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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음일(驕奢淫佚) 2014.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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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8-23 17:10 조회 14,192 댓글 0
 
 교사음일(驕奢淫佚)
 
아주 여러 해 만에 포천에 있는 산정 호수를 한 바퀴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그 곳의 지방 연합 성회를 인도 하던 오후 나절에 산책길에 나선 것이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후덥지근하였지만 우산을 바쳐 들고 혼자 걷는 기분이 참 좋았다. 주변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세와 우거진 숲과 해를 더해 가는 푸르른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자연 경관은 여전히 수려하였다. 호수 주변에 예전에 없던 볼거리들이 생겼다. 1,000여 년 전에 그 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궁예(弓裔, ?-918)에 관한 일대기를 적은 전시물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고 호수 입구에는 궁예의 기마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궁예가 태어난 년도는 정확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김씨 성을 가진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 의정(誼靖)이고, 어머니는 헌안왕의 궁녀였는데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혹자는 48대 경문왕 응렴(膺廉)의 아들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궁예는 왕실에서 버림받고 유모의 손에서 자라다가 세달사(世達寺)에 들어가 중이 되었고 선종(善宗)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삼국사기>의 ‘궁예 열전’에 따르면 "장차 나라를 해롭게 할 아이"라는 점괘가 나오자 신라의 왕실에서는 갓 태어난 궁예를 죽여 없애려 했다. 왕의 측근은 왕궁의 건물 2층 누각에서 갓난아기를 내던졌는데 그 아래에 있던 유모가 당황하며 떨어지는 아기를 품에 받던 때의 충격으로 아이의 한쪽 눈이 실명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신라의 왕권은 극도로 쇠약해져 가고 있었고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자주 일어났다. 신라의 국고가 바닥이 나던 진성여왕 3년인 889년에 과도하게 세금을 독촉하자 전국적으로 백성들의 항쟁이 심해졌다. 이때에 초적(草賊)이 발생했다. 초적이란 농산물이나 남의 물건을 훔쳐 가던 도적을 말한다. 그들 가운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기훤(箕萱)과 양길(梁吉)이다. 궁예는 891년 기훤에게 속해서 활동하다가 이듬해에는 양길의 부하가 되었다. 궁예는 원주 치악산에서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서 오늘 날의 강원도 거의 전역을 점령 한 후에 양길과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장군이라고 자처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에 896년경에 오늘 날의 개성인 송악(松嶽)에서 왕건(王建) 부자가 투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궁예는 898년에 평안도와 한산주(漢山州)의 30여 성을 공략한 후에 양길이 이끄는 세력을 격파했다. 효공왕 3년인 899년에는 왕건을 보내서 오늘 날의 충청남북도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소백산맥 이북의 한강유역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1년에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후고구려라 이름 하였다. 911년에는 왕건에게 바닷길로 오늘 날의 나주인 금성(錦城)을 점령케 하여 서해의 상권을 장악하고 견훤(甄萱)을 견제해 나갔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라를 이끌어 갈 만한 정치이념이 뚜렷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요역과 세금을 무겁게 하고 궁궐을 크게 짓는 등 가혹한 수탈을 자행하였다. 이 때문에 민심을 잃게 되자 918년에 왕건을 두둔하던 이들이 앞장서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궁예를 왕위에서 몰아내었다. 궁예는 옷을 바꿔 입고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鳴聲山) 자락으로 도망하였으나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게 되었다. 그는 산 아래로 내려와 보리 이삭을 잘라 먹다가 농부들에게 들키게 되었고 출동한 병사들에게 붙잡혀서 왕건에 의해서 최후를 맞고 말았다. 그 산을 ‘명성산’ 즉 ‘울음산’이라고 하는 이유는 도망쳐 가던 궁예의 울음소리가 하도 커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산정 호수 둘레길 가의 현판에는 궁예의 패망 원인을 ‘교사음일’(驕奢淫佚)이란 네 단어로 함축하여 설명해 놓았다. 그 뜻은 “교만하고 사치스러워 음란과 안일에 빠진 사람”을 일컫는다. 궁예는 나중에 점점 타락의 길을 걸어갔다. 왕건을 앞장 세워서 후백제의 나주까지 점령해 가던 그였지만 그는 도에 지나칠 정도로 호화로운 왕궁을 건축하며 그에게 거슬리는 이들은 그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목을 벨만큼 잔인하였다. 그의 교만과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말릴 수 있는 주변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쓴 소리를 하던 왕후와 두 왕자마저 처참하게 죽일 정도였다. 역사 심리학자들은 그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 타락과 패망의 길로 가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분석한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이름 꾀나 내던 인물들의 나중을 보라. 교만과 사치와 음란과 안일의 그물망에 걸려서 불행해진 이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않나.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주는 교훈도 다 그러하다. 40년 간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었던 사울(Saul. BC 1021-1000)은 외모가 출중하고 키도 크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게다가 그는 효자였고 겸손하기 까지 하였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간택되는 제비뽑기의 과정은 장엄하고 엄숙하였다. 각 지파에서 천 명 씩이 뽑혀 나왔다. 그 중에서 베냐민 지파가 뽑혔다. 베냐민 지파를 가족별로 구분하다 보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다.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힌 것이다. 그러나 그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숨은 곳을 밝혀내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가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삼상10:22) 하나님이 주목하여 지명하셨고 제비 뽑혀 세워진 사울 임금은 그 출발이 대단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임금다웠다. 그런 그가 나중에 타락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당시의 선지자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15:11)고 탄식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임금 사울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을 전해들은 선지자 사무엘은 근심하면서 온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는 사울 왕이 아말렉과의 전쟁 중에 하나님 앞과 선지자 사무엘 앞에서 거짓되고 교만하게 불순종으로 일관하며 가증하게 행동한 그 이후의 일이었다. 교만하면 망하고 만다. 사치하면 그 어떤 권력이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더군다나 음란에 빠져 살면서 역사에 존경 받은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안일의 잠에 젖어 들면 사사 삼손 같은 인물이라도 잘못되고 마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창세기의 요셉이나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다니엘이 위대한 이유는 이 모든 시험을 매사에 잘 극복하며 살다가 간 남다름이 있지 않나. 이런 면에서는 모세도 다윗도 완전하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지혜의 왕 솔로몬도 그 나중은 주께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 불행한 길을 가고 있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는 루마니아의 독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1살 때는 구두수선공의 견습생이었다. 그런 그가 14살 때부터 불법 공산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8살 때에는 체포되어 2년간 감옥에 갇혀 지냈다. 출소 후에 섬유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여성을 만나 결혼하였다. 다시 투옥된 그는 감옥에서 철도원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였던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Gheorghe Gheorghiu-Dej, 1901-1965)와 옥중 동지로 지냈다. 1949년에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이 설립되자 그는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곁에서 두루 요직을 거치고 나중에는 사회주의 공산국의 원수(元首)가 되었다. 그는 북한의 김일성을 자세하게 모방하며 일인 독재체제를 강화하였다. 인권을 탄압하고 개인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권력은 그 수명이 길지 못하다. 1989년 12월 23일, 도망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군대에 붙잡혔고 저들 부부에게 160여발의 총탄이 빗발쳤다. 사형당한 것이다. 그렇게 교만하던 독재자의 끝은 너무나 비참하였다. 그이 나이 71살 때의 일이었다. 이 처형 장면은 생중계 되었고 저들 부부의 시체는 공동묘지 한 귀퉁이에 버려지듯 초라하게 묻히고 말았다. ‘교사음일’(驕奢淫佚)하면 오래지 않아 망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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