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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2014.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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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9-07 21:46 조회 13,976 댓글 0
 
마지막 때
 
 
요즘처럼 처처에 사고와 사건과 염병과 자연 재해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말세의 현상이 확연히 과거와 다르기는 다르다.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인 사스, 조류독감, 쓰나미, 지진, 홍수, 가뭄을 비롯하여 최근 전남 해남 지역에 몰려 온 수십억만 마리의 메뚜기 떼의 습격이나 아프리카의 에벌라 전염병 등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아닌가. 강사는 “하루를 살아가듯이 오늘을 살고, 백년을 살 수 있듯이 오늘을 살자”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하였다. 우리는 대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기억한다. 이 말은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1632-1677)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오히려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가 한 말이라는 설에 비중을 더 두기도 한다. 스피노자는 1632년생이고, 마틴 루터는 1483년생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누가 언제 한 말인지 확인 할 길이 없는 말이라고 한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진지하게 살아 갈 수 있다면 잘 못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이 창세기의 무드셀라만큼 969년을 장수한들 아쉬움이 없겠는가. 이 세상에서 오래도록 장수하며 살고픈 욕심은 그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누구나 이 세상 장막 집을 벗어 버리고 이 땅을 떠나야만 한다.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간 신앙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한편 저들 모두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죽음을 피하지 못한 인물들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나 솔로몬이 그랬다. 인간의 영화가 하늘 나는 새나 들에 핀 백합화만 못하다고 일축하시며 예수께서 화제에 올리셨던 이스라엘의 임금 솔로몬도 60살에 세상을 떠났다. 예수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6:29)고 하셨다. 그렇다. 육체의 삶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세례 요한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헤롯의 칼에 목이 잘려 쟁반에 담겨 나가야 하는 순교자의 길을 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33살의 나이에 붙잡혀서 온갖 수모와 고난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만약 예수의 부활이 아니었다면 이 땅에 기독교의 탄생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예수 부활의 능력은 도망갔던 제자들을 불러 모았고 성령 받은 사도들은 장수한 요한 외에 모두 다 순교자의 길을 갔다. 어디서 그런 담대한 힘이 나온 것일까. 이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부활 신앙의 힘이 아닐까. 최근에 행정, 사법, 입법, 군대 등에서 고위직에 있던 이들이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는 경우를 보면 권력과 명예의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땅의 그 어떤 권력, 명예, 부, 명성, 인기, 자랑, 영광, 재능이라도 영원한 것이란 없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물론 인간을 통하여 창작된 각 분야의 예술의 가치와 기술의 발전은 그 수명이 길긴 하지만 말이다. 바벨론이나 페르시아나 헬라나 로마가 역사 속에 영원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한 국가의 역사가 흥망성쇠 가운데 부침(浮沈)을 계속하고 명멸(明滅)을 피할 수 없듯이 이는 한 개인의 생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대한 예언과 더불어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임을 선포한다.(계19:1-2) 황금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신의 세계라든지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점점 희박해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소위 ‘마지막 때’란 우주적인 종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개인에게 있어서든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아무리 대단한 권력자라도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알렉산더(B.C 356-323)는 33살에 죽었다. 영원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싶어 하였던 진시황(秦始皇,B.C 259-210)도 49살을 넘기지 못하였다. 그는 22살에 진 나라의 왕이 되어 17년 만에 주변의 연, 조, 위, 제, 한, 초등 여섯 왕국을 멸망시켜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이후 청나라 멸망까지 약 2,000년에 걸친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탁월한 통치력을 발휘한 임금이었다. 그는 진시황릉 등의 거대한 토목 공사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으나 운하를 파서 수로를 통한 교역과 물품의 운송을 원활하게 한 점이나 북방 흉노족의 침략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려는 만리장성을 쌓은 일이나 화폐, 문자, 도량형 등을 통일한 일은 감히 그 어느 누구도 하기 어려운 업적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장수(長壽)에 대한 집착으로 동해 바다에 사는 신선에게서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는 서복 같은 사기꾼에게 속아서 막대한 비용과 재물을 낭비한 것 등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존재하지 못했고 오히려 유럽처럼 많은 나라들이 들어서게 되어 역사가 완전히 변했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역사학자들의 평가도 눈여겨 볼만 한다. 그는 장수에 대한 집착으로 젊어서부터 수은을 늘 먹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에 발라 팽팽한 피부를 유지해 보려 애썼다. 그는 말년에 정신 착란증세와 심신의 쇠약으로 언젠가는 나라를 빼앗길 것이라는 미신에 대한 집착과 불길한 해몽에 대한 불안으로 초조해 하며 이 곳 저곳을 떠다니다가 병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시황제는 코가 높고 눈은 길게 찢어졌으며 가슴은 매처럼 생기고 목소리는 들개가 우는 소리 같으며 은혜를 베풀 줄 모르는 사람으로 폭압적 정치를 했으며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나 속으로는 인덕이 부족하고 음험해 승냥이나 이리 같은 자였다.” 진시황릉의 병마용은 오늘 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 산시성의 진시황릉에서 약 1킬로미터쯤에서 발견 된 네 곳의 갱도 유적지에서는 흙으로 만든 병사의 조형물 8,000여점과 130여개의 전차와 520여점의 말이 발견되었다. 이들 모두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고대 왕정시대의 통치력을 엿보게 하는 사료가 아닌가. 그렇다. 그 어떤 권력가나 한 나라의 국가 경제를 대표하는 재벌이라도 자기의 생명을 천년씩 보장 받을 수는 없다. 청년의 늠름함도 지나가고 젊은이의 아름다움도 그리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세기 세계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도 지금은 이 땅에 없다. 그는 8번 7명의 남자와 결혼하였다. 성경은 분명하게 세상의 끝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이는 우주적인 종말에 대하여도 말씀하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가령 창세기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기사로부터 시작하여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죽음과 증손자 요셉의 죽음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성경은 인생에게는 끝이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언약 백성의 누릴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가에 대하여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인생에게는 하늘에 있는 ‘본향’이 있음을 분명하게 강조하며 이 세상의 삶을 외국인과 나그네의 인생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강론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휴거의 장면으로 설명 되는 마태복음 24장의 세상 끝 날의 심판과 요한 계시록의 묘사에 보면 심판과 구원의 날은 명확하다. 밭과 지붕 위와 맷돌질하는 현장에서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한 사람은 남으리라고 하였다. 성경은 죄 사함과 영생과 부활과 승천과 심판과 구원을 설명하는 신앙의 신비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요3:16)는 말씀은 성경의 핵심이다. 그를 믿으면 영생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란 그 분 안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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