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자
믿어지지 않는 사건의 내막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육군 제 2작전 사령부의 사령관인 박 모 대장의 공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무나 별을 다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별 하나 달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별을 네 개씩 다는 것은 영광스럽지 않나. 자신의 자신감과 자긍심도 대단하였을 것이다. 대장의 직급이면 군의 요직을 두루 두루 거친 군 최고 지휘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정도 지위이면 내외간에 공과 사를 막론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언행을 하며 지냈어야 하지 않을까. ‘용장(勇將)보다 지장(智將), 지장보다 덕장(德將)’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순신 장군 정도는 못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알려진 저들 부부의 생활상과 인간됨은 부끄럽기 그지없고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해당 사건의 주인공인 박 모 사령관은 "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자책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전역지원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저들 부부는 식사 때마다 조리병과 공관병을 식당 근처에 대기시키고 후식 준비 등의 시중을 들게 했다. 공관 병사 중 한 명에게는 전자 팔찌를 채웠다. 수시로 호출이 되면 총알같이 달려가야만 했다. 군대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저들 부부의 숨이 막히는 종노릇을 한 것이다. 물론 공관병이 장군의 곁에서 이러 저러한 보직을 받아서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이라도 행동이 늦으면 ‘느려터진 굼벵이',‘영창 보내겠다.'는 폭언도 수 없이 들었다. 공관병은 사령관의 아들의 간식까지 날라다 주고 아들의 속옷도 빨아서 바쳐야 했다. 자기 아들만 귀하고 공관병으로 군대 생활하는 남의 집 아들은 그렇게 비인격적으로 종처럼 함부로 부려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들에게 부침개를 제 때 간식으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사령관 부인이 공관병의 얼굴에 전을 집어 던진 적도 있었다. 화장실 갈 때마다 ‘휴대전화를 화장실에 숨겼느냐'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화장실 변기 청소도 시켰다. 자신은 불교 신자인데도 억지로 교회에 끌고 가기도 했다. 저들 부부는 새벽 기도에 가기 위해서 성경책을 챙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도대체 저들 부부는 새벽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드리며 지내 왔는지 궁금하다.
사령관의 부인은 공관병에게 소파 위에 흩여진 발뒤꿈치 다듬은 각질과 깍은 손톱까지 치우라고 시킨 적도 있다. 공관 안에 없어진 물건을 찾아 내지 못한다고 성화를 해서 자살을 고민한 적도 있다. 조리병이 주방에서 채소를 제대로 다듬지 못한다고 칼을 빼앗아 조리대를 치며 위협한 적도 있다. 조리병의 요리 솜씨나 과일을 담아내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 엄마가 이렇게 가르쳤느냐"며 그의 부모까지 모욕했다. 사철 잔 밥을 거두어다가 공관에서 키우는 개밥을 주고는 했는데 겨울철에 개밥을 들고 가다가 얼음에 미끄러져 넘어졌더니 “너는 개 밥 하나도 제대도 못 주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박 사령관은 공관 마당에 미니 골프장을 만들어 놓고 골프를 칠 때마다 병사에게 공을 주워 오도록 시켰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주일 예배는 물론 새벽 기도회에도 다녔다. 저들 부부의 교회 직분이 무엇인지 모르나 민망하기 그지없다. 힌두교도인 인도의 수상 마하트마 간디(M. Gandhi,1869-1948)가 영국 사람들이 인도 식민지를 끝내고 철수 할 때에 “너희들이 만든 예수는 가져가고 성경의 예수만 이 땅에 남겨 두고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 교회는 132살이 되었다. 한국 교회와 한국 교회의 신자들이 각자 “성경으로 돌아가기”에 앞장 서야 한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 받고 새로워져야 한다. 우상에게 빌듯이 “하나님 내게 떡을 주세요. 밥을 주세요.”하고 비는 기도를 이젠 그만 멈추어야 한다. 사전에도 없는 지도층의‘갑질’ 논란으로 온 나라의 구석구석이 시끄럽기 그지없다. 요즘 벌어지는 사회 운동처럼 ‘나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는 준엄한 심판의 말씀도 하셨다. 아무리 별을 많이 달고 천하를 호령하였어도 주님 보시기에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천하만국을 심판하시는 주님은“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계2:1) 권세자이시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무릎 꿇고 자신의 지은 죄와 악을 고백하고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거듭남이며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잠언 16장 32절은 이렇게 말씀하였다.“...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에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는 말씀도 있다. 그렇다. 그 한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곧 그 사람됨이다. 생각과 입의 말과 대인관계는 곧 그 사람됨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 나아가 그 분에게서 멍에를 메고 주를 따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주님의 자녀다워진다. 권력과 명예와 힘과 부와 세상 연락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고백하며 용서 받고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은 별을 열 개 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복음의 진리이다. 오늘 날 주께 칭찬 받은 백부장 같은 그런 장군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