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절 촛불을 켜며
기독교에서 예배나 예식에 사용하는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빛의 능력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빛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 당시의 대제사장조차도 그가 누구신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사도 요한은 그런 시대 상황을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고 기록하였다.
강림절의 양초는 그 색깔마다 각기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모세의 성막 생활로부터 지난 이천 년 동안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불을 밝힘으로써 예전(禮典)을 발전시켜 왔다. 성막의 등잔 불빛이나 교회의 촛불의 불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강림절 양초 장식이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네 주간을 강림절, 대림절 혹은 대강절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advent’라고 한다. 그 뜻은 ‘임하다. 오다(coming)’는 의미이다. 라틴어의 ‘Adventus’에서 유래하였다. 이 절기는 교회력의 시작이다. 이때로부터 교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인 초림(初臨)을 기뻐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기다려 왔다. 이 절기를 기리는 색은‘기다림’을 뜻하는 보라색이다. 이 기간에 교회는 네 가지 색의 촛불을 차례대로 밝힌다. 초기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새 생명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철나무를 사용해 왔다. 네 가지 색깔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가까이 오고 계신지를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림절 첫 주일에는 세상의 종말(終末)에 대한 준비와 경고의 의미를 담아서 보라색 촛불을 켠다. 보라색은 속죄(贖罪)와 회개(悔改)를 의미한다. 두 번째 주일의 색깔은 연보라색이다. 이는 세례요한을 통하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리며 속죄와 회개를 권유하는 상징이다. 세 번째 주일에는 분홍색 초에 불을 밝힌다. 이는 예수께서 구세주로 이 땅에 탄생할 날이 임박하였음을 알리는 의미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뜻을 담아서 보라색과 연보라색과 분홍색의 세 촛불을 동시에 밝힌다. 절기의 마지막 주일에는 네 개의 초에 불을 켠다. 그 또 하나가 흰색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들의 넘치는 기쁨을 의미한다.
이처럼 초의 색깔을 점점 희고 환하게 밝히는 과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둠을 이기는 광명한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상징하는 것이다. 메시아란 기름부음 받은 종인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유대교에서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이 땅에 왕 중 왕이요 대제사장 중의 지극히 큰 대제사장이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신 구주이시다.
강림절의 강림환(降臨環, wreath)은 둥글게 만든다. 이는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존하심과 무한하신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시작과 마침이시다.(계22:13) 오늘날 전나무로 강림환을 장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나무는 희망과 향기와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나라가 작고 땅이 비좁으니 우리나라는 상품으로 만든 성탄 트리를 사용하지만 미국의 경우 대개의 가정이나 교회에서는 몇 년씩 잘 키운 전나무를 사용한다. 이 계절이 되면 길거리나 상점의 뜰마다 성탄 장식용 전나무들이 넘쳐 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실내에 장식한 전나무는 그 푸르고 싱싱함과 함께 그윽한 향기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강림환은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 문이나 벽에 매어 달아 장식한다. 뿐만 아니라 네 개의 양초를 세우는 바탕 좌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네 귀퉁이에 세우는 네 가지 색깔의 초는 동서남북을 밝히는 천하 만민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을 상징한다.
예수는 선인과 악인, 유대인과 헬라인, 할례자와 무할례자, 종이나 자유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그 복음의 영향으로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천민이 의료선교사 에비슨(O.R. Avison)을 만나서 의학을 공부하고 최초의 외과 의사가 되었다. 박서양(朴瑞陽, 1885-1940)이 그 주인공이다. 복음은 여성들의 지위를 격상시켰고 자기 이름을 갖게 하였다. 상반제도가 사라진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해 주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복음이 들어 온 이 땅에는 서양식 학교, 병원, 고아원 등이 세워지고 오천년 은둔의 땅에 광명한 구원의 새 빛이 비추이기 시작하였다.
강화도 섬마을인 고향 마을에도 일찍이 1906년도에 데이밍과 스크랜턴 등의 선교사가 찾아 갔다. 갑오경장 이후 상투를 풀어 자르고 지내던 마을 사람들 중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는 이들이 탄생하였다. 그 당시 첫 수세자인 유학자 김용하의 손자 김종우는 배재학당에서 공부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었다. 김종우(1883-1940) 목사는 동대문, 상동, 수표교, 정동제일교회 등의 담임 목사로 사역하였다. 그는 영력이 넘치는 설교가요 부흥사요 존경 받던 인품을 지닌 목회자였다. 22번의 감독 투표에도 당선자를 내지 못하던 치열한 선거 중에 비둘기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와 김종우 목사 앞에 앉더니 주변을 맴 돌며 날아 다녔다. 김종우 목사는 살포시 비둘기를 안아다가 창문 밖으로 날려 보냈다. 그 후에 이어진 23번째 선거에서 그는 절대 지지를 받으며 감독에 선출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람으로 오래도록 들어 쓰셨다.