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감옥에서 무죄로 풀려난 여인
미국에서 살인죄로 32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던 여성이 누명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됐다. 십여 일 전(2014. 3. 25)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은 1급 살인죄 등으로 복역 중이던 메리 버지니아 존스(74)에 대한 유죄 평결이 무효라고 판시하고 즉각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로스앤젤레스 검찰도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였다. 그녀는 지난 1981년, 남자 친구가 벌인 범죄에 연루돼 살인강도범 신세가 됐다. 그녀의 나이 42살 때의 일이다. 올해 그녀는 74살이 되었다. 마약 거래상 2명을 차로 납치한 남자 친구는 으슥한 골목에서 저들에게 총을 쐈다. 한명은 사망했고 한명은 중상을 입었다. 남자 친구는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았고 사형 집행 전에 교도소에서 숨졌다. 그녀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범행 현장에 함께 있었던 그녀도 1급 살인과 납치와 강도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의 무죄를 밝혀내고 방면이 가능하게 된 것은 로스앤젤레스의 명문 사립대학 인 U. S. C 법과전문대학원이 운영하는 “죄 없는 기결수 석방 운동”의 팀원들이 끈질기게 노력한 열매였다. “죄 없는 기결수 석방 운동”에 참여한 법과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존스가 남자 친구에게 지속적인 폭행과 협박을 당한 사실을 캐내 범행 가담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시작하면서 기억에서 잊혀 가던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죄 몫에서 풀려나려면 그 해결을 위하여 그 누군가가 대가를 지불하는 희생적인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 인간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영생하게 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세상은 죄인의 죄를 판단하여 그 죄의 경중輕重에 따라서 형량을 판결한다. 반면에 역사 속에는 감옥에 갇힐 죄 몫이 없이 억울하게 갇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성경의 인물들로 하면 창세기의 요셉이 그러하고, 다니엘서의 다니엘이 그런 주인공이다. 요셉은 그를 미워한 열 명의 형들에 의해서 벌거벗겨진 채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야 했다. 그는 애굽의 바로 왕의 군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가정 총무의 직책까지 맡았다. 그러나 결국은 주인마님의 성적性的 유혹을 뿌리친 죄로 궁중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2년 세월 후에 하나님은 바로 임금의 해석자로 요셉을 불러 내셨고 전국을 통치하는 유능한 총리의 길을 걷게 하셨다. 바벨론의 총리가 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은 것도 다니엘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를 미워하던 정적(政敵)들 때문이었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사건도 빌립보 성에 복음을 전파한 것이 죄로 여겨졌기 때문이지 별 다른 죄 몫이 없었다. 지난해 말에 세상을 떠난 아프리카 남아공의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는 흑백 인종의 평등을 주창하는 인권 운동과 흑인들도 마땅히 누려야만 할 자유의 확보와 민주화를 위하여 일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27년 동안 감옥 안에서 억울한 세월을 지내야 했다. 사회에 지속적으로 해를 끼칠 위험이 큰 죄인은 마땅히 교도소에 가두고 교도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죄 없는 이들을 죄가 있다고 판결하여 가두는 경우이다. 그러나 위 사건의 주인공인 메리 존스는 검찰이 범행의 내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고 해당 법원은 형량을 정하여 감옥에 가두어 둔지 32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이제야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나게 된 것이다. 32년이라니 그 긴긴 세월 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한 많은 우울의 감옥살이를 했을까 상상해 보라. 그 억울하고 답답하게 지내온 세월을 누가 보상하고 되돌려 줄 것인가. 성경 창세기 3장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범죄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해 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후에 저들은 눈이 밝아졌다. 그리고 서로가 벌거벗은 상태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린 후에 에덴동산의 나무 숲 사이에 숨었다. 아담과 하와가 보이지 않자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다. 아담은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내와 함께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이 후에 아담은 아내인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하와는 뱀에게 핑계하는 대화의 과정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된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도 상세하게 묘사한 성경의 백미이다. 이 세상의 법과 제도로는 그 지은 죄가 들어 나면 그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하여 감옥에 갇히는 경우가 대개이다. 그러나 인간은 회개하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평생토록 이 세상의 벽돌로 지은 감옥보다 더욱 무섭고 심각한 죄의 감옥에 갇혀서 살다가 육체의 죽음이 다가오면 영원한 심판의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사실 육체로는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 로마서 5장 21절에 보면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했다. 죄란 그런 것이다. 그처럼 죄 가운데 죽어 있던 인간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고 죄 사함과 영생의 은총을 누리도록 하는 길은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롬6:23)는 선언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죄를 사하는 은혜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義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하게 하는 것이다.”(롬5:21) 기독교의 고전인 성聖 어거스틴Augustin(354-430)의 <참회록>에 보면 어거스틴은 자신의 탄생과 성장기와 죄 속에서 방황할 때의 심경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체험한 이후에 주 안에서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인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그는 4세기의 수사학을 제대로 공부한 기독교 수사학자요 변증가 다운 유려流麗한 필력으로 참회록을 써 내려갔다. 그는 고백하였다. “이제 나는 내 영혼을 더럽혔던 육체의 죄악을 회상하려고 한다. 이처럼 과거를 들추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님을 향한 내 사랑 때문이며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동안에 수만 가지 악을 행하던 산산조각 난 인생이었다. 온갖 쾌락에 도취되어 있던 나의 영혼은 주님이 비추어 주시는 아름다운 빛을 떠나서 점점 썩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십대 중반부터 음란과 도둑질과 불순종과 거역의 악한 영에 사로잡혀서 죄가 죄인지조차 모르며 방황하던 지난날들을 그의 참회록에서 절절이 회개하고 있다. 아프리카 북부의 항구도시였던 히포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적 호기심이 뛰어 났다. 17살에 고전 문학과 수사학을 배우기 위하여 카르타고로 유학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소녀와 동거를 시작했고 18살에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청년시절에는 기독교에서 벗어난 이원론과 영만을 중시하고 육체를 부인하는 영지주의와 불교의 혼합 종교인 마니교에 빠져서 십여년의 아까운 세월을 보냈다. 마니교는 육체를 부인하다보니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성육신 탄생을 부정하고 물질생활을 증오하는 심각한 금욕생활을 강조하였다. 30살 때인 A. D. 384년에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스의 설교에 감화를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복음과 은혜를 깨닫게 된 그는 43살 때부터 3년 간 지난 삶을 참회하며 이 책을 썼다. 그렇다. 미움과 시기와 증오와 불만과 불평과 원망과 원한과 보복하려는 앙심과 탐욕과 죄에 대한 끝없는 탐닉의 결박으로 부터 벗어나야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인간의 죄의 감옥으로 부터 벗어나서 진리 안에 참 자유자가 되고 죄 사함과 영생의 은총을 누리기 시작하는 성도의 삶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로 인한 선물이다. 로마서 8장 2절은 선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인간을 해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