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죽음
‘의사’(義士)란 ‘의로운 지사(志士)’ 혹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의롭게 목숨을 바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어떤 순간에 비겁하고 비열하게 자기 목숨을 지켜 연명하지 않고 의리(義理) 있게 지조(志操)를 지키고 숭고하게 죽어간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열사를 말한다. 영어로 순교자인 ‘martyr’ 혹은 애국자인 ‘patriot’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의사(義士)란 거의 순교자에 가까운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의 나중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고 말씀하셨다. 어려서 배운 개화기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름과 일화들 중에서 안중근 의사(義士)의 이름과 칭호를 기억한다. 유관순이나 이준은 열사(烈士)라고 했고 그에게는 의사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안중근(安重根,1879-1910)이 누구인가. 그는 대한민국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1909년 10월 26일에 하얼빈 역에서 저격한 독립운동가요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서던 교육가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다음 해인 1910년 3월 26일에 류순 감옥에서 사형 당하였다. 아들 안중근이 사형언도를 받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보낸 그의 어머니 조성녀 여사의 편지가 역사 속에 전해져 오고 있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인 줄을 알아라.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목숨을 버리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네가 일본에게 너의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너는 대한을 위해서 깨끗하고 떳떳하게 죽어야 한다. 아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가히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 아닌가. 그런 안중근을 역사는 ‘의사’(義士)라고 부른다. 개화 초기 천주교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녀는 세례를 받은 세례명을 따라서 조 마리아라고 주로 불렸다. 그녀는 아들이 사형을 당한 후에도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는 독립투사들을 돕는데 앞장섰던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조 마리아 여사에게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어느 나라에나 사고와 사건은 있고 우리나라도 잊을만하면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번 세월호 침몰 사건이 전 국민을 슬프게 하고 반면 분노하게 하는 것은 사건 초기에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선장과 적지 않은 수의 선원들이 자기들만 먼저 탈출하여 살아 나왔다는 사실이다. 선장 혹은 선원이 누구인가. 배의 선장은 비행기의 조종사처럼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선원들은 선장이나 기관사을 비롯하여 여객선의 안전 운행을 위하여 처처마다에서 맡겨진 소임을 다해야만 하는 전문가들이 아닌가. 미국에서 공부하며 교회를 섬길 때의 경험이다. 필라델피아 시외의 한적한 도시인 벤살렘(Bensalem)은 ‘평화의 아들'이란 지명이 붙여진 덴마크 계통의 이민자들이 건설한 지역으로 그 곳의 역사가 350년이 넘는다. 한번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버거킹의 직원 모집 광고를 보았다. ‘want to crew’ 패스트푸드를 판매하는 식당 종업원을 모집하면서 배나 항공기의 승무원을 뽑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어 사전에 보면 ‘crew'란 승무원이란 의미와 함께 ‘특정한 기술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팀이나 반이나 조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간단한 빵집이나 패스트 프드 점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도 전문성이 있는 ‘crew'가 필요한 법이 아닌가. “그런데 1000명씩이나 타고 내리는 국가적으로 가장 큰 연안 여객선 중의 하나인 세월호와 같은 배의 선장과 선원들의 직업관이나 근무 태도가 어찌 그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단 말인가”하고 온 국민들이 지금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아깝고 불쌍하고 슬프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승객들이 순간적인 위기 앞에서 서로 당황하며 누군 살아 보겠다 하고 누군 앞 서 빠져 나가겠다고 하는 그 아수라장의 현장에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의연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이들의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코끝을 찡하게 하고 있다. 선장과 선원들이 버리고 떠나간 침몰하는 배 안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을 챙긴 건 막내 승무원 고 박지영 자매였다. "선원은 맨 마지막이야!"라며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학생들을 비롯한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지만 결국 자신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제 겨우 22살인 그녀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돕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배 안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온 청년 가장이었다. 그녀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한 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그러나 박지영 자매의 어머니는 딸 또래 대학생들의 성금을 정중하게 사양하며 “형편이 더 어려운 다른 희생자 가족을 도와 달라.”고 말했다. 박지영 자매의 어머니는 “우리 딸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분명 더 어려운 희생자 가족을 챙겼을 겁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생들은 결국 이 뜻을 받아들여 세월호 사고로 제주도로 이농하기 위하여 네 가족이 그 배를 탔다가 부모와 형을 잃은 7살 난 조 모 군을 찾아 성금과 희망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조 군의 가족 역시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성금을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OECD 15위권에 육박하는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이 이번 사건으로 세계 언론 앞에 큰 수치를 당하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민족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다시 일어서야 하고 다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슬프게 울고 있는 유족들의 마음을 주께서 보듬어 주시길 두 손 모아 빈다. 지난해 보스턴마라톤 테러 현장에서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잃은 여성인 설레스트 코코란은 그 상처 위에다가 "여전히 서 있다"(Still Standing)는 문구를 적고 1주기 기념식에 얼굴을 보였다. 그렇다. 아직 서 있어야 하고 다시 일어서야 하고 다시 앞을 바라보고 뛰어야 한다. 600만이 넘는 동족이 희생을 당한 슬픔을 가슴에 파묻고 우뚝 일어선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세월호 침몰의 혼란 속에서도 남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자기 목숨을 잃은 학생 양온유 양, 정차웅 군, 최덕하 군을 비롯하여 사무장 양대홍 씨와 남윤철 교사와 최혜정 교사 등의 마지막 순간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모두 의사(義士)의 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다. 시신 수습을 위하여 쪽잠을 자면서 과로에 지쳐가던 민간 베테랑 잠수사 이광욱 씨의 죽음도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닌 값지고 의로운 죽음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2001년 미국 맨하튼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에 의하여 붕괴된 현장에 뛰어 들어가서 사태를 수습하고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건져 내려던 911 소방대원 중의 순직자만도 343명에 이른다. 결혼을 준비하던 유대 땅 갈릴리 나사렛의 요셉의 아내 될 정혼한 마리아의 태를 빌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던 그 날 골고다 언덕의 어머니 마리아는 해조차도 빛을 잃던 어둠 속에서 더 이상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어머니의 큰 슬픔이 우주를 끌어안는 기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