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지도력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이는 1791년에 〈여성인권선언>을 발표한 프랑스 여성주의자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1748-1793)가 남긴 말이다. 여성주의자요 흑인 노예제 폐지론자요 계몽가요 저술가와 극작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45살이었다. 그러나 ‘자유, 평등, 박애’에 기초한 공화국 프랑스에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기 위해서는 그녀가 죽임을 당한 지 150여년 세월이 지난 1944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최근에 한국과 호주의 외무 ․ 국방 장관 연석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손을 맞잡은 사진의 네 주인공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국방 장관을 제외한 세 장관이 여성이었다. 한국과 호주의 여성 외무 장관은 키나 외모나 인상도 거의 비슷하였다. 21세기에 지도자가 되는 길은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각국이 여성의 참정권을 남성과 균등하게 해 온 지는 그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 가령 미국 같은 세계적인 최강국도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이다. 뉴질랜드가 가장 빠른 1893년, 호주인 오스트레일리아는 19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노르웨이는 1913년부터이다. 세계 제 1차, 2차 대전을 거치면서 1914년부터 1939년 사이에 유럽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여성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독인은 1919년부터이고 영국과 캐나다는 그 보다 1년 앞선다. 과거에 영국령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법으로는 1030년부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색, 인종, 성별, 언어 등에 의한 차별은 그 후 오래도록 계속되어 왔다.
한국의 여성정치참여권은 1898년 9월 1일에 서울 북촌의 부인들이 발표한 〈여권통문〉에서 최초로 주장되었다. 이는 천부인권(天賦人權)사상을 배경으로 여성들이 문명, 개화정치를 수행하는 데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한 일체 평등임”을 명시하고 있다. 1948년에 제정된 헌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성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였다.
예수께서 12제자들을 선택할 때에 남자만을 택하고 여성 제자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당시의 유대 문화를 반증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남녀의 성별이나 어른과 아이의 차별을 철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보여 주셨다. 예수는 장애와 비 장애 그리고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수많은 병자들 심지어는 한센 병 환자들까지라도 거리를 두고 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이룩하신 하나님 나라를 향한 구원 사역의 현장에는 언제나 여성들로 넘쳐 났다. 예수는 여성을 신분이나 지위로 인해 차별하지 않으셨다. 그 백미를 이루는 내용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과의 대화이다. 다섯 남자와 살았었고 예수를 만날 당시에도 자기 남편이 아닌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던 사마리아 여성에게 부여하신 천국 백성으로의 구원 초청은 인간을 남녀의 성별로 대하지 않으시며 지난날의 행실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베푸신 넉넉한 사죄의 은총이 아닌가.
예수는 마지막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베다니는 나사로가 살던 마을이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는 앞장서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에 마르다의 자매인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인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부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닦아 드렸다. 나사로의 집안에는 그 향유 향기로 가득해 졌다. 그 날 그 자리에는 예수와 열 두 제자가 다 함께 있었다. 그런데 가롯 유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삼백 데나리온 쯤 되는 그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지 왜 허비하느냐고 역정을 내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보면 요한은 가롯 유다에 대하여 “돈궤를 맡고 거기에 넣는 것을 훔쳐 가는 도둑이라”고 기록해 두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마리아의 헌신을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의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26:13)고 언급해 주셨다. 이처럼 예수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드린 것은 마리아와 같은 여성이었다.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서 모세를 젖 먹여 키운 요게벳, 여성 사사 드보라,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주인공인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의 유대인 왕비 에스더,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 예수께서 부활하신 빈 무덤의 첫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바울 곁의 브리스길라와 뵈뵈나 그리고 루포의 어머니인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 등은 성경의 역사에 돋보이는 여성들이다.
예수의 선교 사역에 적극적인 후원자였던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눅8:3)는 어떤가. 당시의 구사는 헤롯의 경제 담당관이었다. 막강한 지위와 역량과 경제력을 가진 인물의 부인이 구사의 아내였다. 그런 그녀가 예수를 믿고 따르고 자기의 소유로 섬기며 충성되게 예수의 선교 사역을 후원하였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의 여성 지도자들 중에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된 박에스더, 독립 운동가요 순교자인 유관순, 김마리아, 여성 교육가였던 인덕대학의 박인덕, 중앙 대학교의 임영신, 정신여학교의 김필례, 여성순교자 백인숙, 주기철 목사의 부인 오정동 사모 등 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지면이 부족하다.
국가이든 교회이든 여성들의 지도력이 돋보이는 세상이다. 요즘 세상은 중세 봉건주의 때가 아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 누구든지 실력을 키워 국가 발전에 공헌하고 말씀에 붙잡히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구원 사역과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헌신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