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와 천국
70억이 넘는 지구촌의 인구 중에서 하루 생활비가 이천 원 미만인 이들이 80%라고 한다. 하루에 만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이들도 인구 대비 10%에 이른다. 그런 환경 중에서 우리나라의 남한은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상대적인 빈곤층이 여전히 적지 않지만 말이다. 지지리도 못 살고 끔찍이도 가난하던 우리나라가 언제부터인가 꽤나 잘 살고 풍요한 나라가 되었다. OECD 최상위 국가 중의 한 나라인 그런 우리나라 안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패륜적인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에 경북 칠곡에서는 30대 중반의 계모가 8살짜리 의붓딸을 발로 20여 차례 짓밟고 입을 틀어막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서 죽게 하였다. 그 어린 아이는 방치된 채 고통을 당하다가 이틀 후에 눈을 감고 말았다. 친 아버지조차도 그런 딸아이를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어찌 그리 넓지도 않은 이 땅의 같은 하늘 아래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최근에 계모에게는 10년, 친부에게는 3년 형이 판결되었다. 재판장에 참석했던 친모는 오열했고 고모는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구토 증세를 보이며 “안 돼요.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라고 울부짖었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또 다른 사건은 역시 계모가 소풍 보내달라는 8살짜리 의붓딸을 한 시간 가까이 심하게 구타해서 16개의 갈비뼈를 부러트린 채로 욕조에 방치해서 폐 파열로 숨지게 한 경우이다. 재판부는 그 계모에게 15년 형을 선고하였다. 이런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경악해 하며 가벼운 형량에 대하여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살인 사건은 인류 역사에 그 뿌리가 깊다. 에덴의 타락한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의 큰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이 같은 끔찍한 살인 사건은 성경의 처처에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숨길 수 없는 기록 중의 하나가 전쟁과 테러를 통한 집단 살해와 각종 살인 사건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집단으로 살해한 애굽의 왕 바로의 ‘히브리 남아살해명령'은 430년 동안이나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히브리인들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그와 같은 비운의 시대에 태어났고 목숨을 겨우 보존 받은 주인공이 모세가 아닌가. 또한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던 당시에도 유아 살해 사건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소식을 접한 그 지역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은 갈릴리 근동의 두 살 미만의 남자 아이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과 지옥의 가르침을 안다. 만약에 그와 같은 악행을 자행하던 바로 왕이나 헤롯왕이나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차우세스쿠나 카다피나 무바라크와 같은 악랄한 독재자들이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면 이는 너무 불합리한 세상이 아닐까. 하나님은 선악과 의와 불의를 판단하시는 심판주이시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22:15)고 구원 받을 수 없는 무리들을 규정하고 있다. 살인은 극악한 죄악이다. 성경은 십계명을 통하여 “살인하지 말라.”(출20:13)고 엄히 교훈한다. 우상숭배와 미신이 가득하던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 온지도 내년이면 130년이 된다. 기독교의 복음은 여성과 어린이와 노약자와 고아와 과부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자유하게 하고 배려하고 돌보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실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독교의 복음 전파는 병원, 학교,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등 각종 복지 사역과 문화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는 행복지수가 세계 제 1위이다. 국민 소득은 6만 불이 넘는다. 소득에 따라서 차등이 있기는 하지만 고소득자들의 경우에는 수입의 63%까지를 세금으로 낸다. 누구나 교육비가 무상이며 전 국민이 전액 의료 혜택을 받는다. 65세가 넘으면 평소 소득의 절반을 연금으로 받기 시작한다. 저들은 남들을 직업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남의 소득을 묻지도 않는다. 저들은 자녀들의 학교 교육을 성적으로 순위를 정하여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학원과 같은 사교육이란 일체 없다. 그래도 배울 것을 골고루 다 배우며 각 분야마다에서 행복하게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제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여 만족하게 일하며 여가를 즐기며 살아간다. 2008년에 여러 목회자 부부가 함께 덴마크와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러시아의 해변 도시인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까지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들은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로 발전한 개신교 오백년의 기독교 문화가 찬연한 곳들이다. 덴마크에서 안데르센의 생가도 보았고 코펜하겐 시청사 옆 큰 길 가에 있는 그의 동상도 보았다. 그의 이름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1805-1875)이다. 그는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는 이름은 안데르센이 루터교회에서 세례 받을 때에 대부모代父母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의 집안은 할머니도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할 정도로 매우 가난했다. 독실한 루터교회 신자였던 어머니는 안데르센에게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공경하는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인형극과 책 읽기를 통해 어린 그에게 옛날이야기와 <아라비안 나이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자주 들려주고는 하였다. 그 모든 환경들이 그의 상상력을 풍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풍부한 상식과 교양을 얻게 해 주었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자 어려서부터 공장에 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남의 집에 가셔서 빨래를 해 주고 생활비를 벌어 오셨다. 그런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지내던 그가 14살 때에 연극배우의 꿈을 품고 코펜하겐으로 갔지만 변성기 이후에 목소리가 탁해지면서 꿈을 더 이상 펼칠 수 없게 되었다. 너무나도 가난해서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던 그의 글은 문법과 맞춤법이 엉망이었고 그의 연극 대본은 종종 극단의 주인들에 의해서 내 동댕이쳐 지고는 하였다. 너무나 스스로에게 실망한 그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고는 하였다. 그런 그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귀하게 여긴 국회의원 요나스 콜린의 후원으로 라틴어 학교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의 문학 활동을 못 마땅하게 여긴 교장과의 갈등 때문에 몇 년 후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23살 때에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후로 몇 편의 희곡과 소설을 쓰면서 그는 작가로서의 재능이 드러났고 <즉흥시인>이란 작품은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평생토록 160여 편의 동화 작품을 썼고 나중에는 15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세계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그의 그림은 우표에도 실리는 축복을 받았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례식에 덴마크 국왕과 왕비가 참석할 정도였다. 그의 문학은 자신이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라는 것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하게 자라서 구걸까지 해야 했던 자기의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눈의 여왕>은 어렸을 때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아버지가 서리가 내리던 밤에 신경쇠약으로 돌아가시자 아버지를 회상하며 쓴 작품이다. <미운 오리새끼>는 그가 작가로 꽤나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의 출신 배경 때문에 천대를 받은 마음의 상처를 문학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고 하셨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이 누군가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제 꿈을 마음껏 펼쳐 갈 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어 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