도 없고 외로울 일도 없다. 그러나 에녹 시대의 에녹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달랐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5:24)라는 간단한 표현 속에는 365년 동안 그가 어떠한 생을 살아갔는지를 극명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그에게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말벗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있으면 세상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고독의 길을 선택하며 평생을 살아갔다. 그런 어느 날 하나님은 에녹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 가시므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는 인생으로 훌쩍 이 땅을 떠나갔다. 신비롭지 아니한가. 에녹의 생애는 성경 창세기 5장을 통하여 짧게 언급된 그 정도만을 가지고도 언급되고 또 언급되고는 한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 에녹의 생애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11:5)는 증거를 받았던 인물로 재평가하고 있다.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가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이는 노아도 마찬가지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고독의 체험이 없이 역사에 공헌한 인물이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아가 산꼭대기에 백 년 동안 방주를 짓던 때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거의 미친 사람처럼 취급하였다. 도대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을 백년씩이나 계속하며 살아갔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과 역사는 천년이 가고 또 다시 천년이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안에서 고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 알고 믿고 따르는 사명의 사람들에 의하여 전개되고 성취되는 것이 아닌가. 히스토리 TV사에서 추적하여 발표한 <1000년을 빛낸 세계의 100>중에는 앞에서 언급한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19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물론 서양 사람들을 기준으로 평가한 내용이라서 그러할 뿐 우리나라로 하면 세계 역사에 견주어 뒤질 것이 전혀 없는 한글창제의 주인공인 세종대왕 또한 1000년을 빛낸 인물 가운데서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비행기를 발명한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목사의 아들들인 라이트 형제는 40, 자동차의 발명왕이요 미국의 산업 혁명을 주도한 헨리 포드는 29,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의 근대화에 전환점을 제공한 제임스 와트는 25, 종교개혁을 이룩한 기독교의 마틴 루터는 제 3위를 차지하였다. 1위는 누구일까. 활판 인쇄술의 발명자인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1400-1468)이다. 그는 600년 전에 완벽한 인쇄 기술의 발명으로 근대 활판 인쇄술의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살아 있는 인물들 중에서는 컴퓨터를 발명하여 세상을 바꾼 빌 게이츠(41)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450년 전에 인류 역사의 고착된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10위에 오른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는 천동설을 뒤엎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地動說)을 입증할 사실을 발견했으나 교회의 탄압으로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발견은 외압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전문적인 천문학자는 아니었지만 교회의 집사 일을 맡아보면서 남은 시간에 지동설의 기초를 세운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9위를 차지하였다. 이 모든 인물들의 이름과 그 업적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무엇인가.

75살 나이에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고독한 말씀 순례의 길을 나설 줄 알았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천년 조상이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던 그 밤에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에서 땅에까지 내려오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던 그 들판도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는 고독한 영적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이는 출애굽 이후 시내산 정상에서 고독하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사십 주야를 금식하며 지내던 모세에게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밤이면 한적한 곳에 홀로 가셔서 혼자 고독한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 밤에도 감람 산에서 철저하게 외롭고 고독한 기도의 자리에 혼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계셨다. 제자들이 깊이 잠들어 버린 그 산에서 매우 고독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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